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도 못 만드는 美 조선업]
['화양연화' 없는 중국 청년들]
사다리도 못 만드는 美 조선업

작년 9월 함정 정비를 위해 국내 조선소에 입항한 미국 해군 군수 지원함인 ‘월리 시라’호의 모습./조선DB
“배 만들 때 뭐가 중요한지 아시나요?” 미국 조선소 인수를 위해 현지 실사를 다녀온 한 조선 업계 임원이 물었다. 그래도 명색이 조선업 출입 기자인데, 머리를 굴렸다. ‘요즘 해상에서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돼 친환경 연료 사용이 늘고 있으니, 친환경 연료와 기존 연료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연료 엔진이려나.’
오답이었다. 정답은? ‘사다리’였다. “초대형 선박에 사다리가 몇 개 필요한 줄 아세요? 아파트나 빌딩에 계단이 있는 만큼 선박에는 수백 개? 셀 수도 없을 만큼 사다리가 들어갑니다.” 미국 조선소 이야기에서 왜 사다리 퀴즈일까. 그는 미국 조선소에 갈 때마다 “여기 배에 들어가는 사다리는 어디서 공급하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답변은 대동소이. “미국엔 없어요. 멕시코에서 가져올걸요.”
사다리 하나 못 만드는 패권 국가라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직후 바로 한국에 ‘조선업 SOS’를 치고,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고자세로 관세 인상을 압박하면서도 한국과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손잡은 이유는 결국 사다리였던 셈이다.
근데 사실 사다리가 뭐 그렇게 대단할까 싶어 사다리 판매처를 검색해 봤다. 구글로 검색하니 깔끔한 제품 사진과 함께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는 ‘선박용 알루미늄 사다리’가 금방 나왔다. 업체는 전화번호 +86으로 시작하고, 공장은 중국 장쑤성에 있었다. 장쑤성은 중국의 조선업 거점 중 하나다.
결국 사다리 딜레마다. 미국이 항공모함,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들 때 중국산 사다리를 가져다 쓸 수 있을까. 선박용 사다리 하나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미국은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 사다리’를 찾았고, 중국 조선업 굴기, 관세 리스크에 치인 한국은 ‘미국 사다리’를 찾은 셈이다. 200조원 규모로 조성한다는 한미 조선업 전용 펀드도 거창한 걸 다 걷어내면 결국 사다리부터 잘 만들어 보자는 협력이다.
좋게 말해 전통 제조업, 나쁘게 말해 옛날 산업이던 조선업이 마스가 프로젝트까지 더해져 ‘핫’하다. 미국의 SOS인지 손목을 비트는 요구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에 화답하려는 국내 기업의 경쟁도 그만큼 뜨겁다. 이런저런 굵직한 사업을 제안하고 싶은 욕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자(Back to basics)’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조선업이 관세 협상 타결에 공헌한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미국에서 전례 없는 조선업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도 맞다. 잘되면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의 항공모함, 잠수함도 만드는 장밋빛 미래를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의 경쟁력은 미국이 제때, 정확하게 만들지 못하는 그 ‘사다리’ 하나부터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가능하다. 미국이 선뜻 내민 사다리에 마음만 부풀어 후다닥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다리는 ‘손’ ‘손’ ‘발’ ‘발’ 하나씩 차례대로 오르는 게 상식이다. 기본에 충실하자.
-이정구 기자, 조선일보(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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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없는 중국 청년들

‘철 지난 국화’라는 뜻의 성어가 있다. 명일황화(明日黃花)라고 적는다. ‘명일’은 국화를 감상하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의 다음 날을 일컫는다. 중양절 지난 다음의 국화라 제철을 넘긴 꽃, 즉 푸대접받는 신세를 가리킨다.
꽃의 대표적 색깔 때문에 여기선 국화를 황화(黃花)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숫처녀를 일컬을 때가 있다. 화장을 하던 여성이 꽃을 이용했다는 데서 말이 유래했다는 속설 때문이다. 때로는 숫총각도 지칭한다.
아울러 가을의 차가운 서릿발에도 시들지 않는 국화의 모습에서 여성의 곧은 절개를 떠올리며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다가 이 단어는 어느덧 미혼의 젊은이를 통칭하는 말로도 변했다. 따라서 중국인에게 ‘황화’는 곧 ‘청년(靑年)’이다.
이 눈부신 젊음을 예찬하는 글은 많다. 한자 세계의 호칭도 다양하다. 우선 이 연령대의 젊은이는 푸르른 봄과 같다고 해서 흔히 청춘(靑春)으로도 부른다. 식생의 절정인 꽃을 직접 끌어들여 영년(英年)이라고도 한다.
인생의 출발이라는 뜻에서 시년(始年)으로 적기도 한다. 요즘 연령으로 치면 15세에서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다. 그저 아름다운 시절이라 소화(韶華)나 소령(韶齡), 꽃다운 나이라서 화년(華年)으로도 표현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의 제목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다. 청춘은 늘 그렇듯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그러나 여러 매체가 전하는 동영상 등을 보면 요즘 중국 젊은이들의 고통이 매우 심한 듯하다.
크게 나빠진 경제 여건 때문이다. 모아둔 재산이 없는 젊은 세대의 충격이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 혹심하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도는 젊은이가 아주 많아졌다. 채 피우지도 못하고 ‘철 지난 국화’ 신세로 전락한 중국의 꽃들에게 공산당 지도부는 무슨 말을 건넬까.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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