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잃어버린 10년’의 교훈]
[실패를 새 예술로... 마지막에 한 발 더 내디딘 그들, 승자가 되었다]
[건축 스캔들]
용산 ‘잃어버린 10년’의 교훈
10년 전 국제업무지구 좌초 때 “사업 발목 잡은 건 돈보다 사람”
도시 개발은 긴 열차 운행 같아 ‘후임자 저주’ 덫 빠지지 말아야

근처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 본 용산 정비창 부지.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좌초된 후 10년 간 방치됐다. /김미리 기자
지난주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3년 좌초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계획에 재시동을 걸었다. 계획안 발표를 보면서 10여 년 전 인터뷰한 두 건축가가 떠올랐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렌조 피아노였다. 리베스킨트는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의 마스터플랜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파리 ‘퐁피두 센터’ 등을 설계한 거장이다.
이 대가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용산 프로젝트였다. 리베스킨트는 국제업무지구의 큰 그림을 그리는 마스터플랜 담당자였고, 렌조 피아노는 그중 가장 높은 111층(620m) 빌딩 설계자였다. 두 사람은 작은 도시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무척 고무돼 있었다. 고령의 렌조 피아노는 자신이 설계한 영국 최고층 빌딩 ‘더 샤드’보다도 두 배 높은 “인생 역작”이라면서 모형 스무 개를 들고 와 열정을 불살랐다. 이들뿐만 아니었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비야케 잉겔스(BIG) 등 스타 건축가 19팀이 설계자로 선정됐다. ‘건축계 어벤저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서울에 생긴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은 명소는커녕 폐허가 됐다. 얼마 전 근처 호텔에 갔다가 내려다본 용산 정비창 부지는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황폐했다. 여의도공원 두 배 되는 땅(약 50만㎡)이 파헤쳐진 상태로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다.
부지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 등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됐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성공 열쇠는 지난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계획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알려졌지만, 당시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진짜 사업의 발목을 잡은 건 돈보다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후임자의 저주”란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후임자가 전임자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한 한국의 고질적 문화가 사업 동력을 잃게 한 주원인 중 하나였단 얘기였다.
2007년 사업이 시작해 2013년 좌초되기까지 6년 동안, 서울시장부터 코레일 등 컨소시엄(드림허브PFV)에 참여한 30여 민간 회사와 공기업 수장이 거의 다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신임 대표 대부분이 전임자가 추진한 것을 계승하기보다 재검토·보류·축소했다고 한다. 사공들이 일사불란하게 노 저어도 거대한 배를 움직이기 어려운 판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젓다가 그마저도 중간에 모조리 바뀐 형국이다. 좌초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특히 바뀐 선장이 꿈꾸는 항로는 아예 달랐다. 박원순 시장에게 조언한 한 건축 전문가는 “박 시장 앞에서 ‘개발’은 금기어였다. ‘재생’의 적으로 받아들였다. 수십 조 들어가는 공공 프로젝트엔 정책의 연속성이 생명이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공공 개발 사업은 종종 긴 열차에,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행정가는 기관사에 비유된다. 다양한 승객을 태우고 가는 기관사처럼, 도시라는 열차를 운행하는 행정가는 장기 비전을 갖고 여러 이해를 가진 이들을 태워 목적지를 향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행정가들은 기관사 자리에 오르면 갑자기 방향을 홱 틀어 유턴부터 한다. 그러니 탈선할 수밖에 없다. 대형 사업들이 고꾸라지고 그때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은 날아가 버린다.
도시를 움직이는 기관사는 혼자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운전하겠다는 욕심도 거둬야 한다. 자신이 담당한 구간까지 최선을 다해 안전 운행한 뒤 후임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넘겨야 한다. 후임 기관사는 방향을 조금 바꿀 순 있어도 기존 선로를 연결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도시라는 열차가 무리 없이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다. 용산이 다시 10년을 잃지 않기 위한 지혜다.
-김미리 기자, 조선일보(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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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새 예술로… 마지막에 한 발 더 내디딘 그들, 승자가 되었다
[아트 인사이트]
누구나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할 만한 프린스턴 대학의 한 심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실패 이력서’를 올렸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논문 탈락, 교수 탈락, 수많은 실패 끝에 간신히 그 정도의 이력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이 실패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벤처 사업가, 취업 준비생 등, 그들은 마치 바둑 기사들이 대국을 복기하듯 패인을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해나가는 효과를 거두었다. 예술가의 삶도 다르지 않다. 브루넬레스키가 대표적이다.

1401년 피렌체 세례당 문 조각가 경쟁에서 패한 브루넬레스키(가운데 아래)는 이후 17년간 야인으로 떠돌며 실패를 복기하고 로마 건축을 깊이 연구해 피렌체 대성당(왼쪽 큰 사진) 돔 설계 경쟁에서 승리했다. 반면 명암과 구도를 통해 인물들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걸작 ‘야경’(1642·오른쪽 큰 그림)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탓에 초상화 주문이 끊겨 생활고를 겪었던 렘브란트는 늙어가는 자화상(가운데 위)을 끊임없이 그렸고, 대가로 재평가받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들처럼 자신의‘실패 이력서’를 새로운 예술적 열정의 밑불로 삼았다. /위키피디아
그는 1401년 세계 최초의 미술 대회라 할 만한 경합에서 탈락했다. 피렌체 세례당의 문을 장식할 조각가를 뽑는 대회였다. 성경 속 ‘이삭의 희생’ 이야기를 주제로 최종 후보자 두 명이 경쟁했고 기베르티가 선발되었다. 경쟁자의 성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실패한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났다. 무려 17년의 세월을 떠돈 후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을 때, 피렌체에서는 새로운 공모가 열렸다. 피렌체 대성당의 천장 돔을 세우는 건축 설계 경쟁. 이번에도 경쟁자는 기베르티였다. 그동안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기베르티가 유리할 거라고들 했지만, 최종 승자는 브루넬레스키였다. 야인으로 떠돌며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고 로마의 건축을 샅샅이 방문하며 내공을 키워온 덕분이다. 피렌체의 상징이 된 대성당의 돔은 실패한 브루넬레스키의 패자부활전이나 다름없다.
렘브란트는 브루넬레스키의 반대 경우다. 그는 젊어서 승승장구했다. 주문이 끊이지 않아 넓은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살았다. 그러나 민병대들의 단체 초상화라 할 만한 ‘야경’(1642)을 그린 후 인기가 뚝 떨어졌다. 관습대로 작품 속 인물이 골고루 보이도록 나열하여 그리지 않고 어떤 사람은 크고 어떤 사람은 작게,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어둡게 역동적으로 그린 때문이다. 고작 36세였는데 초상화 주문이 끊겼다. 아내도 죽고, 재산도 모두 잃었다. 모든 재산을 경매에 처분하고 초라하고 가난한 노인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점점 늙고 초라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지켜보아야 했을 텐데, 렘브란트는 기꺼이 그 시간을 견뎠다. 그의 인생에 패자부활전은 없었다. 세상을 떠났고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실패 이력서와도 같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얼마나 용기 있는 작가인지를 말해주는 증명이 되었다. 그는 오늘날 네덜란드의 대가로 부활했다.
현대 예술가들의 실패는 더욱 흥미롭다. 사후의 평가를 기다릴 틈이 없는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1970년, 39세의 미국 화가 존 발데사리는 그동안 그린 작품이 모두 쓰레기라는 생각에 불태워버리기로 결심한다. 젊은 시절의 작품을 간직해 두면 나중에 성장의 뿌리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터인데, 발데사리는 과감하게 모든 작품을 불태워버린다. 렘브란트가 작품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한 때와 비슷한 나이다. 불태워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서 아예 거대한 화장장을 예약하여 모든 작품을 늘어놓고 불태우는 ‘화장(Cremation)’ 퍼포먼스를 벌였다. 다 태운 뒤 재를 긁어모아 뭉쳐 놓았는데 얼핏 보면 초코 쿠키처럼 보인다.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작품에 사망을 선고하는 묘비도 세웠다. 실패 이력서라 할 만한 자료집도 제작했다. 이후 작가가 심기일전하여 만든 작품은 ‘더 이상 지루한 미술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종이 위에 끊임없이 이 문장을 반복하여 적는 비디오와 그 결과물이 그의 새로운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이 작품만 만들었다면, 아마 의미의 깊이가 덜했을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만든 작품이기에 유머가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여겨진다. 이후 발데사리는 개념 미술의 대부로 자리 잡는다.
위안을 주는 또 다른 스토리의 주인공은 스페인의 한 할머니다. 성당의 작품이 손상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덧칠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성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원숭이를 닮은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되고 만 것이다. 고의로 손상시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벌이나 보상 책임은 면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그 이후로 일 년 동안 성당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한데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수많은 관광객이 마을을 찾기 시작했고 성당은 입장료 수익은 물론 방문객들의 기부금까지 받게 되었다. 할머니도 수익금의 일부를 받게 되어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휠체어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최근 크게 흥행한 오징어 게임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성했지만 영화화하는 데 계속 실패하다 마침내 성공했다고 한다. 작품 속 배우 중에도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 닦다 비로소 조명을 받은 이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실패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성공보다 실패에 열광한다.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실패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과거의 미덕이었다면, 이젠 어떻게든 빨리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식이 성숙했기 때문에?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빨리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이 다 만들어질 때쯤이면 이미 세상이 달라져 있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다행인 건 계획대로 잘된 것들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실패의 연속인 인생, 변수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려, 올해의 마지막 달에는 실패 이력서를 한번 써 볼까 한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조선일보(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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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스캔들
1880년대 에펠탑 건설이 추진되자 모파상·베를렌느·구노 같은 문인·예술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에펠탑을 '쇳덩어리 해골' '끔찍한 전봇대'라고 비난했다. 시공자 에펠은 파리 시민의 믿음을 얻으려고 에펠탑 완공 후 꼭대기층에 방을 들이고 살았다. 에펠탑이 세계적 명물로 각광받자 작곡가 구노가 에펠의 옥탑방에 찾아와 피아노를 연주해줬다. 에펠탑 반대를 접고 내민 화해의 손길이었다.
▶2004년 런던과 바르셀로나에 시가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원통형 건물이 각기 들어섰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 건물은 남자의 '거시기'를 닮았다고 해서 '야한 오이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시 이미지를 해친다는 비난도 받았다. 장 누벨의 바르셀로나 건물도 '오이' '거시기'로 불렸다. 두 건물엔 표절 시비도 따랐지만 이제 두 도시의 랜드마크로 사랑받는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 건물(왼쪽)과 장 누벨의 바르셀로나 건물(오른쪽) /위키피디아
▶통념을 깨뜨리는 건축물이 나올 때마다 세상은 시끄러웠다. 15세기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에 얹은 돔, 1954년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프랑스 롱샹성당, 1981년 페이의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도 처음엔 의심과 충격과 비판을 불렀다. 현대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인간과 자연을 위한 드라마이자 시(詩)"라며 "권력을 드러내는 도구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렇듯 욕심과 의도가 지나쳤다가 추물(醜物)로 전락한 건축물도 많다.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주상복합 '더 클라우드'의 기본 디자인이 지난주 공개됐다. 60층·54층 건물을 허리부분에 구름처럼 돌출한 방들로 연결한 모습이다. 이 디자인이 9·11 테러 때 자살 항공기에 폭파당하는 세계무역센터를 연상시켜 주로 미국에서 "희생자들을 욕보이는 야비한 설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디자인을 한 네덜란드 회사 MVRDV엔 "알카에다 추종자"라는 욕설도 쏟아진다.
▶두 건물을 비교해보면 억지라고 하기도 힘들 만큼 닮은 게 사실이다. MVRDV는 "세계무역센터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우리 디자인에 가슴 아팠을 모든 이에게 사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설계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건축은 공공생활과 밀접한 분야다. 건축물의 성패(成敗)는 시대를 얼마나 앞서고 이끌어 가느냐에 달렸다. '더 클라우드'가 참극을 모티프로 이용한 비인간적 건축물인지, 아니면 용산의 랜드마크로 남을 것인지는 시간이 가려줄 것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1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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