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우리 마음 속의 나쁜 얼굴 '하이드'… 숨기지 말고 마주할 용기 가져야 해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l 송승철 옮김 l 출판사 창비
‘지킬과 하이드 같은 사람’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보통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말할 때 쓰죠. 그래서 책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사실은 한 사람의 두 모습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변호사 어터슨의 시선을 따라 존경받는 의사 지킬과 정체불명의 범죄자 하이드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를 추적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작품 발표 당시 독자들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두 인물이 같은 사람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결말을 알고 읽어요. 그런데도 이 작품이 여전히 위대한 고전인 이유는 범인 찾기가 중심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어터슨이 기이한 소문을 듣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한밤중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남자가 어린아이를 짓밟고 아무렇지 않게 가버렸다는 얘기예요. 분노한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하이드는 수표 한 장을 내미는데, 그 수표에 적힌 주인 이름이 뜻밖에도 런던에서 가장 명망 높은 신사인 헨리 지킬 박사였대요. 어터슨은 지킬이 하이드에게 협박당하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이후 하이드는 길 한복판에서 노인을 지팡이로 살해하고 사라집니다. 그 뒤로 지킬은 방 안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죠.
지킬 박사는 부·명예·재능을 모두 갖췄지만, 사회적 체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고 살았어요. 그래서 그는 낮에는 지킬로 명예를 누리고 살다가, 밤에는 직접 만든 약물을 먹고 하이드로 변신해 죄책감 없이 쾌락을 즐기려 했죠. 초반에는 약물을 마시면 다시 지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는 점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이드가 점점 강해져서 나중에는 약물을 먹지 않아도 지킬의 의지를 밀어내고 불쑥 튀어나오게 된 거예요. 게다가 그동안 약물이 낸 효과는 우연히 섞여 들어간 ‘정체불명의 불순물’ 덕분이었습니다. 새 약물을 만들려고 보니 그 성분을 다시 구할 방법이 없었죠. 결국 마지막 남은 약물을 마시고 더 이상 지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는 자신의 비극을 기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은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겉모습이 점잖다고 해서 마음까지 선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지킬과 하이드가 함께 살고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와 가정에서는 예의 바른 지킬로 보이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하이드의 얼굴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죠. 이 책은 자신의 악한 면과 약한 면을 무조건 부정하는 대신, 그것이 자신의 일부임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고 진정한 인간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진혁 출판 평론가, 조선일보(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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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 3월, 연합국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연 전범 재판에서 나치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이 증인석에 앉아 있다. /뉘른베르크 재판 아카이브
1945년 11월 20일, 나는 독일 뉘른베르크 법원 건물 앞에 서 있다. 오늘부터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재판’이 저 건물 안에서 시작, 총 403회를 거쳐 1946년 10월 1일에 종결된다. 뉘른베르크는 히틀러와 나치가 가장 사랑한 도시이고, 뉘른베르크 법원은 유대인들의 권리를 강탈하는 ‘뉘른베르크법’이 통과된 장소다. 이것이 미국·소련·영국·프랑스가 유독 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나치 주요 전범들에 대한 ‘재판 응징’을 기획한 상징적 이유다.
반대도 있었다. 처칠은 전범들을 당장 총살해 버리면 쿨하다고 생각했다. 소련은 총살은 명예롭다며 교수형을 관철시켰지만 끝까지 복수심이 채워지지 않아 사사건건 불만이 많았다. 이들이 옳았던 것일까? 전범에 대한 최초의 근대 재판 형식을 특별히 강하게 원했던 미국의 정의(justice)는 만용(蠻勇)과 낭만이었던 걸까? 변호인들과 피고인들의 반대 논리와 저항 궤변이 만만치 않아 재판 내내 검사들과 판사들은 진땀을 뺐으며, 오늘날까지 이 과정과 결과에 대한 논란은 살아있다.
어쨌든 24명이 기소돼 12명이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 전범들 사이에서 히틀러 노릇을 하던 나치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교수형을 당하기 전 몰래(담당 군인을 가스라이팅해서 구한 듯) 반입한 청산가리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더 기막힌 것은, 괴링 같은 괴물의 해골 속이 궁금했던 미국이 미군 장교이자 정신과 의사인 켈리 박사를 괴링에게 붙여놓았었는데, 그는 10여년 뒤 괴링과 같은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에서 이렇게 썼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필요했던 것일까? 이후 역사가 흐를수록 나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본다. 훗날 북한의 강제수용소들이 해방됐을 때, 그곳에서 자행한 범죄들을 마주해야 할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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