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틈에서 살길은 철혈(鐵血)뿐인가]
[조지아주 구금 사태서 드러난 한국의 역량]
['내 마음속의 조지아']
[찰리 커크와 한 마지막 인터뷰]
열강의 틈에서 살길은 철혈(鐵血)뿐인가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체포·구금됐다 풀려난 한국인 316명이 탑승한 전세기가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 도착한 12일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가 공항 입국장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한 플래카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장련성 기자
철혈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가 생각난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길은 ‘철(鐵)’과 ‘혈(血)’뿐이라고. 철은 무기이고, 혈은 피의 전쟁이다. 국제법이네 무슨 조약이네 그런 거 하나도 믿을 것이 못 되고 궁극적으로 자기 나라를 지켜주는 것은 ‘철혈’이라고. 트럼프가 요즘 한국에 막장 드라마처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비스마르크 당신 말이 맞소’라는 생각이 든다. 내 놓으라고 하는 5000억 달러가 누구 이름인가! 공장 지으러 간 한국인 300여 명을 흑인 노예 다루듯이 쇠사슬로 묶어 끌고가는 장면은 엄청난 배반감을 느끼게 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시작하고 3년 후인 1871년부터 유신의 젊은 주역들은 사절단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을 3년간 돌며 발전된 문물과 사회제도를 배우러 다녔다. 이게 이와쿠라 사절단이다. 이들이 1873년 프로이센의 재상으로 있던 비스마르크를 만났다. 당시 사절단 멤버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32세, 오쿠보 도시미치가 43세였다. 다른 나라 재상들은 외교적인 수사인 ‘립서비스’만 했는데 비해서 비스마르크는 솔직하면서도 뼈 있는 충고를 해 주었다. ‘국제법 그런 거 너무 믿지 마라. 다 종이 조각이다. 강대국은 약소국에 써준 그런 종이 조각 언제든지 찢어버린다.’ 유신 3걸 중의 하나였던 오쿠보 도시미치는 그 뒤로 비스마르크를 사부처럼 존경하면서 그의 진정 어린 충고를 가슴속에 새겼던 것 같다.
재조지은(再造之恩:다시 살려준 은혜)이란 말도 그렇다. 성리학에 가스라이팅 된 조선 후기 집권당 노론 세력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서 도와준 은혜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국가 간에 주고받는 ‘이해타산’을 갖다가 개인적인 차원의 ‘윤리도덕’으로 착각한 말이다. 국가 간의 의리라는 것은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조선 집권층의 이러한 착각이 병자호란을 불렀다. 안 겪어도 될 전쟁을 겪으면서 청나라에 돈 뜯기고 여자들 갖다 바치는 피눈물을 겪었다.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겪을 때 청나라와 끝까지 붙어보자고 주장했던 척화파들은 난리 끝나고 모두 자결했어야 맞다.
6·25 때 미국은 젊은이들이 한반도에 와서 피를 흘리며 우리를 도와준 ‘재조지은’의 나라가 맞다. 미국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중국에 대한 유교적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해독제 역할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무엇인가? 한국은 ‘양빵을 맞는(미·중의 귀싸대기를 맞는)’ 상황이란 말인가!
-조용헌 동양학자, 조선일보(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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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 구금 사태서 드러난 한국의 역량
[특파원 칼럼]
지난주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와 포크스턴에서 미 이민당국에 체포돼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을 취재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문제가 됐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을 지난해 말 취재했던 때와 너무도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현지에선 한국 기업들의 20조 원 규모 투자와 긴밀해지고 있는 한미 간 경제 협력으로 들뜬 분위기였다. 조지아주 관계자는 “이곳을 선택한 한국 기업은 ‘조지아의 기업’이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불과 9개월 만에 조지아주에 다시 돌아와 구금소에 수감된 우리 국민 300여 명의 안부를 걱정하고, 유령 도시처럼 변한 공장을 둘러봤던 것이다.
공장 빨리 만들려던 게 체포·구금 이유
HL-GA에서 일했던 기업 관계자들은 자신들은 그저 공장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려고 공을 들였던 게 전부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현대차가 이곳에 여의도 4배 규모 부지를 확보하긴 했지만, 인력이 많은 동네도 아니고 필요한 기술을 갖춘 인력은 더욱 부족해 한국에서 사람을 데려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미 이민당국이 적법한 비자를 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단기 상용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로 왔다”는 사연이 수두룩했다.
결국 HL-GA의 많은 직원들은 신속하게 공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미 이민당국의 쇠사슬에 묶였던 것이다. 손목, 발목, 허리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홍보영상 속에서 총을 든 요원들에게 쫓겨 호송 버스에 올랐을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처참했을지는 상상으로도 잘 안 느껴졌다.
풀려난 근로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구금소 이야기는 더 기가 막힌다. 70명이 넘는 인원이 한방에서 지내기도 했고, 그 안에서 제대로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로 용변을 본 경우도 있다. 구금소 관계자 중에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제스처인 ‘눈 찢기’를 보이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현지 동포들은 “한국 근로자들이 쇠사슬 모욕까지 받아야 할 정도의 중범죄자들이라면 왜 지난 정권에서는 이들의 비자 문제를 알면서도 공항에 ‘현대차 패스트 트랙 창구’까지 만들어 주며 대접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美 악수(惡手)로 ‘韓 역량’ 더 부각될 듯
큰 상처를 남겼지만, 정부와 기업 그리고 동포사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구금자들이 신속히 풀려나게 노력했고, 심각한 문제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을 두고 한국인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이 발휘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과 인력들의 수준 높은 기술력이 입증됐고, 이들이 얼마나 미국에 필요한 존재인지가 부각됐다는 진단 역시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기업의 지역경제 기여도 역시 다시 한번 재조명 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현지에선 “사태 전말이 알려질수록 ‘한국 기업과 인력을 제대로 대우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커질 것”이란 반응도 나왔다.
다만, 이번 사태로 트럼프 행정부, 나아가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건 미국의 악수(惡手)가 초래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여겨진다. 이미 소셜미디어 등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동맹국이자 투자 파트너를 대하는 태도냐”,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도 중단하자”며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미국은 한국에 ‘하루빨리 관세 협정에 사인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 정부는 25%의 관세 못지않게 ‘국민감정’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이 과도한 조치로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한미 신뢰의 근간에 큰 상처를 낸 결정적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동아일보(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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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조지아'
Ray Charles, 'Georgia on My Mind' (1960)

Ray Charles, ‘Georgia on My Mind’ (1960)
“조지아, 조지아/ 하루 종일/ 오래된 달콤한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조지아를 떠올리게 해(Georgia, Georgia/ The whole day through/ Just an old sweet song/ Keeps Georgia on my mind).” 작사가 스튜어트 고럴과 작곡가 호기 카마이클의 합작으로 1930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어느 흑인 가수에 의해 1960년 세상에 알려진다. 7세에 시력을 잃은 레이 찰스는 이 노래에 피부색을 뛰어넘는 영혼의 울림을 불어넣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미국의 동남쪽 끝 플로리다 바로 위의 조지아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첫 13주 중 하나인 유서 깊은 지역으로 미시시피강 동쪽 주 중 최대 육지 면적을 가진다. 코카콜라 본사가 여기 있으며 치킨 버거의 성지이기도 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품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운동의 대표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인권 외교를 내세웠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낳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 인구의 35%에 달할 정도로 높은 조지아는 대한민국과도 밀접하다. 2010년 기아차가 연간 30만대 이상의 현지 생산을 시작한다. 섬유 공장들이 문을 닫던 우울한 분위기에 기아차는 조지아의 유일한 자동차 공장이자 주 산업의 희망이 된다. 조지아 주 거주 한국인도 약 10만명에 근접해 대규모 한인촌이 형성되었으며 점점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이번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 노동자 체포·구금 사태는 한미 동맹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정도의 충격을 남겼다. 레이 찰스는 노래한다. “우 조지아 조지아/ 평화를, 평화를 찾을 수 없네 (Woah, Georgia, Georgia/ No peace, no peace I find).” 그가 인종차별 반대 투쟁에 참여해 고향에서 공연 금지 처분을 받다 풀려난 1979년, 이 노래는 조지아의 공식 주가(州歌)가 된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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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커크와 한 마지막 인터뷰

미국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 설립자 찰리 커크(32)의 피살 소식을 듣고 기함했다. 방한한 그를 인터뷰한 것이 숨지기 닷새 전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커크의 ‘마지막 인터뷰어’가 된 셈이다. 키 195㎝인 그가 내 손을 잡고 “정치가 언젠가 삶을 바꿔주길 기다리지 말고, 지금 내 삶에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커크의 언변은 듣는 사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한국 화장품을 잔뜩 사서 다시 어려지겠다”는 농담을 했고, 유튜브에선 “새벽 5시 반 호텔 밖을 나와서 6마일(약 9.7㎞)을 걸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놀랍다”며 서울의 치안과 청결을 극찬했다. 그랬던 그가 미국 유타주 대학 캠퍼스에서 20대 청년들과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라(Prove me wrong)’는 즉문 즉답 토론을 하다 난데없이 날아든 총탄에 숨질 줄 누가 알았을까.
지면 사정으로 미처 싣지 못한 그의 말 중에 ‘인생에서의 네 가지 큰 축복’이 기억에 남는다. 기독교인이 된 것, 정치에 입문한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축복으로 꼽은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꼭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으라. 그게 인생의 행복”이라고 했다. 그 말에서 정치적 신념만큼이나 따뜻한 인간미를 느꼈다.
그날 인터뷰에서 커크는 “친구 다섯 명만 투표장에 데려가도 세상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 일상 속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극우 인사’로 치부했지만, 커크의 말에는 진영과 이념의 벽을 허무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비판만 하는 소극적 저항에 머물지 않았고, “진보가 만든 제도라도 거부하지 말고 더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진영도 경청하고 되새길 만한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이 청년 논객은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골랐다. 인천 자유공원을 찾아 한미 동맹의 상징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에서 추념했고, 북한이 보이는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했다. 그는 보수 가치에 관심을 갖는 한국 청년이 늘어나는 현상을 계속 연구하고 싶다고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전해졌다.
커크의 죽음은 그래서 충격 그 자체였다. 트럼프가 사후(死後) 최고 등급 대통령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그가 살아 있다면 기로에 선 한미 동맹을 위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들과 열정적으로 소통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안준현 기자, 조선일보(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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