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갇혀버린 70년 동맹]
[대미 투자 3500억달러, 돌파구 찾으려면]
‘남한산성’에 갇혀버린 70년 동맹
[김승련 칼럼]
美 압박, 병자년 남한산성 국난과 흡사
韓에 가혹… “동맹도 차별” 트럼프팀 방침
“밟는 발도 뚫린다”… 동맹의 언어 아냐
경주 회담 앞두고 필요한 건 ‘절대 고독’
트럼프 정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떤 사업인지도 모르는 미국 내 사업에 나랏돈 3500억 달러를 100% 현금으로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국난이 눈앞에 닥친 셈이다. 거칠게 빗대자면, 남한산성에 갇힌 채 청(淸)의 홍타이지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받던 병자호란 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야만적 힘이 정의던 400년 전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59일 만에 투항했다.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와 화친하자는 주화파가 맞선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학자 한명기에 따르면 조정에선 95 대 5 비율로 싸우자는 쪽이 압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의 선택은 5% 소수파가 제시한 길이었는데, 굴욕적일지언정 피해는 최소화하려던 선택이었다.
당시엔 우리가 오랑캐라 배척하던 세력이 남한산성을 에워쌌는데, 지금은 미국이 70년 동맹을 ‘남한산성’에 몰아넣었다.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배고픔을 딛고 서게 했던 미국이 국난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역설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 올 예정이다. 8월에 이어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지금 3가지를 묻게 된다. ①트럼프는 왜 유독 한국에 모질게 나오나 ②대미 투자 총액을 줄이는 등 우리 부담을 덜 길은 없나 ③투자협상 타결 이후 한미동맹은 온전할 수 있나.
①에 대한 답은 상대국을 대미 충성도에 따라 차등 대우하겠다는 트럼프 캠프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약(弱)달러를 추구한다는 정책이 정리된 이른바 ‘스티븐 마이런 보고서’를 보자. 그곳에선 트럼프의 경제·안보 정책에 얼마나 잘 따르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관세를 차등해서(graduated tariffs) 부과하겠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우리 눈에 일본은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한다. 한국 정권교체기마다 등장하는 중국 경사(傾斜)론도 일본엔 없다. 트럼프 사람들이 한국에 더 가혹해 보이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②와 관련해 투자 총액도 줄이고, 지분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양 갈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국이 자신들 요구를 100% 이행할 여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건을 누그러뜨릴 기미는 안 보인다. 트럼프식 협상 전략일 수도 있고, 이재명 정부의 혼을 쏙 빼놓아 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대미 수출품에는 대체로 25% 고율 관세가 붙고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미국 편만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는 한미 협상의 결론은 물론 과정까지 주시하고 있다. 동맹의 모범국 한국이 굴복당한다면 어떤 나라가 미국의 동맹 리더십을 흔쾌히 따를까.
이럴 때일수록 아쉬운 것이 한국 보수의 역할이다. 한미 간 가치동맹을 주도해 온 그들이라면 국익의 이름으로 협상을 도울 기회다. 하지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현 여권에 대한 정치적 정서적 반감 탓일 텐데, 하책(下策)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미동맹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질문 ③에 대한 답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의 “한국을 밟는다고 밟아지는지 한번 보라. 밟는 (미국의) 발도 뚫릴 거다라고 미국에 말했다”는 설명은 놀랍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이건 동맹끼리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 없이 중국과 일본을 맞상대할 방법은 없지 않나.
하지만 지금처럼 밀린 월세 받아 가듯 동맹의 혜택을 받아내겠다는 건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으로 승복하기 어렵다. 결국 가치동맹이 훼손된 자리에는 계약동맹이 들어설 것이고, 피를 나눈 혈맹이 아닌 필요할 때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잘 작동되는 듯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에 미국이 한국을 위한 안보개입을 이행할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토동맹은 즉각 개입이지만, 한미동맹은 ‘각자의 헌법적 절차를 거친다’는 지체 요인이 있다.
협상 타결은 미국이 요구를 양보해야 가능하다. 그 대신 우리는 뭘 줄 수 있나. 결국 전략적 유연성이든, 중국 문제든 ‘동맹 현대화’로 이름 붙인 미국의 동맹구상을 수용하는 어딘가에 길이 놓여 있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대좌가 다가올수록 이 대통령은 외롭다고 느끼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엊그제 퇴임을 앞둔 이시바 일본 총리가 2차 대전 패전 80년을 맞아 왜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치가 막지 못했는지에 대해 글을 남겼다. 내용 자체보다 그런 글을 마무리하기까지 늦은 밤 홀로 생각에 잠겼을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절대 고독의 시간이다. 동맹을 남한산성에서 꺼내는 일은 미국도 할 수 있지만, 이 대통령도 할 수 있다.
-김승련 논설실장, 동아일보(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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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투자 3500억달러, 돌파구 찾으려면
[朝鮮칼럼]
투자액 줄일 수 있다면
농축산 추가 개방 검토를
적게 잃는 쪽 택해야
배당 확대 등 중단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깎고
지출 다 줄여 재원 짜내길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미국에 대한 3500억달러 투자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EU·일본에 비해 고율 관세 부담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주력 산업이 모두 곤경에 빠졌다. 하루빨리 타결해야 한다.
GDP가 우리의 2.2배 정도 되는 일본이 5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2500억달러 정도로 막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일본은 미국 쌀 수입을 75% 늘리기로 했고,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1조1000억달러)이라는 점 등이 협상에 도움이 된 듯하다. EU도 양보 사항의 첫머리에 미국 농축수산물 수입에 대한 우대 관세 약속이 나온다.
미국 농축산물 수입 확대가 협상 타결에 도움이 된다면, 특히 투자 금액을 줄일 수 있다면, 수입 확대에 따른 농가 손해는 모두 보상하기로 하고, 추가 개방도 검토해야 한다.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직된 자세로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농업 보호 비용을 가시화해 온 국민이 직시하게 해야 한다. 농민이 얻는 것보다 온 나라가 잃는 것이 많다면 적게 잃는 쪽을 택해야 한다.
어쨌든 3500억달러, 우리 돈으로 500조원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외환 보유액이 4000억달러 수준인 나라가 3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데 놀라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달러로 환전할 방도가 열리면 원화로는 이 돈을 마련할 대책이 있을까? 우리나라 전체 1년 설비 투자액이 1900억달러 정도고 해외 투자 총액이 연 200억달러도 되지 않는다. 투자금 3500억달러를 더 마련해 펀드를 조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과 미국의 합의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현금, 선불” 언급은 문자 그대로는 아니고 협상 전술인 것 같다. 5500억달러를 2029년 1월까지 나누어 투자하는데 미국이 투자 대상을 제안하면 45일 안에 수락 여부를 밝혀야 하고 거부하면 고율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 합의의 핵심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3.5년 동안 연평균 1000억달러, 140조원을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경제 규모, 연간 총투자 가능 규모, 외환 보유액, 대외 순채권 규모 등의 한계를 강조해 총투자 금액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투자 진행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융통성 있는 투자 계획 합의에 노력해야 한다.
어쨌든 예년보다 50% 정도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일차적으로 투자는 기업 몫이다. 기업이 좋은 조건으로 외부 투자 유치·차입을 하려면 자기자본이 든든해야 한다. 요즈음 눈앞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추진하는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은 잠시 중단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 모두가 기업 투자 역량을 훼손하는 일이다. 기업 투자 역량을 키워주지 않고 대미 투자를 이행하면 그만큼 국내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러지 않아도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되겠는가?
정부라도 차입 능력이 많이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올해와 내년 100조원 이상 재정 적자가 계속돼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올해 말 49%를 넘어서고 내년 말에는 51.6%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국채가 급격히 늘어나면 신용 등급 하락, 국채 이자 상승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바로 이런 위급 사태에 대비해 국채 발행 여력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 두어야 했다.
내수 진작 효과가 20%밖에 안 된다는 민생 회복 소비 쿠폰으로 인한 국채 13조원 증가는 참 아까운 실탄 낭비였다. 소비성 예산을 동결·삭감해 국내든 미국이든, 설비 투자든 인력 양성이든, 기술 개발 투자든 가리지 않고 투자 재원을 극대화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태블릿 PC를 하나씩 나눠주고도 돈이 남아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당장 깎아야 한다. 타당성 검토를 면제받은 대규모 사업들은 타당성이 없다는 자백을 한 사업인 만큼 모두 중단해야 한다. 지금은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국가적 위기인데 국채 발행 여력을 가불해 써 버렸으니 줄일 수 있는 모든 지출을 줄여 투자 재원을 짜내야 한다.
미국도 한국 경제가 파탄에 빠져서는 3500억달러 투자는 물건너 간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을 개선할 최선의 방도를 양국 경제 당국이 찾아내기 바란다.
-박병원 퇴계학연구원 이사장·前 청와대 경제수석, 조선일보(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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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APEC서 시진핑 안 만날 수도.” 7년 전 김정은과 만날 때도 “취소” 발표했다 이틀 뒤 번복했었는데.
-팔면봉, 조선일보(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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