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 장군 75주기]
[국군 희생으로 그어진 휴전선, 한 정권이 양보할 수 있나]
[얼어붙은 대지와 포연]
워커 장군 75주기

미 육사를 졸업한 월튼 워커(walker)는 1차 대전 때 기관총 중대장으로 지옥 같던 참호전에서 살아남았다. 2차 대전이 터지자 패튼 장군의 기갑부대 선봉장이 됐다. 패튼과 함께 독일 본토까지 진격했다. 워커의 부대는 진격 속도가 빨라 ‘유령 군단’으로 불렸다. 패튼은 워커에게 “내 군단 중 자네 부대가 가장 공격적”이라며 중장 계급장을 직접 달아줬다. 패튼이 1945년 12월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워커는 가슴을 쳤다.
▶6·25 발발 한 달여 만에 한국은 국토의 90%를 잃었다. 일본의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이 한국에 왔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망명을 검토할 정도로 전세가 급박했다. 워커는 “지휘관은 어디서 싸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패튼 말대로 최전선을 직접 둘러보고 낙동강에 최후 방어선을 쳤다. 사기가 바닥인 미군 앞에서 “버티거나 죽거나(Stand or die)”라고 했다. 국군에겐 “내가 미국인이지만 죽더라도 이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워커는 미친 듯 전선을 달리며 구멍을 막아냈다.
▶워커 전술은 ‘기동 방어’였다. 적은 병력으로 긴 전선을 막으려면 기동력이 중요했다. 호남을 휩쓸던 북한군 6사단에 마산이 뚫릴 뻔했지만 해병 여단을 긴급 투입해 불을 껐다. 공격으로 방어했다. 혈전이 벌어진 다부동 지역은 백선엽 장군의 한국군 1사단에 맡겼다. 최근 방한한 워커 장군 손자가 “할아버지와 백 장군은 아버지와 아들 같았다”고 했다. 워커가 낙동강에서 버티지 못했으면 맥아더의 인천 상륙도 없었고, 한국도 없었을 것이다.
▶미군은 전투화를 ‘전투 부츠(combat boots)’ ‘군용 부츠(military boots)’라고 한다. ‘워커’로 부르는 것은 한국군이 유일하다. 영어 ‘걷는 사람’에서 나온 콩글리시로 보이지만, 워커 장군과 관련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전쟁 초 전투화 상자를 보고 한국 노무자가 ‘이거 이름이 뭐냐’고 했는데 미군이 책임자 이름을 묻는 줄 알고 ‘워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워커 부대는 낙동강을 건너 북진해 평양에 사령부를 차렸다. 중공군 개입만 없었으면 통일을 이뤘을 것이다.
▶워커 아들도 대위로 참전해 낙동강에서 싸웠다. 1950년 12월 워커 장군은 아들이 받은 훈장을 직접 달아주려고 군용차를 타고 의정부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국군 트럭과 충돌했다. 지금의 도봉역 부근이었다. 5년 전 패튼처럼 교통사고였다. 워커 장군이 묻힌 미 알링턴 국립묘지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오늘(23일)이 워커 장군 75주기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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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희생으로 그어진 휴전선, 한 정권이 양보할 수 있나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모습. /뉴스1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9월 군사분계선(MDL) 기준을 북한 측에 더 유리하게 바꾼 지침서를 전방 부대에 지시했다. 최전방 부대는 그동안 우리 군 지도에 표기된 MDL을 바탕으로 대북 작전을 했다. 그런데 지침서에는 우리 군 MDL과 유엔군사령부 MDL이 다르면 둘 중 더 남쪽 선을 MDL로 간주하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이에 따라 MDL이 기존보다 남쪽으로 수십 미터 후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분계선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1292개의 표지판을 세워 경계를 구분했는데, 유실돼 지금은 200여 개만 남아있다. 그사이 우리 군과 유엔사는 각자 MDL을 측량해 지도에 표기해왔다. 현재 우리 군과 유엔사의 분계선은 60%가량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은 측량을 핑계로 분계선을 꾸준히 침범했다. 작년 4월부터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분계선 일대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하는 ‘국경선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MDL 침범이 더욱 잦아졌다. 이번 지침서 하달은 북한의 침범을 용인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와 같은 국경선 자진 후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다. 중국과 인도는 히말라야 일대에서 국경 분쟁으로 난투극까지 벌였고,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수십 미터의 차이를 두고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합참의 지침서 하달은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겠다며 대북 방송을 50년 만에 중단했고, 북한이 일방 파기했던 9·19 군사 합의 복원을 선언했다. 한미 연합 훈련을 미뤘고, 필요하면 중단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더니 국경선 후퇴나 마찬가지인 분계선 지침서까지 만들어 하달했다. 지금 분계선은 6·25 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 끝에 만들어졌다. 많은 국군 장병이 몇 미터라도 더 나아가려고 희생했다. 이번 지침서는 그 무거운 희생을 무시하는 가벼운 결정이다. 한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선일보(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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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대지와 포연

2025년이 저물어 간다. 포연 속에서 또 한 해를 마감하는 나라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롭고 풍족한 삶을 원한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탁은 웃음과 유머가 그치지 않는다. 자녀들은 서로 핀잔을 주고, 아버지가 인상을 쓰고 어머니가 짜증을 내도, 매일 그렇게 우당탕 쿵쾅할 수 있는 가족이 진정 화목한 가족이다. 소박한 음식을 들고 방문한 이웃은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며 미소를 띤 채 돌아간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거리에는 다정한 연인보다 사실은 바쁘고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화려한 거리, 번쩍이는 쇼윈도는 이들에게 평소보다 더 짙은 소외감을 준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소망이란 형태로 남아 소외감을 이겨내게 한다. 어두운 참호 안에서 추위에 떨면서도 그런 희망을 잃지 않던 시대와 병사들이 있었다. 해가 뜨면, 내일이 되면 뭔가 달라지리라는 생각은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힘이 언제나 이전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이었다.
세상의 한편에 또 다른 망상이 있다. 무언가를 저주하고, 없애고, 보복하면 더 평화롭고 안정되고 정의로운 세상이 내려 앉는다는 망상이다. 전선의 참호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병사도 있었고, 호화로운 식탁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또 어두운 골목에 서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이 꿈꾸는 행복한 순간은 같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 즉 세상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판단하고 제거하는 방법은 다르다. 이러한 접근법의 차이가 사회적 분노, 폭동, 전쟁을 낳는다. 그것이 주는 파괴와 인간성 상실의 고통 속에서 누군가는 소박한 꿈을, 또 누군가는 망상적 분노를 품는다. 지금 우리의 세계는 성급한 분노와 폭력적 망상이 솟구치고 있다. 2026년은 인류에게 시험대가 되는 한 해일 것 같다.
-임용한 역사학자, 조선일보(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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