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마두로와 '정의는 힘에 있다'는 경고]
[이란 사태 외면하는 한국의 진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왜 쿠바 정보요원이 경호했을까]
내가 만난 마두로와 '정의는 힘에 있다'는 경고
[朝鮮칼럼]
베네수엘라 北대사관 승인
그는 소탈하고 격식 없었다
축출되는 장면에 충격 받아
김정은이 받은 메시지는
'핵 포기하면 위험해진다'
한국도 외교전략 재정립을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장례식에 참가한 이일규(중앙의 뒤쪽에 서 있다) /이일규 제공
북한 외무성 시절, 나는 중남미 업무 담당자로 니콜라스 마두로와 여러 차례 접촉했다. 그가 외무상이던 2012년과 차베스 장례식이 열린 2013년 3월, 그해 4월 대통령 취임식까지 외교 현장에서 마주한 마두로는 소탈하고 격식 없는 인물로 기억 속에 각인됐다. 그 개인적 인상은 한 달 전에 무참히 깨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3일 새벽 2시, ‘확고한 결의’ 작전 아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등 북부 전역의 군사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마약 카르텔 단속을 명분으로 수개월 전부터 카리브해에 전개한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투기와 특수부대가 일제히 투입됐다. 최첨단 군사장비는 중국·러시아제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곧 ‘델타포스’가 국방성 청사가 위치한 ‘프에르테 티우나’에 진입,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을 체포했다. 현직 대통령이 수갑을 찬 채 미국으로 압송되는 장면은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광경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과거를 떠올려 보면 베네수엘라 대사관 개설 문제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북한은 원유 확보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대사관을 내기로 결정했고 김정은의 승인을 받아 추진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외교부 한반도 담당 관계자들은 대부분 친한파였다.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국 요청 각서는 몇 달 동안 담당자 서랍 속에 깔려 대통령부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2013년 4월 19일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나는 짧은 축하 악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장차 대사관이 개설되면 내가 초대 대사로 임명될 것”이라는 부탁의 형식으로 승인을 호소했고, 마두로는 즉석에서 외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날 저녁, 승인 각서가 내가 묵는 호텔로 전달됐다. 이후에도 그는 신임장 봉정 및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베네수엘라 방문 등 여러 계기로 만날 때마다 나를 반겼다.

북한 외교관 이일규(왼쪽)와 마두로 /이일규 제공
하지만 개인적 인상과 정치적 실체는 전혀 다른 문제다. 차베스 세력은 베네수엘라의 사법·입법 체제를 사실상 마비시키고, 언론과 야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부정선거 논란 속에 장기 집권을 이어 갔다. 그 결과 한때 중남미의 자원 부국이던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빈곤과 인권 침해를 상징하는 나라가 됐다. 외세 개입을 자초한 그의 통치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해 현직 대통령이 군사작전으로 축출되는 장면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더 큰 충격은 그 이후의 전개였다. 마두로 축출이 민주주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바람과 달리, 미국은 차베스 세력과 손을 잡았다. 실권자인 카베요 내무장관의 제한적 저항은 있었으나, 강한 압력 앞에서 그는 타협을 선택했다. 야권 지도자 코리나 마차도가 노벨평화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치는 파격적인 장면까지 연출했지만, 정치적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의 목적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첫째는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원유 자원, 둘째는 중남미에서 중국 영향력 확대의 차단이다. 야권에 힘을 실어 내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단기간에 원유 확보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으로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차베스 세력과 손잡아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미국을 유일한 희망으로 바라본 베네수엘라 국민의 염원은 철저히 외면됐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김정은의 북한을 비롯해 이란·쿠바·니카라과 등 장기 집권 체제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선을 넘는 행동은 언제든 강제 축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동시에 ‘정의는 힘에 있다’는 위험한 신호도 보냈다. 특히 북한 정권에는 ‘핵을 포기할수록 체제가 위험해진다’는 잘못된 교훈을 강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핵보유국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 역시 이번 사태를 보며 많은 계산을 할 것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냉혹한 힘의 논리 앞에서 각국은 대미·대외 전략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도 적용된다. 그 사태는 오늘의 국제질서가 약소국과 중견국에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경고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원칙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한 냉정하고 주도적인 외교 전략을 시급히 재정립해야 한다.
-이일규 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조선일보(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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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겨냥 ‘광물 블록’ 의장 맡은 한국에 美 “선도적 역할 감사”. 립서비스는 됐고 관세 몽니나 부리지말길.
-팔면봉, 조선일보(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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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 외면하는 한국의 진보
[특파원 리포트]

지난 11일 소셜미디어에 테헤란의 한 법의학센터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영상. 이란 당국의 무력 진압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려있다. 로이터는 이 영상을 검증한 뒤 "건물, 도로 배치, 그리고 해당 지역의 위성 이미지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고 했다./소셜미디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1978년 이슬람 혁명이 한창이던 이란 테헤란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에도 이란 국민은 경제난과 권력층 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었다. 대상이 팔레비 왕정이라는 점만 지금과 달랐다. “왕에게 죽음을!” 푸코는 2700여 명 희생을 감수하고도 ‘이슬람 공화국’을 외치는 모습에 감탄하며 ‘정치적 영성’이 원동력이라고 극찬했다.
반세기 뒤 우리는 그 ‘영성’이 킬링필드, 톈안먼 사태와 비견될 최악의 자국민 학살을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독일 슈피겔은 “이란은 잘 작동하는 살인 기계”라고 했다. 푸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이다. 푸코는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를 ‘성인(saint)’에 빗대고, 혁명 과정을 “무장한 통치자와 빈손의 망명자 간 대결”로 미화하기도 했다.
현재 ‘무장한 통치자’는 호메이니의 후계자 하메네이로, ‘빈손의 망명자’는 군주제의 마지막 왕세자로 위치가 역전됐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도 마찬가지다. 1979년 팔레비 왕정 축출 뒤 수립된 ‘이슬람 공화국 헌법’을 보면 호메이니·하메네이가 앉은 최고 지도자는 신을 대리한다. 삼권분립을 초월한 ‘절대 통치권’이 보장된다. 그래서 “빵을 달라”는 시위대를 ‘신의 적’으로 낙인찍고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다.
이란 소식통이 보내온 영상은 푸코 분석의 파탄을 선언하는 듯했다. 테헤란 거리에 말 그대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에도 푸코가 이슬람의 여성 억압 등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대한 사탄”이라고 말해줄 호메이니 같은 사람이 그들 입맛에 더 맞았을 것이다. 이 반미(反美) 정서에 오리엔탈리즘적 낭만·동경까지 겹치면 중국·북한마저 ‘대안 체제’로 둔갑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에 한국의 이른바 진보 진영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집단 학살을 멈춰라.” “제국주의적 주권 침해를 중단하라.” 온갖 ‘공동 성명’ ‘긴급 행동’에 참여한 단체가 수십~수백 곳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이란 사태에 ‘민주’ ‘진보’ ‘인권’ 같은 간판을 내건 정당·단체는 침묵하거나 형식적 반응에 그치고 있다. 과거 푸코·사르트르와 다르지 않은, 관념적 반미 때문은 아닐까.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이란에서 광주의 학살이 재현되고 있다”며 “이란 국민이 느낄 두려움·외로움을 잘 안다”고 했다. 진보라면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다. 집권 여당 강령엔 ‘5·18 정신 계승’이 명시돼 있다. 이런 나라의 ‘진보’와 ‘인권’이 고작 ‘선택적 정의’나 ‘반미의 동의어’를 뜻한다면 슬픈 일이다. “우릴 기억해달라”던 1980년 광주를 기리는 진보라면, 2026년 “우리의 목소리가 돼달라”는 이란의 호소에도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이란 팔레비 왕정이 붕괴하고 호메이니의 신정(神政) 이슬람 공화국이 출범했음을 보도하는 1979년 2월 13일자 조선일보 1면./조선일보DB
-파리=원선우 특파원, 조선일보(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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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마차도,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 메달 ‘상납’. 제1회 ‘노벨 (힘을 통한) 평화상’ 수상자 탄생.
-팔면봉, 조선일보(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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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왜 쿠바 정보요원이 경호했을까
쿠바와 베네수엘라

지난해 12월 초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정전이 끝난 직후 한 노점 상인이 야채와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미국이 군사 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마두로를 경호하던 쿠바의 정보기관 요원 3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어요. 왜 쿠바 요원들이 다른 나라 대통령 경호를 맡고 있었을까요? 원래부터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수십 년간 서로를 ‘형제 국가’라 부르며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어왔어요.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도 두 나라는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마두로를 체포하면서 동맹인 쿠바도 큰 타격을 받았어요. 이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회주의 국가 간 동맹의 성격과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됩니다. 역사 속에서 두 나라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9일(현지 시각) 쿠바 아바나의 항구에 멕시코에서 출발한 유조선이 들어오고 있다./AP 연합뉴스
석유와 인력을 주고받는 ‘행복의 바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모두 혁명을 통해 기존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체제를 선택한 나라예요.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됐고, 베네수엘라는 1999년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며 사회주의를 선언했어요.
두 나라 모두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어요. 쿠바는 냉전 시기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베네수엘라는 1999년 차베스가 대통령이 된 뒤부터 반미 노선을 강화했어요. 이 과정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특히 차베스는 쿠바 혁명을 이상적인 사회주의 혁명으로 여겼죠. 그는 쿠바의 의료·교육 시스템을 베네수엘라에 도입하려 했고, 쿠바 지도부와 개인적 친분도 쌓았습니다.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두 나라는 석유와 인력·안보를 맞교환하는 협력 관계도 만들었어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는 한때 쿠바에 하루 최대 10만 배럴씩 석유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습니다. 의료 기술이 발달한 쿠바는 의료진 수만 명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해 베네수엘라의 무상 의료 정책을 지원했고, 베네수엘라 정권을 경호해 줄 요원도 보냈어요. 차베스는 이 관계를 두 나라를 연결하는 ‘행복의 바다’라고 표현했죠.

2007년 우고 차베스(왼쪽)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우루과이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외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위험한 관계
하지만 이 협력은 점차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는 위험한 관계가 됐어요. 차베스 사망 이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이전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어요. 경제 침체와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고, 정권에 대한 불신도 커졌죠. 이에 마두로는 쿠바에 대한 의존을 강화했어요. 쿠바 정보기관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경호뿐 아니라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내는 역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의 핵심 안보를 동맹국에 맡기는 이례적인 선택을 한 셈이에요.
쿠바 정보기관 역시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권을 철통같이 지키고자 했어요. 쿠바는 베네수엘라 석유 없이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면 쿠바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베네수엘라는 쿠바 없이는 정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쿠바는 베네수엘라 없이는 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겁니다.
석유 막히자 무너지는 쿠바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자, 상황은 급변했어요. 2024년 미국은 마두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석유 제재를 강화하고, 2025년 말에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암흑 선단(dark fleet)’이라 불리는 원유 불법 수송 선박들을 직접 붙잡았어요. 특히 쿠바와 베네수엘라 사이에 있는 카리브 해를 오가던 선박들이 주요 목표가 됐죠. 이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물량이 급감했어요. 2025년 4분기 기준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하루 평균 약 3만5000배럴의 석유를 공급했는데, 이는 2020년과 비교하면 25% 수준에 불과하대요.
이 같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급감은 쿠바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어요. 그동안 쿠바는 저렴하게 얻은 베네수엘라 석유로 전력도 만들고 산업 전반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죠. 현재 쿠바는 필요한 전력의 절반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전국적으로 정전이 반복되고 있고요. 일부 지역은 하루 18시간 이상 정전되기도 했대요. 대중교통과 공장이 멈추는 일도 잦아졌답니다.
경제 위기는 식량 위기로 이어졌죠. 1959년 쿠바 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는 ‘7세 미만 모든 어린이에게 매일 1리터의 우유 배급’을 약속했어요. 이후 쿠바 국민은 1962년부터 배급소에서 우유뿐 아니라 밀가루, 콩, 설탕, 소금, 커피, 비누, 식용유, 쇠고기 등 생필품을 거의 무료로 받아 썼어요.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2024년 5월 이후 계란 배급이 중단됐고, 식용유나 커피 등 주요 식량 배급도 사라졌어요. 유엔(UN) 추정에 따르면, 쿠바 인구의 12.8%가 하루 필요 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1959년 쿠바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 /위키피디아
이로 인해 쿠바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과 중남미 국가로 이주하고 있지요. 특히 청년층이 떠나면서 쿠바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동맹의 균열이 남긴 질문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는 쿠바의 위기를 한층 더 심각하게 만들었답니다. 쿠바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아 보여요. 작년 기준 쿠바에 가장 많이 석유를 공급한 나라는 멕시코예요. 쿠바는 멕시코에서 하루 평균 약 1만2000배럴의 석유를 공급받았어요. 이는 쿠바 전체 석유 수입량의 약 44%예요. 그러나 미국이 멕시코 정부에도 압력을 가하면서, 멕시코에서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념과 동맹만으로 국가는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요? 혁명으로 출발한 사회주의 정치 체제가 국민의 삶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국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앞으로 두 나라의 선택에 따라 중남미 전체의 정치 지형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정세정 옥길새길중학교 역사 교사/기획·구성=정해민 기자, 조선일보(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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