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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경제학’] [민족경제론 진영에 가담한 서강학파 김종인]

뚝섬 2024. 1. 31. 06:22

[‘운동권 경제학’] 

[민족경제론 진영에 가담한 서강학파 김종인] 

 

 

 

‘운동권 경제학’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해 제일 먼저 이름을 안 경제 저술가가 박현채였다. 학과 선배들이 세미나와 MT 때 읽어오라고 콕 찍어준 필독서가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와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의 ‘민중과 경제’였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자인 조순 등은 그보다 나중에 알게 됐다. 박현채는 ‘민족 경제론’을 주장했는데 한국 경제를 ‘식민지 종속형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궁극적 지향점을 ‘미국 경제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자립 경제’라고 했다.

 

▶“386 세대가 경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여당의 386 운동권 출신에게 일침을 놨다. 대학 시절 습득한 ‘운동권 경제학’의 좁은 시야로 온갖 정책에 관여하다 보니 경제 부총리로서는 황당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80년대 운동권 경제학의 인기 저자였던 박현채(1934~1995) 교수는 빨치산 경험, 인혁당 사건 연루 등의 이력 때문에 오랫동안 재야에서만 활동하다 1980년대 후반에 뒤늦게 조선대 교수로 채용됐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른바 ‘학현학파’ 출신들이 중용됐다. 분배 경제학을 중시한 고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학현연구실’과 인연 있는 경제학자들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문재인 정부의 홍장표 경제수석, 강신욱 통계청장 등이 학현학파로 꼽힌다. 변형윤 교수는 1980년 시국 선언으로 해직 교수가 됐을 때, 제자이자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인 박현채씨가 “소주 한잔 하십시다. 등산하러 가십시다” 하고 불러내 위로해 준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둘 사이의 남다른 인연을 얘기했다.

 

▶운동권 출신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인당 국민소득이 IMF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며 윤 정부의 ‘경제 파탄’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경제학자 출신의 윤희숙 전 의원이 “희한한 일. 작년 숫자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되레 마음이 짠해진다”고 반박하면서 말만 앞서고 경제 현실에 무지한 ‘운동권 경제학’을 정치판 화두로 떠올렸다.

 

지난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반일(反日) 죽창가’는 분배 중시, 반미·반일의 민족 경제론 같은 이른바 ‘운동권 경제학’의 문제의식에 뿌리를 둔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경제 좌우명으로 삼는다는데, 현실에서는 가슴만 뜨겁지 머리는 냉철하지 못해 집값 폭등의 불로소득 주도 성장, 분배 악화, 통계 조작 같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운동권 세대와 함께 철 지난 ‘운동권 경제학’도 이제는 청산해야 할 듯싶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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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경제론 진영에 가담한 서강학파 김종인

 

김종인 대표가 일원인 서강학파 서구 첨단 경제 이론 무장하고 개발 경제 시대 성장 이끌어
식민지 半봉건사회론에 뿌리 둔 운동권 낡은 인식 불식시키고 수권 정당 만들어 낼 것인가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모두(冒頭)에 통진당의 이념적 지향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통진당이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른바 자주파에 의해 도입된 강령이다. 자주파는 민족해방(NL) 계열로 우리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半)봉건사회 또는 반(半)자본주의 사회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 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은 통진당의 지도 이념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박은 운동권의 기본 노선이기도 하다.

이 논리는 한동안 한국 경제학계의 주류 논리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큰 위세를 떨쳤다. 요약하면 '남한은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변한 것뿐이고,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반은 남아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압도적 채택률을 자랑했던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라는 경악스러운 설명이 버젓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민족경제론'이란 다른 이름으로 치장된 이 논리의 결론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이후의 한국 사회경제의 진로는 다 비정상적인 일탈이기에 남한은 가난한 나라에서 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고, 종속적인 국가에서 더 종속적인 국가로 전락하리라는 것이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가 시장경제 체제에선 자립적 근대국가를 이루기가 불가능해 민족 해방 혁명으로 사회주의로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한국 사회는 이런 주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고 번영과 자립을 이뤘다. 이 진영의 이론적 대부였던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는 이 과정을 보고 1980년대 중반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옥의 고통을 통해" 모택동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자기 이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은 박현채 교수 같은 사람도 있었다. 지적인 진실성을 결여한 정신적 파산이었다. 모택동주의와 종속이론의 한국적 변형인 이 허구적 주장은 결국 결과가 증명되는 경제학계에선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 사이비 이론은 한국사 등 관념론에 빠지기 쉬운 인접 학문으로 전이돼 아직도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국사학계의 한국 근현대사 해석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또한 소위 운동권과 현재 야권의 가치관·세계관의 주류를 이룬다통진당과 야권 연대를 구성하며 '2013년 체제론'이란 백일몽을 꾸었던 현 더불어민주당의 다수 세력은 이런 철 지난 감성을 기본 인식으로 깔고 있다.

경제학계에서 이 논리가 득세할 때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개진한 곳이 서강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서강학파'였다. 남덕우·이승윤 교수를 중심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과 세계경제 체제로의 적극적 편입을 통해 한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정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대에선 젊은 송병락 교수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이 진영에 동조했다. 일본 좌파 경제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서구의 첨단 경제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은 결국 1970~80년대 고도성장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실제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재밌게도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은 서강학파의 막내 격이었다. 뿌리가 다른 두 세력이 동상이몽으로 잠시 동거하고 있으니 파열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씨가 더민주의 주류 운동권 몇 명 쳐낸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 남민전이나 사노맹 등에서 NL공산혁명 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이번에도 뻔뻔하게 더민주의 공천을 받았다. 이들은 이를 갈고 총선 혹은 대선 이후에 '고용 사장'인 김씨를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다.

과연 김종인씨가 더민주의 뿌리깊은 낡은 인식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수권 정당을 만들어낼 것인가. 더민주는 이런 세계관을 버리지 않고는 수권 정당이 될 수가 없다. 문제는 열혈 지지층이 낡은 인식을 지닌 행동파들이라 쉽게 내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에 대한 '용도 폐기론'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인태 의원은 총선 후에도 김씨가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사장'인 문재인 의원은 공공연히 정청래 의원의 불공천은 잘못된 것이라 변명하고 다닌다. 김씨의 정치적 도박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연장하려는 노욕이 아니라면 향후 이런 낡은 인식과 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그 진실성이 입증될 것이다.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야합의 형태로 가게 되든가.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조선일보(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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