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
[도둑맞은 그림]
옥(玉)
신성한 기운 가진 왕권의 상징… 중국선 영혼 부활시킨다고 믿었죠
지난달 말 우리나라 정부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을 위해 경북 경주를 찾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국보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행원에게 “백악관 박물관 제일 앞줄에 전시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흡족해했대요. 신라 시대 무덤 중 천마총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신라 금관 중 가장 화려한 금관으로 꼽혀요. 특히 금관에 빼곡하게 달린 반달 모양의 굽은 옥이 금관을 더 기품 있게 만들어 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늘은 이 금관을 돋보이게 해준 옥에 대해 알아볼까요? 과연 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요?
동양에서 옥은 신성하고 특별한 기운을 가진 광물로 여겨졌어요. 한반도 고대 국가 왕들은 나라 문서에 사용하는 왕의 공식 도장을 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옥새라고 부르죠. 옥새는 왕에게 단순한 도장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다름없는 의미였어요.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왕의 권력을 가리켰죠. 또 조선에서는 옥 조각을 엮어서 만든 책인 옥책에 왕비 이상의 높은 왕족의 죽음을 기렸어요. 옥책은 왕의 뒤를 이을 세자를 공식적으로 정하는 의식 등 왕실의 중요한 의례에도 사용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사람들은 옥이 양의 기운을 충만하게 가졌기 때문에 영혼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죽은 자의 입에 옥구슬을 넣거나, 손에 옥을 쥐여주기도 했어요. 왕족이 죽으면 환생을 염원하면서 옥 조각 수천 개를 실로 엮어 만든 수의를 입혔다고 합니다. 고대 중국 황제들은 가운데가 뻥 뚫린 납작한 도넛 모양의 ‘옥벽’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신과 대화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신과 연결돼 있는 황제이므로 권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황제가 죽으면 이 옥벽을 시신과 함께 두기도 했어요.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일본에서도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옥을 사용했어요. 일본 건국 설화 속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천황에게 ‘삼종신기’라고 불리는 세 가지 보물을 하사합니다. 바로 청동 검과 청동 거울, 그리고 굽은 모양의 옥이에요. 천황이 신에게 통치권을 직접 넘겨받은 신의 자손임을 상징하는 물건이죠. 삼종신기는 아주 귀해서 일본 신궁에 보관되고 있으며 한 번도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대요. 일본 천황이 바뀔 때는 복제품을 이용해 삼종신기 계승식을 벌이기도 합니다.
유교에서는 옥이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를 나타내기도 해요. 유교 기본 경전인 오경 중 ‘예기’에는 ‘군자는 옥에 자신의 덕을 견주어야 한다(君子比德於玉焉·군자비덕어옥언)’는 구절이 나옵니다. 옥의 여러 성질을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표현한 것이죠. 예컨대 군자의 어진 마음(仁·인)은 옥처럼 따뜻하고 윤기 있으나 빛나지 않아야 한대요. 이후 여러 유교 경전에서는 군자가 되려는 사람은 옥을 가까이하고, 옥을 몸에 지녀야 한다고 조언했답니다.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 조선일보(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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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그림
모나리자·절규 같은 세계적 그림들… 도난 후 더 유명해졌죠
최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품 도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박물관에 침입한 도둑들이 나폴레옹 1세가 황후에게 선물한 에메랄드·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옛 왕실 보석 8점을 훔쳐 달아났죠. 도난당한 이 보석들의 가치가 약 8800만유로(약 1484억원) 수준이라고 해요. 문화유산 차원의 손실까지 합친다면, 금액으로 따지기 어려울 겁니다. 프랑스 정부도 ‘값을 매길 수 없는 문화유산적 가치’라고 표현했죠.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모나리자’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어요. 오늘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어떤 작품들이 사라졌고 이후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13년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서 미술관장 등이 '모나리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모나리자'는 이후 원래 있던 곳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갔습니다./도난당한 모나리자가 이탈리아에서 발견되자, 프랑스의 한 신문에 '모나리자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어요.
도난 이후 더 널리 알려진 그림
‘모나리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일 겁니다. 그러나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당할 당시만 해도 모나리자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탈리아 청년인 모나리자 도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잠시 일한 경험을 살려 혼자 그림을 훔칠 계획을 세웠어요. 도둑은 낮 동안 박물관 창고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작품을 외투 안에 숨긴 채 갖고 나왔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탈리아에서 가져간 그림이고, 이탈리아로 돌려놓아야 맞는다’는 생각이 범행의 동기가 됐다고 해요. 다만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가지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 왕실에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범인은 모나리자를 2년 동안 자신의 집에 보관하다가,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그림을 팔려다 붙잡혔습니다. <사진 1>은 1913년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한 모나리자를 미술관장과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모습이에요. <사진 2>는 모나리자를 되찾았다는 소식이 커다랗게 실린 당시 프랑스의 한 신문 지면입니다. 도난부터 회수에 이르기까지 모나리자는 큰 관심을 받았고,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지요. 원래 모나리자는 전시장 벽에 걸어 두기만 했는데, 점차 보호를 강화해 지금은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에 전시돼 있답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절규'. 뭉크는 절규를 여러 장 그렸는데,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은 2004년 복면 강도에게 도난당했다가 2년 뒤 되찾았지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입니다. 이 그림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어요. 혼자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선 채 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림 속 사람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뭉크는 십수 년에 걸쳐 ‘절규’를 각기 다른 버전으로 4개 그렸어요. 그중 달걀 노른자와 물을 섞은 템페라(Tempera)와 유화 물감으로 1910년에 그린 버전은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 복면 강도들이 대낮에 총을 들고 뭉크 미술관에 들어와 이 그림을 가져갔어요. 당시 미술관에 있던 사람들은 절규 그림 속 공포를 경험했죠. 도난 사건을 계기로 절규는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작품 속 불안의 의미가 실제 사건과 겹치면서 그림이 한층 생생해졌기 때문이에요. 그림은 2년 만에 되찾아 복원을 거쳤지만, 약간의 손상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되찾은 예술품이 알려주는 진품의 가치
도난 이후 약 35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 작품도 있습니다. <사진 1>은 경북 예천군 보문사에 보관돼 있다가 도난당한 불화(불교 그림) ‘신중도’예요. 1767년에 혜잠 스님이 그렸습니다. 1989년 6월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노리던 도둑들이 보문사 문을 부수고 신중도 등 불화를 훔쳐 갔고, 우리나라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3년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카고대 스마트 미술관이 신중도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미술관 측은 도난 사실을 모르고 그림을 입수한 것이었고, 작년 말 조건 없이 돌려줬습니다. 올해 6월에는 예천 보문사에서 신중도가 제자리를 찾은 것을 기념하는 의식을 가졌어요. 불화는 사찰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중도가 돌아온 건 보문사의 정체성을 되찾은 일이라고 평가됩니다.

<사진 1> 1767년 혜잠 스님이 그린 '신중도'. 경북 예천군 보문사에 보관되던 중 1989년 도난당했어요. 도난 사실을 모르고 그림을 입수한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 미술관이 신중도를 가지고 있었고, 35년 만인 지난해 우리나라로 돌아왔답니다.

<사진 2>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푸르빌의 해변'이에요.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던 도둑이 폴란드 포즈난 국립 미술관에서 2000년에 훔쳐 10년 동안 개인적으로 보관했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오슬로 뭉크 미술관·대한불교조계종·포즈난 국립 미술관
<사진 2>는 프랑스의 클로드 모네(1840~1926)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해안을 방문하고 1882년에 그린 ‘푸르빌의 해변’입니다. 2000년 어느 날 폴란드 포즈난 국립미술관의 한 학예사는 전시실 벽에 걸린 이 푸르빌의 해변 그림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1882년쯤 모네가 그린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미묘하게 붓질이 달랐던 것이지요. 조사 끝에 미술관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진품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도둑은 밤에 벽을 타고 몰래 미술관에 들어와 진품을 가짜로 바꿔치기했어요. 미술관 감시 카메라에는 범인이 푸르빌의 해변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무는 모습이 찍혀 있기도 했어요. 범인은 그 그림을 몹시 좋아한 나머지 꼭 자기 곁에 두고 싶었나 봅니다. 진품의 아름다움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을 들게 만든 것이지요. 약 10년 뒤 범인은 붙잡혔고, 푸르빌의 해변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기획·구성=정해민 기자, 조선일보(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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