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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을 먹지 말걸 그랬다] [치솟는 금값] [금수저 돌 선물] ....

뚝섬 2025. 2. 16. 05:40

[엿을 먹지 말걸 그랬다]

[치솟는 금값] [금수저 돌 선물]

['산이 저문다] 

 

 

 

엿을 먹지 말걸 그랬다 

 

금값 상승과 함께 금니 매입 업체도 붐비고 있다. /금니메이트

 

엿을 먹었다. 입시를 앞둔 딸의 합격을 기원한다며 누가 준 선물이었다. 그동안 엿을 먹다 탈이 난 적도 없었기에 무심코 하나를 입안에 넣었다. 두어 번 씹었을까. 입안이 불길하게 허전해졌다. 나이 50 넘으면 함부로 엿 먹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밖으로 꺼낸 엿에 군데군데 광택이 보였다. 충치를 치료한 뒤 빈자리에 때운 금(인레인)이 엿에 들러붙어 떨어져 나온 것이다. 대낮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 괴상하고 끈적한 덩어리를 물로 씻으며 엿에서 금을 분리했다. 얼마 전 스케일링을 하러 갔을 때 치과 의사가 한 말이 그 순간 환청처럼 들려왔다. “앞으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딱딱한 것은 드시지 말고요.”

 

누구나 살다 보면 입속에 ‘금광(金鑛)’이 생긴다. 금니나 인레인은 밥벌이를 하며 악물고 씹어 삼킨 세월의 흔적이다. 영구적이지는 않다. 약 10~15년마다 갈아줘야 한다. 내부에 또 탈이 나거나 문제가 있으면 맥없이 떨어져 나올 수도 있다. 분리한 인레인을 들고 치과에 갔더니 “교체할 때가 됐다는 신호”라고 했다.

 

몇 년 전에 구둣방 옆에 붙은 ‘금이빨 삽니다’를 보고 그 유통 경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수명을 다한 금니는 어떻게 거래되고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는 걸까. 인터넷에 ‘금니를 판매하고 싶다’는 글과 전화번호를 남기자 한 업체에서 곧장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네 구둣방보다 더 후하게 드려요. 등기나 택배로 보내주시면 감정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치아 치료 후 통째로 씌우는 ‘크라운’은 금 함량이 40%에서 79% 사이, 일부분만 금으로 때운 인레인은 금 함량이 78~90%라고 한다. 귀금속점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3가로 갔다. 후미진 골목길 어느 계단에 ‘폐금 매입’이 보였다. 오래된 금인 ‘고금’, 여러 금속과 섞인 ‘잡금’ 등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금이 모이는 셈이었다.

 

이번에 입에서 캔 금을 싸들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이름과 연락처를 장부에 적었다. 저울로 잰 무게는 1.64그램. 시세표를 보더니 16만7000원이라고 했다. “금값이 가파르게 올랐다”며 업주가 말했다. “치금(齒金)을 버리고 가볍게들 다루는데 그러면 안 돼요. 그것도 금입니다, 금!” 엿 먹다가 금 봤다. 잠깐 횡재한 기분이었지만 더 비싼 금을 입에 넣게 생겼다. 엿을 먹지 말걸 그랬다.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보여주고 있다. 폐금도 녹여서 정제 과정을 거치면 이런 형태로 바뀐다. /뉴스1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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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금값 

 

금값이 치솟으면서 시중은행에서 파는 골드바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고 한다. 이제라도 금을 사든가 금 ETF에 투자해야 하나, 아니면 장롱 속에 넣어둔 금반지를 값 올랐을 때 팔아치워야 하나 고민하면서 금은방 거리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 안팎에 불과한 초저금리 시대에 금 시세와 금 관련 투자 상품 수익률이 올 초 대비 30% 가까이 오른 탓이다.

▶IMF 외환 위기 직후 우리 국민은 장롱 속 금반지를 내놓으며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애국심 때문에 국민은 금 투자에서는 손해 본 셈이 됐다. 당시는 국제 금값이 약세였기 때문이다. 1980년 트로이온스(약 8.3돈)당 680달러 정도였던 국제 금값은 1985년 300달러를 밑돌 정도로 반 토막 났다. 2007년이 되어서야 국제 금값이 간신히 1980년 시세를 회복했다. 돈 궁할 때 팔아 쓸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가정에서는 금을 비상금처럼 여기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오랫동안 별 매력 없는 투자 자산으로 외면받았다. 
 

 

▶그렇던 금이 진짜 금값이 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부터다.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안전한 투자 자산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 위기가 벌어진 2011년 9월엔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인 1900달러까지 올랐다. 이제는 금도 가격 급등락이 심한 투자 자산이다. 2013년 4월 국제 금값이 하루 만에 10% 가까이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자 중국의 큰손 아줌마부대 '따마'들이 대거 금 사들이기에 나섰다. 금값이 더 떨어질 리 없다고 보고 전 세계에서 가장 금 좋아하는 중국의 큰손들이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국제 금값은 그로부터 더 떨어져 최고가 대비 45%나 폭락했다. 중국 큰손들도 금 투자로 상당한 손실을 본 것이다.

▶몇 년 횡보하던 금값이 슬금슬금 오르더니 올 들어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미·중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중국 등 미국과 갈등을 겪는 나라가 적극적으로 금을 사들인다. 작년에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인 금이 50년 만에 최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국제 시세 상승에다 국내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심리까지 가세하고 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자산가들은 일찌감치 금 투자에 뛰어들어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이미 작년 말부터 달러 등 현금 확보에 나선 기업들이 있었다. 치솟는 금, 달러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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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돌 선물

 

아기 돌 선물로 금반지 대신 금수저가 등장해 인기를 모은다는 보도가 나왔다. 알아보니 진짜 숟갈로 쓰기는 힘들고 금 반 돈이나 한 돈으로 시늉만 낸 숟갈이다. 숟가락 모양으로 만든 반지도 있고 스푼과 포크 세트도 나와 있다. 자식한테 금수저 타고난 것 같은 팔자를 물려줄 수 없는 부모들이 돌잔치 때만이라도 한번 손에 쥐여주라는 상술이다.

▶대학 나와도 일자리 잡기 힘들고 취직해도 집 장만하기 힘든 사회가 되니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 '수저 계급론'이 오르내렸다.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 가운데 자신이 어느 등급에 해당되는지 알아보는 체크리스트도 인터넷에 나돌았다. 플라티늄 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플라스틱 수저하는 식으로 변형 수저론도 나왔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금수저 출신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정당한 노력보다는 부모 덕에 잘사는 사람이 많다는 인식 때문이다. 금수저가 갑질하면 국민의 분노 지수는 곱절로 높아진다. 얼마 전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난동 부린 30대는 모 중소기업 대표의 아들로 밝혀지면서 신상이 몽땅 털렸다. 그래선지 정치판에서는 서로 수저 계급이 낮다고 내세우기 바쁘다. 황교안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 생각하는데 흙수저 중의 무(無)수저"라고 했다. 흙수저보다 더 낮은 계급 무수저로 자칭하면서 주가를 높여온 대표 주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수저 계급론은 서양에서 왔을 것이다. '은숟갈 물고 태어난다'는 영어 표현이 있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은 숟갈을 비롯해 은제 식기는 유럽에서 주로 귀족들이 사용했다. 우리에게 수저는 은수저든 놋수저든 물질적 이미지는 아니었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는 저녁 밥상에 죽은 자식 은수저를 얹어놓고 눈물짓는 부모 마음을 담았다.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져가는 한국 사회에서 수저 계급론은 젊은이들의 자조를 담아낸다. 하지만 커다란 찌개 그릇에 온 식구가 숟가락 푹푹 담궈 나눠 먹는 문화에서 수저는 곧 가족애(
愛)다.

 

'애들은 자라서 객지로 나가고

당신과 나

둘만 사는 집이라

숟가락 두 개 젓가락 두 매

이렇게 수저통에 넣어두면 되는데

그래도 섭섭하여

애들 셋과 사위 하나를 보태서

숟가락 넷과 젓가락 네 매를 더

수저통에 꽂아 두었다'   (임술랑 시 '숟가락 여섯').

 

돌 맞은 아이에게 쥐여줘야 할 건 금수저보다는 부모 사랑일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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