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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꺼리는 대전 화재 생존자들] [팽목항 주민들]

뚝섬 2026. 4. 3. 06:44

[상담 꺼리는 대전 화재 생존자들]

[팽목항 주민들]

 

 

 

상담 꺼리는 대전 화재 생존자들

 

지난달 대전 안전공업에서 불이 난 건 점심시간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휴게실 등에서 쪽잠을 자며 쉬고 있던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폭발음과 함께 불이 번지면서 익숙한 일상의 공간은 절규로 가득 찼다. 2, 3층의 직원들은 유독 가스와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에어매트가 깔리기도 전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온몸에 재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진 이들도 많았다. 직원 364명 중 사망자가 14명, 부상자가 60명에 달한다. 나머지 직원들 역시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들이다.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은 여러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친한 동료가 숨지거나 다친 모습을 목격한 충격,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계속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다고 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징후들이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전 화재 생존자들 중 심리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담받은 직원이 18%에 불과하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선 다신 그런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란 안정감이 필수라고 한다. 그런데 일터에서 끔찍한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은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비규환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에선 동료들이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런 작업장에서 다시 기계를 돌려야 하는 노동자들은 이번엔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가 더없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장이 통째로 불탄 대전 화재는 거의 전 직원이 트라우마를 안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상담을 망설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엔 심리적 불안을 개인의 약점으로 낙인찍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알려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곳 직장을 잃을 경우 다른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부담이라고 한다. 대전 화재 생존자들을 여전히 움츠리게 만든 요인들이다.

트라우마 치료는 사고 발생 후 7일에서 4주가 골든타임이다. 보통 이 시기는 사고 조사와 책임자 규명에 관심이 쏠려 생존자 마음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이번 화재 사고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다시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워 회피하는 것이 정상 반응이라고 한다. 동료들끼리 심리 상담 경험을 공유하며 권하는 문화도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상담을 통한 극복을 독려하지도 않은 듯하다. 산재 사고 후엔 마음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절차이자 권리라고 여긴다면 이들이 상담실로 향하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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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주민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시인은 수학여행의 꿈에 부풀어 세월호에 올랐다가 숨진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국민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사고 해역에서 25㎞ 떨어진 팽목항에서 가족 품에 안겼다. '팽목항' 하면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게 됐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사건 당일부터 구조 요원과 자원봉사자, 유족 등 수천 명이 붐볐다. 그러다 그해 11월 세월호 수색이 마무리되면서 한적해졌다. 실종자 9명을 남긴 채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 컨테이너 숙소에서 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작년 4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기고 나서야 이곳을 떠났다. 팽목항 200m 방파제 길 양편엔 지금도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이 걸려 있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에도 노란 리본이 새겨져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선체 인양이 마무리되면 팽목항 분향소를 철거하기로 진도 주민들과 약속했다. 유족들이 지난주 분향소에 걸린 희생자 사진을 정리하면서 약속이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 유족과 광주·전남 지역 노조, 시민 단체가 이 자리에 기념 공원을 조성하라며 분향소 철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2020년 9월 완공 목표로 팽목항 선착장에 새 여객 터미널을 짓는 진도 주민들의 숙원 사업도 불투명해졌다. 주민들은 "세월호를 위해 4년 넘게 참았는데, 우리도 이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상갓집 분위기 속에 4년 반을 견딘 팽목항 주민들이다. 분향소 맞은편에 사는 중학생은 심할 때는 밤잠을 못 이루고 열이 올라 공황장애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관광객이 끊긴 팽목항에서 낚시점, 식당, 매점 장사가 될 리 없다. 우울증에 안 걸리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9·11 테러를 겪은 뉴요커들의 트라우마와 비슷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고 현장 근처에 살거나 출퇴근하던 시민 수천 명이 9·11 사건 10년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팽목항 부근엔 2021년 3월 희생자 추모 공원이 포함된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선다. 재작년 팽목항에서 4.16㎞ 떨어진 곳에 '세월호 기억의 숲'도 들어섰다. 이만하면 희생자를 추념하는 공간과 정성은 소홀해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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