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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이중섭이 사랑한 꽃들]

뚝섬 2022. 9. 4. 05:39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이중섭이 사랑한 꽃들]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화가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의 첫 만남은 여느 청춘 남녀처럼 풋풋했다. 원산에서 일본에 유학 간 부잣집 아들 이중섭은 학교 후배 마사코에게 첫눈에 반했다. 웃음 많고 활달한 이중섭이었지만 그녀 앞에선 말문이 막혔다. 보다 못한 친구가 자기 생일이라 속여 두 사람을 초대한 뒤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중섭은 연애 시절에도 소를 그렸다. 1940년 작 ‘소와 여인-정령1′에 여인과 그녀 몸에 머리를 기댄 소를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사랑 고백이었다.

 

▶둘의 사랑은 이중섭이 일제의 징병을 피해 원산으로 돌아갔을 때 끝날 뻔했다. 그러나 이중섭이 보낸 ‘결혼이 급하다’는 편지를 받은 이남덕은 1945년 4월, 소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살려고 관부 연락선을 오작교 삼아 바다를 건넜다. 전쟁 중 목숨 건 뱃길이었지만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여행이었다”고 했다.

 

▶6·25 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의 목적은 단 하나, 가족과의 재회였다. 그로부터 행려병자로 죽기까지 4년간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읽는 이를 목메게 한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글을 쓸 줄 알게 된 아들로부터 첫 편지를 받아 든 감격도 담았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무지 잘 안 되는구먼요. 어떻게 쓰면 아이들이 기뻐하겠는지.’

 

▶희망과 절망은 손등과 손바닥이다. 뒤집히면 극단을 오간다. 하루를 국수 한 그릇으로 버티면서도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라던 이중섭은 1955년 서울과 대구 전시회가 잇달아 실패하자 허물어졌다. 일본에 갈 수 없게 됐다는 절망에 음식마저 끊었다. 아내가 보내온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2016년 6월 서울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이남덕 여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에서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 거예요, 우린 운명이니까’라 적었던 이 여사가 지난달 101세로 별세한 사실이 그제 알려졌다. 임종은 병원에서 맞았지만 살던 집은 이중섭이 편지 200여 통을 보낸 도쿄 세타가야 주소지 그대로였다. 이 여사는 이중섭과 7년을 함께했고 70년을 홀로 살았다. 그 세월을 버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이 여사는 ‘잘생겨서 좋아했다’던 이중섭을 만나러 마지막 오작교를 건넜을 것이다. 다리 끝에서 남편이 두 팔 벌려 아내를 맞이했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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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사랑한 꽃들

 

소∙게∙어린이 많이 그렸지만 민들레∙호박꽃 그린 작품도

가장 많이 그린 건 연분홍 복사꽃… 가족과 함께 사는 '낙원' 상징

초기엔 연꽃 등 전통 소재에 관심… 꽃 한 송이 꺾지 못한 '꽃의 화가'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이 꽃들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거였다. 그게 그거 같은데 이름이 달랐다. 매화와 벚꽃도 그중 하나였다. 매화가 좀 일찍 피지만 벚꽃과 겹치는 시기가 있어 헷갈린다. 여러 번 보고 자세히 보면 매화는 가지에 붙어 피고 벚꽃은 가지에서 긴 꽃대가 나와 피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사꽃도 매화와 같은 형태로 피지만, 꽃 안쪽으로 갈수록 붉어지는 점이 다르다. 자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멀리서 보아도 무슨 꽃인지 알 수 있는 감이 생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회에 가보니 '벚꽃 위의 새'라는 그림이 있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하얀 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새가 앉으면서 가지가 흔들려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파란색 개구리, 노란 나비도 있지만 화면 가득한 연분홍 꽃이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제목이 벚꽃인데 꽃은 그냥 가지에 붙어 있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벚꽃이 아니라 도화(
桃花·복사꽃) 그림 같다"고 했다. 이중섭은 1955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팸플릿에 '도화'라는 작품이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1986년 전시에 나올 때 엉뚱한 제목이 붙은 것 같다는 얘기였다. 꽃 아래에 파릇파릇 새잎이 돋고 있는 것도 복사꽃처럼 생겼다.

이중섭 '봄의 아동'

 

복사꽃은 이중섭 그림에서 자주 나오는 꽃이다. 그의 그림에서 복사꽃은 무릉도원, 즉 낙원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중섭은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천도복숭아를 그려 주었다고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온 은지화(銀紙畵) '도원(낙원의 가족)'에는 복숭아나무가 가득하다. 남자는 큰 복숭아를 누워 있는 여인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중섭이 그림으로나마 아내에게 복숭아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다. 현실에선 꽃과 익은 열매가 동시에 달리지 않겠지만 이중섭은 둘을 같이 그렸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은 소, 닭, 게, 까마귀, 물고기, 어린이를 주요 소재로 그렸다. 그런데 꽃도 빠뜨릴 수 없다. 초기엔 연꽃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1940년대 엽서화엔 연꽃잎과 꽃, 꽃봉오리, 연밥이 고루 들어 있다. 연꽃 봉오리가 있는 물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그림도 있다. 연꽃은 전통 그림에 많이 나오는 소재다. 평론가들은 이중섭이 전통 미술에서 소재와 형태를 빌려 와 활용하려 한 점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풍성한 호박이 가득한 그림을 보니 제목이 '호박꽃'이다. 1954년 말 이종사촌인 이광석의 신촌 집에 머무를 때 뒤뜰 호박을 보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즈음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도 "지금 이웃 풍경과 호박꽃, 꽃봉오리, 커다란 잎을 제작 중이지만,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그대들을 생각하고…"라고 썼다.

다른 그림에도 꽃들이 있다. 아쉬운 것은 다른 그림에서는 꽃을 너무 단순화해 무슨 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봄의 아동'에서 왼쪽 아래에 있는 꽃은 잎 모양으로 보아 민들레가 분명하다. 그러나 어린이가 들고 있는 꽃은 그림만으로는 무슨 꽃인지 알 수 없다. '길 떠나는 가족'은 다시 가족과 함께 살기를 바라는 이중섭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 황소 위에는 꽃송이가 흩날리고 있다. 꽃들로 행복한 가족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지만 거친 붓 터치로 꽃을 식별하기는 어렵다.

이중섭 그림에서 꽃은 단순히 평화로움, 즐거움을 나타내는 장식적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중섭은 어느 화가 못지않게 꽃을 많이 그린 것 같다. 이중섭이 꽃을 좋아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부산 피란 시절 친구 집에 얹혀살 때였다. 하루는 친구 아내가 식탁에 꽃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중섭은 밖에 나가더니 한참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모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꺾을 꽃이 없었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정도면 이중섭도 '꽃의 화가'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중섭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이번 전시회에서 이중섭이 사랑한 꽃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1955년 이후 그림을 전시한 4전시실에 들어서자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 이중섭은 전시회 그림값을 못 받아 경제적 궁핍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더 이상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도 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림 분위기가 확 달랐다. '정릉 풍경' 소나무는 힘없고 지쳐 보였다. 이곳 '소'는 다른 소들과 달리 말랐고 이마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중섭은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 1956년 한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에서 그 불행한 말년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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