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지도’ 받겠다고 이틀간 6500명이 몰렸다
제주 관광 지도에 열광하는 2030
지난 5일 오후, 20~30대 여성이 많이 찾는 다음 카페 ‘여성시대’에 제주 관광 지도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제주관광공사가 신청자에게 가로 76cm, 세로 52cm의 한 장짜리 관광 지도 ‘혼저옵서(’어서 오세요'를 뜻하는 제주 방언)'를 우편으로 무료 배송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는 “너무 예쁘다” “나도 신청했다” 등 댓글 150여 건이 달렸다.
다음 날 제주 관광 지도 제작 및 배포를 담당하는 제주관광공사 스마트관광팀은 말 그대로 대혼란에 빠졌다. 이틀 동안 우편 배송을 요청한 사람이 무려 6500여 명. 전 직원이 우편 포장에 투입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제주관광공사 관광지도 우편 신청 페이지는 11일 오후에도 ‘일일 발송 가능 수량을 초과했다’는 문구가 나왔다.
모든 정보가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디지털 시대. 젊은 세대는 왜 종이 지도에 열광했을까. 하나 더, 지자체들은 왜 여전히 종이 지도를 만들고 있을까.
제주관광공사가 온·오프라인으로 배포 중인 제주 관광 지도 ‘혼저옵서’. 올해만 5만8000여 명이 우편 배송을 신청했다. /제주관광공사
◇"종이 지도 수요 매년 늘어"
아직 제주도 여행 계획이 없는 이수연(가명·24)씨도 지난주 제주 관광 지도 신청자 중 하나다. 이씨는 “올해 남자 친구와 전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안내소에서 받은 종이 지도가 큰 도움이 됐다”며 “블로그에 올라온 관광지 후기는 광고 글이 많아 믿을 수 없다. 또 제주도 지도는 디자인이 예뻐서 소장용으로라도 갖고 싶었다”고 했다.
“2017년부터 관광 지도 우편 발송을 시작했는데, 매년 신청자가 늘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데도 벌써 5만8000여 명이 우편으로 아날로그 지도를 받아 보셨어요.”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이틀 만에 이렇게 신청자가 많기는 처음”이라면서 “디지털 시대라지만, 종이 지도를 소장하고 싶어 하는 관광객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전주시도 올해 전화·홈페이지 등으로 신청한 2만 5000여명에게 우편으로 종이 지도를 발송했다. 전주시는 시청, 관광안내소 등 현장에서 배포되는 지도까지 한 해에 약 15만장의 지도를 배포하고 있다. 전주시청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여행 후에도 지도를 소장품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올해는 전주만의 특색이 나는 지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제주관광공사가 내놓은 제주 관광지도 '혼저옵서'의 앞면(위)과 뒷면(아래). /제주관광공사
◇테마 지도·스탬프 투어도
경북도청은 올해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테마 지도를 여러 편 제작했다. 경북의 비대면 관광지 23곳을 모아둔 ‘경북 관광 안내 지도’, 힐링 숙박·차박 명소를 안내하는 ‘별밤 달밤 캠핑투어’ 등이 약 1만부씩 인쇄돼 오프라인으로 배포됐다. 경북도청 관광마케팅과 송호준 과장은 “관광객들은 지자체가 직접 발행하는 종이 지도의 정보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 현장 반응도 좋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후 경북의 기존 주요 관광지 입장객은 48%나 급감했지만, 경북을 찾은 전체 관광객 숫자는 10% 내외밖에 줄지 않았어요. ‘숨겨진 명소’를 찾는 분이 늘어난 만큼, 관광 지도도 비대면 여행에 초점을 맞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정모(27)씨는 지난 9월 ‘나 홀로 경상도 여행’을 지도 한 장에 의존해 다녀왔다. 여행을 갈 때마다 안내소에 들러 종이 지도를 받는다는 정씨는 “원래 여행은 ‘일상 탈출’인데, 여행지에 가서까지 업무 관련 카톡이 오는 휴대폰을 보고 싶진 않다”면서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맞춰놓고,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돌아다니는 게 더 재밌다”고 했다.
강원도는 도내 18시군의 주요 관광지를 묶어 ‘로맨틱 영화 주인공 되기’ ‘뉴트로 시간 여행 떠나기’ 등 여섯 가지 주제로 재구성한 ‘버킷리스트’ 안내 책자를 올 초 내놨다. 안내 책자 속 관광지를 세 곳 이상 방문해 도장을 받으면 텀블러, 마스크 줄 등 기념품을 나눠주는 스탬프 투어 이벤트도 하고 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계절별로 1만부 이상 배포되는 지도 수요가 커 관광지별로 자세한 소개를 담은 버킷리스트 책자를 만들었다”면서 “책 한 권 안에서 여행 동선을 짜고, 실제로 관광지에 들러 도장도 받는 ‘아날로그 여행객’ 수요에 대응한 셈”이라고 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여행은 직접 여행지를 찾는다는 점에서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여가 생활”이라면서 “아무리 디지털 세대라도 여행 중에는 아날로그 감성에 젖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젊은 세대는 ‘예쁜 소품’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지자체들이 만드는 지도 중 미적 가치가 높은 일부 지도가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종헌 기자, 조선일보(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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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地圖
전체 판도를 읽는 것.. 그를 통해 이곳과 저곳의 관계, 나와 세계의 관계를 가늠...
지방을 가든 외국을 가든 숙소에서 현지(現地) 지도를 찾는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이 있지만 종이로 된 지도를 한 장 손에 쥐어야 여행지와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 취재를 위해 출장을 가게 됐을 때도 먼저 떠올린 것이 지도였다. 베를린부터 서울까지 연필로 줄을 그으며 원정대가 거쳐 가게 될 도시들을 상상하고 싶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봤으나 국내 최대 서점의 지도 코너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쉬운 대로 축척(縮尺) 1500만분의 1 짜리 아시아 지도를 샀다. 작은 종이에 큰 땅을 그리다 보니 원정대가 가는 도시 이름조차 다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 을지로3가역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지도 전문점을 보고 들어갔다. 2008년에 나온 800만분의 1짜리 러시아 지도가 하나 남아 있었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 도시들은 비교적 자세했다. 그러나 러시아 위주로 그린 지도여서 유럽 쪽 정보는 여전히 엉성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던트(Daunt) 서점은 '유럽의 명문 서점' 스무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갈색 떡갈나무로 만든 서가(書架)가 아름답지만 이보다 더 큰 던트 서점의 자랑이 있다. 전 세계 5대양 6대주 구석구석에 관한 지도를 이 서점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던트 서점 2층 지도 코너를 가득 채운 각종 세계지도들을 보면 영국이 역사상 가장 큰 제국(帝國)을 경영했던 나라, 200년 가까이 왕립 지리학회를 유지해 온 나라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런던에 앉아서 지도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자고 나면 새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길이 뚫리는 시대인데 국내에선 새로운 지도 제작이 끊겨 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 '2015년판(版)' 각종 지도가 속속 선을 보여야 하지만 소식이 없다고 한다.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 지도든 관광 지도든 시·군 행정 지도든 시중에서 팔리는 지도는 많은 것이 몇 년 전 만들어진 재고품이다. 돈 들여 새 정보를 담아 봐야 제작비도 뽑지 못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새로운 지도 제작을 꺼린다. 외국 지도를 수입해 파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잠깐의 손동작 하나로 내비게이션은 누구든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목적지까지 거리, 소요 시간을 알 수 있고 옮기는 발걸음마다 달라지는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온라인 지도는 구겨지거나 찢어질 걱정도 없고 돈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도는 목적지를 찾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우리는 그것들이 지시하는 선(線)을 따라갈 뿐이다. 지도 한 장을 본다는 것은 전체 판도를 읽는 것이다. 그를 통해 이곳과 저곳의 관계, 나와 세계의 관계를 가늠한다. 세계에 대한 꿈을 그려보기도 한다. 사람은 지도를 보는 눈만큼 세계를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종이 지도의 황혼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옛것에 대한 집착과는 다르다. 그것은 세계를 보는 시야의 상실과 관련된 문제다. 온라인 지도의 고마움과 편리함은 누리되 종이 지도를 버리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던트 서점의 지도 코너를 지켜주는 건 고객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닷컴(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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