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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정부의 北선원 추방 조사한다] [죽어도 가겠다고 했는가, 죽어도 가라고 했는가?] [서순자씨에게 '해피엔드'를] [선상반란] ...

뚝섬 2019. 11. 15. 08:03

유엔, 정부의 北선원 추방 조사한다

죽어도 가겠다고 했는가, 죽어도 가라고 했는가?

서순자씨에게 '해피엔드'

선상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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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정부의 北선원 추방 조사한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이달말 방한, 강제북송한 경위 파악
앰네스티 "범죄자 낙인찍어 송환, 국제인권 규범 위반" 비난

, 웜비어 부모의 文대통령 면담 요청 거절… 北인권 또 외면


'인권 정부'를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두 명을 강제 북송(北送)한 것을 두고 국제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유엔의 인권 업무를 총괄하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14 "두 사람이 송환 뒤 고문과 처형을 당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달 말 방한할 것으로 알려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앞으로 취할) 조치에 대해 관련 (남북) 정부들과 접촉 중"이라고 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국제 인권 규범 위반으로 규정한다" "한국 당국은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본지 취재에 응한 OHCHR "북한 주민 두 명이 송환된 상황에 대해 한국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고문방지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법은 심각한 고문 위험에 처한 개인들의 강제송환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귀순 의사를 밝힌 두 사람의 북송을 정당화했지만, 이는 국제법상 금지 행위라는 뜻이다. OHCHR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07~2013년 부대표를 지낸 곳이다. 강 장관의 '친정' 격인 유엔 기구가 한국 정부의 인권침해 행위를 정조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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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두 사람의) 범죄행위가 확인되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어 북송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부인한 것"이라며 "비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 법규를 위반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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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하고 싶다는 오토 웜비어씨 부모 측의 요청을 거절했다. 미국인 대학생 웜비어는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직후 숨지면서 '북한 인권 탄압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22일 방한한다. 외교가에선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유엔 인권 고위직 출신 외교부 장관을 둔 한국이 인권침해로 국제적 지탄을 받는 사면초가 상황"이란 말이 나온다.


-김진명 기자, 조선일보(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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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가겠다고 했는가, 죽어도 가라고 했는가?


박상후 '메이지 유신을 이끈 카게무샤'

 

일본의 도쿠가와(德川) 막부 시절인 1657 3 2일에서 4일까지 화재로 에도(현재 도쿄)의 절반이 불탔다고 한다. 당시 에도의 고덴마초에 있었던 막부 최대 규모 형무소에도 거센 불길이 엄습해서 그냥 뒀다가는 수감자 120여명이 다 타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소장(所長) 격의 이시데 요시후카는 죄수 120여명에게 "일단 그대들을 풀어줄 테니 빨리 불을 피하라. 하지만 화재가 수습되면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할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죄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불을 피해 흩어졌고, 화재가 진압되자 전원 감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시데는 감격해서 죄수들의 감형을 막부에 탄원했고 죄수들은 전원 한 단계씩 감형을 받았다 한다. 이시데의 인도주의 정신은 메이지 시대의 감옥법을 거쳐 현행 일본 헌법의 형사 수용 관련 법률에도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법에도 피의자의 생명권과 소명 기회 부여 원칙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북한이 개재되면 모든 법률이 효력 정지되는 것 같다. 이번에 북한 오징어잡이 배의 선원 둘을 동해에서 나포했다가 닷새 뒤에 국민은 물론 국방부도 통일부도 모르게 청와대 결정으로 북송한 행위는 국민을 상대로 부린 요술이다. 국민을 감쪽같이 속이려 했을 뿐 아니라 어부들이 북한에 돌아가면 죄가 없더라도 잔인한 극형을 당할 것이 틀림없기에 국민적 공분이 높다. 어부들이 죽어도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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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탑승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 허름한 작은 어선에서 세 사람이 무슨 수로 16명을 차례로 살해한다는 말인가?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해도 그런 희대의 범죄자들을 국민 몰래 송환하고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정부의 권한 또는 재량에 속하는가?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 검경이 장기간 철저한 조사로 살해 여부, 살해 방법, 살해 동기 등 모든 사실을 규명해서 국민 앞에 공개한 후에 어부들의 신병 처리를 결정해야 하는데 어부들을 황급히 돌려보내고 증거물인 어선까지 송환했으니 진실은 수장(水葬)되었다
.

이제껏 여러 건의 북한 선박 해상 침투를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을 보면 우리의 해상 국경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우리 정부는 국민과 운명 공동체가 아니고 북한과 깊은 내연관계 같다. 북한은 박왕자씨 살해를 사과도 안 했는데 우리 정부는 금강산 시설이 낙후했으니 새로 지어주겠다는 제안까지 한 모양이다. 우리 국민이 어쩌다 의붓자식 신세가 되었을까?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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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자씨에게 '해피엔드'를

 

영화 같은 외교 현장도 현실 생활에 직결된 것
在日 교포 아이들에게는 절대 '새드 엔딩' 없길

 

영화 보러 안 간 지 꽤 됐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다. 요즘 취재 현장에 있으면 매일이 그냥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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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상황을 보자. 이날 오전 국회 예결위에 출석한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의 휴대폰이 사진기자 카메라에 포착됐다. 엄청난 문자메시지가 찍혔다. 지난 2일 삼척으로 내려온 북한 주민 두 명을 오후 3시 판문점에서 송환하려는데 자해 위험이 있어 경찰이 에스코트를 한단다.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 간 입장 정리가 안 됐다는 말도 있었다. 죄다 공개된 적 없는 얘기였다. 한 편의 '정치 스캔들 영화'가 시작되나 싶었다. 마침 국회 외교통일위, 국방위, 정보위가 열리는 날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일단 송환을 중지하라고 아우성치고, 통일장관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한다고 버텼다.


오후 3 12분 북송을 마친 정부가 해명을 내놓자 장르가 급변했다. 송환한 두 사람은 오징어잡이 목선을 타던 어부인데 선상 반란을 일으켜 무려 16명을 죽이고 도망치다가 이틀에 걸친 우리 해군의 추격에 잡힌 거란다. 대량 살인범이 등장하는 '범죄 영화'라는 얘기인데, 진상이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도 보였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수호하자고 그토록 외치는 '항행의 자유'가 우리 동해에서는 확실히 보장된다는 사실뿐이었다. 중국·러시아 전투기들이 그 영공을 멋대로 드나들었듯, 길이 15m짜리 나무배를 탄 북한 어민들도 그 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얼핏 '스파이 영화'.


이렇게 장르가 뒤섞여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이 최근 보는 '영화 같은 실화'의 특징이다. 지난 4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때도 그랬다. 죽창가를 부르며 장대한 '항일 투쟁 서사시'를 찍을 것 같던 정부가 돌연 장르를 바꿨다. 방콕 노보텔 호텔의 정상 대기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이끌어 굳이 소파에 앉혔다. 올해 일흔셋이 된 국가안보실장은 얼른 사진을 찍었다. 그걸 증거 삼아 청와대는 한·일 정상이 '11분 환담'을 했다고 발표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하는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줄거리가 너무 엉망이라 영화로 치면 무슨 장르인지도 헷갈렸다.

그러나 '북송 스릴러'가 잔혹한 현실인 것처럼, 이런 영화 같은 외교 현장도 결국엔 현실 생활에 직결된 것이다. 지난달 23일 이낙연 총리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만난 재일민단 문교국 부국장 서순자(56)씨는 한·일 관계의 '새드 엔딩'을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가 일본에 오면 민족학교에 가지만, 제일 어려운 입장에 있는 아이들은 일본 학교에 다니는 99%의 재일교포 아이들이에요. 학교에서 이지메(따돌림)가 없을까 매일 걱정합니다. 한·일 관계가 지금 상태로 계속 나가면 그 아이들이 우리나라인 대한민국이 싫어서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아주 슬픈 이야기지요
."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무거운 란도셀을 메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작은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혐한(嫌韓)이 트렌드가 된 일본 사회에서 '조센징'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는 어떤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까. 서씨는 정말 간곡히 말했다. "() 대통령에게 뭔가를 말씀드릴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의 일도 확실히 시야에 넣어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서씨에게, '재일 6(六世)'가 나오도록 대한민국 국적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피엔드'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이건 '외교 쇼'만으로는 안된다
.

-김진명 정치부 기자, 조선일보(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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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반란 (I)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선장에겐 독재적 권한이 주어진다. 질서 유지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도를 넘는 폭력도 횡행한다. 그 경우 선원들은 반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파업을 뜻하는 '스트라이크'도 선원들의 집단 반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해양 국가들은 선상 반란에 엄격했다. 해양법 유엔협약은 선상 반란을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모든 국가가 진압·처벌에 최대한 협력하라고 한다.

1789년 남태평양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이 벌어졌다. 반란 선원들은 배를 장악하고 함장 등을 보트에 태워 내쫓았다. 48일 표류 끝에 살아 돌아온 함장은 '불굴의 영웅'이 됐다. 영국 정부는 즉각 쾌속함을 반란자들이 머물던 타히티섬에 보내 기어코 체포해 교수대에 매달았다. 잔당들 추적은 1814년까지 계속됐다.






 

1985년 중공군 어뢰정에서 대만 망명을 위한 함상 반란이 일어났다. 2명이 6명을 사살한 뒤 동쪽으로 향했다. 연료가 소진돼 흑산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우리 어선에 발견됐다. 해군이 긴급 출동했고, 어뢰정을 쫓아온 중공군 함대가 우리 영해를 넘었다. 일촉즉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중공은 사과를 하고 승조원들을 인계받았다. 두 사람은 대만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선상 반란에 자비 없다'는 국제법의 원칙이 적용됐다. 이 사건은 한·중 수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 남태평양 바다 위를 항해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에서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선장의 폭력 등에 반발한 조선족 선원 여섯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해 11명을 차례로 살해했다. 칼과 도끼를 사용했고, 산 채로 상어가 출몰하는 바다에 던져 넣기도 했다. 실습 나온 고교생도 던져졌다. 1심 판결문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위'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살인범들의 항소심 변호인이었다.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했다. 여섯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다섯 명이 무기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주범도 특사를 통해 무기로 감형됐다.


▶북한 선원 2명이 가혹 행위에 불만을 품고 선장 등 16명을 살해하고 남으로 넘어왔다. 심야에 차례로 불러내 살해했다니 페스카마 선상 반란과 닮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들 2명은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고 북으로 추방했다. 아마도 즉각 처형될 것이다. 선상 반란에 대한 엄한 처벌 필요성, 사법 주권 포기 논란, 페스카마 사건과 다른 잣대 등 생각해볼 점이 많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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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반란 (II)


1954년 할리우드 영화 '케인호의 반란' '미 해군에서 선상 반란은 한 번도 없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함장 험프리 보가트가 강박 증세를 보인다. 대원들은 부함장을 중심으로 지휘권을 빼앗아 위기를 넘긴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과 긴박한 법정 장면이 관객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자막과 달리 미 해군사()에 두 건의 선상 반란이 있었다. 1842년 소머스호와 1849년 유잉호 사건이다.

영국은 '선상 반란은 반드시 제압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1789년 타히티 섬과 호주 사이 남태평양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함장과 선원 열여덟 명을 보트에 태워 추방했다. 함장을 비롯한 일행은 48일 표류 끝에 6400㎞ 떨어진 섬에 상륙해 가까스로 귀국했다. 영국 정부는 전통에 따라 524t급 쾌속함 판도라호를 반란자들이 머물던 타히티 섬에 보내 체포했다. 주모자 셋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 사건은 세 차례나 영화로 찍어 각각 클라크 게이블, 말런 브랜도, 멜 깁슨이 주연했다.



끝없는 바다를 떠 가는 배에서 선장의 권한은 막강하고, 막강해야 한다. 배 위에서 행정권은 물론 징계권과 사법경찰권까지 갖는다. 우리나라 선원법도 선장에게 문제 있는 선원을 구금·체포할 권한을 주고 있다. 선장은 항해 중에 사람이 죽으면 바다에 수장(水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선상 반란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생기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이다. 원양어선 페스카마가 사모아 섬 부근 바다를 지날 때 중국 동포 선원 여섯 명이 열악한 작업 조건과 폭력에 반발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 일곱 명을 포함한 열한 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여섯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항소심에서 주범을 제외한 다섯 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어제 인도양 세이셸군도 인근 해상을 지나던 우리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또 선상 반란이 일어났다. 베트남 선원 두 명이 술에 취해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했다. 하루 쉬는 날 선장이 "수고 많았다"며 양주 두 병을 나눠 마시게 한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제각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겠지만 원양어선들이 외국인 선원을 제대로 대우하고 인격적으로 다루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상 반란이 거듭되는 것은 근무 환경부터 인력 채용, 처우까지 운항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닷컴(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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