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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밥 3000원 시대] [나잇값, 밥값, 표값] ["밥값 내놔라!"]

뚝섬 2026. 3. 21. 07:40

[공깃밥 3000원 시대]

[나잇값, 밥값, 표값]

["밥값 내놔라!"]

 

 

 

공깃밥 3000원 시대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다. 안부를 물을 때 “밥 먹었니”, 고마움을 표할 때 “밥 한 끼 살게”라고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관계의 지속을 의미한다. 식당에서도 밥은 상품을 넘어 인심의 영역이었다. 메인 요리를 시키면 공깃밥은 당연히 따라왔고 “한 공기 더요”를 외쳐도 공짜였다. 공기(空器)는 ‘빈 그릇’이란 한자어다. 묵직한 놋쇠로 만들어 뚜껑을 덮어 품격을 갖춘 ‘주발(周鉢)’과 달리 가볍고 실용적인 그릇으로 우리 식탁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

 

▶지금의 스테인리스 공기는 1970년대 부족한 쌀 소비를 줄이려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절 ‘절미(節米) 정책’으로 탄생했다. 1976년 서울시는 모든 식당에 지름 10.5㎝, 높이 6㎝의 표준 식기 사용을 강제하는 조치를 내놨다. 밥은 그릇의 8할만 채우는 게 원칙이었고, 뚜껑을 덮었을 때 밥알이 눌리면 안 됐다. 이를 어기고 고봉(高捧)으로 팔다 걸린 식당은 1개월 영업 정지를 당했다. 공무원들이 식당을 돌며 밥그릇 높이를 자로 재던 시절에도 주인들은 “야박한 인심은 천벌받는다”며 슬쩍 밥을 더 얹어 주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곤 했다. 법을 넘는 정(情)이 밥 인심에 담겨 있었다.

 

1976년 당시 공깃밥 한 그릇은 100원이었다. 1990년대 후반 1000원으로 자리 잡은 이래 30년 가까이 물가의 최후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같은 기간 자장면이나 삼겹살 값이 3~4배 올라도 공깃밥 값만은 변치 않았다. 서민들에게 밥 한 그릇은 1000원짜리 한 장이었다.

 

▶해외에서도 주식에 너그러운 문화는 드물지 않다. 미국 식당에서 식전 빵 바구니와 커피는 대개 무한 리필된다. 프랑스는 법으로 식전 빵과 물을 무료 제공하도록 정했다. 중국 서민 식당에선 차(茶)는 물론 밥을 무제한으로 내주는 ‘미판(米飯)’ 인심이 여전하다. 일본만은 밥값을 따로 받는다. 음식을 남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못타이나이(아깝다)’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산지 쌀값이 1년 새 20% 가까이 폭등하며 10개월째 고공 행진 중이다. 배달 앱에선 2000원 공깃밥이 예사가 됐고 3000원을 붙여 놓은 식당까지 등장했다. 쌀이 남아도는 나라에서 쌀값, 밥값이 폭등하는 기막힌 역설은 당국의 주먹구구식 수급 예측과 농민 단체의 압력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 있다고 하지만 쌀이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나라에서 쌀값 폭등이라니 어이가 없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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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 밥값, 표값

 

선거 압승 여당의 한 달 반… 어깨에 잔뜩 힘 들어간 채 할 일은 않고 할 생각도 없고

 

나이 들수록 나잇값 제대로 하기가 고민이다. 밥값 하기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살기 위해 밥을 먹고 그 밥값을 하기 위해 또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이가 들어 나잇값도 해야 한다. 나잇값, 밥값을 한다는 것은 제 몫의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제 몫을 못 하는 사람을 두고 나이와 밥을 헛먹었다고 한다.

민주당이 총선 대승을 거두고 한 달 반이 흘러 21대 국회가 시작됐다. 그동안 민주당과 청와대의 행태를 지켜본 많은 사람 입에서 '표값 못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왜 표값을 못 하겠나. 표를 헛먹었기 때문이다. 여당의 총선 승리는 이러쿵저러쿵해도 '코로나'라는 천재지변 덕이다. 무수한 실정과 내로남불, 비리 의혹에도 코로나와 비호감 야당 덕에 선거에서 대승할 수 있었다. 잘한 일 하나 없는데 심판받기는커녕 유례없는 압승을 했다. 그런데 자기가 잘해서 177석 거여가 된 줄 안다. 표를 헛먹어 놓고 헛먹은 줄도 모른다.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의 무기는 나이다. 나이만 앞세운다. 말끝에 "너 몇 살 먹었느냐"는 사람치고 나잇값 제대로 하는 사람 못 봤다. 똑같다. 표값 못 하는 정권일수록 의석만 앞세운다.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간 민주당은 국회법을 여당에 유리하게 바꾸겠다며 야당 윽박지르는 일부터 한다. '말을 안 들으면 18개 상임위원장 전부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한다. 청와대 출신 철부지 인사는 "세상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검찰총장도 겁박한다. 유죄 물증이 확실해 대법원 선고까지 내려진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뒤집어 무죄로 만든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마저 북한 짓이라고 결론지은 KAL 858기 폭파 사건을 재조사하자고 한다. '친일파' 묘지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했다.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고 공격한다. 윤미향은 또 뭔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30년간 속고 당했다"고 절규하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건만 "굴복하지 마라"고 한다.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도덕과 정의 기준은 우리 맘대로'라는 도덕 착란증은 거대 여당이 된 이후에 더 심해졌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거머쥔 거대 여당인데 누가 뭐라고 할 거냐'는 식이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하고 표를 받았으면 표값을 해야 한다. 여당에 표를 몰아준 국민 마음 바닥엔 그러잖아도 어려운 경제가 코로나 때문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깔렸었다. 노인은 늘고 일할 사람은 주는 나라 사정에 제대로 손대 보라는 뜻도 있었다. 총선 직후엔 이 정권이 국민이 준 막강한 힘을 규제 혁신·노동 개혁에 쓸 수 있겠다는 기대도 했다. 좌파 정부가 노동 개혁에 팔 걷어붙인 선진국 사례가 많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노동, 탈원전 등 지난 3년간의 잘못된 정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하는 그림도 상상해봤다. 그러나 한 달 반이란 시간은 순진한 기대가 허물어지기에 충분했다. 국민이 만들어준 거대 의석을 국가적 병목(bottle neck)의 근원인 여러 기득권을 때려 부수는 데 쓰기보다 자기 성채를 높이 쌓아올리는 데 쓸 조짐이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인데 허구한 날 돈 풀 궁리만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정권은 덩칫값도 못 한다.

"나잇값 좀 해라"는 웬만한 사람에게는 최악의 욕설이다. 면전에서 했다간 주먹다짐을 벌일 수 있다. "밥값 좀 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상소리 하나 없지만 대개 치명적으로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보면 나잇값 밥값 못 하는 사람은 그런 욕을 먹어도 정신 차릴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렇거나 말거나 문재인 정권에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제발, 표값 좀 해라."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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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내놔라!"

 

생전의 성철(性徹·1912~1993)스님은 툭하면 이렇게 일갈했다. 선방(禪房)에서 참선하다 조는 선승에게 장군 죽비를 쩍 내리치며 그랬고, 질질 끌어다 계곡의 얼음물에 메다꽂으며 외쳤고, 멀쩡히 참선 수행하는 도반(道伴)도 '밥값'으로 기습했다. 최근 출간된 '성철 평전'(모과나무)엔 이런 일화가 즐비하다.

특히 동갑내기 '절친 도반' 향곡(香谷· 1912~1979)스님과는 멱살잡이가 일상이었다. 봉암사 결사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1947년 시작돼 6·25전쟁 발발 전까지 이어진 봉암사 결사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모토로 당대의 선승들이 모여 '날마다 두 시간 이상 노동한다' '아침은 죽, 오후엔 불식(不食)'등 생활규칙을 정하고 추상같이 정진한 전설적인 결사였다.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은 툭하면 서로 멱살을 잡았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로 절 마당에 메다꽂고 씨름을 했다. 겉으론 몸싸움이었지만 실은 두 선승은 '법(法)거량', 즉 '깨달음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수행자들을 위한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성철 스님은 해인사, 향곡 스님은 부산 기장군 묘관음사에 머물렀다. 향곡 스님은 이런 혼잣말을 되뇌곤 했다. "보고 지바라(싶어라), 보고 지바라. 성철이가 보고 지바라. 가고 지바라, 가고 지바라. 해인사로 가고 지바라." 당시 시봉하던 법념 스님이 "해인사에 한번 가시죠" 권하면 "가고 싶어도 내가 참지. 자꾸 가면 대중한테 미안해서 자주 못 가"라 했단다. 그래서 두 선사는 1년에 겨우 한두 번 만났다.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방 안에서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는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요. 그래서 향곡 스님 가신 후에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셨느냐'고 여쭈면 '벽암록' 펴놓고 화두를 하나씩 점검하며 '(뜻을) 일러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셨습니다."(원택 스님) 웬만큼 수행한 선승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화두(話頭)를 놓고 보통 사람들 수다 떨듯이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 싸움'은 깨달은 스님들 사이에서의 일이었다.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왼다는 전설의 성철 스님이었지만 조계종 종정에 취임한 후 내린 법어에선 철저히 한글 세대에 눈높이를 맞췄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한문투성이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 당장 생활에서 실천하기에 쉽고도 어려운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양력 1월 1일과는 또 달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와 덕담이 오갈 것이다. 성철 스님이 지금 생존해 설 세배를 받는다면 일반인들에겐 어떤 덕담을 할까 생각해봤다. 아마도 "새해 복 많이 지으라"라며 "자기를 바로 보고, 남을 위해 기도하며, 남모르게 남을 돕는 것이 복 짓는 일이다. 복을 많이 지어야 받을 복도 많지 않겠나…"라고 했을 것 같다.

올해 설엔 인사말과 덕담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서 "새해 복 많이 지읍시다(지으시게)"라고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덕담하는 이나 받는 사람의 새해 첫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조선일보(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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