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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끈을 묶는 시간] [둥글게 둥글게]

뚝섬 2026. 2. 15. 08:43

[마음의 끈을 묶는 시간]

[둥글게 둥글게]

 

 

 

마음의 끈을 묶는 시간 

 

12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 굴비가 걸려있는 가운데 장을 보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1

 

설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1월3일 자 ‘아무튼 레터’에서 신년 인사를 드렸습니다만,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인사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건 올해만의 일은 아니죠. ‘설을 두 번 쇤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설’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제대로 익지 않았거나 낯설다는 의미의 ‘설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설을 쇠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점에서 ‘살’과 연결 짓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심하다,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비롯됐다는 해석, ‘선날’(새로 시작되는 날)이 ‘설날’로 변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삼국사기에 우리가 설을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 걸 보면 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해온 명절입니다.

 

설 준비로 들썩이던 모습, 세뱃돈과 설빔에 설레던 마음, 덕담과 음식을 나누면서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그런 설날 풍경이 옛말이 됐다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올해 설은 더더욱 명절다운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우리 경제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내수 경기는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인 이상 447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설 경기 상황을 물어봤더니 ‘작년과 비슷한 수준’(55.6%)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대문시장의 평균 공실률이 20%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사회 곳곳의 갈등은 사람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연일 정쟁에 몰두하느라 국민의 삶은 뒷전입니다. 여기에 국제 정세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수선합니다.

 

이렇듯 명절의 들뜬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무튼, 설날입니다. 설은 본래 한 해의 시작을 알리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자는 뜻을 담은 날입니다. 새해의 안녕을 빌고 복을 기원하며 가족과 이웃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빠듯한 현실 속에서도 이번 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올 한 해를 지탱할 마음의 끈을 단단히 묶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설 연휴로 ‘아무튼, 주말’ 2월21일 자는 쉽니다. 평안하고 넉넉한 설 명절 보내시기를 빕니다.

 

-김승범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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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지난해 정월대보름에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한해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달집 태우기와 강강술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내게는 다섯 명의 고모가 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살 때, 수녀님이 된 고모를 제외하고 네 명의 고모가 하루 걸러 한 번은 할머니를 보러 왔다. 덕분에 집이 늘 북적북적하고 활기가 넘쳤다.

 

너덧 살 무렵 기억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 할머니와 고모들과 나와 내 동생은 아랫목에 담요를 덮고 둥글게 모여 앉아 손바닥만 한 마분지에 똑딱단추를 끼웠다. 돈벌이라기보다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기 좋은 소일거리였다. 우리는 수단추와 암단추를 눌러 끼우며 그날 재미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깔깔 웃고, 귤을 까먹고, 그러다가 내가 신이 나면 일어나 엉덩이를 실룩대며 춤을 추고, 또 다 같이 와하하 웃으며 손뼉을 치고. 즐거운 사람들이 정답게 둘러앉아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의 이 원형(圓形)이 지금의 나를 만든 원형(原形)이 아닐까, 요즘 종종 생각한다.

 

북토크 할 때도 둥글게 모이는 게 좋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는 자리보다 소규모 모임을 선호한다. 동그랗게 앉으면 서열도 없고, 누가 누굴 가르치는 분위기도 없고, 서로 마주 보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처럼 술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작년 이맘때쯤 언덕 위의 한 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가졌을 때, 나는 동네 꽃집에서 노란 수선화 화분을 사 갔다. 여덟 명쯤 되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수줍게 옷깃을 세운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스케치하듯 수선화를 글에 담고, 각자 쓴 걸 읽고, 감탄하고, 웃기도 했는데, 참 좋은 겨울밤이었다.

 

요즘 신문을 펼쳐보면 고독사, 자살, 외톨이, 우울증 같은 슬픈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져서 마음이 무겁다. 그저 둘러앉아 한 송이 꽃을 바라만 보아도 인생은 즐거운 것을. 위로 위로, 더 많이 더 높이, 이제 그런 것보다는, 둥글게 둥글게, 여럿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의 마음으로 사는 방향을, 우리는 앞으로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정수윤 작가·번역가, 조선일보(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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