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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의 아버지] [커피믹스] [“국민 희망 돼 다행” 생환한 이도.. ]

뚝섬 2026. 4. 23. 06:00

[커피믹스의 아버지] 

[커피믹스]

[“국민 희망 돼 다행” 생환한 이도, 구해낸 이도 모두가 영웅]

 

 

 

커피믹스의 아버지

 

1946년 서울대가 개교했을 때 “삼면이 바다인 나라가 살 길은 배 만드는 기술뿐”이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이 있었다. 가르칠 교수도, 공부할 원서 한 권도 귀하던 시절 그들은 서로가 선생이자 학생이 되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윤강(輪講)’으로 학문의 기틀을 닦았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1회 졸업생들이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조필제 전 동서식품 부회장이다. 동창회 명칭을 “우리가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을 꿈꾸자”며 진수회(進水會)라 지은 사람도 그다. 그가 10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철강선 ‘한양호’를 준공하며 꿈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조선소는 수익성이 나빠 월급이 두세 달씩 밀리기 일쑤였고, 아내와 자녀들은 냉방에서 끼니 걱정까지 해야 했다. 보다 못한 장인이 “삼성에서 공장을 계획한다니 그 곳으로 옮겨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몇 달을 버텼지만 결국 장인의 꾸중까지 듣고서 조선소를 떠났다.

 

▶삼성 제일모직으로 옮긴 그는 국내 최초의 소모 방직 공장 건설을 주도했다. 이어 한솔제지의 신문·교과서 용지 공장을 지었고, 제일제당을 거치며 부산의 제분, 김포의 조미료, 인천의 제당 공장 등 먹거리 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한 사람이 배와 섬유·종이·식품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국가 기간 산업의 현장을 일궈낸 사례는 흔치 않다.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해내야 했던 우리 산업화의 한 측면을 상징한다.

 

▶그를 ‘커피믹스의 아버지’로 만든 것은 1970년대 동서식품 시절이다. 출발은 품질 관리 담당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커피와 설탕, 프림을 한데 섞어 ‘한 방에’ 타서 마시게 하자는 발상은 세계 최초의 일체형 커피믹스 탄생으로 이어졌다. 1초라도 아끼려는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인에게 이 작은 봉지 커피는 그대로 히트를 쳤다. 2022년 봉화 광산 사고 당시 고립된 광부들이 커피믹스에 의지해 9일을 버텨낸 일은 이 제품이 가진 또 다른 생명력을 보여줬다. 커피믹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사막에 닻을 내리고’이다. 그 제목처럼 그의 삶은 불가능에 도전해 온 우리 산업화를 잘 보여준다. 커피믹스 한 잔에 한때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청춘의 꿈을 굽혀야 했던 한 엔지니어의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꿈꿨던 조선 왕국이 이뤄진 오늘, 대한민국호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가 안식에 들길 기원한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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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1990년대 동구권에서 사업하던 한인 교포가 카자흐스탄의 거래처를 방문했다.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을 내놨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에 올 때는 커피믹스를 부탁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라는 거였다. 커피를 자본주의 퇴폐 문화의 상징으로 배격하는 북한도 뒤로는 커피를 즐긴다. 특히 커피믹스는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일꾼 귀국 가방에 들어가는 필수품이다. 고위층에 바치는 선물 목록에도 들어 있다.

 

▶커피믹스의 원조 격인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술 대신 지급하기 시작한 보급품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액상 커피에 연유를 섞어 응고시켰다. 1차 대전 이후 열건조 커피와 냉동동결 제품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러나 막대형 봉지에 커피·크림·설탕을 넣을 생각은 못했다. 아이디어를 주인공이 한국의 동서식품이었다. 1976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80년 첫선을 보였다. 1993년엔 기호에 따라 설탕 분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2007 통계청 조사에서한국을 빛낸 발명품 10 5위에 올랐다. 커피믹스의 성공을 본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도 모방 제품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히트상품의 특징 하나가 생산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한때 수험생들 사이에 붕붕 드링크라는 카페인 음료 제조법이 성행했다. 박카스·원비디·레모나를 섞어 마시면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활력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도 잠이 쏟아지면 커피믹스를 추가했다. ‘붕붕드링크 하이퍼 포션’이라 한다. 몸에 좋을 수는 없지만 워낙 널리 소비되다 보니 나타난 활용법이다.

 

▶또 다른 효용 가치가 추가됐다. 경북 봉화의 광산 매몰 사고에서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이들이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며 버텼다”고 했다. 커피믹스 대표상품인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 열량이 50㎉다. 나트륨 5㎎, 탄수화물 9g, 당류 6g, 지방과 포화지방 각 1.6g씩 들어 있다. 다른 회사들 제품도 비슷하다. 성인 남성의 하루 칼로리 섭취량 2000㎉엔 크게 못 미치지만 위급 상황에서 목숨을 지켜준 훌륭한 비상식량이었다.

 

▶재난 전문가들은 비상식량의 조건으로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고’ ‘포만감 없어도 높은 열량을 지녀야 하며’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휴대가 편리하도록 부피가 작고 가벼워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건빵이나 미군 전투식량인 MRE가 해당한다. 여기에 한국인이 만든 커피믹스도 포함돼야 할 것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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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희망 돼 다행” 생환한 이도, 구해낸 이도 모두가 영웅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째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되고 있다.2022.11.5/ 소방청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로 지하 190m 갱도에 갇혔던 광부 2명이 생환했다. 사고 발생 열흘째, 221시간이 지나서였다. 건강도 큰 문제 없다고 한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동료 부축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갱도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에 온 국민이 환호했다. 구조된 이들은 “ 생환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침착한 대응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고 직후 이들은 탈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괭이로 암벽을 부수면서 스스로 길을 열었다고 한다.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이동하고 갱도 내 파이프를 때리고 소리를 질러 지상에 신호를 보냈다. 갱도 작업용 비닐과 나무로 천막을 만들고 모닥불을 피워 바람과 추위를 막았다. 밥 대신 가지고 있던 커피믹스를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매몰된 장소에 가만히 있지 말고 스스로 위험을 피해 대피 장소를 마련하라는 안전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매몰자 중 한 명은 25년 광업 경력의 62세 조장이었다. 몸에 밴 매뉴얼이 생존의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밖에서의 구조 노력도 평가받을 만하다. 사고 후 구조대는 매몰자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 172m까지 천공 작업을 진행했지만 실패했다. 업체가 보유한 갱도 지도가 22년 전 그대로였기 때문에 천공 위치가 빗나간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지하 140m 수직 갱도 아래에서 325m에 달하는 진입로를 확보해 구조에 성공했다. 언제든 추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구조대는 “매몰자가 살아있다는 믿음,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서 길을 뚫었다”고 했다. 매몰자들은 “길을 내는 기계 소리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두 달 전에도 같은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번에 또 사고가 일어나자 업체 측이 자체 구조를 한다면서 신고를 늦췄다고 한다. 이번 사고 역시 업체의 안전 의식과 대처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 수사를 통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틴 생존자와 포기하지 않고 구조한 소방대, 시추와 탐사를 담당한 육군 장병이 보여준 드라마는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빠진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희망을 전했다. 그들이 영웅이다.

 

-조선일보(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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