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축제가 선택한 '한국어'… 세계가 K공연예술을 주목한다]
[서울숲에 온 경주 최부자댁 뒤뜰]
아비뇽 축제가 선택한 '한국어'… 세계가 K공연예술을 주목한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상징적 공간인 교황청 '명예의 뜰'. /아비뇽 페스티벌
유럽 공연장들이 보수와 다음 시즌 준비로 문을 닫는 7~8월, 관객의 발걸음은 페스티벌로 향한다. 프랑스에서 매년 7월 열리는 아비뇽 축제는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대표 무대다. 전설적인 연출가 피터 브룩이 9시간에 달하는 대작 ‘마하바라타’를 선보인 장소이자 공연예술인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그 아비뇽이 올해 특별히 주목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2023년부터 특정 ‘언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조명해 왔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에 이어 올해는 한국어가 선정됐다. 조직위가 국가가 아닌 언어를 프로그래밍의 중심으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언어야말로 세계를 인식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가장 본질적인 틀이기 때문이다. 앞서 선정된 언어들이 세계 여러 대륙에 걸쳐 사용되는 글로벌 언어인 것과 달리, 한국어는 단일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국어를 지엽적 언어가 아닌 보편적 가치를 지닌 독립된 문화권의 언어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조직위는 “외부의 압력 속에서도 독창적으로 살아남아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낸 저항과 회복의 언어”로 한국어를 소개하며 “한국 예술에 대한 순수한 발견의 열망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번 축제는 K팝이나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 영역을 넘어, 세계인의 시선을 한국의 ‘순수 공연예술’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나아가 몸짓과 언어라는 본질적인 매체를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어떤 역사적 격변과 문화적 전통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한류’를 트렌드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관점은 9편을 선정한 프로그램에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까지 그 면면이 다채롭다. 톨스토이 단편을 판소리로 옮긴 이자람의 ‘눈, 눈, 눈’을 비롯해 우리 현대사를 다룬 이경성의 ‘섬 이야기’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원작 낭독극, 그리고 현대 사회의 단면을 파헤치는 구자하의 3부작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담았다.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은 19세기 러시아, 마을 상인과 하인이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으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주인과 하인'이 원작이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LG아트센터
지난해 11월 BBC 시사 팟캐스트에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정점에 도달했는가?’라는 제목의 방송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패널로 참여한 기자는 싱가포르에서 관람한 한국 연극 ’벚꽃동산’의 감동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언급하며 “아직 글로벌 무대에서 만나지 못한 한국 문화의 영역이 넓고, 한국은 여전히 보여줄 게 많이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한국 문화의 다채로운 영역들’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아비뇽의 뜨거운 여름 무대 위에서 펼쳐질 우리 공연예술의 저력은 결코 일시적으로 지나갈 유행이 아니다. 풍부한 전통문화 위에 서구 문화를 독창적으로 수용하며 축적해 온 우리 문화의 내공이자 자생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이제 세계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과를 넘어 이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내실을 다져온 순수 공연예술의 깊이와 다양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세계와 전방위적으로 호흡하려면 순수공연예술의 기반을 더 견고히 다지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K컬처가 지치지 않고 나아갈 미래 동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조선일보(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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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에 온 경주 최부자댁 뒤뜰

경주 최부자댁에 있는 전통 정원 화계(花階)를 둘러싼 담벼락과 협문(夾門) 전경.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경주 최부자댁에 가면 곳간 크기에 놀란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더니 그래서 만석꾼 최부자댁 곳간이 그렇게 컸던가. 하지만 집채만 한 곳간보다도 주목받아야 할 것은 앞에 놓인 뒤주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편히 곡식을 꺼내 갈 수 있도록 놓아둔 뒤주. 그 심성이 조선 최고 부잣집으로 12대를 이어가게 한 덕이지 싶다.
최부자댁 솟을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서면 고택의 품격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사당, 사랑채, 문간채, 안채를 다니며 감탄하다 보면 놓치는 공간이 있다. 안채 후원이라 불리는 뒤뜰인데, 안마당 붉은 굴뚝과 장독대를 들러보고는 그냥 나가기 십상이다. 안채 오른편 작은 문을 열고 우물과 앵두나무를 지나면 뒤뜰이다.
주변보다 약간 높아 지형에 따라 화단을 꾸몄나 싶지만 이 사연도 깊다. 사당을 서편에 모신 것도, 기둥을 낮게 하여 집 높이를 낮춘 것도, 성현을 모시는 동쪽에 자리한 경주향교를 위한 배려였다 한다. 향교보다 집터를 낮게 닦기 위해 파낸 흙으로 뒤뜰 지반을 높이고, 북풍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담장 밖에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2026 서울 국제정원박람회를 맞아 성동구 서울숲에 경주 최부자댁을 재현한 'K-헤리티지 정원'이 조성됐다.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뒤뜰은 계단 모양 단을 만들고 단마다 화초를 심은 화계(花階), 협문과 담장이 소박하면서도 운치가 있게 조성되어 있다. 특히, 안채 마루에서 협문 넘어 채마밭으로 이어지는 차경이 백미다. 바람 솔솔 통하는 마루에서 시간은 여름날 누릴 수 있는 호사였을 것이다.
최근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 최부자댁 뒤뜰 풍경을 재현한 정원이 만들어졌다. 누마루와 화계, 낮게 이어진 담장과 협문, 오솔길이 정겹다. 정원에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잠든 사릉 육묘장에서 가져온 우리 고유 수종이 심어졌다. 점차 잊혀가는 옛 정취가 도시 정원에 이어지고 있다. 귀한 손길과 넉넉함이 깃든 곳에서 마음을 다독여도 좋겠다.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조선일보(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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