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골의 다실(茶室)]
[賤出과 貴人]
경주 황룡골의 다실(茶室)
한 세상 사는 것이 팔풍(八風)에 두들겨 맞고 어지럼증을 겪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감방, 부도, 이혼, 암의 바람을 맞으면 뼛속이 시리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그럴 때마다 자기를 위로해줄 장소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런 공간이 나에게는 차실(茶室)이다. 한가한 방안에서 다리를 포개고 앉아 주전자에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를 듣고, 찻잎을 넣은 다음에 코로 그 향기를 맡아보면 위로가 된다.
경주 황룡골에 개인 차실이 하나 있다고 하기에 인연 따라 찾아가게 되었다. 토함산(吐含山) 자락이 동해로 흘러 내려가면서 골짜기를 형성한 곳이 황룡골이다. 예전에는 이 골짜기에 사찰이 100군데 이상 있었다고 한다. 차실은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삼간이었다. 10평이나 되는 크기일까. 찻물을 끓이는 주방 용구가 놓여 있는 탕비실이 2.5평, 서너 명이 나무 탁자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는 공간이 3평. 차실 주인이 잠을 자는 침실이 4평 정도나 되겠다.
차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다. 초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통유리 너머로는 붉게 익은 홍시감 수십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나무가 보였다. 주변의 까치와 여러 새가 와서 이 감을 따 먹을 수 있도록 주인장이 일부러 감을 따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셈이었다. 방안에 앉아서 통유리 너머로 새들이 날아와 한가롭게 감을 쪼아 먹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뭣 때문에 그리 헐떡거리며 살았나’ 하는 회한이 올라온다.
오른쪽 멀리에는 토함산의 뒤꼭지 모습이 보인다. 그 앞쪽에는 석굴암(石窟庵)이 자리 잡고 있다. 차실 앞마당에 종각을 설치하고 종(鐘)도 하나 매달아 놓았다. 에밀레 종을 5분의 1로 축소한 크기다. ‘댕댕댕’ 울리는 종소리가 거머리같이 들어붙어 있는 근심 걱정을 털어 내는 것 같다.
차실 주인장은 춘경(春景) 선생이다. 70세에 사업에서 손을 떼고 황룡골로 들어왔다. 춘경 선생도 사업을 할 때 조폭들이 목에다 칼을 대고 매달 얼마씩 상납하라는 곤욕을 버텨냈다. 중국에서 납품을 받을 때 ‘공짜로 부지를 제공하겠으니 여기에다 공장을 지어라’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힘들었다. 부친이 말년에 건강이 안좋아지니까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링거와 의사를 데리고 병석에 간 춘경 선생에게 그의 부친이 말했다. “네가 효자가 되고 싶으면 나를 이대로 가게 내비 둬라!” 단호한 사생관(死生觀)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풍파를 다 겪고 마침내 이 차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조용헌 동양학자, 조선일보(26-02-09)-
______________
賤出과 貴人
이상하게도 천출(賤出)에서 귀인(貴人)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공자도 천출이고 예수도 천출이고 마호메트도 천출이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일본 전국(戰國)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천출이었다.

서양이 한 수 접고 배우는 일본의 고급문화가 바로 다도(茶道)이다. 다도는 일본에서 완성되었지만 그 사상적 배경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한·중·일 삼국 한자문화권의 정신이 모두 녹아 들어가 있다. 일본 '와비풍(風)' 다도의 형식과 철학을 정립한 인물이 또한 천출인 다케노 조오(武野紹鷗,1502~1555)이다. 소가죽을 팔던 하층민 출신이었다. 일본에서 소가죽은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갑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였고, 다케노 조오는 소가죽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차계(茶界)에 들어왔다.

그는 이제까지의 크고 화려했던 차실(茶室)을 조그맣고 소박한 '와비풍' 차실로 바꾸는 변화를 이루어냈다. 다실의 기와지붕을 나무판자 지붕으로 바꾸었고, 네모 기둥을 둥근 대나무 기둥으로, 청동 꽃병을 대나무 꽃병으로, 다실 벽도 스기나무에서 종이 벽으로, 천장 높이도 3m에서 2m로 바꾸었다. 다실 넓이도 수십명 들어가는 크기에서 너댓명 들어가면 맞는 다다미 4장 반 크기로 확 줄였다. 찻사발도 화려한 천목(天目)에서 시골스럽고 단순한 시가라키(信樂)로 바꾸었다. 혁명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연못과 분재, 괴석(怪石)을 배치한 정원을 조성하였다. 일본의 정원은 다실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일본인들은 다실과 정원을 통해서 외롭고, 괴롭고, 시시하고, 초라한 삶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중세 일본은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과 지진, 태풍, 질병에서 오는 인간사의 두려움과 괴로움, 허무감을 다실에 들어가서 달랬다고나 할까.

다케노 조오의 정신은 그의 제자인 센리큐(千利休)에 의해서 계승된다. 일본 다도는 '특별함은 평범의 젖을 먹고 자란다' '속된 것에서 신령스러움이 탄생한다' '아주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이 나온다'는 정신을 지니고 있다. 소가죽을 팔던 백정에게서 이렇게 깊이 있고 고상한 다도가 나왔다고 필자에게 알려준 인물은 경남 사천(泗川)에서 차를 연구해온 정동주(66) 선생이다.
-조용헌, 조선일보(15-11-23)-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史-文化]'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추사 김정희, 10년 유배 생활… ] [ .. 추사에 얽힌 왜곡된 전설] (0) | 2026.02.19 |
|---|---|
| ['황금광(狂)' 시대] [황금 광풍 불던 정선, 자유인 리영광과 박춘금] (0) | 2026.02.12 |
| [광화문 뒤흔드는 초유의 K현판… ] [광화문 국기 게양대] (1) | 2026.02.08 |
| [K팝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 (0) | 2026.02.03 |
| [혜화동의 철학자들] [남촌(南村)] (0) |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