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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다 붉으락푸르락] [등산인의 급과 단]

뚝섬 2024. 11. 24. 05:55

[등산하다 붉으락푸르락]

[등산인의 급과 단]

 

 

 

등산하다 붉으락푸르락 

2024년 북한산 단풍.

 

주말 아침에 서울 구파발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하자 우르르 등산객들이 몰렸다. 만차(滿車)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자정 무렵 막차에 몸을 욱여넣듯 끈질기게 올라탔다. 출입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북한산 가는 버스가 구파발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보다 못 한 중년 여자가 말했다. “다음 차 타유. 산에는 좀 늦게 가도 되잖어.” 그래도 출입문은 닫히질 않았다. 분투하다 포기한 중년 남자가 바깥에서 ‘푸시 맨’처럼 기운을 쓰자 비로소 닫혔다. 그 중년 여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나야 기도하러 절에 가지만 등산은 그게 아니잖여. 뭐가 그리 급해. 산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콩나물 시루가 된 버스 안에서 콩나물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모처럼 관악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산 반 사람 반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죽어라 오를 만큼, 헉헉,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객이 많았다. 연주대에선 아이스크림과 막걸리 등을 파는 중년 남자들을 보고 새삼 놀랐다. 아이스박스 무겁게 한가득 짊어지고 올라온 수고비를 붙여 소매가격의 3배로 사고파는 장이 섰다. 카드 환영, 폰뱅킹도 OK.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인터넷 캡처

 

하산하자마자 성석제 소설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샘터)을 찾았다. 수록작 가운데 산 아래 허름한 구멍가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70대 안팎의 부부. 작가도 글이 풀리지 않을 땐 산의 신세를 지느라 오며 가며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냉장고에 맥주가 그득 들어 있는데 손님들이 마시는 것보다 그 부부가 마시는 게 많지 싶었다고.

 

단풍이 홍수를 이룬 늦가을, 작가의 친구들이 산행을 핑계로 몰려왔다. 중년 남녀 예닐곱이 정상 아래 공터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가게 주인 할머니가 함지(고무 다라이)에 막걸리를 담아 잔술로 팔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컵에 1000원. 작가가 남은 술과 안주를 다 팔아드리겠다며 “이 무거운 걸 어떻게 가지고 올라오셨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어깨 너머로 고갯짓을 했다.

 

햇살을 잘 받는 임도에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다. 가게의 또 다른 주인, 할아버지가 멋진 포즈로 기대서 있었다. 화려한 머플러에 선글라스를 쓴 채 여유작작하게. 작가가 눈인사를 하자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쳐들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공주에게 헛수작 붙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포고하듯.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인터넷 캡처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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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인의 급과 단

 

11급 수준: 타의 입산(他意 入山)
이런 사람은 산보다 TV를 더 선호하는 스타일로 휴일이면 리모콘이 유일한 벗. 또는 회사나 모임에서 산행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는 타입. 특징, 일요일이 되면 멀쩡한 하늘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져 산행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놀부 심보형.

10급 수준: 증명 입산(證明 入山)
이런 사람은 산을 좋아해 찾는것이 아니라 사진 찍으러 가는 스타일로 애써 걷기는 커녕 물 좋고 경치 좋으면 아무데나 가리지않고 찰칵찰칵 사진만 찍는 타입. 특징, 경관이 좋은곳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그 사진으로 마치 한국의 산은 다 가봤다는 과시하는 과시형.

9급 수준: 섭생 입산(攝生 入山)
이런 사람은 오로지 먹으러 산에 가는 스타일로 배낭 가득 먹거리를 챙겨 물 좋은 계곡을 찾아서 퍼질러 앉아 식탐을 즐기는 타입. 특징, 엄청 먹었는데도 음식이 남아 다시 지고 내려오며 "나는 왜 이리 배가 작지" 라며 후회하는형.

8급 수준: 중도 입산(中途 入山)
이런 사람은 산행을 하기는 하는데 꼭 중간쯤에서 하산하는 스타일로 제 다리가 튼튼하지 못함은 탓하지 아니하고 산이 왜 이리 높냐고 불평하는 타입. 특징, "뭐 꼭 정상에 올라가야 맛인가, 올라가면 누가 상이라도 주냐?"라며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형.

7급 수준: 화초 입산(花草 入山)
이런 사람은 내내 집에만 있다가 춘사월이나 단풍철 산을 찾는 스타일로 진달래 철쭉 등이 피는 춘사월이나 만산홍엽으로 불타는 단풍철이면 갑자기 산에 미치는 타입. 특징, 제 얼굴 못난 까닭에 예쁜 꽃이나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는형.

6급 수준: 음주 입산(飮酒 入山)
이런 사람은 그래도 산을 조금은 아는 스타일로 산행을 마치면 하산주를 열심히 챙겨 먹는 타입. 특징, 술의 종류, 알콜 도수, 가격을 막론하고 그저 양만 많으면 된다는 먹보형.

5급 수준: 선수 입산(選手 入山)
이런 사람은 산을 마라톤 코스로 생각하고 "산을 몇개 넘었고, 한시간에 몇km를 갔다."고 자랑하는 스타일로 정작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면 늘 꼴등하는 타입. 특징, 이런 사람을 따라 나서면 늘 굶거나 먹을때도 번개불에 콩 뽁아 먹듯 먹고는 오로지 달리는형.

4급 수준: 무시 입산(無始 入山)
이런 사람은 산을 좀 아는 까닭에 자기가 계획한 산행은 꼭 하는 스타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원래 계획대로 밀어 부치는 타입. 특징, 폭풍이 몰아쳐 "오늘 산행 취소지요?" 하고 물으면 "넌, 비 온다고 밥 안 먹니?" 하고 되묻는형.

3급 수준: 야간 입산(夜間 入山)
이런 사람은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에라도 산에 오르는 스타일로 산에 가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산병 초기증상 타입. 특징, 산정에 오르면 자기가 무슨 늑대라고 "우~ 우~"하며 달을 보고 소리를 질러대는형.

2급 수준: 면벽 입산(面壁 入山)
이런 사람은 바위타기를 즐겨하는 스타일로 틈도 없는 바위사이에 몸을 비벼넣고 마치 바위가 자기 애인이라도 되는 듯 온갖 퍼포먼스를 하는 타입. 특징, 이때쯤이면 가끔 회사까지 빼 먹고 몇일이든 퍼포먼스를 즐기는형.

1급 수준: 면빙 입산(面氷 入山)
이런 사람은 날씨가 추워지기만 학수고대하는 스타일로 폭포가 얼기만을 축원하다가 결빙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만사 제쳐놓고 얼음에 몸을 던지는 타입. 특징, 빙판길에 가족이 넘어져 다쳐도 겨울은 추워야 한다며 자기 주장만 하는형.

1단 수준: 합계 입산(合計 入山)
이런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끝내고도 조갈증이 나서 더 높고 어려운 산이 없나 모색하는 스타일로 산에 관한 정보가 있는 외국원서를 번역한다고 평소에 안하던 공부까지 하는 타입. 특징, 산병 중증 환자로 제 스스로 격리되어 운수업자 흉내를 내며 고행길로 들어서는형.

2단 수준: 설산 입산(雪山 入山)
이런 사람은 마침내 설산인 히말라야로 떠나는 스타일로 설산을 대상으로 출사표를 던지고 도전하는 타입. 특징, 설산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돌아왔다는 소리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형.

3단 수준: 불문 입산(不文 入山)

이런 사람은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 는 스타일로 비로소 산 평등사상에 이르게 되고 입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타입. 특징, 묻지마 관광같이 "산에 오르는 것을 묻지마" 라며 선문답으로 유유자작 산을 즐기는형.

4단 수준: 소신 입산(所信 入山)
이런 사람은 작은 산도 엄청 크고 높게 보는 스타일로 작은 산이라도 겸허하게 즐겨 찾는 시기, 그래도 "힘들어서 높은 산을 못 올라간다"는 소리는 안하는 타입. 특징,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에 비례하여 입에는 양기가 올라 짧은 산행 후 하산주 한잔에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길어지는형.

 

5단: 설산 입산(雪山入山)

설산인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 알 듯, 모를 듯 비장한 출사표를 내고 만년설산에 도전한다.


*특징: 설산으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돌아왔다는 소식이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형.

6단: 자아 입산(自我入山)

드디어 산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무조건 높고 험한 산에 취해 잊고 지냈던 사람과 산의 관계를 알게 된다.


*특징: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가끔 받는경우가 있다. 그동안 집사람에게 찍혔던 산에 대한 집념이 비로소 결실을 맺을때도 있는형.  


7단: 회귀 입산(回歸入山)

"산의 본질적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머리에 쥐나는 진리를 깨닫고 다시 우리나라의 낮은 산을 찾게 된다.

 

*특징: "걷는 자만이 오를수 있다"는 지극히 쉬운 원리를 어렵게 깨우친 충격을 못이겨 실실 웃는 하회탈 모습으로 평소의 표정이 슬금히 바뀌는형.


8단: 불문 입산(不問入山)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라는 평등 산사상의 경지에 이르게된다. 즉, 입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특징: 묻지마 관광처럼,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지 말라는 禪問答을 하며 유유자적 산을 즐기는형.  


9단: 소산 입산(小山入山)

작은 산도 엄청나게 크고 높게 보는 겸허한 안목이 생긴다. 작은 산을 즐겨 찾으나, 죽어도 힘들어서 높은 산을 못 올라간다는 말은 절대 안한다.


*특징: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과 비례하여 입에 양기가 오른다. 남산 정도의 산행을 끝내고도, 하산주를 마실 때면 과거를 회상 하는 시간이 엄청 길어지는형. 
이런 사람은 산심을 깨닳은 스타일로 자기가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속에 있음을 아는 타입. 그 동안 집에서 찍힌 산 신념이 비로소 결실을 거두는 때.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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