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대학 졸업장은 능력 증명서가 아니다]

뚝섬 2026. 6. 28. 05:32

대학 졸업장은 능력 증명서가 아니다 

 

한 상가 건물에 있는 입주 업소 안내 표지판. 병원명 앞에 출신 대학로고를 새겨 넣었다. /고혜련 제공

 

#동네 한 상가 건물 내 입주 업소 안내 표지판이 눈길을 잡았다. 업소 이름 앞에 출신 대학 로고를 새겨 넣은 각종 병의원이 줄줄이 입주 중으로 소위 명문대 출신은역시 다르고 절대적임을 웅변하고 있는 듯해서다. “그런 간판이 붙은 곳으로 환자 이동이 심해 고민 중이라는 어느 의사의 한숨이 떠올랐다.

 

#대학 개교기념 행사 중 한 모임에서 인사말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선후배들까지 모이는 자리, 과연 소감 발표할 자격이 되나 고민했다. 50년 전 졸업 후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새삼 감사 이유도 찾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소중한 20대 초반 청춘 4년을 보낸 곳인데…. 우선은 고교 성적에 걸맞은 학교 입학 후 반정부 시위가 일상이었던 때, 처음 2년은 수업과 친구 만남을 등한시했다. 나머지 2년은 취업 준비로 온종일 도서관에 박혀 있어 끈끈한 유대감과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당시는 여대생들이 졸업 후시집 잘 가는 게주 관심사로 여겨졌지만 내 경우 자수성가형 아버지의 강권으로 취업시험에 매진해야 했다.

 

한참 궁리 후 생각했다. “, 감사할 이유가 있겠네!” 돌아보니 졸업 직후 입사시험을 볼 때마다 답안지 외 대학 졸업장만이 내 상품성을 입증할 유일한 가늠자요 무기였다. 고투 끝에 한 언론사에 들어갔다. 그뿐이랴. 더 나은 간판을 위해 해외 유학을 갈 때도, 장학금 신청 때도, 국내외 타 직장을 찾을 때도, 저서를 낼 때마다, 그 책들로 각종 정부·단체 지원금을 따낼 때도 첫 줄에 출신 대학을 써 넣는 게 필수 코스였다. 그렇다면 모르는 척 수혜를 입었으리란 생각이 든 거다. 대학 간판이 내 인생길을 좌우했음은 결코 아니지만 감사를 전할 밑재료는 된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그 숙제를 끝냈다. 학력이 과연 뭔가 하면서.

 

요즘도 유명인사 인터뷰 기사나 선거 벽보, 하다못해 아파트 주민자치위원을 뽑을 때 맨 첫 줄에 오르는 것이 학력이다. 하지만 아직 철부지인 10대 말에 각 과목을 달달 외운 암기력으로 입학해 20대 초반을 잠시 보낸 그곳이 생각의 깊이와 인격·능력을 가늠하는 큰 잣대인 양 선입견을 주는 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학 졸업장은능력 증명서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인생 학습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의졸업대신시작을 뜻하는 ‘commencement’라는 단어를 더 애용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졸업은 학업의 끝이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미래의 긴 여정에 닥칠 문제 해결 능력을 배워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미.

 

물론 대기업의 경우 지원자가 몰려드니 학력이 성실성 판단의 손쉬운 변별 도구로 우선 쓰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직업상 많은 사람을 겪어 오면서, 인재를 선발할 때 이력서의 출신 대학명은 작은 참고자료 정도에 그쳐야 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향후 AI(인공지능) 시대에는 학벌이 가늠자로서 한계를 보일 게 뻔한데 간판 맹신을 버리자는 얘기다.

 

오래전 입학 시험 성적이 좌우한 대학 간판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를 발견, 책임감을 갖고 동료들과의 소통으로 협업해 해결하는 능력, 실패했을 때 일어서는 회복력이 경쟁력임을 다들 살면서 겪어오지 않았던가. 이 시대 진정한 인재는 평생 배우면서 도전과 실패를 바탕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함께 가는사람 중심의 사람이 아닐까.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드는 젠슨 황과 일론 머스크가 정말 스마트한 사람은 파편적 지식·기술보다 좋은 질문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공감 능력이 있고,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미리 감지, 모퉁이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 한 말에 공감한다. 저마다 꽃피우고 열매 맺는 시기·장소가 달라 대기만성(大器晩成)개천에서 용난다를 보여주는 이들이 세상에 부지기수다. 지나간 학력과 그로 인한 인맥 탓하며 지레 좌절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마침 한 주요 대기업이 모든 채용에서 학력제한을 폐지한다니 다행이다. 동시에 합리적이고 멋진 내부 평가 시스템도 생겨나길 고대한다.

 

-고혜련 칼럼티스트, 조선일보(26-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