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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정치 상전벽해] [경기 남부를 '제2의 강남'으로.. ] ....

뚝섬 2026. 3. 26. 06:14

[경기도의 정치 상전벽해]

[경기 남부를 '제2의 강남'으로 만들자]

[‘억’소리 나는 경제 논리 넘어… 아파트는 다시 ‘홈’이 될 수 있을까]

 

 

 

경기도의 정치 상전벽해

 

1995년 이후 치러진 8번의 경기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이 5번, 민주당 계열이 3번 이겼다. 2014년까지는 6번 중 5번이 국힘 승리였다. 1992년 총선에서도 국힘 계열이 경기도에서 31석으로 민주당의 8석을 압도했다. 그런데 국힘 계열은 최근 4번의 경기도 총선을 내리 참패했다. 21·19·7·6석으로 쪼그라드는 동안 민주당은 29·40·51·53석이 됐다. 지난 총선 ’53석 대 6석‘은 지금 경기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분당과 용인 일부 등을 제외하면 경기도는 거의 ’국힘 불모지대’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힘 쪽에선 경기도 지사는 물론 경기 지역 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사람 자체가 줄어 구인난이라고 한다.

 

▶서울 인구는 1988년 1000만명을 찍었다. 과밀 해소를 위해 주변 신도시 개발을 본격화하자 경기 인구가 폭증했다. 2002년 1000만명을 넘으며 서울을 앞섰고 현재는 1374만명까지 늘었다. 경기 남부만 1000만명으로 서울의 930만명보다 많다. 경기도 토박이는 보수 성향을 보였으나 점점 줄어 지금은 전체 인구의 25% 이하라고 한다. 반면 서울보다 싼 주택과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경기도로 온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층인 30~50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과거 경기도는 도농 복합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IT와 서비스업 중심이다. 유권자 구성과 산업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다.

 

신도시가 생기면 농촌의 보수 분위기가 옅어진다. 당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도 있다. 토박이가 많던 수원은 국힘 계열의 텃밭이었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 최근 3번의 총선에서 지역구 5곳 전부를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경기도에 호남 출신이 많다고는 하지만 영남, 충청 출신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기업 도시들에는 영남 출신도 적지 않다. 그런데 민주당은 부산·경남에서 꾸준히 지지를 넓혀왔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PK 득표율이 40%에 달했다. 고가·재건축 아파트가 많은 분당·과천 등은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경기도 대다수 지역은 아파트 값이나 세금보다 서울 출퇴근용 교통 인프라, 보육·교육 확충에 더 관심이 많다. 민주당은 이 분야에 공약을 집중하고 있다.

 

▶경기도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국힘은 둔감했다. 과거에 통할 수 있는 인물을 여전히 공천하고 있다. 경기도 전체가 호남 못지 않은 민주당 텃밭이 됐고 계엄 사태까지 거치며 이제는 굳어지는 단계라고 한다. 이제 국힘에선 출마자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니 경기도의 상전벽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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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부를 '제2의 강남'으로 만들자

 

강남이 정점인 위계구조 굳어져
대기업 옮겨 새 중심지 키워야
반도체로 흥한 경기 남부가 적합
서울 집중도 낮출 현실적 대안
 

 

경기 용인 산단 후보지는 기존 반도체 생산단지인 경기 기흥, 화성, 평택, 이천과 연결해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연합뉴스

 

설 연휴처럼 경기도 남쪽으로 내려갈 때면 늘 몇 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예전에는 오전 6시 전에만 출발하면 별 정체 없이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요즘은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더 고역이다. 경기도 남부에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면서 차량 통행량이 증가해서다. 2016~2025년 경기도에서 늘어난 인구 101만명 가운데 63만명이 용인·화성·오산·평택에 몰려 있다. 기업과 공장, 연구소가 들어서고 그에 발맞춰 신도시가 건설되면서다.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바로 맞은편 평택 고덕신도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 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곳은 서울, 정확히는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구 일대다. 집값과 계층 지위는 강남 3구를 정점으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판교의 IT 회사 근로자들은 좀 더 남쪽의 용인에서 출퇴근하고, 판교 아파트 거주자들은 서울에 직장이 있다. 당연하게도 동탄이나 고덕에 사는 30~40대 근로자들의 목표는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 호황이 서울 집값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계층·자산·지리가 결합한 위계 서열은 자연 법칙이 아니다. 강남 3구에 부와 기회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문화·의료 시설도 서울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강남’ 또한 만들어진 곳이다. 원래 서울의 중심은 광화문과 종로 일대였다. 기업들이 옮겨가고, 명문 중·고교를 비롯해 생활 시설이 정책적으로 집중되고, 도로와 지하철이 계속 뚫리면서 ‘사대문 안’ 주민들이 먹을 채소를 경작하던 논밭이 서울을 대표하게 됐다. 심지어 강남 내부에서도 중심이 계속 동남쪽으로 이동했다. 기업이 움직이고, 인프라가 개발되고, 이를 따라 사람이 움직인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 대기업 본사를 더 남쪽으로, 기업들의 실제 사업장이 있는 용인·화성·평택 일대로 옮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경기 남부에 한국을 대표할 새로운 중심 업무지구를 만들자는 얘기다. 인천국제공항, 세종시와 고속 광역 교통망으로 연결하고 대학과 전시·컨벤션(MICE) 시설을 집적하면 세계적인 첨단 산업 중심지를 건설할 수 있다.

 

수도권은 점차 넓어지고 있고, 천안·아산이나 청주·진천·음성까지 생활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굳이 먼 북쪽에 본사를 둘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회장도 수원이나 용인으로 출근하는 일이 잦다. 종로 터줏대감인 두산이 성남 분당에 새 사옥을 짓는 등 본사 기능의 남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를 좀 더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가속하자는 얘기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대규모 공장 건설로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순 없다. 사람과 정보, 돈이 모이는 중심지는 여전히 서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서울과 거리는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지방’이 아닌 수도권 남부의 자생력을 끌어올리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를 통해 ‘사무직은 판교, 엔지니어는 기흥이 남방한계선’이라는 통념을 깨뜨려야 지방으로 첨단 산업이 옮겨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서울은 고령 자산가들이 부동산을 통해 부를 늘려 가는 도시다. 지금의 지리적 위계 서열이 유지되는 한, 젊은 근로자에게서 나이 든 자산가로 부가 이전되는 구조가 강화될 뿐이다. 1960~70년대 강남 개발이나 1980~90년대 분당·일산처럼 30~40대가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늘려 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경기 남부에 대기업 본사 기능을 이전해 ‘제2의 강남’으로 육성하는 것은, 지역 개발은 물론 젊은 세대를 위한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이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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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소리 나는 경제 논리 넘어… 아파트는 다시 ‘홈’이 될 수 있을까

 

공급 바빠 단지형 아파트 고착화… 주거문화는 ‘집값’ 담론에 밀려나
日, 대단지 획일성에 의구심 갖고 다이칸야마 곳곳에 디자인 실험
형태로서의 집 vs 정서로서의 집… 집은 나와 가족 보듬는 장소여야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한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의 ‘힐 사이드 테라스’. 거리와 계단, 중정, 건물 내부가 물 흐르듯 이어지며 도시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출처 위키피디아

 

《획일화된 아파트 다르게 보기

‘주택 물량’, ‘아파트 공급’…. 집값을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질 때마다 ‘거주’, ‘일상’, ‘공동체’, ‘지역성’ 같은 단어는 좀처럼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이고, 신축이라 냉난방시설 등이 완비돼 있고, 초역세권에 무엇보다 자산 가치까지 확보한 단지는 현재로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초 근대 도시와 건축은 소수의 귀족과 권력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당시 대다수 시민은 인간다운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갔다.》

 

1904년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가 프랑스 파리 프랭클린가 25번지에 처음으로 콘크리트 아파트를 설계한 이후 어느덧 약 12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근대 건축의 중심이었던 서유럽은 새로움에 열광하며 전통을 경시하기도 했고, 수많은 공동주택을 실험적으로 지으며 숱한 실패와 일부 성취를 통해 오늘의 주거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건축만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 산업, 사회, 문화, 철학, 예술이 함께 ‘모두를 위한 삶’을 고민하며 만든 결과였다. 반면 1960년대 한국의 도시와 건축은 계획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고, 도시계획과 공동주택 역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급급했다. 사회, 문화, 철학, 예술이 함께 도시와 건축을 고민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 아파트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만든 ‘모던 리빙, 핵가족을 위한 주택의 표준양식’ 개념에서 출발한다. 일본은 1951년 전후 국가 복구 과정에서 미국식 주거 모델을 참고해 공공주택의 표준설계를 마련했다. 52.89㎡(16평)의 A형, 46.28㎡(14평)의 B형, 39.66㎡(12평)의 C형 등 세 가지 유형을 도입했다. 이 가운데 거실 없이 다이닝과 주방만 둔 C형은 일본주택공단에 의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됐다. 이후 민간 분양아파트는 물론 농촌주택과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거 형태가 이 C형 구조를 본떠 건설됐다.

한국에서도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설립되면서 일본의 C형 주택 모델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집합주택이 정치적 결정과 건설산업의 논리에 따라 확산됐고, 단지형 아파트로 고착화됐다.

일본은 1970년대 중반부터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 조성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집합주택의 디자인 혁명’ 시대가 열렸다. 이런 변화를 이끈 대표적인 사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한 도쿄 다이칸야마의 ‘힐 사이드 테라스’다.

마키는 도시 건축은 시간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유기적 집합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1969년 1기 사업으로 A동과 B동이 완공된 데 이어 1992년 6기 사업에서 F동과 G동이 들어섰다. 그는 언덕 경사지라는 지형적 특성을 각 건물에 반영했고, 시간이 누적되며 형성된 집합건축이 주변으로 영향을 미쳐 다이칸야마 지역 전체가 이러한 분위기를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시간의 풍경’이라고 했다. 현재 다이칸야마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쓰타야 서점 역시 힐 사이드 테라스의 공간 개념을 계승해 조성된 사례다.

이 지역의 대부분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아사쿠라 가문은 당시 일본 전역에서 유행한 고층 아파트 단지 개발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역사와 장소성을 지키기 위해 23년에 걸쳐 건축가와 함께 이 공간을 조성했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서구 근대건축과 일본 고유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 사례로 평가받는다. 군집된 건물들을 연결하는 길과 중정은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단단하게 엮는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집합주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이칸야마의 명소 ‘쓰타야 서점’ 전경. 서점과 카페, 각종 매장 등 안팎의 경계가 없고 산책로와 연결돼 전체 공간이 하나의 야외 공원과 같다. 출처 임태병 건축가 제공

 

다이칸야마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주택지다. 한국에 빗대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고급 주거단지가 기존 마을의 지형과 골목길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아파트와 중정이 주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 사이사이에 서점과 상점이 들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수많은 반대와 논쟁이 뒤따를 법해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건축만으로는 무엇을 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아파트는 괜찮은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긍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 없이 평생 거주하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파트인가. ‘하우스(house)’가 형태로서의 집이라면 ‘홈(home)’은 정서로서의 집이다. 집은 부동산이기 이전에 나와 가족을 보듬는 장소다. ‘하우스’가 있어도 ‘홈’이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의미의 ‘홈리스(homeless·노숙)’다. 아파트는 재산이기 이전에 먼저 ‘홈’이 돼야 한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동아일보(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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