'대하(大河) 풍수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심정
[김두규의 國運風水]
청와대 들어가면 죽는다?
풍수와 무관한 주술일 뿐
경기도 용인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영. 1995년에 대통령이 될 자리라는 이유로 부모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김두규 제공
40년간의 ‘풍수 막장 드라마’가 끝이 났다. 막장 드라마의 절정을 이룬 대사는 “청와대 가면 죽는다”였다. 그 말을 듣고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3년 만에 파면되었다. ‘풍수 막장 드라마’ 최종회였다.
그 1회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00이 엄마! 우리 친정 선영을 이장하고 남편이 대통령 되지 않았겠수? 그러니 00이 엄마도 이장 한번 해봐. 다음에 00이 아빠가 대통령 돼야 할 것 아니우! 내가 잘 아는 명풍수 소개해 줄게.”
그 말을 들은 00이 엄마는 친정 선영을 옮겼다. 그리고 7년 후에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이다. 친정 오빠 김복동(1933~2000) 장군의 회고다. “저는 풍수지리 같은 걸 신뢰하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집안 형님께서 좋은 터에다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육관 손석우씨를 찾았나 봐요. 너스레가 뛰어난 지관이었지요. 손씨는 대구 북쪽으로 10여㎞ 되는 동명마을 뒷산에 묘를 쓰라고 했어요. 선친 묘에 왕기가 서려 있어 우리 집안이 발복할 거라며 허풍을 떨었으나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만….”
손석우(1928~1998)가 발간한 ‘터’라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수록되었기에 ‘풍수 막장 드라마’는 팩트에 근거한 것이었다. 손석우는 풍수 막장 드라마의 ‘작가’였다. 그가 쓴 대사 일부다. “충청도 서쪽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자미원이란 명당이 있다. 자미원에 묘를 쓰면 칭기즈칸을 뛰어넘는 세계적 지도자가 나올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묘를 충남 예산에 이장하고 난 뒤 찾아 나섰으나 찾지 못했다. 그 자미원을 내가 찾았다.”
20여 년 전, 정치인 한화갑은 전남 목포 하당에 있던 선영을 충남 공주 유구읍으로 이장했다. 그즈음 그곳 반경 10km 안에 김종필과 이회창 전 총리 선영이 옮겨졌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좋았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초기에 등장하였으나, 이어서 속속 다른 배우들이 얼굴을 보였다. 필자는 이 ‘드라마’ 중간부터 시청하기 시작하였다. 촬영 현장도 답사하였다. 배우들은 모두 대권을 꿈꿨다. 김종필, 이인제, 이회창, 김덕룡, 한화갑, 정동영 등 유력한 정치인들이 선영을 이장하였다. ‘막장 드라마’ 중간쯤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도 등장하였다. 전남 하의도와 경기도 포천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한다. 이때도 ‘대본’을 쓴 이는 손석우씨였다. 그의 1995년 초 시사주간지 ‘뉴스플러스’와의 인터뷰 내용.
“1995년 초 지인이 찾아와 ‘남북통일을 완수할 영도자가 날 자리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알고 보니 김대중 총재였다. 용인에 묫자리를 잡아주었다. 천선하강(天仙下降·신선이 땅으로 내려오는) 형국으로 대통령이 될 자리다.”
우연히 예언은 적중했다. 2년 후인 1997년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다. ‘드라마’ 시청률이 폭등했다. 일관된 주제는 ‘묘지명당발복설’이었다. 그런데 왜 전두환·노태우·김대중만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까? 혹 그들 조상 묘가 풍수상 명당이 아니었을까? 조선조 풍수학 공인 교과서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두환·노태우·김대중의 이장된 선영들이 명당 공간 모델과 부합하지 않았다. 즉 풍수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청와대 개방 3주년을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의 모습. 차기 정부가 청와대를 집무실로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관람객 숫자가 예년 같은 시기에 비해 급증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막장 드라마’ 마지막 회는 청와대 터에 겁을 먹고 용산으로 간 윤석열 부부의 ‘자폭’이었다. 그 후유증인지 6월 3일 대선을 앞둔 후보들과 참모들 입에서는 풍수의 ‘풍’ 자도 나오지 않는다. 풍수쟁이·관상쟁이·점쟁이도 입을 다물고 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잠시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것일까?
왜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사주를 보고, 관상을 보고, 굿을 하고, 조상 묘를 이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술(black magic)’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다. 누구 때문에 주술에 빠지는 것일까? 주술사(무당·점쟁이·풍수쟁이·관상쟁이)들의 유혹이 강해서일까, 아니면 고객의 자아(주체)의식 결핍 탓일까? 모두 자아의식 결핍이 빚어낸 귀태적(鬼胎的) 현상이다.
바람직한 풍수는 무엇이어야 할까? 바람[風]과 물[水]이라는 ‘風水’ 용어 자체에 답이 있다. 바람이 뜨거워지는 것(지구온난화)을 막아야 하고, 물 부족 및 오염을 막아야 한다. 동양철학 모두가 전제하는 핵심 단어가 기(氣)다. 풍수 고전 ‘금낭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뿜어지면 바람이 되고, 하늘로 오르면 구름이 되고, 땅에 내려오면 비가 되고, 땅으로 스며들면 생기(生氣)가 된다.” 오로지 이 생기만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다. 풍수의 존재 이유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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