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외교'라면 대만도 챙기자]
[ 3만명 사망설과 권력 균열 속 트럼프의 '美·이란 거래 전략']
'실용 외교'라면 대만도 챙기자
[특파원 리포트]
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해 전례 없는 환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화려한 의전 뒤의 성적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질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통령은 이러한 외교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라 부른다. 이 실용 외교가 면피용 수사학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철학으로 인정받으려면, 이제 시선을 대만 문제로 돌려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방중·방일은 대만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대만 사회는 과거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는 그의 발언과 민주당 정권의 전통적 친중 기조를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방중 직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한 말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대만의 위기감은 최근 추가오웨이 주한 타이베이 대표의 ‘작심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하나의 중국’이 반드시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중화민국(대만)일 수도 있다”고 했다. 대만 정부가 통상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는 선에서 레토릭을 관리해 온 점을 감안하면, 외교 대사급 인사가 한층 강한 표현을 쓴 셈이다. 한국을 중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둘 수 없다는 절박감이 읽힌다. 지난해 말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에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되고 있는 데 대해 대만 외교부가 갑작스레 항의해 온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2년 단교 이후 한·대만 관계는 데면데면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가 흔들리면 한반도 안보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양국 무역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경제·산업 교류도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대만은 ‘AI 전환’이라는 과제와 ‘중국의 맹추격’이라는 위협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세계 정치·경제 지형도가 격변하는 지금,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과 대만이 협력의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중국에 ‘올인’하고 대만을 경시해 온 외교 구조를 손보는 일은 지난 보수 정권에서도 끝내 해내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틈타 양국의 환대를 이끌어냈듯, 중국이 문제 삼기 애매한 선에서 대만과 과감히 손을 잡는 묘수를 찾는다면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비로소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6개월 넘게 공석으로 방치된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관례적으로 ‘퇴직 외교관’이 맡아온 이 자리에 대통령의 외교 철학을 공유하는 측근이나 중량감 있는 정부 인사를 보내는 파격은 어떨까. 중국의 레드라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만에 한국의 확고한 협력 의지를 보여줄 시그널이 될 수 있다.
-타이베이=류재민 특파원, 조선일보(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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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명 사망설과 권력 균열 속 트럼프의 '美·이란 거래 전략'

이란 앞바다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해 중인 미 해군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링컨함은 F-35C 스텔스 전투기 등 함재기 70여 대를 탑재할 수 있다. /AFP 연합뉴스
이번 주 이란은 ‘여명의 열흘(Daheye Fajr)’ 절기를 지나고 있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가 귀국한 2월 1일부터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2월 11일까지의 열흘이다. 매년 이란은 혁명 축제 기간으로 이 열흘을 기념한다. 올해도 이란 주요 인사들이 축하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혁명 47주년을 맞는 올 초 너무 많은 시민이 죽었다. 이란 정부는 3117명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외신과 시민단체는 3만명 이상 사망설을 이야기한다. 정부의 강력한 진압으로 시위는 잠잠해졌고,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혁명 체제의 시효는 다해가고 있다. 권력자들은 외세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의 폭동 때문이라 말하지만,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경제난에 분노한 시민들의 죽음이 다수였다. 배고픈 백성을 사살한 정권이 영속할 수는 없다. 왕조를 무너뜨려 외세를 타파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던 ‘여명의 열흘’은 반세기 만에 ‘석양의 열흘’로 변해가고 있다.

다만 내연성은 높아졌지만 정치 변동을 안에서 발화시킬 불쏘시개가 보이지 않는다. 지배 연합은 분열되지 않았고, 저항을 견인할 상징적 반체제 인물도 없다. 이 시점에 트럼프가 나서고 있다. 미 항모 전단을 중동에 급파했다. 최고 지도자 참수 작전부터 핵 시설 공습, 혁명수비대 거점 타격 등 다양한 공격설과 함께 협상설도 나온다. 지난 주말부터 튀르키예에서 미국과 이란 고위 인사 간 직접 대화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무력과 협상 두 개의 카드를 든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략은 무엇일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 왕정 복귀다. 팔레비 왕정은 혁명 전 미국과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레자 팔레비 왕자의 재집권은 과거 미·이란 밀월 관계의 복원을 의미한다. 반체제의 구심점이 될 상징적 인물도 레자 팔레비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란 국민들은 1953년 미국과 영국의 공모로 모사데그 총리를 실각시키고 절대왕정을 복귀시킨 쿠데타를 기억한다. 이란에 반제국주의 정서가 뿌리내린 계기였다. 다시 미국이 개입해 구체제를 복원하려 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을 위험이 있다.
두 번째는 이슬람 공화국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정권을 세우는 시나리오다. 미국에겐 익숙하지만 뼈아픈 경험이기도 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화 실패의 쓰디쓴 기억은 대외 개입을 극도로 혐오하는 MAGA의 기반이 되었다. 하메네이를 실각시키고 이란을 민주화하는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할 수 있을까? 현실적이지 않다. 어쩌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보다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따를 수 있다. 제대로 민주정부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자칫 소수민족 간 무한 내전의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 이는 대재앙이다. 미국은 이란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견인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 무엇보다 지금의 미국은 자유주의 질서나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 자체에 관심이 없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현 체제를 유지하되 압박과 회유를 통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아닌 정권 변환(regime transformation)이다. 87세의 고령인 하메네이는 언제 유고 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무리한 참수작전보다는 종교 이념에 사로잡힌 성직자 권력을 무력화하고, 대안으로 기득권 세력 중에 미국에 협력할 수 있는 세력을 선별하여 손잡는 편이 낫다는 시각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안정적인 연착륙 해법은 선출직인 대통령과 내각이 실질 권력을 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힘이 없다. 투표를 통해 얻은 대중의 지지는 일정 부분 정통성을 부여하지만, 최고 지도자 체제하에서 당선된 권력이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다 보니 역발상에 근거한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익을 좇는 혁명수비대 일부 인사들과의 협력 타진설이다. 혁명수비대는 국부의 40%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 그만큼 힘이 있다. 국민의 신임을 잃은 성직자 통치 체제가 시효를 다한 상황에서 이익을 보장해줄 테니 종교 이념 내려놓고 미국 편을 들도록 압박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형 지도자가 아니다. 거래주의자다. 하메네이로 상징되는 성직자 통치 체제를 갈음하는 체제 내 유력 지도자가 있다면 혁명수비대 출신이라도 손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시리아의 알샤라 대통령은 현상금 1000만달러가 걸렸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출신이다. 트럼프는 그를 백악관에 불러 포옹하고 격려하기까지 했다.

2026년 1월 12일 이탈리아 밀라노 이란 영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남성이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AP 연합뉴스
물론 이 세 번째 시나리오도 녹록지 않다. 혁명수비대가 이념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집단인가에 관한 의문도 있다. 현 성직자-혁명수비대 지배연합을 이념과 이익의 불가분리 관계로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만에 하나 분리 가능하더라도 이번 시위 사태를 겪으면서 혁명수비대에 학살된 시민 가족들의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해도 오랜 해원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세 번째 시나리오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트럼프 입장에서 가장 덜 부담스러운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무력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실행은 만만치 않다. 일방적 군사행동은 자칫 이란 국민을 반외세로 결집시키고, 하메네이를 순교자로 만들 수 있다. 이란 체제의 내구성은 이미 약화됐고, 최고 지도자의 기대 여명도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섣부르게 왕정복고나 민주화에 개입하면 덧난다. 최대 압박과 회유를 병행하며 권부 내 주요 인사를 설득,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다. 시간은 이란 편이 아니다. 지금은 미국 편이다. 네타냐후나 트럼프의 충동적 돌발 행동만 없다면 말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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