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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근무 '조르바의 후예']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

뚝섬 2024. 6. 29. 07:46

[주 6일 근무 '조르바의 후예']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되는 게 없는 韓, 안 되는 게 없는 日'.. 차이는 政治다]

 

 

 

주 6일 근무 '조르바의 후예'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인 이미지를 ‘게으르고 무책임한 국민’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주인공 조르바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채 무일푼 떠돌이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산다. “내가 돈을 댈 테니 크레타섬에 가서 갈탄을 캐자”는 사업 제안을 받고는 “내 마음이 내켜야 간다. 인간은 자유라는 뜻”이라며 배짱을 튕긴다. 조르바는 광산 운영 자금을 술과 매춘으로 탕진하고도 ‘자유’ 운운하며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10여 년 전 고대 올림픽 발상지, 올림피아를 방문했을 때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올림피아 유적지의 발견과 발굴 모두 프랑스·독일 고고학팀에 의해 이뤄졌는데, 추가 발굴 작업도 독일팀이 진행하고 있었다. 올림피아 박물관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동시대에 만들어진 제우스 신전 조각 등 뛰어난 유적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 발굴팀은 왜 없지?’ ‘올림피아 조각을 왜 더 홍보하지 않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15년 그리스는 국가부도 사태로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런데 국민들이 긴축 요구를 거부했다. ‘조르바의 후예’스러운 모습이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주라”는 포퓰리즘 정치가 40여 년 지속된 탓에 노동 인구 4명 중 1명이 공무원인 나라, 대학 학부는 물론 석·박사 과정까지 공짜인 나라, 퇴직자가 생애 월급의 95%를 죽을 때까지 연금으로 받는 나라가 됐다. 당연히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는데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사회당 정부의 부총리는 “우리 모두 같이 해먹지 않았냐”면서 조르바식 변명을 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의 영어 관용구 “It’s all Greek to me”는 그리스가 서양 철학 원조국임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해운왕은 이름을 ‘아리스토틀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로 지었다. 그리스인들은 “너희 선조들이 거의 원시인일 때 우리 선조들은 철학을 했다”면서 다른 국민들 기를 죽인다. 서양 문명을 만든 사람들인 건 사실이다.

 

▶‘유럽의 병자’ 그리스가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집권한 중도 우파 정부가 공무원 감축, 세금 인상, 공기업 민영화, 연금 삭감 등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진행한 결과, ‘우등 국가’로 변신 중이다. 물가·성장·고용을 종합 평가해 ‘1등 국가’를 선정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해 그리스를 ‘올해의 국가’로 뽑았다. 최근 그리스에선 주 6일 근무를 합법화하는 법까지 통과됐다. ‘조르바식 삶’과의 이별 선언으로 보인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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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해전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들을 "바다에 빠진 동료들 구하지 않았다"
엉뚱한 이유 들어 처형한 아테네, 해군 전멸하고 스파르타에 멸망해
변덕스러운 민심은 敵보다 위험하니 국민 스스로 경계하며 후보 검증해야

대통령 파면은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증명했다. 탄핵 과정 자체가 살아있는 시민교육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여론 정치가 독과(毒果)를 낳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는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이 내장되어 있다. 단순히 민중의 요구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심각한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낼 수 없다.

대중영합주의가 나라를 파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독재가 대중의 적극적 동의와 묵인 위에서 진행된다는 대중독재론이 의미심장하다. 히틀러는 다수 독일 시민의 지지로 합법적으로 집권했을 뿐 아니라 제3제국의 욱일승천은 당시 독일 대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 진행되었다. 정치 전문가들과 언론의 허를 찌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좌충우돌도 미국 대중의 적극적 지지 위에서 가능했다.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포퓰리즘의 의미를 숙고(熟考)해야 오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포퓰리즘적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이어져 나라를 망친 고전적 사례가 아르기누사이 해전(BC 406)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겨룬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때의 전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실질적 승부처는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비롯된 '장군들의 재판'이었다. 이 해전에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승리했지만 침몰한 아테네 전함의 부유물(浮游物)에 승무원 1000여 명이 아직 매달려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폭풍우가 다가오는 데다 스파르타군 추격에 바빴던 8명의 아테네 장군들은 구조 작업에 나설 수 없었다.

승전보에 환호하며 장군들을 기리는 법안을 민회에서 결의했던 아테네 시민들은 구조 지연에 분노하며 장군들을 재판에 회부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반전(反轉)이었다. 군중의 표변에 반대한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유일했다. 그리하여 아테네 장군 2명이 망명하고 6명은 처형된다. 정확한 사정을 장군들의 처형 직후 알게 된 아테네 시민들이 뒤늦게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변덕스러운 민심이 숙련된 해군 지휘부 전체를 제거한 것이다. 1년 후 아이고스포타미 해전에서 아테네 해군은 전멸했다. 해양 제국 아테네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적군(敵軍)이 아니라 포퓰리즘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에서도 대중영합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는 이재명 후보다. 이에 비해 안희정·안철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균형감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정책의 포퓰리스트적 함의가 특히 심각하다. 국가재정으로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를 새로 만들겠다는 문재인의 공약이야말로 전형적인 대중영합주의다. 늦은 정년과 고액 연금을 감안하면 공공 부문의 81만개 일자리는 앞으로 수십년간 매해 수십조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필요로 한다. 4대강 사업을 매년 새로 하는 격이다. 훨씬 열악한 처지의 비(非)공공 부문 1000만명이 공공 부문 80만명을 부양하는 망국(亡國)의 공약이다. 국가 부도 상태인 공무원 천국 그리스의 길을 따르는 위험한 발상이다.

문 후보는 강력한 기득권인 대기업 노조와 공무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문재인식 포퓰리즘은 노조 바깥에서 고통받는 천문학적 숫자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임금 정규직 근로자를 외면한다. 거대 노조와 공무원이 자신의 주요 지지 기반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사드 배치 이슈에서도 민심을 거역한다. 최근의 KBS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드 배치 찬성 52%, 반대 35%로 찬성이 절반을 넘는다. 다른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사드 배치 찬성이 반대보다 훨씬 많다. 이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문재인의 포퓰리즘이 당파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사안에 따라 국익도 무시하고 국민 다수의 의사도 거부하면서 지지층만을 추종한다.

'Anything but Park'(박근혜 지우기)을 바라는 민심이 차기 대선을 쓰나미처럼 휩쓸어가고 있다. 박근혜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건 미래의 정치 리더십이며 절박한 우리의 삶이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포퓰리즘이 민생 경제와 국가 안보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변덕스러운 여론을 넘어서는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화급한 이유다. 2012년의 중대 실수가 반복되면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는 국망(國亡)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후보자들을 매의 눈으로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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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게 없는 韓, 안 되는 게 없는 日'.. 차이는 政治다 

 

한국이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침체에 허덕이는 것과 반대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끝내고 회생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청년들이 직장을 골라 갈 만큼 일자리가 넘치고 기업들이 경쟁력을 되찾았으며 부동산과 시장이 살아났다. 모든 수치와 경제지표들이 뚜렷한 호전세를 보이며 나라 전체가 자신감을 회복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거꾸로였다. 당시 한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조기 극복한 성공 모델로 꼽힌 반면 일본 경제는 빈사 상태에 허덕였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계속된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져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세계 시장에서 밀린 일본 기업들은 삼성전자·현대차를 배우자며 한국 연구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다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30년'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일본 경제가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일본 경제가 수렁에서 탈출한 데는 여러 비결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베 정부의 리더십이라는 데 이의 달 사람은 없다. 최근 아베 총리는 부인이 연루된 국유지 매각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경제 운영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비슷한 시기 집권한 아베는 과감한 돈 풀기와 규제 완화 친기업 정책을 통해 악순환을 선(善)순환으로 반전시켰다. 2012년 12월 아베 집권 당시 1만 선이던 닛케이 주가지수는 현재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유효구인배율은 1.43으로 20여 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 희망자 1명당 1.43개의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이 보기엔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부활은 정치 리더십이 제 기능을 하면 나라와 경제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아베 총리는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산업 경쟁력 복원이라는 '세 개의 화살' 정책을 집권 후 6개월 사이에 완성해 전광석화처럼 추진했다. 무제한 돈을 풀겠다며 사상 최고 강도의 통화 팽창에 나섰고 과격하다는 비명이 나올 만큼 강력한 엔저(低)정책을 폈다. 그런 정책을 국제사회가 용인해줄 환경도 미리 조성했다. 마침내 수출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일자리와 소비가 살아나는 선순환에 시동이 걸렸다.

돈 풀기 비상 처방과 함께 규제를 풀고 곳곳에 전략특구를 세워 새로운 산업을 육성했다. 부실기업 사업 재편을 돕는 법도 만들었다. 한국 국회가 그토록 발목 잡다가 겨우 누더기로 통과시킨 '원샷법(기업활력제고촉진법)'이 일본에선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규제 천국으로 불렸던 일본이 지금은 바이오·인공지능·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됐다.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안 되는 새 사업이 일본에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우리에게 아베는 과거사 반성이 미흡하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경제 살리기 리더십에선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는 "이웃 나라 착취"라는 국제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엔저를 밀어붙였고, 규제 완화에 저항하는 이익단체 반발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소통과 설득으로 국민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덕이기도 했다. 그는 기업인·전문가·이익단체 등이 참여하는 다양한 민·관 위원회를 만들어 각계 의견을 반영했고, 언론을 통해 국가 개혁 방향을 수시로 국민에게 설명했다. '세 개의 화살'이라는 간명한 구호로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자 재계가 화답하고 나섰다. 엔저 '선물'을 받은 대기업들은 수출로 번 이익으로 일자리를 늘렸다. 여가 시간을 늘려 소비를 촉진시키려는 정책에도 많은 기업들이 호응했다. 야당이 아베 정부의 법안을 방해하는 일도, 대기업 노조가 구조조정에 항의해 파업하는 일도 없었다. 정치가 주도하고 관료와 재계가 힘을 합친 산·관·정(産·官·政) 협력의 산물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일본 부활이다.

일본이 부활한 비결을 뒤집으면 한국의 실패 이유가 된다. 국가 전략을 이끌어가는 정치 리더십 실종, 정부의 발목을 잡아 실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회,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된 노조와 이익단체들은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굳어지고 있다. 모두가 답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풀지 못하는 불능(不能) 국가가 지금 우리 모습이다. 얼마 전 경총 회장이 "한국은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되는 게 없다"고 했다. 반대로 일본은 '안 되는 게 없는 나라'가 됐다. 이 극적 역전의 원인은 결국 '정치'다. 우리 대선 주자 중에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 후보가 있는가. 대선 판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조선일보(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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