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즘, '공산주의 마녀사냥'… ]
[매카시즘에 휘말린 중국 로켓 과학자의 기구한 삶]
['싸구려 민족주의' 팔아 표 얻는 수법, 수명 다하고 있다]
매카시즘, '공산주의 마녀사냥'…
1950년대 美를 혼란에 빠트렸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의회 청문회 증언대에 서게 됐어요. 성 착취범이자 억만장자 금융 사업가 제프리 엡스타인이 전 세계 유력 인사들과 어울렸다는 ‘엡스타인 스캔들’에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의회의 소환 요구를 거부하다가 입장을 바꾼 것인데요. 당초 그는 “(소환 요구가) 우리를 투옥하기 위해 설계됐다”며 자신을 ‘매카시즘’ 피해자에 빗대기도 했어요. 매카시즘이란 1950~1954년 미국을 휩쓸었던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입니다. 적발된 사람 대부분은 사실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었지만 탄압을 받았어요. 오늘은 매카시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매카시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중심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이 심화했어요. 1940년대 말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죠.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며 중국도 공산주의 국가가 됐는데요. 당시 미국 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던 중국의 공산화는 미국인들의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조지프 매카시입니다. /위키피디아
미국 공화당 출신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이 두려움을 이용했어요. 1950년 2월 매카시는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연설하던 중 폭탄 선언을 합니다. ‘미국 국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몰래 활동하고 있으며 그 명단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매카시의 폭로로 미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어요. 국무부는 미국 정부의 핵심 기관이니까요. 미국 상원은 즉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언론은 관련 뉴스를 크게 보도했어요. 대부분 매카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죠. 의심하면 공산주의자로 오해받는 분위기였거든요.
그 명단은 의례적으로 하는 단순 조사 대상자까지 포함된 FBI(연방수사국)의 안보 관련 명단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이미 오래전 국무부를 그만둔 인물들 이름이었죠. 하지만 이런 내용은 당시 알려지지 않았어요.

1947년 미국에서 출간된 반(反)공산주의 만화입니다. 소련인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미국인들이 그려져 있어요. ‘이것이 내일인가, 공산주의 체제 아래 미국’이라고 써 있어요. /위키피디아
약 한 달 후인 3월 시사 만화 평론가 허버트 블록이 워싱턴포스트에서 최초로 ‘매카시즘’이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매카시에게 비판적이었던 그는 매카시즘을 선동, 근거 없는 비방, 인신 공격 등으로 정의했죠. 매카시는 처음에는 이 단어를 불쾌하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매카시즘의 의미를 바꿔 사용했습니다. 그는 “매카시즘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며 “우리에게 더 많은 매카시즘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오펜하이머도 매카시즘 피해자
1950년 한반도에서는 6·25 전쟁이 일어났어요. 이념 대립이었던 이 전쟁은 매카시에게 날개를 달아 줬습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출신 아이젠하워가 당선됐어요. 아이젠하워는 후보 시절부터 매카시를 두둔하며 선거운동에 활용했어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고 초선 의원이었던 매카시는 정치 거물로 부상했죠. 매카시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정부 부처와 여러 기관을 샅샅이 뒤졌어요.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자 혐의로 조사받았고 청문회에도 소환됐어요.

매카시즘 피해자였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위키피디아
매카시가 공산주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명예와 지위를 잃었어요.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죠. 미국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도 피해자였는데요. 과거 공산주의자와 교류한 사실과 핵 개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소련에 우호적인 인사로 몰리게 됐습니다. 오펜하이머 청문회까지 열렸고, 원자력위원회는 오펜하이머가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했어요.
왜 당시 미국인들은 매카시의 말에 빠져들었을까요? 그는 숫자와 이름을 대거나 증언 일부를 인용하고 보고서 쪽수까지 댔다고 해요. 연설하거나 발언할 때마다 서류나 사진, 편지 등 자료를 ‘증거’로 제시했어요. 듣는 사람이 진짜같이 믿게 만드는 화법을 쓴 것이죠.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은 무조건 좌파라고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1951년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기사를 쓴 타임지를 좌파 잡지라고 비난하고, 광고주들에게 타임지에 광고를 내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진실이 밝혀지다
그의 거짓말은 결국 탄로 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카시를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공화당에서도 매카시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졌죠. 1954년 3월 미국 CBS 방송국에서 매카시즘이 허구라고 폭로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어요. 사람들은 매카시가 뚜렷한 증거 없이 의혹을 부풀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육군 장군 시절 아이젠하워. /위키피디아
추락하던 매카시는 또 한 번의 폭로를 하게 됩니다. 이번엔 미국 육군 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이었죠.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육군 출신 전쟁 영웅이었는데요. 아이젠하워는 이를 계기로 매카시를 내쳐버리게 돼요.
의회에선 매카시의 육군 관련 발언 청문회가 열렸어요. 상원의원들은 매카시에게 폭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했죠. 증거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매카시의 모습이 미국 전역에 방송됐습니다. 당시 청문회 TV 시청자가 2000만명에 달했다고 해요. 36일간 중계된 이 청문회에서 나온 발언 기록만 7300쪽에 달했어요. 청문회 전 조사에서 매카시에 반대하는 여론은 29%였으나 청문회가 끝난 다음에는 50%를 넘겼다고 해요.

1954년 6월 육군 관련 발언 청문회에서 매카시(오른쪽)가 자료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어요. 육군 측 변호사(왼쪽)는 이마를 짚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의회는 같은 해 12월 매카시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로써 매카시즘은 막을 내렸습니다. 매카시는 알코올 중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1957년 48세 나이로 사망했죠. 이후로 매카시즘은 ‘이념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은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낼 때 종종 인용되고 있습니다.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정해민 기자, 조선일보(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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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에 휘말린 중국 로켓 과학자의 기구한 삶
지난달, 미국의 스페이스X는 민간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전기차 테슬라로 자동차 시장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업적이다. 대개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우주산업에서 이러한 성과는 민간 기업이 유인 로켓을 발사할 만큼 미국의 우주산업 생태계가 탄탄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미국의 로켓 기술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발전했던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이념에 집착한 소모적 정치와 여기에 휘말린 과학자의 기구한 삶이 있었다.
美로켓 연구 주도하던 중국 과학자
1950년 6월, 미국 FBI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제트추진연구소(JPL)를 이끌던 젊은 교수를 체포한다. 그가 바로 중국 과학자 첸쉐썬(錢學森·Qian Xuesen)이다. 상해교통대학을 졸업한 첸쉐썬은 칼텍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JPL에서 미국의 로켓 연구를 주도했다. 2차 대전 후, 독일에서 V2로켓을 만든 폰 브라운 심문을 맡았던 그는 V2 제조 때 수만 명이 강제 노동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하지만 독일의 로켓 기술이 수십 년 앞서 있다며 폰 브라운을 데려오도록 했다. 이때까지 미국 정부의 첸쉐썬에 대한 신임은 두터웠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상황이 바뀐다. 미국의 새로운 위협은 공산주의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1950년 매카시 상원 의원의 주도로 미국 전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첸쉐썬은 이때 체포된 것이다.

당국의 조사에도 공산주의자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첸쉐썬의 JPL 접근이 금지되고 모든 지위가 박탈되자, 그는 차라리 공산화된 중국으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놀란 미국 정부는 그의 귀국 짐 꾸러미에 극비 문서가 있다고 덮어씌워, 그의 아내와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 모두를 가택 연금한다. 1955년 이 사연을 알게 된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한국전쟁 때 사로잡은 미군 조종사 11명을 무려 5년간이나 연금 상태에 있던 첸쉐썬 가족과 교환한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로켓 기술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JPL 핵심 연구원들을 공산주의 혐의로 구속하거나 쫓아냈다. 독일에서 투항한 폰 브라운 역시 나치 동조자였다는 구실로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런데 1957년 상황이 급반전한다.
추방당한 첸쉐썬 중국서 인공위성 개발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다. 당황한 미국 정부는 로켓 기술이 별것 아니라며 두 달 뒤 자기네도 인공위성을 쏘겠다고 발표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발사 장면을 생중계하고, 이때 발사한 뱅가드 로켓은 2초 만에 폭발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진다. 미국 정부는 기술 열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폰 브라운을 불러들여 항공우주국(NASA)을 만들고, JPL이 NASA에 가세한다. 폰 브라운과 JPL은 1958년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발사에 성공하며 소련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때 중국은 대약진운동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으로 지식층이 붕괴하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마오쩌둥은 첸쉐썬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지원했다. 1964년 첸쉐썬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1967년에는 수소폭탄까지 완성하고, 마침내 1970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다. 핵무기를 개발한 중국이 인공위성을 날린다는 것은 미국 본토가 중국 핵무기 사정권에 있다는 뜻이다. 중국을 후진 농업국으로 무시하던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갑자기 바뀐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과 총부리를 겨누던 중국의 유엔 가입이 1971년 승인된다. 불과 며칠 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던 대만이 유엔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한다. 핑퐁 외교를 통해 미국은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할 정도로 성의를 보였지만 중국은 미국과 수교하지 않는다. 결국, 1978년 미국이 혈맹 대만과 단교하자, 그제야 1979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졌다.
정치가 결정한 과학자의 역량
첸쉐썬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 1989년 그는 천안문 유혈 진압까지 적극 지지하며, 진압 책임자인 상해교통대학 후배 장쩌민이 당 총서기에 오르도록 도왔다. 이렇듯 그가 중국에서 이룬 과학적 업적의 이면에는 집권 세력과 협력하며 매우 정치적이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2009년 첸쉐썬이 97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구글은 검색창 커버를 그의 이미지로 장식했다. 첸쉐썬이 데려온 폰 브라운은 아폴로 계획으로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고, 첸쉐썬이 이끌던 JPL은 보이저호를 태양계 너머 인터스텔라로 보냈다. 이때 비로소 미국은 소련을 추월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이념 논쟁은 그를 중국으로 내쫓았고, 그는 중국을 미국의 맞수로 만들었다.
중국 문인 루쉰은 소설 '아Q정전'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진 것을 '정신 승리'로 불렀다. 나치가 수많은 유대인 인재를 추방한 것이나, 미국이 매카시즘으로 수많은 인재를 쫓아낸 것, 그리고 중국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도, 어쩌면 루쉰이 이미 경고한 '정신 승리'인지 모른다. 이념으로 똘똘 뭉쳐 정신만 차리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과학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과학자의 역량은 그 사회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즉 사회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결국 정치가 결정한다는 것을 로켓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정치가 과연 과학의 위력을 얼마만큼 심각하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조선일보(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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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민족주의' 팔아 표 얻는 수법, 수명 다하고 있다
'무능할수록 혐오정치에 기댄다'
'한국을 북한 못지않은 나라로 만드는 게 목표냐'
남북쇼, 경제 실험 다 안 되자 또 들고나온 '친일' 프레임
日 제품 '전범 딱지' 보도에 '한심하다' 개탄 댓글 1만개
'조선시대 思考로 민족팔이' '독립군 팔아 배채우지 말라'
경기도의회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지역 학교가 보유한 284개 일본 기업 제품에 '전범 기업 제품' 스티커를 의무 부착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보도에 눈을 의심했다. 이 어이없는 일에 다른 사람들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한 포털 사이트엔 이 기사에 1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어림 짐작으로 95% 이상이 필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미쳤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별짓을 다 하네.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인데…' '감정이 앞선 행동의 결과는 뻔할 텐데' '일본에서 중간재 수입 전혀 안 해도 되나' '병원 가서 사진도 찍지 말고, 내시경 수술도 하지 말고, 연구소에서 현미경도 보지 말아야 되나. 전부 일본 것 아닌가' '일본이랑 무역 전쟁 해서 이길 자신 있습니까? 수출 증대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습니까? 제발 좀 생각을 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뇌가 있긴 한 건가? 세상이 미쳐 돌아갑니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개탄은 넘쳐났다. '문선대원군(문재인+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냐' '한심하네요. 사과도 못 받고 글로벌 욕은 욕대로 먹고' '세계화 시대에 거꾸로 걷고 있는 인간들'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있나. ㅎㅎ' '진보라 쓰고 퇴보라 읽는다' '돈 한푼 못 벌어본 데모꾼님들, 조선 말기로 돌아가고 싶은 듯' '과거에 묻혀 앞 길을 막네 헐~' '조선시대 사고방식으로 민족팔이, 민주팔이, 진짜 나라꼴 엉망' '1년에 800만명 일본 여행 다니는데 뭔 시대에 뒤떨어지는 짓이야'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을…. 전 세계 국경 없이 경제 전쟁을 초단위로 치르는 시대에 이 무슨 황당한…' '내 자식은 놔두고 너희 자식들이나 평생 가슴에 원한 품고 살라고 가르쳐라' '탈레반 판박이인 민족주의 꼴통 아재들 너무 싫어' '지금 그래서 일본이랑 전쟁하자는 거예요? 세계인들이 보고 있습니다. 나라 망신 짓거리 좀 하지 맙시다'라고 했다.
나라가 이상해졌다는 분도 많았다. '여기 21세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맞나' '나는 요즘 여기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헷갈린다' '한국을 북한 못지않은 나라로 만드는 게 목표냐' '진정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라 맞긴 하네' '매카시즘, 홍위병, 인민재판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심각한 피해망상증 환자들이 나라 정책을 이끌고 있으니'라고 했다. ' 이런 문제들 지적하면 친일파라 할 것'이라고 쓴 분도 적지 않았다.
일본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이 진짜 전범이라는 견해도 많았다. '6·25 때 북한과 중공군한테 죽은 사람이 일제 때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 '6·25 때 우리 땅과 국민을 짓밟은 북한과 중국엔 찍소리 못하고 최대 우방국인 미국과 일본에만 화풀이' '국민은 중국 미세 먼지가 더 싫다' '중국 동북 공정에나 대응해라'고 했다.
이 정권의 '내로남불' 지적도 넘쳐났다. '친일 공격하던 민주당 대표와 의원의 아버지는 일본 헌병, 경찰이었다' '민주당 고위 인사 할아버지는 대표적 친일 인물' '장관 후보는 일본 차 타고 일본 집 가졌다' '일본 놀러간 정권 실세들 귀국 때 공항서 스티커 붙이길' '전범 기업 스티커 붙이고 뒤로 그 제품 살 듯'이라고 했다.
일본에 대해 현명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글들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를 잊지 말라는 게 역사에 묶이라는 의미가 아니잖나' '과거의 적이 오늘 동맹이 되는 복잡한 외교 현실에서 초등생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라니' '실력으로 일본 반도체 이긴 삼성이 진정한 극일이다. 독립군 팔아 배 채우지 말라' '요즘 들어 반일 감정을 왜 이렇게 강요하나요? 많은 일본인 선량하고 도덕적이며 이타적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배척하는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편협한 민족주의는 패배를 자인하는 꼴입니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증오와 혐오를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게 될 법한 일인가요. 저의 외조부도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하셨고 손가락도 잃으셨지만 증오를 가르치진 않으셨습니다. 과거를 잊지 말되 증오하지 말고 지금 나의 힘을 키우고 복잡한 동북아 외교 지형 속에서 이웃 국가들과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안 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모두들 이 정권이 반일(反日)을 들고 나온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북한도 안 되고 지지율 계속 떨어지니 반일 감정 조장' '싸구려 친일 프레임' '진짜 싸구려 민족주의'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민심 흉흉하니 반일 들고 선동 정치' '반일 감정 일으켜 표 받으려는 것' '반일하면 지지율 올라가던 시절은 지났는데 삽질' '어느 시대에 민족주의에 쩔어 사나. 표 좀 얻어보려는 수작' '방송에서 일본 평론가가 지지율 올리기 위해 반일 감정 조장할 거라더니 그대로 가네' '무능할수록 혐오 정치에 기댄다' '정권 말기면 항상 일본 건드린다면서?'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 눈속임하고 미래 보는 눈을 가리는 자들'이라고 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영화 대사를 쓴 분도 있었다. 이제 국민은 '싸구려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치에 이용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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