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부부싸움이 늘어나는 이유]
[61세 이상 범죄 20대 첫 추월… ‘개인 일탈’ 문제로만 봐선 안돼]
[99층, 샤넬백 프러포즈와 분노범죄]
퇴직 후 부부싸움이 늘어나는 이유

퇴직 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산을 점검하고 연금을 확인해보며 불안한 심정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떠나고 보니 진짜 스트레스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바로 부부간의 관계에서였다. 퇴직 후 배우자와 하루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은 예상외로 어려웠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작은 차이들이 큰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올여름같이 극심한 무더위로 실내생활이 길어지면 더욱 그랬다. 한 공간 안에서 얼굴을 마주할수록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났다.
일상적 마찰이라 치부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퇴직 후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사회적 현실을 보면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닐 듯했다. 그럼 대체 무엇이 다툼의 씨앗이 되는 것일까.
첫째, 생활 패턴이 달랐다. 직장에 다닐 때는 각자 근무 일정에 맞춰 살았다. 나는 오전 7시 출근을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났고, 남편은 그보다 늦은 오전 6시에 기상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바삐 나갈 채비를 하느라 의식하지 못했다. 주말에도 각기 활동하는 날이 많아 세세하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퇴직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남편의 기상은 한참 늦어졌다. 내가 아침 루틴을 마치고 한숨을 돌릴 즈음 남편은 그제야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다시 움직이려 할 때 남편은 휴식 모드에 들어갔다. 전체적인 리듬이 완전히 어긋났다. 이런 엇박자가 되풀이되자 피차 불편함을 느껴 수시로 부딪혔다.
둘째, 역할 배분에 관한 생각이 달랐다. 퇴직 전에는 정해진 구분 없이 그때그때 집안일을 처리했다. 굳이 나누자면 청소나 빨래 같은 간단한 살림은 내가, 쓰레기 버리기나 힘쓰는 작업은 남편이 하는 편이었다. 집이 별로 어질러지지도 않아 주말에 한꺼번에 정리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퇴직 후 새로운 양상이 펼쳐졌다. 외출이 줄고 집에 주로 머물면서 덩달아 할 것들도 많아졌다. 이전처럼 몰아서 했던 습관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누가 할지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매번 나만 한다고 느꼈고, 남편도 비슷한 듯 보였다. 가사 분담에 대한 동상이몽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셋째, 개인 시간에 관한 관점이 달랐다. 직장에 다닐 땐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근무 중에는 남편을 만날 일이 없었고, 집에 있을 때도 양쪽 다 할 일이 있어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거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면 남편은 안방에서 신문을 보곤 했다. 개인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퇴직 후에는 내내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피로감이 느껴졌다. 나는 집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쪽이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일정 부분은 공감했으나 나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 언제, 얼마나 따로 지낼지에 관한 생각이 전혀 맞지 않았다. 이런 욕구 차이는 끊임없는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두 사람이 퇴직한 직후부터 반복됐다. 처음에는 세월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지만 사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사소한 불편들이 쌓여가면서 서로에 대한 인내심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그 실마리를 지인 부부에게서 발견했다. 이 부부 역시 5년 전 남편의 퇴직 직후 다툼이 잦았다고 털어놨다. 퇴직 허니문은 한 달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들이 고안해 낸 방법은 ‘반나절 거리두기’였다. 낮 시간대의 일부를 상대에게 온전히 보장해주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따로 보내고, 오후 3시 이후에는 둘이서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는 식이었다.
가사일에 관한 얘기도 흥미로웠다. 모든 일을 똑같이 나누기보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 위주로 역할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요리는 아내가, 뒷정리는 남편이, 청소는 번갈아 하는 형태였다. ‘내가 했으니 당신도’라는 편 가르기식 계산보다 ‘내가 잘하니까’라는 장점 살리기식으로 접근하자 불만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결국 해법은 함께하되 각자이기도 한 절묘한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무조건 참기보다 상호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거리를 조절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솔직히 내가 얻은 답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작은 시도만으로도 둘 사이의 긴장감이 사그라들며 집 안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들 한다. 이는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부에게 있어 퇴직은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수십 년 지내 온 부부라도 환경이 바뀌면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여름, 내가 다시금 확인한 깨달음이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동아일보(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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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세 이상 범죄 20대 첫 추월…
‘개인 일탈’ 문제로만 봐선 안돼

지난해 발생한 전체 범죄 약 158만 건 중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가 18.8%를 차지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대(18.3%)를 앞질렀다. 특히 살인 사건 피의자 4명 중 1명이 61세 이상으로 집계되는 등 강력 범죄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만 봐도 60대 피의자가 적지 않았다. 지난달 인천 송도에서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사제 총기로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집에선 사제 폭탄이 발견돼 인근 주민까지 공포에 떨었다. 4월 서울 관악구에서 층간 소음 갈등을 빚던 이웃집에 화염 방사기로 불을 지른 것도, 5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객차에 방화를 시도한 것도 60대 남성이었다. 3월에는 70대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60대 아내를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61세 이상 피의자 비율은 2014년(8.8%)에 비해 2.1배나 늘어났다. 고령 인구의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이례적 급증이다. 퇴직, 실직 이후 사회적 역할을 박탈당한 ‘젊은 노인’들의 상실감이 그 원인으로 분석된다. 아직 신체적으로 왕성히 일할 나이인데 일자리는 구할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고 가족 해체를 겪게 된다. 이로 인한 분노가 쌓이면서 반사회적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과거 고령자 범죄는 주로 소액 절도 같은 생계형 범죄였으나 최근 불특정 다수를 노린 흉폭한 강력 범죄가 늘어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고령화 이전에 설계된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고령자가 부양 대상으로만 비치며 ‘노인 거부’ 문화도 심각하다. 고령자 범죄를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령자에게 지나치게 배타적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현재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현금성 복지에 치우쳐 있을 뿐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은 현저히 부족하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고 심리 상담 등 정서적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령자 범죄 증가라는 이상 신호를 고령 사회로의 전환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아일보(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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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층, 샤넬백 프러포즈와 분노범죄
“유니클로 입던 영부인이 ‘명품 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에게 5000만 원대 시계를 건넨 사업가 서모 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서 씨에 따르면 2022년 9월 만난 김 여사는 “외국 정상 부인들은 치장을 많이 한다. 나도 이런 게 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에 서 씨가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소개해줬다는 것이다. 이 시계를 비롯해 2000만 원 이상의 샤넬백, 각각 6000만 원대인 반클리프아펠과 그라프 목걸이, 3000만 원대 티파니앤코 브로치 등 김 여사가 받았다는 명품에 대해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금품 수수와 청탁이 문제의 본질이지만, 영부인조차 명품으로 자존감을 채우려는 듯한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란 지적이 나왔다.
필수 의례라는 명품 프러포즈 이면
5성급 호텔에서 명품 예물을 주고받는 프러포즈가 한국 젊은 세대에게 필수 의례로 여겨진다는 연구결과까지 최근 발표되며 명품 이슈가 확산됐다. 성신여대 연구팀이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젊은층이 프러포즈 공간으로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5성급 호텔이었다. ‘99층’, ‘93층’ 등 구체적 층까지 SNS에 올린다고 한다. 고가의 특정 호텔(시그니엘 서울)임을 자랑하려는 의도다.
예물로는 샤넬백과 반클리프 목걸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연구팀은 “프러포즈가 명품 브랜드를 과대 포장하고 진열하는 행위로 변질됐고, 청년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접한 청년들은 “민생소비쿠폰도 아껴 쓰는데 박탈감이 크다”, “결혼은 다음 생에서” 등의 반응을 보였다. 청년층의 47%가 SNS에서 자신보다 잘사는 이들을 보며 상실감을 느낀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개인적으론 올해 일어난 강력 사건들이 머리를 스쳤다. 33세 김성진은 4월 서울 미아동 한 마트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냥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20대 김모 씨는 5월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부탄가스 폭탄을 들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다 죽여버린다”며 행인들을 위협했다. 모두를 경악하게 한 2월 초등생 살인 사건에도 유사한 맥락이 담겨 있다. 초등생을 살해한 교사 명재완에 대한 경찰 프로파일링 결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직접적 관련이 없었다. 경찰은 가정과 직장 생활 속 불만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분노가 외부로 표출된 범죄로 결론지었다.
과시 사회 박탈감, 흉기 되지 않게 해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범죄 분석에선 이런 사건들을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한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취업 실패나 실직, 가정불화 등 좌절을 겪으면서 ‘열심히 사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이 커진다. 화가 점차 눈덩이처럼 커지는 분노의 스노볼(Snowball) 효과가 발생한다. 임계점을 넘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로 범죄를 저지른다. 이때 분노를 키우는 촉매제가 유독 심한 우리 사회의 과시와 비교 문화, 이에 따른 박탈감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내 이상동기 범죄는 지난해 42건으로, 최근 5년간 383건이나 발생했다. 이 중 살인 및 살인 미수는 97건(24.5%). 한번 발생하면 치명적 피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범인을 괴물 취급하며 개인의 일탈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수사기관의 대응력 강화 외에 실패한 사람에게 낙오자 낙인 대신 재도전 기회를 주는 등 사회 전반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명품을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명품이 단순한 사치품을 넘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환경,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만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풍토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이유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흉기로 되돌아 온다.
-김윤종 사회부장, 동아일보(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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