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난장판]
[이란 vs 파키스탄… 우크라·가자 이어 남아시아 ‘3개의 전쟁’ 우려]
[고조되는 중동의 유혈 충돌… 배경엔 이슬람 수니·시아파 갈등의 역사]
[종교 갈등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슬람 패권' 1400년 앙숙]
[이란 열다가 사우디 닫힐라… 한국 '라피크 외교' 시험대]
중동 난장판
이란과 파키스탄 해군은 지난 1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파키스탄 군함이 이란 항구에 들렀다가 함께 훈련에 돌입했다. 비상시에 쓸 통신 회로를 점검하고, 전술 기동훈련을 함께 했다. 공중에선 이란 해군 헬기도 참여했다. 이란군은 “파키스탄 함대의 이번 방문은 군사 교류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성명도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란군은 파키스탄 남서부를 미사일로 타격했다. 반(反)이란 무장조직 기지가 있다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그러자 파키스탄이 반격에 나섰다. 이란 남동부를 공격했는데 최소 9명이 숨졌다. 두 나라가 같은 날 한쪽에서는 연합훈련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교전을 벌인 것이다.
▶지금 중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난장판’이다. 얽히고설킨 채 서로 치고받는다. 외부인들은 누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 알기도 어렵다. 난장판의 시작은 2018년 사우디 빈 살만의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이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빈 살만을 맹비난했다. 그러자 빈 살만은 2022년 사우디를 방문한 바이든의 석유 증산 요구를 거부하고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 수십년 맹방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을 초청해 극진히 대접했다. 정보통신, 건설 분야 등에서 38조원 규모의 협정을 체결했다. 빈 살만은 나아가 시아파 지도자 처형 문제로 단교했던 이란과 시진핑의 중재로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미국이 싫어할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동 장악력이 흔들리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으로 나라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 틈을 타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지옥문을 열었다. 이스라엘의 반격은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의 연쇄 반발을 불렀다.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세력이 중동 미군 기지들을 공격하고 후티 반군은 그나마 평화롭던 홍해에 미사일을 난사하고 있다. 이 난장판에 돌연 수니파 IS가 끼어들어 이란에서 테러를 벌이자 이란이 파키스탄 공격으로 대응한 것이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미국은 16일 사우디의 브릭스(BRICS) 가입을 막아 체면을 세웠으나 과거의 중동 영향력을 회복할지 미지수다. 후티 반군에 대한 공격도 미국 대선 때문인지 하는 시늉만 내는 수준이다. 매년 세계 전망을 내놓는 이코노미스트도 중동에 대해선 “평화 계획을 세우기에 무덤 같은 장소”라면서 “아직 시도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평화 추구밖에 남지 않았다”는 하나 마나 한 말만 했다.
-이하원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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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vs 파키스탄… 우크라·가자 이어 남아시아 ‘3개의 전쟁’ 우려
고조되는 중동의 유혈 충돌… 배경엔 이슬람 수니·시아파 갈등의 역사
파키스탄 신문들이 18일 인접국 이란의 공격을 받은 지 이틀 만인 이날 자국이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파키스탄은 오늘 오전 이란의 (남동부) 시스탄-발루치스탄주(州)의 테러리스트 은신처들에 대한 일련의 정밀 타격을 수행했다"고 밝혔다./AP 연합뉴스
이란과 파키스탄이 잇달아 서로를 공격하는 배경엔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시아파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수니·시아파는 같은 이슬람이지만 중동의 양대 세력으로 서로를 견제하며 충돌해 왔다.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는 과정에 증오가 증폭돼 국가별·지역별 분쟁이 때때로 불거진다. 지난 며칠간 유혈 충돌한 파키스탄과 이란은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가 주도하는 나라다. 파키스탄은 인구 77%가 수니파이고, 이란은 90%가 시아파다. 그 밖에 대표적인 수니파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 등이고, 이라크·아제르바이잔 등은 시아파 인구가 많다.
수니·시아파 분열의 역사는 7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후계자 지명 없이 사망하자 새 통치자를 어떻게 뽑을지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 당시 이슬람 지도자 다수는 합의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무함마드의 혈육만이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고 맞섰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혈통 승계가 아닌 다수결의 ‘선출’ 방식을 따르자는 이들은 무함마드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를 후계자로 뽑았다. 이들은 순나(선지자의 관행)를 따른단 의미로 ‘수니’라고 불리게 됐다. 반면 무함마드의 혈육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쪽은 그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만을 진정한 칼리프(이슬람 통치자)로 인정했다. ‘알리의 무리(시아트 알리)’라는 의미에서 시아파라고 불리며 수니파와 대립해 왔다. 전문가들은 1979년 급진적인 시아파 무리가 이란을 장악한 이슬람 혁명 이후 수니·시아파 간 유혈 분쟁이 더 심화했다고 보고 있다.
두 종파는 이슬람 경전 코란을 따른단 점에서 같다. 하지만 교리나 기도 등의 의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컨대 시아파는 아비 탈리브의 아들인 후세인 이븐 알리가 숨진 이슬람력 정월마다 최대 종교 기념일인 ‘아슈라’를 지내며 애도의식을 거행한다. 반면 수니파에 해당하는 이슬람 과격 단체 IS(이슬람국가) 등은 아슈라 기간마다 시아파를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중동의 이슬람 무장 조직들도 종파가 각각 다르다. 예멘 후티와 레바논 헤즈볼라는 시아파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IS(이슬람국가) 등은 수니파다. 이번 충돌은 시아파 국가 이란이 수니파인 파키스탄에 있는 수니파 이슬람 단체 IS의 근거지를 공격한 후 파키스탄이 이란에 보복하면서 격화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수니파 단체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종파 갈등을 떠나 ‘이스라엘’이라는 공통의 적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한다.
-김동현 기자, 조선일보(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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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갈등만이 전부가 아니다
[임용한의 전쟁사]
오늘날 중동 정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정복 군주였다. 아라비아 부족들의 힘을 결집해 왕성한 정복 활동을 펼쳤다. 무함마드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그는 후계 방식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죽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회의 끝에 후계자를 선출하고 그에게 칼리프란 명칭을 붙였다.
칼리프 자리를 두고 내전이 발생했다. 3대 칼리프 우스만이 살해되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와 우스만의 집안인 우마이야가(家)가 대립했다. 이때 알리를 추종하던 집단은 무함마드의 후손만이 칼리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시아파의 시초이다. 반면 우마이야가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능력을 지닌 자격자가 칼리프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수니파이다.
680년 알리는 소수의 추종자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가 우마이야 병사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이 공격에 카와지리파가 가담했다. 이들은 알리 추종자였다가 알리가 우마이야가와 휴전을 맺은 것에 분노해서 탈퇴했던 집단이었다. 이 사건은 시아파의 숙명을 함축한다. 시아파는 무슬림 사회에서 소수파로 탄압받는다. 현재도 약 16%만이 시아파이며, 수니파가 83%를 차지한다.
소수자의 숙명인지 시아파 내에서는 카와지리파 같은 극단적인 강경파가 득세하거나 활약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극단적이고 극적이었던 종파가 ‘어새신’으로 알려진 암살자 집단 이스마일파였다. 이 전설적인 집단은 이란을 지나 아프가니스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까지 쫓겨 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시아파라고 다 강경파는 아니지만 소수파라는 사정, 투쟁의 역사, 편견이 겹치면서 오늘날에도 강성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종교가 모든 현상의 원인은 아니다. 현재 시아파의 종주국이 이란인데, 이란이 수니파 지역과 척을 진 것은 이슬람이 탄생하기도 전,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 수메르 문명 시절부터였다. 말 그대로 문명이 탄생하던 시기부터 라이벌이었다. 여기에 종교와 국제 정세, 이데올로기가 얽히고 뒤엉켰다. 이래서 중동 문제가 쉽지 않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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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지구 최대 병원 포위한 이스라엘 “지하에 땅굴”, 하마스는 “아기들 위태.” 전쟁은 진실, 거짓, 피의 범벅.
-팔면봉, 조선일보(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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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패권' 1400년 앙숙
[朴대통령 이란 방문]
-역사 깊은 갈등에 중동 정세 악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사망 후 양대 종파로 나뉘어 분쟁 악순환
-사우디 아랍語, 이란 페르시아語… 민족 다르고 통치체제도 판이
중동의 두 강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갈등은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두 국가가 존재할 때는 아니지만 현재 각각 이들이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가 7세기 무렵부터 갈라지면서 원수지간이 됐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쪼개진 건 632년(추정)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였던 선지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면서부터다. 이슬람 공동체는 스스로 후계자를 정해야 했는데, 무함마드의 혈육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는 사람들은 시아파가 됐다. 반면 공동체 합의를 통해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는 이들은 수니파가 됐다.
무함마드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이하 알리)을 초대 칼리프(정치·종교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다. 하지만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오른팔이었고, 둘째 딸을 무함마드에게 시집 보내 영향력도 셌다. 결국 수니파 의견이 채택돼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이후 시아파는 공동체 내의 큰 불만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갈등이 노골화한 것은 시아파의 알리가 어렵게 제4대 칼리프에 올랐다가 곧 암살되면서부터다. 그 뒤 알리의 장남 하산마저 수니파 꾐에 넘어간 그의 아내에게 독살당하고, 차남 후세인도 수니파와 치른 전투에서 숨지면서 두 종파(宗派)는 원수가 됐다.
현재 전 세계 16억 무슬림 중 90%가 수니파이고 10%가 시아파다. 정치적 기반과 종파가 밀접하게 얽힌 이슬람 국가들은 반대 종파와 분쟁을 빚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으며, 그 중심에 사우디와 이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실질적 외교 문제로 분쟁을 겪었던 첫 사건은 이스라엘의 국가 인정 문제다. 당시 중동 지역의 최대 이슈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이를 반대하며 사우디·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이 일으킨 중동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란은 1950년 이슬람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다. 친(親)서방이자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팔레비 왕조가 이란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 아랍국가들과의 연대감이 약했다. 언어와 인종도 달랐다. 이란은 인도·유럽계의 아리아인(人)으로 페르시아어를 쓰고, 아랍족인 사우디는 셈족 언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문제로 사우디는 이란을 비난했고 사이가 나빠졌다. 이후 양국은 1960년 석유수출기구(OPEC)의 창립 멤버로서 경제적 교류만 유지하는 사이가 됐다.
이란이 왕정제일 때만 해도 양국은 큰 분쟁 없이 지냈다. 하지만 이란이 1979년 혁명으로 반미(反美)로 돌아서고,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우디가 이라크의 편을 들어주면서 양국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이런 외교·군사적 갈등은 최근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 등에서 서로 반대편을 지원하는 양태로 전개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월 사우디가 시아파 종교지도자를 처형한 것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됐다. 사우디가 시아파 시위의 배후로 지목한 알니므르를 알카에다 등 테러범들과 함께 사형에 처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이란인들은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질렀고, 결국 양국은 서로 등을 돌렸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지난해 서방과의 핵 협상 타결로 '불량 국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이란에 대한 사우디의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가 이란의 부상에 민감한 것은 중동 지역 맹주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끈 혁명으로 왕정에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신했다. 이후 이란은 다른 이슬람권 왕정 국가에도 공화정 혁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혁명 전도'를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 같은 사상이 확산돼 국내외 반(反)사우디 세력의 대규모 시위나 정치 봉기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 전체 인구(2775만명)의 20% 정도는 친(親)이란 성향의 시아파 신자인 데다, 사우디 서쪽의 홍해를 제외한 주변에 예멘의 후티,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시아파 무장단체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고자: 테헤란=노석조 특파원, 조선일보(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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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열다가 사우디 닫힐라… 한국 '라피크 외교' 시험대
[朴대통령 이란 방문]
이란行 朴대통령의 또 다른 과제… 앙숙인 두 나라 사이 '균형 외교'
-'미래 시장' 이란 잡아야 하고 원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1위… 非무슬림 여성 정상 첫 방문
-'전통의 큰손' 사우디 놓칠 수 없고 고위급 교류로 협력 강화하고 종파 분쟁엔 중립 유지해야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추구하되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을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5월 1~3일)을 앞두고 중동의 두 맹주(盟主)이자 앙숙인 이란-사우디의 복잡한 역학 관계와 종교 갈등을 고려한 '전략 외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이란 특수(特需)'에 치우쳐 사우디 등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우(愚)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외교원이 최근 개최한 중동문제 세미나에서도 참석자들은 한-이란, 한-사우디 관계를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25일 "'이란 러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도, 동시에 걸프 '라피크'(오랜 동반자를 뜻하는 아랍어)들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란·사우디 외교 '포지티브섬'으로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여러모로 양국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각국에 동결돼 있는 자산 10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이란은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박 대통령과 동행하는 것도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란 내에서도 '비(非)무슬림 여성 정상(頂上)의 첫 방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우디는 최근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이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주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푸대접'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도 이란·사우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데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다. 이란이 '미래 시장'이라면 사우디는 '전통의 큰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우디에 대한 원유 수입 의존도는 31.6%(2014년 기준)에 달한다. 부동의 1위다. 사우디는 한국에 5위의 수입국이자 11위 수출국이다. 또 한국은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지역에서 건설 수주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다.
정부 소식통은 "이란 시장의 잠재력이 막대하지만 아직은 사우디가 더 큰 시장"이라며 "저(低)유가로 사우디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인적·물적·문화적 유대관계를 더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고위급 인사 교류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이란·사우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고위급 인사 교류를 더 활발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사우디 등 걸프 왕정(王政) 국가들은 지도자 교체가 드물기 때문에 대면(對面)외교를 통해 '오랜 친구'임을 각인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1월 사우디 압둘라 국왕이 사망하고 살만 국왕이 즉위한 이후 3월에 박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만간 사우디에 고위급 인사를 보내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원유뿐 아니라 사우디가 의욕을 보이는 원자력 발전 등 신(新)에너지 프로젝트에도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IT, 의료서비스 등 한국이 강점이 있는 분야에도 사우디의 수요가 많이 있다"고 했다.
또 한국이 중동 내 종파 분쟁에 대해 원천적인 중립 입장을 확고히 유지하면서 '평화적인 중동 분쟁 해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기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민혁 기자, 조선일보(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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