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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계의 '칼리굴라'] [DNA 발견의 신화]

뚝섬 2025. 11. 11. 06:20

[생물학계의 '칼리굴라']

[DNA 발견의 신화]

 

 

 

생물학계의 '칼리굴라'

 

195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25세 연구원 제임스 왓슨이 킹스칼리지 연구원 모리스 윌킨스를 찾아갔다. 왓슨은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자가 DNA 구조를 알아냈다고 주장한 논문의 사전 인쇄본을 들고 미국에 뒤져선 안 된다고 윌킨스를 설득했다. 결국 윌킨스는 동료 연구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몰래 보여줬다. 왓슨에게 결정적 확신을 준 증거로 밝혀진 이른바 ‘51번 사진’이다.

 

▶이를 힌트 삼은 왓슨과 동료 프랜시스 크릭은 철사와 금속판으로 DNA 입체 모형을 만들어 화학적 제약 조건을 만족하는 이중나선 구조를 찾아냈다. 이들은 학교 복도와 술집을 누비며 “우리가 DNA의 구조를 알아냈다”고 소리쳤다. 두 달쯤 후 네이처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이 게재됐다. ‘우리는 DNA의 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로 시작하는 900단어 분량의 짧은 논문으로, DNA 구조는 두 가닥의 사슬이 연결된 이중나선임을 밝혔다.

 

▶왓슨은 자서전에서 프랭클린의 사진을 본 즉시 “DNA는 두 가닥의 서로 꼬인 구조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자신의 논문에는 ‘윌킨스, 프랭클린 박사 등의 미공개 실험 결과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모호하게 한 줄 담았을 뿐이다. 프랭클린은 37세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DNA 사진을 왓슨이 몰래 본 것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왓슨은 프랭클린 사후 출간한 회고록에서 프랭클린을 “자기가 연구한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도 못 하면서 혼자 움켜쥐고 있던 평범한 과학자”로 묘사했다.

 

▶다윈, 멘델에 비견되는 놀라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으며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얻은 왓슨은 학계에서 “로마 폭군 황제 칼리굴라 같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서도 동료 교수들의 진화론, 분류학, 생태학 등 연구를 “우표 수집”이라고 무시했다. “피부색이 진할수록 성욕이 강하다”라거나 “우리와 아프리카인 지능이 동등하다고 하지만,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아니란 걸 안다”며 흑인의 지능이 낮다는 인종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재정난을 겪다 2014년에는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메달을 팔려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인종차별 입장을 계속 유지하다 결국 모든 명예직까지 박탈당했다. 그는 DNA의 비밀을 풀어 생명의 설계도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끝내 자신의 유전자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과학의 영광과 인간의 오만, 그 빛과 그림자를 한 몸에 품고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 조선일보(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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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발견의 신화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51번 사진’은 영국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그녀의 제자 고슬링이 1952년에 얻어낸 DNA 결정의 X선 회절 사진이다. DNA가 이중 나선임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이중 나선(1968)’에서 이 사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신참 연구원 왓슨은 1953년 초 킹스 칼리지에서 신경질적인 프랭클린을 만나고 그날 그녀의 상관인 윌킨스가 보여준 ‘51번 사진’을 보게 된다. 왓슨은 당시 그 사진을 보자마자 DNA가 나선 구조임을 간파했다고 저서에서 술회한다. 책 독자들은 프랭클린처럼 숙련된 결정학자가 판독하지 못한 사진을 왓슨 같은 초심자가 판독해 내고 그 결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얘기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꼼꼼히 재검토한 학자들은 왓슨이 프랭클린을 괴팍한 여성으로 편파적으로 묘사했고, 심지어 그녀의 허락 없이 몰래 ‘훔쳐본’ 사진을 이용해서 중요한 발견을 이뤘다고 그를 비판했다.

 

왓슨과 마찬가지로 왓슨 비판자들도 51번 사진의 마법 같은 힘을 중시했다. 하지만 최근 DNA 발견 70주년을 맞아 네이처에 실린 콥(M. Cobb)과 컴퍼트(N. Comfort)의 연구는 51번 사진과 관련된 신화를 바로잡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꼼꼼한 실험가답게 자신의 실험 데이터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DNA가 나선 구조라고 생각했다가 이런 생각을 폐기했으며, 자신이 발견한 대칭 구조의 과학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왓슨이 51번 사진을 보고 DNA가 나선 구조임을 간파했다는 얘기도 물론 과장된 것이지만, 이 사진 자체가 DNA 발견에 결정적인 자료였다는 것도 과장이라는 것이 이들의 해석이다.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아하!” 하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콥과 컴퍼트는 이론 연구를 하던 캐번디시 그룹과 실험을 하던 킹스 칼리지 연구팀이 매니저들 차원에서 ‘비공식적 소통’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 정보가 왓슨 같은 연구원에게는 제공되었음에도 여성이자 유대인인 프랭클린은 이 정보 공유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과학자들은 비슷한 어려움을 느낀다. 과학의 실질적 양성평등을 꾀하는 정책학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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