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로 사랑과 권력을 쟁취한 클레오파트라]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향수로 사랑과 권력을 쟁취한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를 방문할 당시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클레오파트라 두상. 독일 베를린 알테스 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기원전 30년). 아름다움과 지성을 모두 갖춘 그녀는 향기로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긴 여왕이다. 클레오파트라에게 향은 단순히 몸을 치장하기 위한 화장품이 아니었다. 사랑과 권력, 정치의 수단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스물한 살 때 남동생이자 남편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났다. 그는 자신을 복위시켜줄 인물 로마의 카이사르를 만나고자 했다. 경비병 눈을 피해 그에게 선물로 바쳐진 융단에 숨어 숙소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카이사르가 융단을 펼치자 매혹적인 향과 함께 클레오파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만남을 통해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연인이 됐고 정치 동맹을 맺음으로써 왕좌 복귀에 성공했다.
그녀가 ‘향 연출가’로서 절정에 오른 순간은 안토니우스와의 만남이었다. 나일강 변에서 클레오파트라를 기다리던 안토니우스는 향기로 그녀의 존재를 먼저 알았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그녀는 금빛 돛을 향수에 적셨고, 향기로운 바람이 강을 뒤덮었다”고 기록했다. 돛뿐 아니라 천막과 노예들까지 향수에 흠뻑 적셨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의 거처를 방문할 때마다 방을 장미잎으로 채웠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을 장미향으로 기억하도록 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해 자결하기 전 클레오파트라를 생각하며 “무덤에 장미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클레오파트라가 어떤 향수를 사용했는지는 구체적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장미·몰약(미르)·카다몸·계피(시나몬)·연꽃을 주성분으로 한 향수로 몸을 감쌌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하와이대학 연구팀이 나일강 삼각주의 고대 도시 멘데스(Mendes·현재 텔 엘 티마이)에서 발굴한 향수 제조 공장은 클레오파트라 향기의 비밀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였다.
멘데스는 고대 이집트 향수 산업의 중심지로, ‘멘데시안(Mendesian)’이라 불린 향수가 생산되던 곳이다. 연구팀이 2000년 넘게 묻혀 있던 암포라(항아리) 속 잔여물을 분석한 결과 몰약·계피·카시아(콩과의 나무)·발라노스 오일(balanos oil) 성분을 확인했다. 발라노스 오일은 이집트·수단 사막에서 자라는 ‘데저트 데이트 트리(desert date tree)’라는 나무 열매 씨앗에서 짠 기름이다. 알코올에 향 성분을 섞어 몸에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인 현대의 향수와 달리, 고대에는 향 성분을 넣고 열흘 이상 천천히 끓여 스며들게 한 기름을 발랐다.
멘데시안 향수는 묵직 쌉싸름한 몰약과 코를 톡 치는 계피 향이 합쳐진 따스하고 달콤한 향이 특징으로, 가장 오래된 향수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밖에도 고대 이집트에는 청색 연꽃·몰약·카다몸·올리브오일을 주성분으로 하는 ‘수시넘’, 몰약·유향(프랑킨센스)·계피·벌꿀·와인을 혼합한 ‘키프리넘’도 유행했다.
-오하니 조향사, 조선일보(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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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권력 실세 꺾은 정치 신예… 13년간 힘 길러

옥타비아누스 동상(왼쪽), 안토니우스 동상
도쿄올림픽에서 전 세계 선수들이 멋진 경기를 펼치고 있어요. 특히 대한민국 10대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이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17세 김제덕 선수는 양궁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거머쥐었고, 18세 황선우 선수는 수영 자유형 100m에서 한국과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어요. '탁구 신동' 17세 신유빈 선수는 단식 2회전에서 무려 41세 많은 58세 니시아리안(룩셈부르크) 선수와 맞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신 선수는 32강에서 탈락했지만, 베테랑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경기하는 모습에 "Z세대(2000년대 초반 출생자)답다"는 평이 나왔어요. 노장의 관록에 맞서는 신예들의 패기가 올림픽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신예가 노장을 무너뜨린 경우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바로 18세에 로마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명된 옥타비아누스(기원전 63~14년)와 그보다 스무 살 많았던 관록의 안토니우스(기원전 83~기원전 30년)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카이사르의 암살
두 인물의 대결은 로마를 지배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 44년)가 원로원 귀족들에게 암살되면서 시작됩니다. 귀족들은 카이사르가 죽으면 로마 공화정이 회복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카이사르에게 충성했던 군대가 세력을 장악합니다. 특히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자 집정관(당시 최고 관직)이었던 안토니우스가 권력을 차지했죠.
안토니우스는 군사적 자질이 훌륭했을 뿐 아니라 외모도 뛰어나 "마치 헤라클레스의 후손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요. 신망도 두터웠고요. 그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연설을 하며 로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원로원을 소집해 차분하게 사태를 수습했어요. 이제 안토니우스가 로마의 모든 권력을 쥔 듯 보였죠.
하지만 이때 뜻하지 않은 인물이 나타납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그의 누이의 외손자로 18세 소년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를 양자 겸 후계자로 삼고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거예요.
18세 신예의 등장
원정을 위해 그리스 아폴로니아에 파견 가 있던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죽음과 후계자 지명 소식을 듣고 곧장 로마로 향했어요. 하지만 아직 안토니우스와 대결하기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그와 손을 잡고 로마를 안정시키고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죠.
그리하여 기원전 43년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레피두스가 일종의 군사 협약인 '2차 삼두정치'를 체결하고 정치를 합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먼저 군대를 이끌고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처단합니다. 이때 옥타비아누스가 병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모든 영광이 안토니우스에게 돌아갔어요. 이후 로마의 동쪽은 안토니우스가, 서쪽은 옥타비아누스가 나누어 다스리기로 하였는데, 안토니우스는 동방 원정에서 군사·경제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쌓습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면서 무너져 버렸어요. 원래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암살자였던 카시우스를 도와준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려고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어요.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매력에 빠지고 맙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절세 미녀는 아니었지만 능숙한 대화 능력과 아름다운 목소리 등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고 해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 수도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간 안토니우스는 시간을 낭비했고, 그러는 동안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서 차츰 세력을 쌓아 갔어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결혼 선물로 자신이 정복한 땅 일부를 주는가 하면,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와 동방의 여왕'으로 선포하기도 했어요. 이전에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굳건한 동맹을 위해 자신의 누이 옥타비아를 안토니우스와 결혼시켰는데, 안토니우스가 미리 작성한 유서에는 옥타비아와 낳은 자식에겐 유산을 남기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이집트에 묻힐 것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어요. 이런 점을 다 알게 된 로마인들은 안토니우스를 배신자로 여기며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악티움 해전의 결투
이렇게 안토니우스가 분별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본 옥타비아누스는 결전의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안토니우스도 로마의 1인자 자리를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500척의 대함대를 편성했어요. 사실 안토니우스는 자기에게 지상전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대함대가 있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며 해상전을 고집했죠.
결국 전쟁은 바다에서 시작됐는데, 이것이 유명한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입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의 함대는 크기만 컸지 군사 수는 적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어요. 배를 저을 줄 모르는 마부와 농부 등도 있었다고 해요. 반면 옥타비아누스의 배는 작지만 기동성이 뛰어났고 해상 전투에 능한 수병도 충분했죠. 결국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전쟁에서 참패했고, 이집트로 도망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로써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1인자가 됩니다. 이후 기원전 27년에는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 자리에 올랐어요.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로맨스는 파국을 맞긴 했지만 '세기의 스캔들'로 불리며 수많은 연극·영화의 소재가 됐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 이전 카이사르와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고 해요. 그녀는 로마 권력자들과의 스캔들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지식이 출중하고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등 지적 능력과 외교 수완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해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결전을 벌인‘악티움 해전’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서민영·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기획·구성=김연주 기자, 조선일보(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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