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총장']
[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尹 영치금, 50일 동안 3억]
'사모총장'

오래전 어느 정부 부처에서 커다란 여자 목소리가 상당 시간 복도까지 흘러나왔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부처 고위 간부의 ‘사모님’이 직원들을 모아 놓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실제 있었던 일화라고 한다.
▶부인이 공식 직책을 가진 남편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 예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많다. 마오쩌둥의 넷째 부인 장칭(江靑)은 수많은 정적을 숙청했다. 마오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마오의 뜻”이라는 식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마오가 죽고 바로 추락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부인 이디스는 남편 상태를 숨기고 1년 7개월 동안 서류 결재를 대행했다. 이디스의 ‘막후 대통령’ 행세는 훗날 미국 헌법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을 VIP라고 부른다. 그런데 김건희의 영향력이 워낙 커 윤석열 전 대통령은 V1, 김 여사는 V2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김 여사는 V0로 불렸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권력 동향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많은 정치인 아내가 남편이 선거 출마 얘기를 꺼냈을 때 이혼하겠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도 결국 남편이 출마하면 선거운동을 도왔다. 총리까지 지낸 정치인 부인 별명은 ‘포천 빗자루’였다. 중앙에서 바쁜 남편 대신 지역구를 챙겼는데 지역구민이 좋아한다고 늘 한복을 입었다. 저녁 무렵이면 치마 밑단이 흙으로 범벅이 되곤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빗자루’였다.
▶정치인 사모님의 영향력과 위세는 크다. 숨기는 사람이 있고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김병기 민주당 전 원내대표 보좌진들은 김 전 대표 아내를 ‘사모총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신들에겐 당 사무총장보다 더 센 사모총장이었을 것이다. 사모총장은 보좌진을 뽑을 때 면접을 보고 구의원들을 데려다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고 한다. 2022년 당시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업무 추진용 법인 카드를 들고 다니며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보좌진들 얘기를 들어보면 여의도에 ‘사모총장’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절반이 넘는 의원 보좌진들이 공·사에 걸쳐 업무에 개입하는 사모총장들에게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비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아졌다. 공적인 정당·지구당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 ‘사모총장’을 대거 등장시킨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이런 정치가 매일 사람들을 불러 야단치고 훈계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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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절대왕정 시대임에도 민심 외면한 채
사치하고 국정 개입하다 죗값 치른 佛 왕비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심 무서운 줄 모르고
매관매직, 국정 농단한 혐의는 더 무거워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극적인 인생은 드라마와 역사 속 인물과 비교되곤 한다.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맥베스 부인 같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동원해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명성황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명품백 스캔들이 터졌을 땐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렸는데 남편과 동시에 수감돼 재판받는 요즘 처지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장 닮은 듯하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15세에 프랑스 왕가로 시집온 그녀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희대의 악녀라는 혹평과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희생자라는 동정론이 대립한다. 유럽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근거 없는 비방과 찬사들을 걷어내고 사실로 확인된 사료만 추려 가장 객관적이라 평가받는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썼는데 이에 따르면 왕비의 참모습은 폄훼와 미화 양 극단의 중간쯤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그러하듯 이 전기 작가는 프랑스 왕정이 몰락한 단초를 국왕이 왕비에게 ‘예속’된 관계에서 찾는다. 윤 전 대통령이 ‘V1’과 ‘V0’의 관계로 김 여사에게 예속된 내막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 국왕 부부의 경우 남편의 귀책 사유로 결혼 7년 만에야 첫아이를 낳을 정도로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사이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젊고 아름다운 왕비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요구했고 무기력한 왕은 왕비가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는 것이다.
김 여사와 프랑스 왕비 모두 보석 욕심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대통령과 동급의 비화폰을 쓰며 국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듯 왕비도 “국왕에 대한 자신의 엄청난 위력을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하고 “아무 일에나 참견하고 서툴게 나서서 마구 결정”했다. 오빠인 오스트리아 왕자가 “네가 무슨 권리로 프랑스 왕국의 문제에 간섭하느냐”고 질책한 적도 있다.
전기 작가 말대로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물고, 선동을 목적으로 인물을 그릴 때는 정의란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왕비의 낭비벽은 선정적 삽화와 부풀려진 일화를 담은 팸플릿으로 암암리에 유통되며 왕정 타도 여론에 불을 질렀다. 김 여사 특검의 수사 내용에 확인되지 않은 ‘전언’들로 살을 붙여 민심을 사납게 하고 조회수 장사를 하는 일부 유튜버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 왕비가 마지막까지 구명을 기대했던 상대는 친정인 오스트리아 황실과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번질까 우려하던 이웃 나라 군주들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세계는 비정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조차 폐위된 고모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트황상(트럼프 황제 폐하)’의 ‘숙청’ ‘혁명’ 발언에 잠시 고무됐던 한국의 왕당파들이 떠오르지 않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명은 남편의 왕위 회복을 위해 적군을 도운 반역죄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지금은 출판물로 남아 있지만 재판 당시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배심원단 전원 일치로 유죄 결정이 났다. 여론 재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역사는 왕비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 ‘국왕의 아내가 자신의 왕국을 헤아려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단 한 번도 응한 적 없는 죄’ ‘베르사유 궁전 밖 수백만 백성이 굶주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죄’다. 유럽을 600년간 호령했던 왕비의 친정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가져다준 지위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다가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임을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절대왕정 시대에도 성난 민심에 배가 뒤집힐까 삼가고 경계했다니, 민주주의 시대 유한한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대통령의 아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명품 목걸이와 금거북에 관직 내주고 국정과 당무에까지 개입했다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루이 16세 부부는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시대를 만났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그러나 극적으로 격앙된 시기에 대처할 줄을 몰랐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해 쓰러지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죄과까지 있는 법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표현대로 ‘비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선 평범함도 죄’가 된다. 민심의 벼락을 맞고서야 오만과 무관심에서 깨어나 뒤늦게 품위를 보여준 프랑스 왕비는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평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서,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도덕성으로 추락한 후로도 상식 밖의 언행을 보여주는 김 여사 이야기는 환멸의 막장극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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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영치금, 50일 동안 3억

영치금이 풍족하면 감방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고 교정시설 경험자들은 말한다. 세수할 때 누구는 비누를 쓰는데 누구는 폼클렌징으로 씻고, 겨울에도 누구는 모포 한 장으로 버티는가 하면 두툼한 극세사 이불을 덮는 수형자도 있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게 영치금이다. 그래서 수감자들 세계에선 영치금이 두둑한 이들이 ‘범털’(재력과 권력을 가진 수형자)로 통한다. 반면 영치금 계좌가 비어 있는 재소자들은 ‘법자’(법무부의 자식)라면서 자조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소자가 영치금을 무한정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의식주 외에 필요 물품을 최소한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돈 쓸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처벌의 일환이고, 수용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어 상한선을 두고 있다. 수감 기간 중 보유할 수 있는 영치금은 4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음식물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도 하루 최대 2만 원이다. 옷, 신발, 의료용품 등은 액수 제한이 없다.
▷구치소에선 400만 원 넘는 돈은 쓸 수도 없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받은 영치금은 3억1000만 원에 달한다. 재구속된 7월 10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50일간 받은 돈이 그 정도다. 전국 교정시설 수감자 6만여 명 중 압도적 1위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부인 정경심 씨도 2억4000만 원의 영치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2년간 누적액이어서 윤 전 대통령에게는 한참 못 미친다.
▷윤 전 대통령이 처음 구속됐던 올 1∼3월만 해도 영치금은 450만 원이 전부였다. 김건희 여사가 50만 원, 장모 최은순 씨가 100만 원을 보냈다. 재수감 이후 영치금이 크게 불어난 건 김계리 변호사와 전한길 씨가 영치금 계좌를 알리면서부터다. 이들은 등록 재산이 거의 80억 원인 윤 전 대통령을 두고 “창졸지간에 돈 한 푼 없이 들어가셔서 아무것도 못 사고 계신다” “고독한 옥중 투쟁을 하고 있다”며 모금을 호소했다. 그러자 ‘윤 어게인’ ‘계몽시켜줘 감사하다’는 등의 메시지와 함께 3억 원이 넘게 모였다. 사실상 윤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후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보관 한도인 400만 원이 채워질 때마다 개인 계좌로 옮겼다. 구치소에서 생필품이나 간식 등을 사는 데 쓴 돈은 200만 원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은 ‘변호사비 및 치료비’ 명목으로 출금됐다고 하는데 실제 그 용도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이 영치금을 외부로 이체한 횟수는 50일간 80여 차례에 달한다고 한다. 수사와 재판을 모두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도 불응하던 그가 영치금 관리만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꼬박꼬박 하는 것 같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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