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K방산에 던지는 질문
[특파원 리포트]

2024년 8월 15일 폴란드 육군의 날에 바르샤바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한국산 전차 K2를 탄 폴란드 군인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는 폴란드-소련 전쟁 중 바르샤바 전투에서 소련에 승리한 1920년 기념일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AFP 연합뉴스
최근 유럽 내 안보 전문가와 언론인이 모인 비공개 모임에 참석했다가 진땀을 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의 군비 확장으로 시작한 대화가 ‘한국 방위산업의 약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참석자들은 유럽과 중동에 팔린 한국산 자주포, 전차, 미사일, 경전투기가 “가격·성능·납기에서 최고”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럽이 초단기간에 재무장에 나서면서 K방산이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됐다는 평도 나왔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주력 전투기와 함정 등 고부가가치 첨단 무기로 이야기가 넘어가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 전문가는 “한국 무기는 (유럽에서) 좀 더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투기와 함정에는 레이더·통신·사격통제·전장관리체계 등 각종 전자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나토 지휘 통제망과의 완전한 통합, 사이버 방호, 부품의 공급망 관리 등은 더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전문가는 “한국산 무기의 ‘우수성’과 ‘안심하고 도입해 쓸 수 있느냐’는 서로 다른 문제”라고 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한국 첨단 산업에서 벌어진 기술 유출과 해킹 사례를 거론하며 “비슷한 사고가 방산 분야에서 터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특정 국가 부품에 의한 백도어 침투, 전쟁 중 원격 제어될 수 있는 킬스위치 위험성도 거론했다. 표면적으로는 기술·보안 이슈였지만, 그 바탕엔 ‘한국은 100% 믿고 의존할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의심이 깔려 있었다.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한 기자는 “한국 정권 교체로 인해, 혹은 미·중·러의 압박으로 판매한 무기에 대한 사후 지원을 못 하게 될 경우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나”라고 했다.
미국·유럽 방산 업체들은 이런 점을 꼽으며 한국산 무기에 대한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이 전(前) 정부부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미온적이었다며 ‘안보적 이득이 서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폴란드의 차기 잠수함 사업은 이런 논란이 집약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가격·성능·납기에서는 한국이 절대 뒤처지지 않지만, 경쟁력을 높이려면 우리 정부가 “서방 동맹의 일원으로 유럽 안보에 적극 기여할 것”이란 강력한 신호를 던져야 할 수 있다.
물론 잠수함 몇 척 팔자고 한 나라의 외교 정책을 쉽게 변침할 수는 없다. 다만 세계 질서가 냉전식 진영 구도로 회귀하는 가운데 안보와 경제, 동맹과 실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는 과거의 전략으론 한계가 왔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절감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한국은 ‘유럽의 편’이 되겠다는 선택을 하고, 그것을 고수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단단한 나라인가?
-파리=정철환 특파원, 조선일보(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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