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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으로 인구 절벽 넘는 도시들] [ .. 영국산 양털]

뚝섬 2025. 10. 28. 10:29

[‘매력’으로 인구 절벽 넘는 도시들]

[고대 로마서도 인기였던 영국산 양털]

 

 

 

매력’으로 인구 절벽 넘는 도시들

 

한때 취리히 제네바에 이은 스위스 제3의 금융 중심지였던 루가노는 스위스의 금융 비밀주의가 흔들리며 시들어 갔다. 활력을 되찾기 위해 루가노는 ‘비밀금고’에서 ‘가상자산’으로 도시의 색깔을 바꿨다. 도심 공원에 비트코인 창시자의 동상을 세울 정도로 가상자산에 진심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시절부터 있었을 것 같은 노포에서도 가상자산으로 결제가 가능하고 세금도 코인으로 낸다. 최근 3년간 유치한 가상자산 관련 스타트업만 100여 개에 달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던 노키아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침체에 빠졌던 핀란드 북부 도시 오울루는 이제 ‘노키아 도시’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뗐다. 다만 한때 노키아의 상징이던 혁신의 정신만은 그대로 남겼다. 통신 분야의 연구개발(R&D) 역량을 바탕으로 산학협력을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했다. 친환경 에너지 & 클린테크, 교육, 소비재, 헬스케어, 게임, 인공지능(AI), 핀테크 등의 스타트업이 활동하며 시 전체가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거듭났다.

호주의 산업도시 질롱은 ‘러스트벨트’에서 ‘실리콘밸리’로 변신했다. 자동차 공장이 속속 폐쇄되며 위기를 맞았던 질롱은 도시의 엔진을 자동차에서 장갑차, 자주포 등 방위산업으로 갈아 끼웠다. 과거 양모산업이 발달했던 지역의 강점을 이용해 탄소섬유 등 신소재 개발에 적극 나섰다.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 말뫼도 조선업 등 기존 산업의 몰락에 좌절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골칫거리였던 빈집을 지역의 효자로 만든 도시들도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의 소도시 무소멜리는 버려진 집을 단돈 1유로(약 1650원)에 판매해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8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1유로 주택’을 사들여 개조한 뒤 영구 거주하고 있고, 관광객도 10배로 늘면서 인구 감소세가 멈췄다. 지역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과 환대 문화 덕분에 외지인들이 지역에 잘 녹아들 수 있었고 도시는 활기를 되찾았다.

▷인구절벽 위기를 극복한 해외 도시들의 공통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통과 인프라를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전통금융을 가상자산으로, 통신 연구개발(R&D)을 스타트업으로 바꿔내는 식이다. 남들이 성공한 모델을 그대로 베낀다고, 정착지원금을 뿌리거나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다고 해서 저절로 인구와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역의 자산을 바탕으로 특화 전략을 찾아내고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 인구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지방 도시들이 해외 도시의 성공 사례에서 배워야 할 진짜 교훈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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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서도 인기였던 영국산 양털

 

18세기 일어난 산업혁명의 씨앗 됐죠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진 시기에 가장 손이 자주 가는 옷이 있죠. 바로 ‘후리스’라고 부르는 옷이에요.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이 옷은 주로 합성섬유로 만들지만, 이름은 양털을 뜻하는 영어 단어 ‘플리스(fleece)’에서 왔답니다. 양털처럼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쓰는 것이지요. 양털은 오랫동안 인간의 옷과 생활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재료였는데요. 오늘은 이 양털이 인류의 생활과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양털을 가공해 만든 모직물로 가장 유명한 국가는 영국입니다. 양털로 된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영국산 모직물은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4세기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기록에 따르면, 영국의 특산품으로 모자가 달린 양털 망토인 ‘비루스’가 유명했다고 합니다. 

 

털을 깎기 전 메리노 양의 모습. 메리노 양은 양 중에서도 푹신한 감촉의 털로 유명해요.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영국산 모직물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요? 먼저 영국은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양을 훨씬 많이 키우는 나라였어요. 농민과 지주는 물론이고 심지어 수도원에서까지 양을 키웠지요. 또 양의 품종도 다양해서 여러 종류의 직물에 알맞은 양모를 생산할 수 있었어요. 14세기 초에는 영국에서 기르는 양이 무려 1000만 마리가 넘었다고 해요. 당시 영국과 가까운 유럽 대륙의 플랑드르 지방은 수많은 직조공들이 모여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모직물 생산지였는데요. 플랑드르에 양모를 수출해 부를 얻으려고 너도나도 양을 사육했던 것이죠.

 

영국이 본격적인 양모 생산지로 거듭나게 된 것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 이후부터라고 해요.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플랑드르의 일부 직조공들은 양모 공급지를 찾아 영국으로 이주했고, 이때부터 영국은 단순한 양모 생산국을 넘어 옷을 만드는 기술까지 갖추게 된 것이죠.

 

영국이 자랑하는 양모와 모직물 산업은 훗날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기도 했어요. 영국에선 돈이 되는 양모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공유지나 미개간지 등의 토지에 울타리를 쳐 양을 기르는 목초지로 바꾸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이를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한답니다.

 

이 때문에 농사를 짓던 많은 농민이 땅을 잃고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로 향하게 됐죠. 가난한 농민이 도시의 임금 노동자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흐름은 18세기까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영국의 산업 도시들은 풍부한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몰리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영국의 양모 산업과 인클로저 운동이 산업혁명의 단단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 조선일보(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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