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아한 옥빛 청자.. 두 귀 달린 병]
[침몰 보물선 '산 호세'호 사건]
[신안 앞바다서 건진 '노다지']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아한 옥빛 청자.. 두 귀 달린 병

두 귀 달린 병, 중국 원(元), 14세기, 높이 15.8㎝, 국립광주박물관. /e뮤지엄
박물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직원들에게 새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지 들을 기회가 종종 있다.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박물관 업무에 이렇게 몸을 많이 쓰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여러 업무가 사람을 고되게 하지만, 유물을 다룰 때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몸을 써야 해서 작업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곤 한다.
이런 과정을 알아서인지 언젠가부터 다른 박물관 전시를 볼 때면 전시 내용뿐 아니라 전시 준비에 들인 공력과 수고도 생각하게 된다. 작년 12월 문을 연 국립광주박물관의 새 전시관인 도자문화관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전시실을 채운 7000여 점의 유물을 보며, 준비 단계부터 전시 구현까지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박물관 직원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도자문화관에는 한국 도자 천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실과 더불어 ‘신안선’이라고 부르는 신안 앞바다의 침몰선 도자기를 소개하는 전시실이 조성되어 있다. 신안선은 중국 원나라 때인 1323년 현재의 저장성 닝보(寧波)를 떠나 일본 규슈의 하카타(博多)를 향하던 도중 난파된 대형 무역선이다. 1975년 한 어부가 그물에 걸린 청자 꽃병을 신고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수중 발굴로 건져 올린 유물과 회수된 도굴품을 합하면 신안해저문화재의 수량은 2만7000여점에 이른다.
당시 발견된 귀한 자단목과 향료, 28t에 이르는 동전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2만5000여 점에 달하는 도자기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느 컬렉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방대함을 보여주며, 14세기 전반 무역선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타임캡슐이다. 도자문화관에 전시된 6000여 점으로, 신안선 도자의 일부이지만 당시 원나라 해상무역의 스케일과 일본 가마쿠라시대의 중국 도자 열풍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세계 각지로 수출된 중국 도자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자는 청화백자이지만 이에 앞서 인기 있었던 도자는 청자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도자 중에도 용천요 청자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용천요는 중국 저장성 남부에 위치하며, 남송 시기에 유약을 두껍게 입히는 기술 등을 개발하여 독특한 풍격을 이루었고, 원나라 때에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형의 청자를 대량 생산했다. ‘두 귀 달린 병’은 신안선 용천요 청자 대표작 중 하나로, 목 양쪽에 어룡 모양의 귀를 단 꽃병이다. 옥처럼 불투명한 녹색을 띠는 유색과 고아하면서 중후한 기형의 조화가 아름답다.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 조선일보(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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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보물선 '산 호세'호 사건
미국·스페인·페루·콜롬비아 소유권 분쟁… 국제법은 가라앉은 곳 위치가 중요
지난달 24일 제주 신창리 해역에서 중국 도자기, 동전 등이 발견됐습니다. 신창리 해역에는 과거 중국 무역선이 난파돼 많은 보물들이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요. 이렇게 세계 곳곳에는 보물을 싣고 가다 가라앉은 많은 배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바다 속에 가라앉은 보물의 소유권은 어떻게 될까요? 발견한 사람이 주인일까요?

1708년 산 호세호가 영국 전함과 교전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위키피디아
콜롬비아 바닷속에서 발견된 산 호세호의 소유권을 놓고 흥미진진한 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1708년 스페인 군함 ‘산 호세’호는 보물을 싣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다가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콜롬비아 북부의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 앞바다에서 침몰해요. 여기에 실려 있던 보물은 최대 170억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9조원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보물선을 찾아 오랜 세월 바다를 수색했습니다. 마침내 1981년 미국 수중탐사업체인 시서치아르마다(SSA)가 이 배를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했기 때문에 산 호세호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콜롬비아 정부는 콜롬비아 영해에서 발견된 보물이니 소유권도 콜롬비아에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 사건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이번엔 스페인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어요. 배도 스페인 소유이고 당시 가라앉아 죽은 선원 600명도 모두 스페인 사람들이니 당연히 스페인이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죠. 페루 정부도 나섰습니다. 배에 실린 보물들은 고대 페루 왕국의 유물을 스페인이 약탈해간 것이니 원래 보물의 주인인 페루가 소유권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미국 수중탐사업체와 콜롬비아는 결국 법적 다툼을 벌였고 2007년 콜롬비아 대법원은 각각 절반씩 보물을 나눠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발견한 사람의 몫을 절반 정도 인정한 거죠. 그런데 콜롬비아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배의 위치를 추적했어요. 수십 년간 탐사를 거듭하던 콜롬비아 정부는 2015년 보물선의 위치를 파악하고 인양하겠다고 선언해요. 배의 위치가 미국 탐사업체가 제시한 곳과 다르다며 자신들이 다 가지겠다고 주장했죠.
그런데 유네스코에서 보물을 건지겠다는 목적으로 배를 파헤치다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인양에 반대하는 서한을 콜롬비아에 보냈어요.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인양 계획을 중단했고 현재까지 이 보물선의 위치는 비밀에 부쳐져 있는 상태랍니다.
보물선의 소유권을 따지는 건 매우 복잡합니다. 국제법은 강제할 수 있는 중앙정부가 없기 때문에 관행 등에 따르는 느슨한 체계죠. 그래도 국제법상 확고한 원칙은 영해 존중입니다. 영해는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를 뜻해요. 보물선이 영해상에서 발견된 것이 분명하다면 국가 간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해당 영해 국가의 소유가 될 가능성이 크죠.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조선일보(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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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앞바다서 건진 '노다지'
1323년 원나라를 출발,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
1975년 8월 전남 신안군에 거주하던 어부 최형근씨는 증도에 딸린 작은 섬 도덕도 해상에서 그물질을 하다 자기(瓷器) 6점을 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집에 두었던 자기를 무안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동생 최평호씨가 목격해 신안군청에 신고했고, 문화공보부는 평가회의를 거쳐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도덕도 앞바다는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었고 도굴 감시 요원을 매수해 도굴을 자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검경의 도굴범 체포와 장물 압수가 이어졌으나 역부족이었다. 문화재관리국은 해군의 지원을 받아 2차에 걸쳐 긴급 조사를 진행, 다량의 유물을 인양했고 선체가 해저에 묻혀 있음을 확인했다.

물소를 탄 동자 모양 백자연적, 신안 해저선, 높이 6.7㎝,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사실이 '노다지 쏟아진 바다의 무덤', '탄성과 흥분의 노다지 해저' 등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신안 해저 유물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급기야 1977년 1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은 문화공보부 연두순시 석상에서 이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광주에 국립박물관을 신축하라고 지시했다.
1977년 6월에 시작된 3차 발굴은 이전 발굴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계가 좋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도 수천 점의 유물이 어느 위치에서 수습되었는지를 하나하나 기록하며 발굴을 이어갔다. 3차 발굴까지 인양한 주요 유물은 그해 10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반에게 공개됐다. 전시품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물소를 탄 동자 모양 백자연적과 고려청자 매병이었다.
발굴은 계속 이어졌고 1984년 9월에 이르러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년간의 발굴에서 선체와 함께 2만4000여 점의 물품, 약 800만 개의 동전 등이 인양됐다. 신안 해저선은 1323년 원나라를 출발,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배의 침몰은 크나큰 비극이지만, 그 배는 14세기 동아시아를 마치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선'으로 재탄생했다. 이 발굴은 국내 수중 발굴의 신호탄이 되었고 그때의 경험은 이후 수많은 침몰선 발굴의 토대가 되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조선일보(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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