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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그림자 통치’에 퇴행하는 태국 민주주의] ....

뚝섬 2023. 5. 24. 09:37

[탁신 ‘그림자 통치’에 퇴행하는 태국 민주주의]

[탁신 일가의 부활] 

[동남아시아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요?]

 

 

 

탁신 ‘그림자 통치’에 퇴행하는 태국 민주주의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한 후 해외를 떠돌고 있는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2019년 7월 홍콩에서 열린 딸 패통탄의 결혼식장에서 웃고 있다. 2001년 그가 집권한 후 탁신 일가가 만든 정당은 모든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14일 총선에서 패통탄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은 진보 전진당에 밀려 2위로 처졌다. 무상 의료 등 현금 살포 정책으로 ‘빈민의 영웅’으로 불렸던 탁신 전 총리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홍콩=AP 뉴시스

 

2001년 “태국의 마약, 빈곤, 가뭄을 없애겠다”며 집권했다. 30밧(약 1140원) 의료제, 마을당 100만 밧 지급, 농가 부채 탕감 등 현금을 직접 뿌리는 선심성 복지 정책을 폈다. 약 7000만 명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농민과 빈민층이 열광했다. 금기로 여겨지던 왕실과 군부도 서슴지 않고 비판했다.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8명의 형제자매, 처가 식구 등이 기간 산업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가문 소유의 통신사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에 19억 달러(약 2조5000억 원)에 팔면서 단 한 푼의 세금도 안 냈다. 반대파와 시민단체 또한 탄압하자 민심이 돌아섰다.

2006년 미국 방문 중 쿠데타가 발생해 실각했다. 이후 17년 넘게 해외를 떠돌면서도 여동생 잉락, 딸 패통탄 등을 내세워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논쟁적 정치인’으로 꼽히는 화교계 통신 재벌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다.

 

그의 등장 후 태국은 탁신 대 반(反)탁신으로 나뉘어 20년 넘게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0년에는 수도 방콕 한복판에서 농민 등 친탁신파가 많은 ‘레드 셔츠’와 군부, 부유층이 중심인 반탁신파 ‘옐로 셔츠’가 두 달간 유혈 충돌을 벌여 100여 명이 숨졌다. 각각 노동자와 왕을 상징하는 빨강, 노랑 옷을 입고 대결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민주주의 선거가 본질적으로 ‘쪽수 대결’이란 점도 그를 둘러싼 혼란을 고조시켰다. “부패와 독재가 있다지만 서민을 사람 취급한 유일한 정치인”이라며 그에게 몰표를 던지는 국민이 최소 절반이다. 그의 실각 후에도 탁신 일가가 만든 정당이 늘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이다. 잉락 또한 오빠의 뒤를 이어 2011∼2014년 총리를 지냈다. 오빠처럼 정부가 농가의 쌀을 국제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사주는 ‘쌀 수매제’ 등의 선심성 복지 정책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패통탄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이 14일 총선에서 ‘1위’가 아닌 ‘2위’로 밀린 건 상당한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부친의 노선을 계승한 패통탄 또한 이번 선거 전 “모든 성인에게 1만 밧 지급” 등 익숙한 현금 살포 공약을 내놨다. 그럼에도 탁신의 고향 치앙마이, 저소득층이 많은 방콕 등에서도 부진했다. 탁신과 군부의 오랜 대립, 지지부진한 경제 등에 지친 2030 유권자는 군주제 개혁, 징병제 폐지 등을 외친 신생 정당 전진당을 1위로 만들어줬다.


문제는 전진당이 연정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는 데다 ‘수권’이 목표인 패통탄 또한 ‘부친 사면’을 조건으로 오랫동안 척을 졌던 군부와 손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군부 또한 겉으로는 탁신에게 이를 갈지만 이번 총선에서 군부 지도자가 만든 2개 정당이 각각 4, 5위에 그친 터라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군부, 탁신, 왕실이 다 싫다”는 전진당보다는 차라리 ‘익숙한 적’ 탁신이 나을 수도 있다. 둘 다 부정부패에선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탁신 전 총리 또한 만족스럽지 못한 선거 결과, 귀국 후 투옥 위험 등을 감수하고라도 귀국하겠다며 정계 복귀 의지를 다졌다. 그는 16일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를 통해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7월에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왕실에 충성하며 전진당의 반군주제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가 생물(生物)임을 감안하면 탁신과 군부가 ‘왕실 지지’를 매개로 불안한 동거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집권 내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으로 일관한 탁신의 귀국과 복귀 시도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세계은행은 불평등의 대표적 척도인 태국의 지니계수가 0.433으로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5∼7%대 성장을 구가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과 달리 태국의 성장률 또한 수년째 2∼3%대에 그친다.

이는 많은 국민이 탁신 일가의 선심성 복지 정책의 단맛에 익숙해진 탓에 농업 등 핵심 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고부가가치 제품은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부 공(功)이 있다지만 포퓰리즘 정책 남발, 부패, 분열 조장만으로도 탁신 전 총리의 과(過)가 적지 않다.

 

-하정민기자, 동아일보(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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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일가의 부활

 

유명한 형제 정치인들은 역사에 많다. 포에니 전쟁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손자인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 공화정 때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끝은 좋지 않았다. 형은 자영농 토지 분배를 밀어붙이다 암살당했다. 뒤이어 호민관이 된 동생도 귀족들의 반발을 사 최후를 맞았다. 미국의 케네디가(家) 삼 형제도 대중의 환호 속에 지도자로 떠올랐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암살당했다.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대선 도전에 실패했다.

 

태국의 탁신 친나왓 총리 일가는 벌써 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2001년 탁신에 이어 2008년 매제인 솜차이 웡사왓, 2011년엔 여동생인 잉락이 총리로 선출됐다. 유례가 드문 일이다. 탁신의 인기가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 명 모두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탁신은 수사를 받고 해외로 떠돌아 다니는 처지다.

 

▶그런데 탁신의 막내딸 패롱탄 친나왓 1 야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라고 한다. 잉락이 2014년 실각한 지 9년 만에 다시 탁신가(家)의 총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36세로 출산을 앞둔 패롱탄은 아버지 명예 회복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탁신의 정책 노선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탁신 가문이 오뚝이처럼 되살아나는 이유는 농민·서민층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탁신은 화교 출신이다. 증조부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아버지는 국회의원을 지냈다. 탁신은 경찰로 일하다 미국 유학 중 사업가로 변신했다. 태국 경제 호황기 때 이동통신 사업 등에 진출해 10년 만에 재벌로 성장했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대중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외쳤다. 농민·서민·지방에 대한 지원을 통한 빈곤 탈출 정책을 폈다. 수도 방콕에만 집중된 예산을 지방으로 돌리고 농가 부채 상환을 연기했다. 또 전 국민에게 월 30바트(1100원) 의료보험료를 지원했다. 그런 탁신에게 농민·서민들은 몰표를 던졌다.

 

▶하지만 탁신의 정책은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받았다. 잉락은 국제가보다 높게 쌀을 의무 수매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10조원 가까운 국고를 낭비한 혐의로 기소됐다. 쿠데타 정권은 탁신을 탈세와 비리의 상징으로 낙인찍으려 했다. 탁신은 “재임 전후 내 재산은 오히려 줄었다”고 주장한다. 탁신에 대한 태국 국민의 호불호는 명확히 갈린다. 탁신 일가에서 4명째 총리가 나와 태국의 구원 투수가 될지, 다른 실패가 될지 관심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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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요?

 

화교는 해외로 이주한 중국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19세기 후반 동남아 지역의 주석 광산, 플랜테이션 농장, 항구에 노동자로 들어와 정착했습니다.

 

타이의 화교 출신 정치인인 탁신 친나왓(오른쪽)과 그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화교는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일개 중국집 주방장 수준이 아니라 가히 절대적입니다.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동남아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자산 총액은 90%에 이릅니다. 소매업의 2/3가량이 화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중국 본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교들이 동남아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지역 원주민들과의 갈등이 매우 심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지리를 보다(박찬영엄정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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