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줄임표의 장벽을 허물자]
[인터넷 문장부호]
말줄임표의 장벽을 허물자
말줄임표를 제대로, 그러니까 맞춤법에 맞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바른 맞춤법에 따라 쓴다면 이런 식으로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표기법은 이제 문학 작품 속에서나 겨우 볼까 말까다. 그보다는 마침표(.)를 여러 번 겹쳐 쓰는 것이 훨씬 친숙한 표기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올해로 기자 생활 9년 차를 맞았다.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인 만큼 후배들과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취재에 대해, 혹은 기사에 대해, 그것도 아니면 업무 태도에 대해 가끔 한마디를 얹곤 한다. 그럴 때 종종 ‘죄송합니다..’라든가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등의 답변이 돌아올 때가 있다. 내용에는 불만이 없지만 그 끝에 말줄임표가 따라붙는 것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릴 때가 있다.
왜 후배들은 ‘죄송합니다..’라고 쓰는 것일까. 나 역시 1~2년 차 시절을 돌이켜 보면 사실 속내는 뻔하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는 마음을 그 ...에 담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혹은 죄송하다는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도 아쉬우니 앞으로는 더 잘해보겠다는 의미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말줄임표를 보는 이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확히는, 그런 의도를 알되 ‘얕은 수’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성과 아쉬움을 표하며 이에 대한 일말의 공감을 선배에게 기대하는 태도로 비치기 쉽기 때문이다. 선배 입장에선 지적받은 사항을 개선해 결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이걸 일일이 얘기해 봐야 꼰대 소리밖에 더 들을까. 이렇게 공개적으로 써 놨으니 좋은 선배 노릇은 이제 끝장이겠지만.
그런가 하면 윗세대의 말줄임표 사용법은 또 다르다. 그들은 메신저에서 모든 문장을 마무리하는 용도로 ...을 쓰곤 한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워 그들이 말줄임표를 이렇게 사용하는 이유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지만 뚜렷한 답은 얻지 못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후배가 감히 묻기도 어렵다. 말의 내용은 차치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말줄임표의 향연을 접하다 보면 ‘저것을 남발하는 사람은 애초에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그야말로 점으로 된 장벽과도 같다.
물론 말줄임표는 유용하다. 차마 윗사람한테 내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불만의 뉘앙스를 돌려서 표현할 때도, 판단이 어렵거나 고민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할 때도 말줄임표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 애초에 맞춤법을 지키면서 말줄임표를 제대로 쓰는 일이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넵’과 ‘네’에서도 뉘앙스 차이를 읽어내고야 마는 것이 K-직장생활의 쌉싸름한 묘미 아니던가. 맞춤법에도 안 맞는 말줄임표를 남발하며 주위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느니, 차라리 그 이름처럼 ‘마침표’로 문장을 끝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 말줄임표 대신 마침표를 쓴다고 해서 적어도 손해볼 일은 없지 않을까... 일단 나부터.
-이기우 기자, 조선일보(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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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장부호
말줄임표(……)는 가운데나 아래 세 점(…, ...)씩만 찍어도 된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내놓은 후 이 책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궁리 끝에 '?'라고만 쓴 전보를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답장을 보고 위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답장에는 '!'라고 돼 있었다. 작은 문장부호 하나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알려주는 일화다.(문학수첩 '먹고, 쏘고, 튄다')
▶19세기 미국은 관세법에 쉼표 하나를 잘못 찍는 바람에 200만달러를 손해 봤다고 한다. "모든 외국산 과일나무(All foreign fruit plants)는 면세"라고 할 것을 "모든 외국산 과일과 나무(All foreign fruit, plants)는 면세"라고 한 탓이었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기가 쓴 대본을 갖고 배우들이 멋대로 대사 연습을 하면 "내가 표시해 놓은 마침표와 쉼표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1999년 '지난 1000년의 최고(最高)'를 선정했다. 최고의 지도자, 최고의 부동산 거래, 최고의 피아노곡 등 각 분야 최고 50개 가운데 '최고의 문장부호(符號)'로 뽑힌 것이 마침표였다. 점 하나로 문장을 마무리하는 걸 생각해낸 이는 르네상스 때 베네치아의 한 인쇄공이었다. 타임스는 "어떤 쇠붙이도 적절한 위치에 표시된 마침표처럼 우리의 가슴을 찌를 수는 없다"며 "마침표가 없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영영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문장부호를 "기차(문장)가 탈선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철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20년 전 나온 미국 시카고대 출판부의 글쓰기 교범은 쉼표에 관한 규정만도 59개나 된다. 그러나 다 옛날 얘기다. 인터넷 시대 글쓰기에서 문장부호는 자판(字板)을 몇 번 더 두드리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비칠 뿐이다. 우리 휴대폰 글쓰기에선 띄어쓰기와 함께 마침표·쉼표가 아예 사라지고 있다.
▶엊그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장부호 규정을 대폭 손질한 맞춤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종래 '3·1운동'이라고 해야만 했던 것을 '3.1운동'이라고 써도 되도록 했다. 말줄임표(……)는 가운데나 아래 세 점(…, ...)씩만 찍어도 된다. 낫표(「 」)나 화살괄호(〈 〉) 대신 따옴표(' ')도 쓸 수 있게 된다. 모두 자판 두드리는 절차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언중(言衆)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정답이 여러 개다. 맞춤법의 '원칙'과 '통일'이란 말이 무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인터넷 시대니까.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일보(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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