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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의 시대] [‘중동 평화’ 꿈꿨던.. ] [ .. 세기의 스파이]

뚝섬 2026. 6. 9. 09:29

[‘나의 투쟁’의 시대]

[‘중동 평화’ 꿈꿨던 이스라엘 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

[상처받은 자존심이 만든 세기의 스파이]

 

 

 

‘나의 투쟁’의 시대

 

1923년 히틀러는 ‘뮌헨 폭동’에 실패해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됐다. 말이 교도소지 5년형에 실제로는 1년 남짓 복역했다. 그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같은 독방에서 비서까지 부리면서 살았다. 자서전이자 정치선전서인 ‘나의 투쟁’이 이곳에서 나왔다. 이후 히틀러의 인기는 치솟았다. 1930년 나치당은 독일 제2당이 됐다.

히틀러는 어떤 논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을까? 세계의 모든 문제는 유대인이 일으켰다는 황당한 논리도 있지만, ‘나의 투쟁’은 아주 평범한 논리로 유혹을 시작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국회의원은 제멋대로 법을 만들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가가 생존하려면 일정 크기의 영토와 인구를 가져야 한다, 대중은 천재의 독창적 행동에 늘 반대한다, 국가는 훌륭한 문화를 국민에게 보급할 의무가 있다….

이런 말을 하거나 공감한다고 해서 파시스트인 것은 아니고, 파시스트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국가와 국가, 강자와 약자 간에 힘과 맹목적 정의가 정당화되는 세상이 되자 대중은 이런 소박하고 상식적인 바람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극단적 방법론을 선택하게 됐다. 히틀러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북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이다. 민족은 독재자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임무는 그들에게 독재자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이 가져온 결과인 제2차 세계대전, 광기, 학살에 대해 알고 있다. 열매는 핏빛이지만 뿌리의 성분 90%는 대중의 평범한 생각이었다. 그 평범함이 이상기후를 만나 괴물로 진화했다. 지금 세계는 1920년대와 너무나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념을 떠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지도력을 요구한다. 1920년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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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 꿈꿨던 이스라엘 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막바지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자지구 곳곳은 이미 폐허가 됐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총성이 멎어도 평화까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지금의 중동을 보면서 한때 팔레스타인과의 화해를 추진하며 중동 평화의 가능성을 열었던 이스라엘 제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1922∼1995·사진)을 떠올리게 됩니다.

라빈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유대인 무장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입니다. 독립전쟁을 거치며 군인으로 성장해 1964년에는 이스라엘군 총참모장까지 올랐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압도적 승리로 이끌며 국민적 영웅이 됐습니다. 당시 라빈은 안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테러를 지원하는 이란을 맹렬히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전역 후 주미 대사를 거쳐 정치에 발을 들인 라빈은 1974년 이스라엘 본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국방장관과 노동당 당수를 지내며 정치 지도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쟁 경험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평화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라빈은 점차 평화는 친구가 아니라 적과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1993년 라빈은 미국의 중재 아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와 역사적인 화해에 나섰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를 공식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어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협정 서명식에서 라빈과 아라파트가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방송됐습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일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적어도 ‘공존 가능성’ 자체는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94년 아라파트 등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라빈의 발걸음은 거센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1995년 텔아비브의 평화 집회 연설을 마치고 나오던 라빈은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청년이 쏜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던 군인이 평화를 말하던 순간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가 죽자 오슬로 체제는 무너지고, 중동은 다시 갈등과 충돌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평화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동아일보(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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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자존심이 만든 세기의 스파이 

 

블라디미르 베트로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인간의 자존심은 돈, 이데올로기와 함께 스파이를 만드는 주요 동기 중 하나다. 조직이 자신을 몰라주거나 무시한다고 느끼며 복수심으로 적국의 스파이가 되기도 한다. 냉전 시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블라디미르 베트로프가 대표적이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 스파이였던 그는 미국과 소련 간 긴장 완화 분위기가 조성되던 1965년 산업스파이 임무를 맡고 프랑스에 파견됐다. 당시 과도한 군비 경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방의 선진 기술이 필요했던 소련은 KGB에 ‘라인 X’라는 전담조직을 만들어 산업스파이를 양성했는데, 베트로프도 그 일원이었다.

그는 호황기 프랑스 파리에서 5년간 외교관 신분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며 풍요와 향락을 만끽하고 복귀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활을 맛본 그가 열악한 모스크바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조직 내부의 차별이었다. ‘노멘클라투라’라는 공산당 특정 세력이 진급 등 혜택을 독점하면서 승진에서 계속 탈락했고, 후배가 직속 상사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조직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다. 1980년 말, 베트로프는 파리 근무 당시 알고 지낸 프랑스 국토감시국(DST) 요원에게 전향 의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암호명 ‘작별(Farewell)’ 공작의 서막이었다.

그가 프랑스와 손잡은 이유는 프랑스 정보기관에는 소련 스파이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서방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 명단과 이들이 빼내 간 산업기술 정보 등 수천 건의 기밀자료를 프랑스에 넘겼다. 그중 일부는 미국과 공유됐는데, 미국은 자국의 기술 유출을 역이용하는 공작을 추진했다. KGB 라인 X 요원들에게 허위 정보를 흘려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에 차질을 빚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오류가 있는 정보를 흘려 소련이 결함 있는 미사일 칩을 생산하도록 해 치명적 결과를 낳는 데 성공했다. 또한 조작된 소프트웨어를 투입해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 활동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베트로프는 불륜에 빠지고 알코올에 중독되는 등 위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1982년 내연녀를 찌르고 목격자까지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살인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다행히 스파이 신분은 탄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수감 중 감방 동료에게 서방에 연줄이 많다는 등 수상한 발언을 하면서 스스로 의심을 사는 실수를 범했다.

그런 상황에서 1983년 프랑스가 베트로프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서방에 암약하던 소련 스파이 47명을 추방했다. 이를 계기로 KGB가 역추적을 통해 스파이의 행적을 밝혀내면서 그는 1985년 처형됐다. 이 사례는 국가와 조직에 대한 강한 충성심이 요구되는 정보기관에서 내부 불만이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미국, 러시아와 연계한 3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독일 연방정보부(BND) 요원 마르쿠스 라이헬도 “미 중앙정보국(CIA)은 나를 인정해 줬다”며 배신 동기로 자존감을 언급했다. 어느 조직이든 다양한 이유로 내부 불만자가 생길 수 있지만, 정보기관만큼은 이를 국가안보 관점에서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내부 스파이는 핵폭탄만큼 위력적이다.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동아일보(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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