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프와 텔레그램]
[익명성의 명과 암… 프랑스서 체포된 ‘텔레그램’ 개발자]
[텔레그램 창업자 체포, 우리도 SNS의 '범죄 방치' 책임 물어야]
[방송 정쟁 싸움터 된 국회 과방위, 과학기술 분리해야]
[프랑스에서 체포된 ‘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
['깡통 휴대전화']
두로프와 텔레그램
2012년 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위로 종이비행기 수십 개가 날아다녔다. 주변 건물에 있는 소셜미디어(SNS) 회사 VK(프콘탁테)의 20대 사업가가 5000루블(약 7만3000원)짜리 지폐로 수백만 원어치 비행기를 접어 날린 것이다. 거리엔 종이비행기를 낚아 채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창틀에 앉아 이 장면을 보고 웃던 이가 VK 창업자이자 텔레그램을 만든 파벨 두로프(40)다.
▶두로프는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린다. 198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언어학 학사를 땄고, 2006년 VK를 차렸다. 사용자 3억명을 모아 러시아 최대 SNS 업체로 급성장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신봉했다. 야당 정치인의 페이지를 폐쇄하라는 러시아 정부의 압력에 혀를 내민 개 사진을 게시하며 저항했다. 반정부 시위대의 정보를 내놓으라는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결국 2013년 보안성을 극도로 강화한 메신저 텔레그램을 만들었고 이듬해 독일로 망명했다. 그가 날렸던 종이비행기를 로고로 썼다.
▶그의 기이한 생활 습관과 자유분방함은 괴짜 일론 머스크를 능가한다. 그는 영화 매트릭스의 열렬한 팬으로, 주인공 ‘네오’가 입은 듯한 검은색 옷만 입는다. 설탕, 고기,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고 차, 커피, 술도 마시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며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키츠 네비스, 아랍에미리트, 프랑스 등 4개 국적을 갖고 있다. 극단적 노마드 성향으로 엔지니어들과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지냈고, 2010년부터 정자를 기증해 12국에 생물학적 자녀가 100여 명에 이른다. 미혼인 그는 “사랑도 마약이어서 안 한다”고 했다.
▶텔레그램도 그의 성격을 닮았다. 텔레그램은 암호화된 메시지와 서버에도 남지 않는 특성이 주목받으며 사용자가 9억명에 이를 정도로 폭풍 성장했다. 반면 텔레그램의 이런 특성 탓에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이슬람 무장 조직(ISIS)이 텔레그램을 통해 신규 세력을 모집하고, 국내에서 N번방 성범죄 사건이 텔레그램을 무대로 이뤄졌다.
▶며칠 전 프랑스 정부가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로 입국하는 두로프를 공항에서 체포했다. 텔레그램에 넘쳐나는 아동 성적 학대 콘텐츠, 가짜 뉴스, 허위 정보, 증오와 폭력 조장 콘텐츠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은 혐의다. 두로프의 체포는 표현의 자유와 SNS 플랫폼의 관리 책임 문제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자유분방한 기인, 두로프가 위기를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김성민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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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검찰, 범죄 악용된 ‘텔레그램’ CEO 체포해 조사 중. 깨끗한 기술도 쓰는 사람이 나쁘면 더러워질 수밖에.
-팔면봉, 조선일보(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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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의 명과 암… 프랑스서 체포된 ‘텔레그램’ 개발자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은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외부에서 메시지를 읽거나 추적하기도 어려워 송신자와 수신자만 메시지를 볼 수 있는 비밀 채팅이 가능합니다.
텔레그램은 2013년 러시아의 파벨 두로프(40·사진)에 의해 출시됐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던 두로프는 페이스북 성공 사례를 보고 형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 브콘닥테를 창립했습니다. 브콘닥테는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SNS가 됐습니다.
브콘닥테는 성공했지만 두로프는 통제를 중시하는 러시아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2014년 러시아 정부는 두로프에게 유로마이단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개인정보 제공과 반정부 인사들의 브콘탁테 페이지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두로프는 그 공문을 자신의 브콘탁테 페이지에 폭로한 뒤 곧바로 독일로 망명했습니다. 동시에 브콘탁테의 지분을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독일로 망명한 두로프는 텔레그램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고, 텔레그램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플랫폼이 됐습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전 세계 9억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조만간 사용자 수 10억 명을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두로프는 3일 전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됐습니다. 텔레그램이 테러와 마약, 인신매매, 밀수·사기 같은 범죄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는데 최고경영자(CEO)인 두로프는 이를 방치했다는 혐의입니다. 텔레그램의 강력한 보안 정책이 현실에선 범죄자들에게도 유용했던 것이죠.
두로프는 평소 ‘텔레그램은 중립적인 플랫폼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같은 이유로 텔레그램은 정부 기관에 대한 백도어 액세스 제공을 거부해 전 세계 개인정보 보호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세계 유력 인사 사이에서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플랫폼을 제한하려는 시도’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등 프랑스 정부의 전격적인 두로프 체포에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동아일보(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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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창업자 체포, 우리도 SNS의 '범죄 방치' 책임 물어야
프랑스 정부가 지난 26일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를 '텔레그램이 사기, 마약 밀매, 유해 콘텐츠 유포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혐의'로 체포했다. /인스타그램
프랑스 정부가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면서 각종 범죄 행위와 유해 콘텐츠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텔레그램 창업자를 지난 26일 체포했다.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통해 사기, 마약 밀매, 사이버 괴롭힘, 조직범죄, 테러 조장 등 각종 범죄 행위가 이뤄지고, 유해 콘텐츠가 전파되고 있는 데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범죄 방조자’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텔레그램은 암호화된 비밀 채팅 기능으로 보안성이 뛰어나 전 세계 사용자가 9억명에 이른다. 텔레그램은 한때 독재 국가에서 시민들의 비밀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엔 가짜 뉴스와 불법 콘텐츠 확산의 주요 경로로 쓰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텔레그램 창업자의 체포는 소셜미디어가 표현의 자유 도구인지, 가짜 뉴스 산실인지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포털을 통한 가짜 뉴스, 허위 정보 유포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보고, 강력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 왔다. 텔레그램 창업자의 체포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에 불법 유해 콘텐츠를 삭제하는 의무를 지우는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시행했다. 법을 어기면 매출액의 6%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위반이 심각하면 유럽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독일에선 디지털 플랫폼에 유해 콘텐츠가 올라올 경우 24시간 내 삭제토록 한 ‘네트위크 집행법’을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각종 포털을 통해 온갖 가짜 뉴스와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례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2017년 대선에선 ‘드루킹 일당’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와 댓글을 조작했다. 사드 전자파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2022년 대선 당시 김만배의 대장동 허위 인터뷰 등도 모두 인터넷 포털이 주요 무대였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온갖 가짜 영상이 유포되면서 인권침해, 명예훼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들은 가짜 뉴스, 허위 정보, 불법 콘텐츠 유통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도 언론 기관이 아니라면서 모든 책임을 회피해 왔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두고 여야 간 정쟁만 했다. 우리도 유럽처럼 가짜 뉴스, 불법 콘텐츠 제작자와 유포자는 물론 인터넷 플랫폼에도 관리 책임을 엄중히 묻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조선일보(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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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정쟁 싸움터 된 국회 과방위, 과학기술 분리해야
26일 오전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과학기술부 장관, 원자력안전위원장, 우주항공청장 등 기관장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과방위에서는 MBC와 방통위원장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관련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이다. 과방위는 그동안 총 18번 전체회의를 했지만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한 사례가 없고, 관련 법안소위도 열리지 못했다. 눈만 뜨면 MBC로 싸우고, 해가 지면 방통위원장 문제로 다퉜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인사 청문회와 방송 관련 청문회만 각각 3번씩 열렸고 그때마다 고성과 파행이 반복됐다. 반면 인공지능(AI) 기본법, 소프트웨어진흥법, 과학기술기본법, 이공계 지원 특별법 등 과학기술계에서 시간이 없다고 처리를 호소했던 법안들은 마냥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과방위 전체회의에는 모두 61개의 법안들이 올라왔다. 처리해야 할 법안들을 제때 다루지 않으니 밀려 있던 법안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밀린 숙제와 벼락치기를 위해 열린 이날 회의에서도 방통위 회의 개최 요건을 2명에서 4명으로 변경하는 방통위설치법 개정안 문제로 여야가 또 싸웠다.
과방위의 전체 소관 기관은 81개로 이 중 방송통신 관련 기관은 8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8개 때문에 국민들이 미래 먹고사는 문제와 국가 경쟁력이 걸린 과학기술 관련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AI기본법은 지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 과방위의 여야 구성을 봐도 앞으로 과학기술이 찬밥 신세가 되는 현재 상황에서 변화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장부터 위원 대부분이 방송 또는 언론노조 경력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적 식견을 갖춘 의원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정쟁에 동원될 뿐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과방위 주력이 과학기술이 아니라 정쟁의 무대인 방송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가 먼저 국회 과방위에서 과학기술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최근 국민의힘이 이런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과학기술 단체들은 “정치적 문제로 인해 국회에서 과학기술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은 예산과 법률적 지원의 적기를 한번 놓치면 국제 경쟁에서 바로 낙오된다. 정치가 개입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하루빨리 과방위에서 과학기술을 분리해야 한다.
-조선일보(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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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방통위의 방문진 새 이사 임명에 제동. 행정부 결정에 사법부가 자꾸 끼어드는 건 좋지 않은데.
-팔면봉, 조선일보(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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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체포된 ‘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
텔레그램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40)의 별명은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다. 저커버그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이용자가 30억 명인데 텔레그램은 9억5000만 명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자기 메시지가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텔레그램의 인기는 양지의 모든 SNS를 압도한다.
▷‘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두로프가 지난 주말 파리 외곽 부르제 공항에 자신의 전용기를 착륙시켰다가 프랑스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프랑스 당국은 각국 정부의 범죄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해온 두로프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마약 밀매, 아동 착취, 테러 등의 범죄를 방조한 것으로 본다. 수배 중인 줄 알면서 입국한 이유가 불분명하지만 장기 징역형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메시지 암호화, 대화방 폭파 기능 등을 갖춘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두로프가 사업 초기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각국 정부의 범죄자료 제공 요청을 완강히 거부한 덕에 구린 게 많은 글로벌 범죄자들이 안심하고 머무는 놀이터가 됐다. 러시아에서 메신저 회사를 운영하던 두로프가 10년 전 독일로 망명한 것이나 텔레그램 본사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둔 명분도 개인정보 보호다.
▷한국에선 마약 유통·판매의 70% 이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 사기범들도 텔레그램에 리딩방을 개설해 투자자를 유혹한다. 42년 형을 받은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의 활동 무대도 텔레그램이었다. 각국 사법당국은 텔레그램의 막대한 운영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범죄 수익과 연관됐을 것으로 의심한다.
▷텔레그램은 정치인들에게도 ‘필수 애플리케이션’이 됐다. 재작년 7월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은 앱도 텔레그램이다. 지난달엔 한동훈 대표 후보자의 김건희 여사 텔레그램 메시지 ‘읽씹’ 논란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뒤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올해 1월 성희롱 논란이 있는 총선 후보의 징계 수위를 테러로 입원 중이던 이재명 대표와 텔레그램으로 상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텔레그램 측은 이용자 간 대화가 끝난 뒤엔 자사 서버에 메시지가 전혀 남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엄밀하게 검증된 적은 없다. 텔레그램 이용이 많은 만큼 어떤 계기로 메시지의 일부가 공개되기라도 한다면 2010년 미국의 기밀자료가 대거 폭로된 ‘위키리크스 사건’급 충격이 올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두로프 체포로 잠 못 이루는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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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휴대전화'
프랑스 수사 당국이 지난해 11월 파리 연쇄 테러 총책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를 사살할 수 있었던 건 테러범이 버린 휴대전화 덕분이었다. 테러 현장 근처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휴대전화에 '우리는 시작한다'는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테러 당일 작전 개시를 누군가에게 보고한 것이다. 메시지는 프랑스 한 호텔방에 있던 전화기에서 수신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때만 해도 시리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아바우드 은신처가 이를 통해 포착됐다.
▶테러범 추적은 물론 일반 수사에서도 휴대전화는 1차 확보 대상이다. 개인 신상과 행적, 메시지 정보가 다 담겨 있어 수사기관이 강제 수사로 전환할 때 가장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게 휴대전화다. 사용자가 삭제해도 통화 내용은 물론 문자메시지, 녹음 파일은 대부분 복원된다. 감청이 사라진 후 이만한 증거 확보 수단이 없다. 그러니 잡범은 대개 흔적을 안 남기려고 대포폰을 쓰거나 그것도 불안하면 아예 전화기를 강물 같은 데 버린다고 한다. 범인 처지에선 가장 확실한 증거 인멸이다.
▶이젠 정부 인사라고 다를 게 없다. 최순실 사건을 통해 최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대포폰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대포폰으로 사건 관련자를 회유하려 하기도 했다. 현 정부는 2년 전 대포폰·대포차·대포통장 등 '대포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비선 실세와 왕수석, 문고리 권력은 다 대포폰을 쓴 것이다.
▶수사 전문가인 검사들이 수사 대상이 되면 어떨까. 얼마 전 고교 동창 사업가인 친구에게 뇌물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형준 부장검사가 답을 보여줬다. 사건이 불거지자 그는 친구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 '메모한 것 지우고 휴대전화 바꾸라'고 했다. 그리고 검찰에는 자신의 업무용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사실은 아마 버렸을 것이다. 검찰은 끝내 이 전화를 찾지 못했다.
▶검찰이 엊그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휴대전화를 압수했는데 통화 내용과 문자메시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상 '깡통 전화기'였던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수사 전문가인 그가 휴대전화를 그대로 뒀을 리 없다. 자기 증거를 자기가 없애는 건 처벌도 못 한다. 한때 사정 기관을 총괄했던 사람도 떳떳지 못한 흔적을 지우려는 데선 일반 잡범이나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그만 탓할 수도 없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 고발된 지 114일 만에 그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이렇게 충분히 증거 인멸 시간을 줘놓고 누굴 탓하겠는가.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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