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케네디’를 기대한다]
[대통령제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위기의 대한민국..'보수의 길'을 묻다]
‘대한민국의 케네디’를 기대한다
흑백 갈등 정점 때 대통령 된 케네디.. 흑인 민권 법안 추진하며 국민 통합 이뤄
극한 대립으로 두 동강 나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통합 노력 안 해
與野 새 인재들이 정치 문화 바꾸길 소망
지금 이 나라 국민은 사실상 두 동강이 나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동강’이다. 평화 시에 우리 국민이 이렇게 분열된 적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분열은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 5년 재임 중 그가 입법·사법·행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여준 극단적 ‘진보 편향적’ 경향 때문이었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정의’라는 가치를 과감히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그 분노가 진보의 정권 재창출을 좌절시켰을 뿐 아니라 현재 이 거대한 국민 분열의 주범이다.
이 분열, 도대체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미국 역사가 한 가지 단서를 준다. 미국도 한때 그런 분열 시대가 있었다. 흑인 문제 때문이었다. 19세기 남북 전쟁에서 북이 승리함으로써 흑인 노예제 자체는 없어졌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지독한 차별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식당·극장 등 거의 모든 공공 장소에서 흑인들은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그 차별에 대한 찬반으로 국민도 완전히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갈등이 정점에 다다른 1961년, 43세의 젊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뉴 프런티어’, 즉 “우리 마음의 국경을 넓히자”고 외치며 흑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호소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소위 ‘민권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한마디로 ‘식당에서 흑인들과 딴 방에서 밥 먹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그것은 많은 백인들에게는 ‘돼지와 한 방에서 식사할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그에 버금가는 찬성 운동도 일어났다. 그러면서 국민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대결 와중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해 버렸다. 민권 법안에 대한 찬반에 관계없이 거의 온 국민이 울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한 케네디, 그가 그토록 원한 꿈, 즉 ‘민권 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위대한 리더를 잃은 슬픔과 아쉬움이 반대하던 수많은 국민 생각을 바꾸었고,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당시에 미국은 그렇게 ‘국민 통합’을 이루었다. ‘위대한 리더’는 그런 것이다. ‘정의’에 입각한 거대한 ‘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그를 향해 스스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리더, 그런 리더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
두 동강이 나 있는 지금 이 대한민국, 과연 누가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도 케네디가 필요하다. 그 분열 강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출마 이전에 공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투철한 정의감과 용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권 약 2년이 되면서 사실 나는 그 기대를 접었다. 윤 대통령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국민 통합에 필수 요건인 역량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언론 기피증’이다. 국민 통합 과정이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런 설득 작업은 오로지 ‘국민과 대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것은 언론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다. 바로 기자회견이다. 그런 면에서 기자회견을 피하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이루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케네디는 미국 역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주 한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
야당의 이재명 대표는 어떤가. 그에게는 정치적 역량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언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사실 ‘언론 다루기’의 명수다. 정치 감각, 순발력 등도 뛰어난 편이다. (그의 빠른 쾌유를 빈다) 그러나 그가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낼 가능성도 묘연한 것 같다. 그가 현재 ‘범죄 혐의 백화점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국민 통합의 필수 연결 고리는 항상 ‘정의’이다. 그 점에서 그 역시 적격자가 아니다. 야당에 다른 후보는 없을까? 불행히도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어떠한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난 1년여 동안 그 쪽에는 ‘정치판 신데렐라’가 한 명 탄생했다. ‘한동훈’이란 신인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100% 아마추어였던 그가 불과 1년 남짓 만에 ‘스타 정치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급기야 여당의 비대위원장까지 된 그는 이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물 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내 눈에는 지금 여당에 한동훈 외에도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장관 같은 사람이다. 두 사람 다 국회의원, 지방정부 수장, 또는 각료 등을 거치며 공인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도덕적 흠을 보인 적도 없다. 이재명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한동훈과 경쟁하면서 이 나라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 줄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 새 패러다임이란 한마디로 ‘촌스럽지 않은’ 정치판이다. ‘촌스러움’이란 큰소리, 윽박지름, 한탕주의 같은 것을 통칭하는 단어다. ‘논리와 합리 그리고 증거’로 상대방을 공략함으로써 국민도, 다른 의원도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정치 기술’이다.
사실 야당에도 여당처럼 이른바 ‘삼총사’가 나타나야 한다. 현재는 이재명 대표의 위세에 눌려 꼼짝 못 하고 있겠지만, 야당에도 상응하는 능력이 있는 인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야당에도 “임금님 발가벗었다”고 외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인재들이 나타나 여당 인재들과 한번 멋진 경쟁을 벌일 때 이 나라 정치에 비로소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으로 믿는다.
지금 이 나라에 ‘정치인’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가’이다. 바로 케네디 같은 사람이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조선일보(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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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나는 한국과 미국에서 각기 꽤 오래 살면서 두 나라 정치를 다 구경해 본 사람이다. 그 소감은 이렇다. 미국 정치가 ‘농구 시합’ 보는 것 같다면 한국 정치는 ‘권투 시합’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가 ‘팀플레이’를 기본으로 하는 ‘경쟁 게임’이라면, 한국 정치는 서로 때려눕히는 ‘격투 게임’인 것이다. 그 ‘격투 경기’만 1년 내내 보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한마디로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선진국 클럽인 OECD 38국가 중, 우리같이 국민이 맨날 살벌한 ‘권투 시합’만 보며 살아야 하는 나라는 우리 말고도 4곳이 더 있다. 칠레, 멕시코, 튀르키예(터키), 콜롬비아다.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은 17년간 시민을 무려 10만여 명 고문하거나 학살했다. 멕시코는 무려 77년 동안 한 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참 고통스럽고 긴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내각제로 순조롭게 발전해 가던 튀르키예는 2014년 대통령제로 바꾼 지 2년 만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후에도 정쟁의 회오리가 계속되고 있다. 콜롬비아도 비슷한 유의 온갖 시련을 겪어 왔다. 신기하게도 한국을 포함한 이 다섯 나라에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통령제 국가’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제 국가 5곳이 다른 나라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대통령에게 소위 ‘대권’이라는 것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대권’이 무엇인가? 그것은 군 통수권, 검찰권, 경찰권, 감사권, 인사권, 조세권 등 수십 가지 각종 권력·권한이 궁극적으로 한 사람에게 집중된 것을 말한다. 거기에 ‘4~5년 임기’까지 보장됐다. 그 총합적 힘의 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이 발현하는 거대한 영향력과 ‘떡고물들’, 그것은 필연적으로 ‘싸움판’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 나라들 정치는 모두 예외 없이 온통 ‘싸움판’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대통령제인데 유독 미국 정치에는 ‘싸움판’이 없다. 왜 그럴까? 그 나라 대통령제가 우리와 다른 ‘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다. 수십 주가 일종의 ‘계약’을 통해 세운 나라이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한 나라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사실상 수십 나라가 협동으로 작동되는 그런 구조인 것이다. 그런 나라는 ‘대권’이 주어질 수가 없다. 사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외교, 국방, 거시 경제, 각 주의 이해관계 조정 등 몇몇 분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대권’이 없으니 ‘싸움판’이 벌어질 이유도 없는 것이다.
미국은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OECD의 나머지 나라 약 30곳 정치에는 왜 ‘싸움판’이 없는가? 답은 같다. 그 나라들에는 ‘대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 모델인 내각제를 보자. 그곳 최고 권력자인 총리에게 ‘대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보장된 ‘임기’도 없다. 여차하면 국회 불신임 결의로 쫓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총리에게는 아무 ‘칼’도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수틀리면 언제든지 ‘국회 해산’이란 ‘칼’을 빼 들 수 있다. 그러면 총선을 통해 ‘판’을 새로 짠다. 이런 위험이 있으니 국회도 매우 조심한다. 총리도 국회도, 항상 국민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처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향한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판 같은 ‘싸움판’이 벌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심판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 대접’을 정말 제대로 받는 것이다.
이 내각제의 대단한 위력은 그동안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OECD 국가의 3분의 2가 내각제를 택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두 가지 예만 들자. 인구 천 만도 안 되는 나라 이스라엘은 지난 몇 십 년간 수억 인구를 가진 주변 아랍 국가들에 무려 네 차례나 거대한 무력 침공을 당했다. 그러나 예외 없이 다 깨끗이 격퇴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소득은 대한민국의 1.5배가 넘는 나라, 그것이 바로 ‘내각제 국가’ 이스라엘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나오는 “북한의 침공 위협 등 때문에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무식의 소치’인지는 자명하다. 약 200년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대영제국, 한때 전 세계 면적의 4분의 1, 인구의 6분의 1까지 지배했던 그 나라는 내내 내각제 국가였다.
왜 내각제가 이런 신통력을 발휘할까? 그 원리는 간단하다. ‘싸움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라가 편안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이 1960년대 4·19 직후 시도했던 내각제 실험, 그것이 불과 1년 만에 쿠데타로 좌절되어 버렸다는 점은 사실 참 아쉬운 면이 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물론 5·16으로 시작된 군사정권, 그리고 이후의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크게 부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이 그동안 치러야 했던 그 엄청난 대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군부 독재, 3선 개헌, 유신 독재, 5·18 민주화 운동, 전두환 독재 등 근 50년 동안 우리 국민이 겪어야 했던 그 참담한 고통을 잊을 수는 없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선진화’를 위해 국민이 우리같이 이토록 처절한 대가를 치른 나라는 없었음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동안 이 지구촌이 우리에게 보여준 현실은 명확하다. 대통령제란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에는 단연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문맹률이 절반 이상 되는 그런 나라, 국민이 워낙 미개해서 어쩔 수 없이 강력한 ‘현자’ 통치자가 한 명 꼭 필요할 때 할 수 없이 채택하는 것이 ‘대통령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모델이다.
생각해 보라! 도대체 우리 같이 최상급 문명국, 그 우수한 국민들로 구성된 나라가 아직도 단 한 명의 판단에 모든 것을 위탁하면서 살아야 하겠는가? 그 필연적 결과인 이 진절머리 나는 싸움판을 앞으로도 계속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겠는가? 이 지저분한 괴물을 정말 우리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고들 싶으신가?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조선일보(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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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보수의 길'을 묻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국가가 끌면 시민은 따라야' 思考 버리고 비정규직 등 청년 고민도 껴안는 保守로"
강원택(55)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난 지난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제3차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강 교수는 "퇴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이전보다 분명 진일보했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상(眞相)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현재 한국정치학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학회 의견과 무관한 정치학자 개인 의견"이라며 말문을 뗐다.
―박 대통령의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권력 유지의 핵심 요소는 권위와 신뢰다.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 동의를 이끌어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데, 권위와 신뢰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는 사실상 통치가 불가능하다. 물러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촛불 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몇 차례 광화문광장에 나갔다. 20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상황에서도 주변 상점들은 평화롭게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툭하면 시위가 폭동과 약탈로 번지는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말인가.
"지금 한국 사회가 혹독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철저하게 정상적인 헌정(憲政) 시스템 속에서 평화롭게 위기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도 헌정 파괴 같은 위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하게 정착했다는 걸 보여준다."
―낙관적인 해석 같다.
"그렇다. 4·19 세대나 '386 세대'와 비교하면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처럼 20~30대가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던 1980년대 시위 방식과 비교하면 '촛불 집회'는 한층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가 여전하다.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공유하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보여줘야 하는 친박 세력이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해 나선 모양새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당내 계파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한국 민주주의 회복이나 발전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야권이 대선을 눈앞에 두고 정치적 수지타산에 혈안이 된 모습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서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식이 정치권을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보수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성장과 안보 등 한국의 보수는 긍정적으로 기여한 대목이 많다. 하지만 보수가 발 빠르게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보수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에 따라 이념적 색채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이란 무슨 뜻인가.
"국가가 모든 걸 끌고 가면 시민들은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사고방식,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1인 지배적 측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주화·세계화 시대를 맞아서 민간 영역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과거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보수의 약점은 뭔가.
"북핵(北核)과 안보 문제뿐만이 아니라 양극화와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 청년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에 대해서도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 정치권의 세대교체도 필요하다."
―내각책임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축으로 하는 1987년 체제를 뛰어넘어 내각책임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불통(不通), 일방통행, 여론 무시'는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단임 대통령제가 지닌 근본적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경제성장 신화를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수퍼맨이나 메시아 같은 존재로 국민에게 인식됐다. 하지만 더 이상 초인적 지도자는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높다.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감은 대략 세 가지 때문이다. 한국에서 내각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제2공화국의 무능과 혼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대한 강렬한 기억, 국회와 정당에 대한 낮은 신뢰도 등이다. 하지만 1인 지배가 아니라 정당 중심의 국정 운영,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내각제는 미래의 장기적 과제를 추진하는 데 적합한 시스템이다."
―내각제가 안정적이라는 뜻인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마련한 스웨덴의 사민당, 영국병(病) 치유에 나섰던 영국 보수당,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기민당은 모두 내각제에서 정국 운영을 주도했다. 학부모들이 속앓이하는 교육 문제를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내각제는 불안정하다'는 인식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개헌과 탄핵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질서 있는 퇴진'이든 탄핵이든 긴급한 정치적 과제를 우선 해결한 뒤 본격적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여야(與野)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내각제를 포함해 개헌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일정을 제시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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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국민보다 수준이 훨씬 낮은 사이비 保守 정치의 실패"
"한국정치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극한 대립 상태"
"경제는 세계 일류 도약하는데 정치는 5~6류로 전락"
"지금의 위기는 보수(保守)의 실패가 아니라 '사이비(似而非) 보수'의 실패일 뿐이다."
원로 사회학자 송복(79) 연세대 명예교수는 27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빚어진 국가적 위기에 대해 "한국 경제가 세계 1류로 도약하는 동안에 정치는 도리어 4류에서 5~6류로 전락하고 말았다"면서 "지금의 위기는 과거의 경험에서 잘못된 점을 끊임없이 개선하거나 보수(補修)하지 않고 도덕성과 성실성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한 한국 보수(保守)정치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분노하고 상처받은 국민이 시국 집회를 열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촛불 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비관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 선진국으로 가는 통과의례로 본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 될 수 있다."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을 다 지켜보셨는데 이번 촛불 집회와 차이는 무엇인가.
"4·19 때는 '사상계' 기자로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취재했고, 1987년엔 대학(연세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보다 지금이 훨씬 더 평화적으로 시위가 열린다. 그만큼 국민 의식이 성숙한 것이다."
―광복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의회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여야 정치인들은 '광장(廣場)'만 쳐다보고 있다. 정치권의 직무 유기 아닌가.
"1960~80년대에는 정치가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정치는 기업의 돈을 빼앗고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고기를 뜯는 개는 짖지 않는다(食肉之狗 無吠)'는 중국 고사(故事)가 있는데, 지금 한국 정치는 고기를 뜯는 개와 다를 바가 없다."
27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촛불시위 현장이었던 서울 광화문 거리에 섰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보수의 실패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현 정권의 실패는 보수의 실패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의 실패다. 보수에는 4대 원칙이 있다. 과거 경험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보수(補修)하며, 도덕성이 높고, 성실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진보는 이성적이고 급진적이며, 이상과 비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지금의 소위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 경험을 무시하고, 도덕성과 성실성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비일 뿐이다. 정치권 진보 역시 인기영합주의와 득표 전략에 매달려서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종북(從北), 친북(親北) 성향을 보인다. 지금 한국 정치는 '사이비 진보'와 '사이비 보수'의 극한 대립이자 충돌일 뿐이다."
―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다.
"유권자가 신(神)이 아닌데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양당 구조 아래서 유권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게 된다. 이 차악을 차선(次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 정치의 과제일 것이다."
―국민의 수준은 정치권보다 높다는 것인가.
"세계 어느 국가든 보수 세력은 나라를 지키고 안정시키며 발전시키는 근간(根幹)이다. 한국 사회·경제 전반의 보수는 펀더멘털(fundamental·기반)이 탄탄하고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국민도 정치권보다 지적·도덕적인 수준이 훨씬 높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제왕(帝王)적 대통령제'의 문제로 보고, 내각책임제를 대안으로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한국 정치는 조선시대의 '파당(派黨) 정치'에 가깝다. 정당 정치는 서로 장점을 겨루는 '경쟁의 정치'인 반면, 파당 정치는 죽기 살기로 상대에게 흠집만 내려고 하는 '대결의 정치'다. 파당 정치와 패거리 정치에서 정당은 공익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를 하면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 4·19혁명 직후에 내각책임제를 도입했던 제2공화국의 정치적 위기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한 지식인들의 모습에 실망하는 국민이 많다. 청와대나 정부, 국회에 진출한 대학교수 출신들이 공복(公僕)이 아니라 가신(家臣)처럼 행동한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던 분들이 교수만 되고 나면 총장과 학장이 되기 위해 보직에 혈안이 되거나 정치권에나 기웃거린다. 과거에는 대학교수와 지식인, 관료들이 확고한 국가관과 소명 의식을 갖고 공복을 자청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사익만 추구하는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보수의 활로(活路)는 어디에 있을까.
"문인(文人)들만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다는 '문치(文治) 의식'부터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요즘 말로 바꾼다면 인문·사회과학이나 법학을 전공한 인문계 지식인들이 될 것이다. 문관이나 문인들은 본질과 당위만 추구하다 보니 관념론에 빠지기 쉽다. 잘잘못이나 시시비비만 가리다 보니 상대를 끌어안기 보다는 배제(排除)하기 바쁘다. 지금 필요한 건 관념론이나 비판이 아니라 난관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긍정적 건설론이다.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에도 군인·체육인 출신, 이공계 전문가, 인문계 지식인을 '3:3:3'의 비율로 골라야 한다."
송 교수는 '열린 사회와 보수' 같은 저작을 통해 보수주의 담론을 주도했으며,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김기철 문화부장/정리-김성현 기자, 조선일보(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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