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종료' 경고등 켜진 종교, '업데이트'만이 살길]
[종교개혁 500주년.. 면벌부 비판으로 시작된 개혁, 근대 세계를 열다]
'서비스 종료' 경고등 켜진 종교, '업데이트'만이 살길
[朝鮮칼럼]
통일교의 로비와 광장의 혐오 설교는 낡은 종교 OS의 오작동
세속 권력 내려놓고 가치·의미로 재부팅해야 유통기한 연장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은 지난 15일 경기 가평 통일교 '천정궁' 등 10개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압수수색 중인 통일교 천원궁과 천정궁 젼경. /뉴스1
인간의 뇌는 양자역학을 탐구하게끔 진화하지 않았다(그러니 이해 못 한다고 자책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진화론을 이해하게끔 진화하지도 않았다. 뇌는 오직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설계되었다. 가령, 원시 사바나 초원에서 수풀이 흔들릴 때, 우리 선조들의 뇌는 그것을 단순히 바람이라고 인식하는 것보다 포식자의 움직임이라고 믿게끔 작동했다. 그래야 유전자를 후대에 더 잘 물려줄 수 있었을 테니까.
인지심리학자 파스칼 보이어는 우리 마음속에 장착된 이 과민한 ‘행위자 탐지 장치’가 종교의 인지적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의도를 과잉 탐지하고 우연 속에서도 패턴을 읽어내며 약간 특이한 것을 유난히 잘 기억하게끔 진화했다. 이 모두가 수렵채집기에 살아남기 위한 뇌의 생존 전략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 현상 배후에 어떤 의도를 가진 초월적 존재가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자연스럽다. 배울 필요가 없는 본능이다.
이러한 인지적 부산물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뜻밖의 기능을 수행했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통찰처럼, 종교는 낯선 타인들을 하나의 도덕 공동체로 묶어주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로 변용되었다. 영장류가 서로에게 털 고르기를 해주며 유대감을 다지던 방식은 집단이 150명을 넘어가면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는데, 이때 인류 집단에 등장한 것이 바로 종교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초자연적 감시 체계는 집단 내 무임승차자나 배신자를 효과적으로 억제했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의례는 뇌에서 엔도르핀을 폭발시켜 수천·수만 명의 낯선 이들을 하나의 정서 공동체로 묶어냈다. 마치 도스(DOS)가 PC의 초기 운영체제였던 것처럼, 종교는 인류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첫 번째 운영체제였던 셈이다.
문제는 환경이 급변하여 종교가 오작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맹수가 우글거리는 초원이나 신정 일치의 부족 사회에 살지 않는다. 인류는 몇 차례의 거대한 지적 혁명을 거치며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 권한은 과학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권한은 법과 민주주의에 이양했다. 다음 단계의 운영 체제들이 생겨난 셈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 사회를 초기 운영 체제(종교) 위에서 작동시키려는 퇴행이 목격된다.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한 통일교의 은밀한 정치 로비 의혹이나,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혐오를 설교하며 정당 운영에도 깊숙이 개입하려는 일부 극우 개신교단의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2012년에는 창조론 단체가 청원 제도를 통해 고교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의 특정 사례(시조새, 말의 진화 등)를 삭제·수정하려던 시도를 과학자 집단이 가까스로 막아낸 사건도 있었다. 당시 과학 전문 학술지 ‘네이처’는 이를 과학기술 강국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이한 일로 묘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종교는 자신들이 세상의 입법자이자 과학 교과서의 검열관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젊은 세대가 종교를 외면하는 현상은 이러한 시대착오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대 종교인 비율은 2004년 45%에서 2014년 31%, 2021년 22%로 급감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2023년)에 따르면, “교회나 목사의 정치 발언이나 활동”에 대해 반대하는 비율이 무려 83.2%(교인), 90.2%(무종교인)에 이른다. 이미 대중은 정치에 관여하는 종교를 성스러운 조직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을 채우려는 이익 집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종교가 ‘도스 체제에서 윈도우 체제로의 전이’처럼 거듭날 방법은 있는가? 지식과 세계관의 영역은 포기하고 가치와 의미의 세계에 집중한다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파편화된 개인들을 묶어주고 공동체의 온기를 나누며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역할 말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종교가 가장 잘 해왔던 핵심 서비스가 아니던가?
세속의 권력을 탐하고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며 공적 교육의 편집권을 쥐고 흔들려는 종교에는 ‘서비스 종료’밖에 답이 없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종교라는 운영 체제 자체를 붕괴시킬 누더기 부가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민주주의와 법의 기초를 존중하고 사랑과 돌봄의 보편 가치를 실천적으로 ‘업데이트’할 때에야 종교의 유통 기한은 연장될 것이다.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진화학, 조선일보(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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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면벌부 비판으로 시작된 개혁, 근대 세계를 열다
교황청, 성당 증축하려 면벌부 팔자 루터가 반박문 발표해 개혁 시작
교황청 지배 벗어난 신교도 급증, 유럽 전체로 신교·구교 갈등 번져
30년 전쟁 후 종교의 자유 획득… 중세 막 내리고 근대가 시작됐어요
올해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리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유적을 찾는 관광객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대요.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뿐 아니라 유럽 세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어요. 나아가 유럽 문명이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이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루터, 면벌부를 공격하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 /위키피디아
유럽의 중세는 로마가톨릭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한 시대였어요. 로마가톨릭교의 수장인 교황은 왕보다 더 강력한 권위로 각국 정치·군사·사회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답니다. 교황 뜻을 거역하면 곧 신의 뜻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추방하거나 사형에 처할 큰 죄로 여겼어요.
15~16세기 무렵 오랜 시간 막강한 힘을 휘두른 교회와 성직자들이 부패하면서 부정 축재를 일삼고 황제·군주와 결탁해 농민들을 착취하는 일이 흔해졌어요. 그러자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났답니다. 법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부가 된 루터도 그중 하나였지요. 당시 교황청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고자 사람들에게 면벌부(2003년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면죄부'가 '면벌부'로 바뀜)를 팔았어요. "면벌부를 산 사람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는 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며 신도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인 것이죠. 보다 못한 루터는 면벌부를 파는 교황청과 로마가톨릭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답니다.
사실 루터는 종교개혁을 벌일 생각은 없었어요. 부패한 교회와 교황청을 비판하며 자신이 생각한 진정한 신앙을 주장했을 따름이었죠. 하지만 루터의 반박문은 교황과 황제의 억압을 받던 제후와 농민의 큰 지지를 얻었어요. 교황청은 루터를 파문하고 신교를 탄압했지만 오히려 신교도는 점점 늘어났고, 독일은 루터를 지지하는 신교 세력과 황제와 교황청을 지지하는 구교 세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어요.
◇구교와 신교의 갈등, 전쟁으로 치닫다
로마가톨릭교의 변화를 주장하는 종교개혁의 불길은 독일을 넘어 유럽 곳곳으로 번져나갔어요.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한 신학자 장 칼뱅(1509~1564)의 프로테스탄트도 큰 호응을 얻으며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 신자가 늘어났답니다.
그러자 유럽 곳곳에서는 신교도와 구교도 간 유혈 충돌이 벌어졌어요. 1572년 샤를 9세를 대신해 프랑스를 통치하던 섭정 카트린 드메디시스가 프랑스 신교도 지도자들을 유인해 살해하고 6일 만에 신교도 3000여명이 구교도에게 죽임을 당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이 대표적입니다.

1572년 프랑스 신교도들이 대거 학살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종교개혁으로 유럽 곳곳에서 신교도와 구교도의 유혈 충돌이 벌어졌어요. /위키피디아
두 세력의 갈등은 급기야 국가 간 전쟁으로도 번졌어요. 1618년 보헤미아(오늘날 체코)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칙령을 취소하자 신교도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30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교 국가였던 덴마크와 스웨덴이 신성로마제국이 다스리던 독일을 침공하자 구교 국가인 스페인이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하였어요. 신교 국가였던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였고요. 독일 전역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신교도와 구교도가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쟁터로 변했어요.
◇근대 세계의 문을 열다
유럽 최후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신교 국가의 승리로 끝났어요. 계속된 전쟁과 끊임없는 약탈, 학살로 독일은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지요. 1648년 30년 전쟁을 끝내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신교도는 종교의 자유를 얻었어요. 신교를 믿어도 더 이상 탄압받지 않게 된 것이죠.
종교개혁은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유럽 세계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중세를 지배하던 로마가톨릭 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은 힘을 잃었습니다.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난 군주들은 근대적인 국가와 절대왕정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지요.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어요. 중세 기독교는 부를 쌓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어요.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사유재산을 긍정하고 근면 성실하게 일해 자본을 모으는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결과 부를 많이 쌓은 상공업자들이 자본가가 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지요. 근대를 대표하는 평등, 자유, 이성과 같은 가치도 종교의 자유와 신 앞의 평등을 주장한 종교개혁을 거쳐 발전하게 되었어요.
☞청교도(Puritan)와 장로교회
영국에서 칼뱅의 프로테스탄트를 따르는 신자를 청교도라고 불렀어요. 청교도는 크게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의 영향을 받은 장로파와 철저한 신앙의 자유를 주장한 독립파로 나뉘어 있었답니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청교도를 탄압하자 청교도 장로파 일부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넘어갔어요. 이들은 장로를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미국 장로교회를 세웠지요. 미국 장로교는 선교사 언더우드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약 70%를 장로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승호 인천 포스코고 역사 교과 교사, 조선일보(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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