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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 왜 미국의 압박을 받을까?] [시몬 볼리바르]

뚝섬 2025. 12. 3. 06:38

[베네수엘라,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 왜 미국의 압박을 받을까?]

[시몬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 왜 미국의 압박을 받을까?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베네수엘라입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세계 20위권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국내 정치·경제적 위기 탓도 있지만 미국이 자국에 석유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재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상공을 사실상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마약·테러범으로 몰고 있기도 하죠.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갈등은 언제, 왜 시작된 걸까요? 오늘은 두 나라가 충돌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14년 베네수엘라 북부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에서 발견된 최초 유전이에요.

 

미국의 핵심 석유 공급처였던 베네수엘라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베네수엘라 북부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됐습니다. 1920~30년대에는 미국·영국 등의 석유 회사들이 잇따라 들어오면서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 성장했죠. 1939년에는 미국이 해외에서 수입한 석유 가운데 베네수엘라산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무렵 미국은 해외 자원에 본격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했고,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핵심 석유 공급처가 됐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경제는 미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는 데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20세기 초반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 석유 기업이 유리한 조건으로 석유를 개발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어요. 당시 27년간 집권한 후안 비센테 고메스 대통령이 친미 성향의 독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 자본을 끌어들여 베네수엘라 산업화를 이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석유 개발의 주도권을 외국 기업에 주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벌어들인 이익 상당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노동자 착취와 환경 파괴 같은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불만과 갈등이 쌓이면서 훗날 좌파 민족주의자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는 배경이 됐어요. 

 

20세기 초 베네수엘라를 27년간 통치한 후안 비센테 고메스 전 대통령입니다.

 

베네수엘라 반미 정권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7년 미국은 세계에 공산주의가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합니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미국은 중남미에도 강한 반공 정책을 펼치며 좌파 세력을 억압했어요. 1960년대에는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 게릴라(비공식 무장 조직)와 반미 민족주의가 확산됐습니다. 이런 이념과 움직임은 19세기 초반 중남미 독립 운동가였던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 ‘볼리바르주의’라고 불려요. 베네수엘라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기도 하죠.

 

이때 만들어진 반미 정서와 좌파 이념이 훗날 우고 차베스 정권, 그리고 차베스 사망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죠.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우고 차베스는 미국이 주도하던 신자유주의(시장 중심 경제 운영 방식) 체제에 맞서겠다고 했어요. 그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devil)’라고 공개 비난할 정도로 강경한 반미 자세를 보였죠.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중국·러시아·이란 등과 협력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2023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인사하고 있어요.

 

베네수엘라 부정 선거 의혹과 미국의 제재

 

2013년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하자, 그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하지만 마두로 집권 후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제난과 정치 탄압이 더 심해졌습니다. 마두로는 2018년, 2024년 선거에서도 승리해 현재 3선 임기 중인데요. 세 선거 모두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때였던 2018년, 마두로가 승리한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친미 성향의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했죠. 베네수엘라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부터 미국으로의 석유 수출을 못 하도록 막아버린 것이지요.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미·중 경쟁

 

이에 맞서 마두로 정권은 중국·러시아와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러시아와 무역을 할 때도 달러 대신 위안·루블이나 금을 사용하지요. 중국은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적극 투자하고 있어요. 석유뿐 아니라 인프라, 금융,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출한 상태죠. 2007년 이후 중국의 베네수엘라 투자액은 누적 500억~600억달러(약 73조~8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베네수엘라 입장에서 중국의 투자는 사실상 생존 수단입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호수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위키피디아·신화 연합뉴스

 

미국은 오랫동안 중남미를 자신들의 영향권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이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이런 확산이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자국의 전통적인 패권 질서를 흔드는 도전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 중남미에 대한 외교·안보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가 커지고 있어요.

 

이런 흐름 속에서 올해 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갈등이 전면전처럼 크게 번지기보다는 사이버 공격이나 베네수엘라 야권에 대한 정치적 지원, 카리브해 마약 조직 단속 과정에서의 해상 충돌 같은 비정규적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요.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외교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경제 회복을 위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미국의 영향력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남아 있어요. 반대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중남미에서 미·중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기획·구성=정해민 기자, 조선일보(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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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볼리바르

 

'해방자'라 불린 사나이… 독립 이끌어 남미합중국 세워

스페인 식민지 베네수엘라서 태어나 미국을 보며 독립과 합중국 꿈꿔
스페인 정규군과의 전쟁 이끌어 지금의 콜롬비아·페루 일대서 승리
1819년 합중국 '그란 콜롬비아' 세워… 볼리바르 사후에 내분으로 쪼개져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던 베네수엘라 외교관이 화제가 됐어요.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내가 읽던 책"이라며 소셜미디어에 '볼리바르, 영웅, 천재 그리고 보편적 사고'의 표지를 올렸어요.

 

시몬 볼리바르(Boliva·1783~1830)는 어떤 사람이기에 베네수엘라 외교관이 트럼프의 연설을 듣는 대신 그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걸까요?

◇'남아메리카 합중국' 꿈꿨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는 지금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파나마를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한 남아메리카의 독립 영웅입니다. 오늘날에도 볼리바르는 남아메리카의 '해방자'이자 '국부'로 추앙받고 있어요. '볼리비아'라는 나라 이름, 베네수엘라 화폐 단위 '볼리바르'는 모두 그의 이름을 딴 겁니다.
 

 

남아메리카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미합중국을 꿈꾸며 ‘그란 콜롬비아’를 세웠지만 연방국가는 볼리바르 사후 쪼개지고 맙니다. /위키피디아 

 

볼리바르는 18세기 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남아메리카는 약 300년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죠.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대농장과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스페인 상류층 출신이었어요. 그는 가정교사를 통해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가 역설한 자유, 평등, 해방의 가치를 배웠어요. 스페인에서 유학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803년부터 프랑스와 미국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 독립을 꿈꾸게 됩니다. 특히 미국이 독립 후 연방국가로 발전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죠. 그는 남아메리카 국가들도 독립 후 미국처럼 합중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807년 베네수엘라로 돌아온 볼리바르는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볼리바르가 흑인 노예를 위해서,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해서, 메스티소(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를 위해서 독립을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볼리바르의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은 '남아메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스페인 식민 세력에 차별받던 크리오요(중남미로 이주한 스페인계 백인 후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크리오요는 유럽인과 같은 피가 흘렀지만, 식민지 정부 요직을 차지하기 어려웠어요. 남아메리카 출신 크리오요가 남아메리카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볼리바르의 생각이었습니다.

◇"혁명은 바다에서 한 쟁기질"
 

 

볼리바르는 1810년부터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군과 전쟁을 벌입니다. 정규군과 전투는 어려웠어요. 볼리바르는 잇달아 전투에서 패배하며 1814년 아이티로 망명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볼리바르는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는 1819년 2월에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해 의회를 구성하고 '그란 콜롬비아' 혁명정부 수립을 공표합니다. 그 뒤로 1824년까지 베네수엘라, 누에바 그라나다(콜롬비아와 파나마), 키토(에콰도르),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일대에서 스페인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볼리바르는 지금의 남미 6개국(베네수엘라·콜롬비아·파나마·에콰도르·볼리비아·페루)을 독립시켰고, '해방자(El Libertator)'라는 별명을 얻어요.

미국 같은 연방제 국가를 꿈꿨던 볼리바르는 그란 콜롬비아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국가 통합에 힘썼어요. 그는 해방된 남미가 유럽 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려면 남미의 여러 국가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란 콜롬비아는 독립 직후부터 삐걱거립니다. 연방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어요. 유럽과 미국도 남미 대륙에 강력한 국가가 탄생하는 걸 원치 않았죠. 결국 시몬 볼리바르는 분열로 치닫는 나라를 어찌하지 못하고 1830년 대통령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는 마지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연방으로 남아 있기를 간청합니다. 분열된다면 여러분은 조국을 암살한 사람이 되고, 여러분 자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꼴이 될 겁니다." 볼리바르는 은둔에 들어갔다가 그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47세의 젊은 나이였죠.

그의 마지막 연설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1831년 그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 누에바 그라다나, 에콰도르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볼리바르는 생전에 그란 콜롬비아의 분열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혁명을 위해 싸운 인간은 결국 바다에서 쟁기질했을 뿐입니다." 스페인과 싸워 쟁취한 독립이 무의미한 노력이었다는 회한이었죠. "세계사에서 3대 바보는 예수 그리스도, 돈키호테, 그리고 나다." 볼리바르가 사망 며칠 전 의사에게 남긴 말로 전해집니다.

남미합중국이란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볼리바르는 남미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외세에 맞서 독립을 이뤄내고, 강한 남미를 꿈꿨던 남미인이니까요.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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