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혼술이 왜 문제냐고요?] [“혼술은 나와 데이트하며 기분을.. ] ....

뚝섬 2024. 5. 6. 08:31

[“혼술이 왜 문제냐고요? 더 위험하니까요.” 혼술을 특히 조심해야 할 사람들]

[“혼술은 나와 데이트하며 기분을 다스리는 작은 사치”]

[日 음식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일인분의 삶]  

[혼밥 ∙ 혼영]

 

 

 

혼술이 왜 문제냐고요? 더 위험하니까요.” 혼술을 특히 조심해야 할 사람들

 

[김지용의 마음처방]

 

흔히들 알코올 중독이라 말하는 ‘알코올 사용장애’는 생각보다 더 흔한 질환이다. 보건복지부 시행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평생 유병률이 11.6%에 이른다. 전 인구의 9명 중 1명이 술로 인한 인생의 큰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 중 단 2.6%만이 그해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음주 문제가 사회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 사회가 음주에 관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요약하자면 술 문제는 많은데, 그를 문제시하지 않기에 치료받지도 않는다.

이렇듯 음주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치료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주류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진료실에서 유독 자주 듣는 변화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단연코 ‘혼술’이다. 혼자서 술을 마신다는 환자분들이 유독 늘어났다. 원인인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혼술에 대한 대중문화 콘텐츠들도 눈에 많이 띈다. 드라마, 유튜브 등을 가리지 않고 등장인물이 혼자 술을 마시고, 역시 혼자 술 마시며 시청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코로나19 시기에 외로움과 적적함에 혼자 음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게 생활 패턴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진료실에서 많이 듣는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되묻는다.

“그게 문제예요?”

흔히들 혼자 조금씩 음주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술의 경우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더 높다. 자신의 느낌상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는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미국의 18세 청소년 1만5000명을 장기간 추적 관찰했을 때, 혼술 하는 사람이 30대 중반에 알코올 사용장애를 겪을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 가지 큰 트렌드는 술 종류의 다양화이다. 예전에는 소주, 맥주 정도만을 찾았다면 이제는 위스키, 와인 등 더 다양한 술이 대중화되었다. 동시에 도수가 낮아져 가벼움과 맛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나타났다. 소주 도수는 계속 낮아지며, 도수 높은 위스키를 탄산수에 섞어 마시는 하이볼이 유행을 끌고 있고, 향이 첨가된 술도 많다. 이는 마케팅 타깃이 기존 주류 시장의 충성 고객인 남성에서 젊은 여성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더 많은 여성이 음주의 세계로 편입하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 항상 남성이 2배 이상의 알코올 사용장애 유병률을 보여왔지만, 최근에는 꾸준히 그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20, 30대 여성들의 고위험 음주율이 모든 연령대 중에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음주한다고 해서 모두가 알코올 사용장애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신경성 성격을 띤 생각이 많은 사람과 자극 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 더 위험하게 술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이런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혼술을 더욱 조심하고, 낮은 도수의 술이라고 방심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음주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활동을 찾기를 권한다. 아마도 그것이 스스로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동아일보(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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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은 나와 데이트하며 기분을 다스리는 작은 사치”

 

만화 ‘와카코와 술’ 원작자 신큐 치에 

 

일본 도쿄 근처 소도시의 거리에 있는 맨홀 뚜껑. 만화 '와카코와 술'의 주인공 와카코는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룰 때 “푸슈~” 하고 행복한 감탄사를 내뱉는다. /신큐 치에 SNS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성공한 먹방이다. 볼 때마다 침이 고이지만 옥에 티가 있다. 주인공 고로는 먹기는 잘 먹는데 마실 줄을 모른다. 실제로 술을 잘 못 하기 때문이다. 또 늘 외근 중에 식사를 하니 음주할 틈이 없다.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우롱차를 마시는 그를 보며 냉장고에서 술을 꺼낸다.

 

그런데 만화 ‘와카코와 술’은 정반대다. ‘고독한 미식가’의 여성 버전이랄까. 주인공 와카코는 스물여섯 살 직장인. 술맛을 아는 혀를 타고난 그녀는 퇴근길에 늘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풀 식당을 찾는다. 고독한 미식가’가 남긴 아쉬움과 갈증을 와카코가 당당히 해소하는 것을 보면서 한잔 더 마시게 된다.

 

“‘고독한 미식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만화를 시작할 땐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제 머릿속에선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드라마는 확실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만두를 먹을 때, 와카코라면 마땅히 맥주를 마시겠다고 생각하지요.”

 

와카코와 술’ 한국어판이 최근 20권까지 번역돼 나왔다. 드라마 ‘와카코와 술’도 인기다. 20~40대 여성 팬이 특히 많다. 원작자 신큐 치에(新久千映·44)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제가 음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음악, 캐릭터, 화장품 등을 애용할 만큼 동경하는 나라”라며 “한국 사람들이 ‘와카코와 술’을 좋아해 주셔서 지금도 계속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만화 '와카코와 술'은 20권까지 번역돼 나왔다. 혼자 당당히 술을 마시는 회사원 무라사키 와카코의 술집 순례기다. /AK커뮤니케이션즈

 

와카코 캐릭터는 내 자화상

 

‘와카코와 술’의 신큐 치에는 198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이 만화가는 얼굴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나를 닮은 와카코 캐릭터를 써달라”고 했다.

 

-모든 작품에는 씨앗이 있습니다. ‘와카코와 술’은 2011년 어떻게 탄생했나요.

 

“편집자와 술을 마시는 자리였습니다. ‘신큐씨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술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보지 않겠습니까?’라고 그가 툭 던졌지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때는 젊은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드물었고, 지금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에요. ‘그래, 혼자 마시는 여자 이야기를 재미나게 만들자’는 의욕이 솟았습니다.”

 

-와카코가 작가님과 닮았다고요?

 

“다양한 여자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편집자가 ‘주인공 얼굴을 신큐씨의 자화상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는 거예요. 그 말에 확 꽂혔습니다. 말수가 적은, 좀 특별한 주인공이 순식간에 완성됐지요.”

 

-만화 속 와카코는 늘 26세입니다. 늙지 않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있습니까.

 

“연재가 시작될 무렵의 와카코는 저 자신의 젊고 미숙한 인간성을 반영하고 있었어요. 지금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와카코는 원래 ‘26세라기보다 중년처럼 차분하고 좀 특이한 여자’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이에요. 복장은 젊은 사람들 패션을 참고해요. 딸을 보는 마음으로, 지금의 저는 입지 않지만 귀여운 옷을 입히곤 합니다.”

 

-혼자 마시는 술의 매력은 뭘까요.

 

남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아요. 누군가와 마실 때는 이야기나 소통이 큰 즐거움 중 하나지만, 혼자라면 순전히 술과 요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안주를 먹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요.”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작품은 최초인데, 작가님과 와카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주신다면.

 

“내성적인 면은 저와 똑같습니다. 노력은 하지만 저는 와카코만큼 긍정적이거나 관대하지는 않고요. ‘성인으로서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상향을 그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혼술’이라고 부르는데, 작가님도 혼술을 좋아하시나요?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사실 ‘혼술’이라는 단어는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정말 좋아합니다. 집에 있으면 매일 마시고, 밖에서 하는 건 취재를 겸해 한 달에 몇 번이려나. 취재 때문에 가는 건지, 좋아해서 가는 건지, 경계가 헷갈립니다. 하하.”

 

만화 원작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돼지갈비집을 방문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그는 잘 먹지만 술을 마실 줄 모른다. /TV도쿄 캡처(좌)/만화 원작 드라마 '와카코와 술'에서 술을 마시는 주인공 와카코. /대원엔터테인먼트

 

술, 안주, 그리고 나

 

와카코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도 혼술을 즐긴다. 신큐 치에는 “외향적인 사람은 누군가와 어울릴 때 마음의 재충전이 되고,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에 재충전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작가님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확실하게 내성적인 편입니다. 가끔 여러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매우 즐겁고 일상의 양식이 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또는 아주 가까운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더 안정돼요.”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룰 때 와카코는 “푸슈~” 하고 행복한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작가님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만화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아니요. 일본어로 술을 마신 후의 감탄사로 ‘푸하~’나 ‘우이~’ 등이 사용됩니다만, 평범하다고 생각해서 ‘푸슈’라고 해봤더니 편집자에게 ‘이걸 매번 정해진 대사로 사용합시다’ 하셨어요. 그때는 ‘진짜 이게 괜찮은 건가?’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와카코의 정체성이 되었지요.”

 

-작가님은 어떤 술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즉흥적이지만, 지금 그 술에 곁들이고 싶은 안주라면?

 

맥주부터 시작해 소주, 와인, 일본 술, 위스키 등 안주에 따라 뭐든지 마십니다. 요즘은 일 때문에 사용한 파르메산 치즈가 많이 남아 있어, 자주 채소와 함께 그릴에 구워 먹는데 질리지 않아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고요. ‘와카코와 술’ 한국판 드라마 스태프로부터 한국 소주를 선물받은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국 안주가 있을 때 아껴 마셨어요.”

 

-직접 음미한 적이 있는 음식만 그린다고 들었습니다.

 

“맛을 모르면 잘 그릴 수 없으니까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해산물입니다. 물고기는 얼굴의 균형이나 지느러미의 위치가 조금만 다르면 다른 물고기가 되어버립니다. 조개류는 모양이 불규칙하고 무늬도 복잡해 여전히 어렵지요.”

 

-작가님이 거주하는 히로시마의 실제 가게들이 많이 등장하지요? 혹시 ‘저희 가게 좀 만화에 소개해달라’는 요청은 없었는지요.

 

“네.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소재를 찾고 있으니까요. 평소에는 누가 추천한 가게에 가거나, 구글 지도로 가게를 찾곤 합니다. 전에는 목적 없이 걷다가 가게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체력이 부족해졌어요.”

 

-주량은 얼마나 되나요?

 

“보통 맥주를 한 잔 마신 후, 위에 나열한 술을 두세 잔 마십니다. 더 마시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조절해요. 물론 더 마시게 되는 날도 있고요.”

 

만화 '와카코와 술'의 이미지. 뜨거운 음식에서 나오는 김, 온기를 잘 표현한다. /AK커뮤니케이션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돈가스, 임연수어 사시미, 두부 튀김 구이, 새우 마요네즈, 토마토 계란 볶음, 만두 튀김, 문어회, 고기 두부, 채소 튀김, 생강 절임, 정어리 통조림, 명란젓, 베이컨 에그…. 이 만화를 펼치면 음식의 파도가 밀려온다. 술 생각이 절로 난다.

 

-만화에 ‘진정한 요리 실력을 알기 위해서는 계란말이를 맛보라’고 하셨지요?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술안주는 또 뭐가 있을까요?

 

“야채를 볶은 후 오므라이스를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한 번에 다양한 재료(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좋아요. 샐러드에 회나 햄을 얹은 간단한 안주는 가볍고 술이 잘 들어가지요.”

 

-와카코는 ‘오늘 밤은 나와 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와카코는 사람을 만날수록 기운이 나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한 뒤 리프레시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음식에서 나오는 김, 온기를 잘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식감’이에요. 생고기나 생선은 부드럽지만 가열하면 단단해집니다. 반면에 채소는 대부분 정반대예요. 날것일 때든 익었을 때든, 보는 것만으로 식감이 전해질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게의 디테일까지 그리려고 노력해요. 의자 모양도 가게에 따라 다르고, 깔끔한지 아니면 다양한 소품을 두는지 등 주인의 취향이 반영되거든요.”

 

-와카코의 혼술 같은 ‘작은 사치’가 있나요?

 

“저는 좀 좋은 옷을 사는 게 작은 사치예요. 하지만 역시 술과 맛있는 음식을 이길 만한 사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10대 시절에 깨달은 행복론이 이 작품의 뿌리’라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아가 그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밥이나 집, 삶의 기반이 있으면 못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것을 유지하거나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 노력합니다. 그 감정조차 잃어버리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이렇게 작은 행복론을 가지면 삶을 긍정하면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만화가의 기쁨과 슬픔은 각각 무엇인가요.

 

“저는 ‘이 작품을 읽고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즐겁다’ 같은 반응을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제 만화가 누군가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만화가의 슬픔이라면 ‘좋은 이야기를 계속 그릴 수 있을까’ 늘 불안하다는 거예요. 위에서 말한 행복론으로 이겨내려고 합니다.”

 

묻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작가는 “한국 독자님들, 감사합니다”라며 덧붙였다. “저녁 식사에 술을 함께하면 하루에 한 번은 행복한 시간이 생겨요. 저는 술을 좋아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기분을 다스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와카코와 술'의 원작자 신큐 치에가 조선일보 인터뷰를 위해 그린 자신의 모습 /AK커뮤니케이션즈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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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음식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속 불편한 세상… 혼자서 편히 먹으면 푸른 하늘까지 맛있더라”

원작자 구스미, 혼밥을 말하다 

 

고독한 미식가 ‘서울편’에서 돼지갈비집을 방문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TV도쿄 캡처

 

“좋은 음식을 어떻게 맛있게 먹을까. 이 문제는 하나의 전쟁입니다.” 지난 7일 도쿄 인근 기치조지에서 만난 일본 음식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 만화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久住昌之·65)씨는 “맛있는 식사는 내놓는 사람의 ‘좋은 음식’이라는 성(城)을 어떻게 함락시킬까 하는 싸움”이라고 했다.

 

구스미씨는 1994년부터 잡지에 연재된 ‘고독한 미식가’의 이야기 작가다. (그림을 담당했던 다니구치 지로씨는 2017년 세상을 떴다. 그 후 만화 연재는 중단됐다.) 이를 바탕으로 같은 이름의 음식 드라마가 2012년부터 제작돼 지난해 시즌 10까지 만들어졌다. 유명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松重豊)가 주인공 ‘고로’(이노가시라 고로)로 나와 일본 여러 도시, 때로는 한국 등 해외 각지에 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스미씨는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라며 “무슨 포도주에다, 어느 셰프의 프랑스 요리와 같이 값비싼 식당을 찾아가는 건 해보지도 않았고 싫어한다”고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를 연기한 유명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가 한 식당에서 혼자 덮밥을 먹고 있다. 작은 사진들은 동명인 원작 만화의 장면들. /TV도쿄·후소샤

 

음식은 여행… 늘 설레고 두근두근

 

-맛있는 음식의 정의는.

 

“첫째,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먹는 것이다. 좋은 음식도 처음 만난 지위 높은 사람과 함께 하면 긴장하고 맛이 없다. 또 하나는 배고플 때 먹으면 된다. 작품에선 ‘하라가 헷타’(배고프다는 뜻)라고 표현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배우인 마쓰시게 유타카는 촬영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촬영하러 온다. 너무 배고프니 정말 맛있게 먹는다. ‘푸른 하늘까지 맛있다’라고 하는 풍경이 먹는 장면에 담겨 있다.”(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식사하기 전 절실한 표정으로 ‘하라가 헷타’라는 독백을 한다.)

 

-주인공은 ‘혼밥’(혼자 식사)만 하더라.

 

“한국은 혼밥을 잘 안 한다고 들었다. 한국 식당은 혼밥하기엔 반찬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일본은 보통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도 편하다. 참, 일본도 한국 같은 곳이 있긴 하다.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은 저녁 식사가 포함돼 있는데 양이 많다. 가이세키(일본 연회용 요리)와 같은 코스가 나오니 다 먹을 수도 없다. 물어봤더니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굉장히 싫은 시스템이다. 한국 음식점들도 반찬을 더 줄이고 혼밥이 편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몇 년 있으면 혼밥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독한 미식가’에 많이 나오는, 골목 귀퉁이의 숨은 맛집을 고르는 원칙이 있나.

 

“‘가게를 고르는 원칙을 안 만든다’는 게 원칙이다. 예컨대 ‘노렌’(상점 앞에 쳐놓는 천)이나 간판을 보고 정한다고 하면, 맛집의 다른 힌트를 놓친다. 밖에서 봐도 알 수 있는 ‘좋은 가게’의 힌트는 많다. 가게 문 옆에 신발을 가지런히 놨는데 아주 예쁘거나,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깔끔하게 구석에 놓여 있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매일 가게 문 앞을 깔끔히 정리하는 사람이 만든 요리는 맛있다.”

 

-전에 음식을 여행에 비유했더라.

 

“모르는 장소로 가는 여행은 시작과 끝이 있고, 중간에 만남이 있다. 모르는 곳이니 불안하기도 하다. 낯선 가게에 들어갈 때 그런 여행 같은 기분이다. 두근두근한다. 그곳의 문화도, 역사도 모른 채 설레면서 들어간다. 그리고 반드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여행, 그리고 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일본 음식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가 7일 그의 작업실이 있는 도쿄도 외곽 기치조지역 인근에서 기자를 만나 미소를 짓고 있다. /성호철 특파원

 

-작품에 명대사가 많다. 스스로 하나만 꼽으면.

 

“내가 쓰는 모든 대사를 좋아한다. 쓰고 나선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웃으면서 또 쓴다. 만화에서 주인공이 중국집에서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대사가 ‘뭐야. 이것 봐. 이렇게 남았잖아’였다. 중국집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을 나무라니 주인공이 화내는 대사다. 식사하는 앞에서 가게 주인이 화를 내는 바람에 음식 맛이 없어져서 다 못 먹었다는 의미다. 사실 그런 가게가 없지 않다. 음식 먹는데 그 앞에서 화내면 안 된다. 내가 혼나는 사람의 기분이 돼버리니 맛이 없어진다. 음식을 먹는 일은 조용하고 풍요로운 행위여야 한다.”

 

-원작 만화는 일본의 거품경제 시기(버블기)인 1990년대에 시작했다.

 

“나는 버블기의 혜택을 전혀 못 받았다. 버블기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살았다. 당시는 버블기라서 일본 최초로 미식 붐이 일었다. 심지어 ‘비싼 버릇’(다카이 구세)이란 말이 유행했다. 프랑스 요리, 고가(高價) 포도주, 어디어디산(産) 고급 참치 등 엄청난 돈이 드는 음식문화가 인기였다. 난 그런 게 싫었다. 당시 알던 만화잡지 편집자가 ‘심지어 음식까지, 돈이 모든 걸 말하는 게 너무 싫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은 음식 만화를 그리자고 시작한 것이 ‘고독한 미식가’다.”

 

-음식 만화인데 문체는 ‘하드보일드(폭력적 주제를 무심하게 묘사)’다.

 

“맞는다. 음식 만화는 통통한 사람보다 꽉 마른 사람이 카레라이스를 먹으면서도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레가 부족하니 밥 한 숟가락에 이 정도만 카레를 곁들여야 마지막 밥까지 맞출 수 있다’는 진지함이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도 본래 하드보일드 하다. 웃는 낯이지만 칼을 들고 진지하게 만든다. 먹는 사람도 하드보일드 하게 음식을 대해야 한다.”

 

-서민 음식을 많이 다루는데, 본인 점심은 얼마짜리를 먹나.

 

“점심은 1000엔(약 9000원) 이내가 좋다. 워낙 고물가의 시대가 돼서 요즘은 1200엔 정도까지일까. 도쿄엔 좀처럼 없다. 도쿄의 유명 소바(메밀국수)집은 점심때 1인당 2000~3000엔씩 한다. 나는 1000엔 미만의 소바를 찾아서 먹는다. 수타(手打·손으로 뽑은 면)가 아니면 어떤가.”

 

드라마 주인공, 전날부터 굶고 촬영

 

-비싼 가게를 피하는 이유가 있나.

 

“긴장을 시켜서 싫다. 1만엔 넘는 고급 요리는 보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정작 드라마 속 식사는 1000엔을 훌쩍 넘고, 주인공은 많은 음식을 주문하던데.(고로씨는 보통 혼자서 3인분 정도를 시켜 다 먹는다.)

 

“많이 먹는 장면은 내 꿈이다. 소식(小食)이라 스모 선수처럼 많이 먹는 사람이 부럽다. 만화는 본래 히어로(영웅)를 그리는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엔 많이 먹는 주인공을 ‘수퍼맨’으로 만들었다. 단 주인공은 술을 못 마신다. 약점이 없으면 역시 히어로가 아니지 않은가. 대신 나는 술을 잘 마신다.”(구스미씨는 대부분 에피소드 말미에 직접 나와 실제 식당 주인과 함께 편안하게 술 한 잔 곁들인 식사를 한다. 극 중 고로씨는 술을 못 해 보통 시원한 우롱차를 시킨다.)

 

-3인분 시키면 음식 남기지 않나.

 

“다 먹는다. 주연 배우인 마쓰시게가 혹시 다 못 먹을까 봐, 전날 스태프가 가서 같은 메뉴를 먹어본다. 먹을 수 있는 양인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혼밥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인기다. 윤석열 대통령도 팬이라는데.

 

“요리사와 손님 사이에, 식사는 전쟁이다.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으로 공격하고 손님은 맛있게 먹어 반격한다. 혼밥은 더욱 그렇다. 이 가게에 들어갈지 결정하는 순간 승부는 이미 시작된다. 윤 대통령도 그렇고 한국 사람들도 매일같이 ‘결정’이라는 전쟁을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공감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한국엔 네 번 정도 방문했다. 서울엔 40년 전 친구들과 처음 갔는데 한국어 ‘맥주’를 기억했다가 시켰다. 얇게 채를 썬 양배추가 안주로 나와서 놀랐다. 상표도 안 붙은 막걸리도 인상적이었다. 포장마차 갔다가 옆 테이블에서 엄청 많이 먹어 놀라기도 했다. 5~6년 전에 아들과 서울에 갔는데, 그땐 우동이 참 맛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전주로 기억하는데… 살짝 시큼하게 신맛이 일품이었다. 작년엔 서울 광화문에서 있는 북엇국집 갔다. 복어보다 더 맛있었다.”

 

고독한 미식가

 

구스미 마사유키의 스토리에 고(故) 다니구치 지로가 작화한 만화는 잡지 ‘스파’에 1994년 처음 게재됐다.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중년 주인공(이노가시라 고로)이 혼자서 골목의 서민 식당을 즐기는 음식 만화다. 단행본은 20쇄 이상 찍은 스테디셀러다. 2012년 TV도쿄에서 드라마로 만들었고, 범죄 드라마에서 범인 역을 자주 했던 마쓰시게 유타카가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로 시즌 열 개를 방영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조선일보(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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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의 삶

 

2010년 윤고은의 소설 ‘1인용 식탁’의 주인공은 식탁을 공유하지 못하면 농담도, 더러 진담도 공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다. 점심시간에 홀로 남겨지는 게 괴로웠던 그녀는 결국 ‘혼밥’의 기술을 전수하는 학원에 등록한다. 졸업률이 15퍼센트라는 이 학원은 혼밥 레벨을 5단계로 구분했는데, 1단계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라면, 중간 단계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 최고 난도는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 먹기다.

 

하지만 이제 ‘혼밥’은 외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1 가구 역시 40퍼센트를 돌파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우리는 외로움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에만 집중하는 현대적 풍경을 발견한다. 요즘은 일행이 여럿이면 식당의 1-2인용 테이블을 붙여야 할 때도 많다. 혼밥은 혼술이나 혼영(혼자 영화 보기)처럼 다양한 분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일인분의 삶’이 가능해진 건 기술의 도움이 크다. 코로나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무인 점포는 더 이상 대면하지 않는 삶에 우리가 철저히 적응한 결과다. 이제 ‘혼자’의 의미는 외로움에서 편리함과 효율성으로 바뀌고 있다. 단골 카페의 주인이 말을 걸던 날,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MZ세대는 대면을 어려워하고 익명성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 있으면 저기를 꿈꾸는 게 인간이다. 현실이 외로우면 온라인에서라도 우리는 연결되기를 꿈꾼다. ‘1인용 식탁’에 등장하는 혼밥 학원의 졸업률이 불과 15퍼센트인 것도 학원을 졸업하면 ‘혼밥’의 외로움을 공유하던 ‘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혼밥 현상 뒤에 ‘홈파티’ 문화가 생기고, 함께 밥을 먹거나 같이 달리는 모임이 계속 생기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혼자이고 싶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는, 골딜록스는 어디쯤일까. 다가가면 아프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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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 혼영 

 

나홀로 삶 즐기는 이유?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고독, 즐길만 하신가요… Why?가 묻자 5864명이 답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배우 척 매카시는 사람들과 산책을 해주고 돈을 번다. 지난해 그가 시작한 '친구 대여(Rent-a-Friend)'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다. 매카시는 일감이 많지 않은 무명 배우였지만 이 부업은 조수들을 고용해야 할 만큼 번창하고 있다. 다른 도시와 외국에서도 '출장 산책' 주문이 쇄도한다.

매카시는 집 근처 공원과 거리를 고객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로 1마일(1.6km)에 7달러를 받는다. 사회적 관계를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포장한 셈이다. 이름 붙이자면 '고독 비즈니스'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산책하기 두렵거나 친구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자기 이야기를 누가 들어준다는 데 기뻐하며 다시 나를 찾는다"고 했다.

20~30대에서는 미혼과 만혼(晩婚), 40대 이후로는 이혼과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고독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는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만 관계의 응집력은 어느 때보다 느슨하다. '혼밥' '혼술' '혼영(나 홀로 영화)' '혼행(나 홀로 여행)' 같은 소비 패턴이 방증한다. 외로움을 감추기보다 즐기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Why?는 예스24에 의뢰해 지난 1~5일 설문조사를 했다. 5864명(여성 4398명)이 응답했다. 고독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가 드러났다.

혼술은 고난도, 혼밥·혼영은 가뿐

설문조사 응답자는 30대가 2096명(3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32%), 20대(22%) 순이었다. 혼밥·혼술·혼영·혼행 가운데 가장 어려운 걸 묻자 2277명(51%)이 혼술이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론 혼행(35%)을 까다로워했고, 혼밥(7%)과 혼영(6%)은 아주 쉬운 것으로 꼽았다.

집 밖에서 혼밥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는 '주 3회 이상'(1201명·20%)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주당 1~2회'와 '매월 1~2회'가 각각 18%로 뒤를 이었고 '해본 적 없다'가 20%였다. 또 2152명(48%)은 '최근 1년 사이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최근 1년 사이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853명(19%)으로 높지 않았다. 집 밖에서 혼술은 '해본 적 없다'가 4512명(77%), '연간 1~2회'가 9%, '월간 1~2회'가 6%로 나타났다. 혼자 술집에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혼술·혼밥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았다. '매우 긍정적이다'가 14%, '약간 긍정적이다'가 18%, '아무렇지도 않다'가 53%, '약간 부정적이다'가 12%, '매우 부정적이다'가 2%였다. 혼자 영화 볼 때의 기분은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57%로 '부정적'(8%)을 크게 웃돌았다. 나 홀로 여행도 '긍정적이다'(43%)가 '부정적이다'(13%)보다 높았다. 최근 1년 사이 못 해봤을 뿐, 욕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1인 활동을 즐기는 이유로는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59%), '타인과 시간 조율이 어려워서'(21%),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16%)가 1~3위로 조사됐다. 반대로 부담스러운 까닭으론 '혼자보다 여럿이 하는 게 더 좋으니까'(41%), '인간관계가 나쁘게 비칠까 봐'(21%), '외로운 걸 싫어해서'(19%) 등이 꼽혔다.

연령별 온도차가 나타났다. 혼밥·혼술·혼영·혼행에 대해 20대는 더 열려 있었고 40대는 좀 조심스러워했다. 예컨대 혼자 영화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대가 67%인 반면 40대는 44%로 낮아졌다. 나 홀로 영화에 대한 감정도 '매우 긍정적이다'가 20대는 52%에 달했지만 40대는 절반 수준(29%)에 그쳤다.

혼자가 불안하기는커녕 편하다

회사원 손모(38)씨는 지난 4~6일 경기 파주의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 묵었다. 1박은 혼자서, 나머지 1박은 친구를 불러 함께 보냈다. 지난해에도 홀로 5박 6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혼행은 동행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뭘 먹고 어디에 들러야 한다는 강박을 포기할 수 있다. '무(無)계획'이 매력"이라며 "좀 허세 같지만 어느 카페에 앉아 반나절 동안 독서하는 자유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혼술을 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그들은 "10년 전엔 여자 혼자 술집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며 "혼술이 하나의 문화로 떠오르면서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제 홍보팀장 최모(39)씨는 "30대 초반에 프랑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 혼밥·혼술을 한 달 경험한 뒤로는 누군가와 어렵게 약속 시간 조율하느니 혼자 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사무실 후배들에겐 '관계 맺기의 스트레스'가 보인다고 했다. 일상을 공유하며 대화하느라 시간이 축나는 게 싫고 사생활 공개도 꺼린다는 것이다. 회식도 달갑지 않은 자리다. "저 또한 10년 전엔 인맥을 넓히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젠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어요. 가끔 외롭지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거기서 안정감을 얻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 혼자 누리는 게 있구나 싶어 편안한 겁니다."

'좋아요'는 신경 안 써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은 페이스북이다. 앱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지난 4월 한 달간 전국 스마트폰 사용자 2만3663명을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에 총 56억 분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0대와 20대가 특히 페이스북에 오랜 시간 접속했고 40대 이상에서는 밴드가 인기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페이스북을 이젠 세계 20억명이 애용한다. 현대인의 고독과 결핍을 파고들어 21세기의 금맥을 발견했다는 평도 받는다. 서로 친구가 되고 '좋아요'를 누르고 우정을 주고받는 인터넷 공간을 만들었을 뿐인데 엄청난 수익을 뽑아낸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소셜미디어가 1인 활동 증가에 기여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매우 동의한다'(17%)와 '동의하는 편'(37%)이라는 긍정이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5%)와 '동의하지 않는 편'(9%)이라는 부정을 크게 넘어섰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을 때 그(그녀)는 외롭지 않다고 느낄까. '그렇다'는 응답은 774명(18%)에 그쳤다. '그렇지 않다'가 43%,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가 39%였다.

한국인은 소셜미디어도 타인을 의식하며 관계 맺는 도구로 쓸 것이라는 예상이 깨졌다. 고독이 꼭 부정적인 게 아니라 때론 필요하고 즐길 수도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회사원 손모씨는 "과거에는 소셜미디어에 내 감정을 어디까지 쏟아도 되는지 수위(水位)를 고민했지만 이젠 어느 냉면집이 맛있고 어떤 영화가 재밌다는 정보를 주고받는 그릇쯤으로 사용한다"며 "반응이 적거나 '좋아요'를 덜 받아도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우리 모두의 미래"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는 전체의 27.2%인 520만3000가구다. 1990년(102만1000가구·전체의 9%)과 비교하면 5배로 늘었다. 나 홀로 가구가 폭증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한 간편식 시장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4인용 식탁 대신 1인용 식탁을 찾는 고객도 많아진다.

'욜로(YOLO)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의 줄임말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소비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번 조사에서 '당신은 욜로족인가' 묻자 '매우 그렇다'(11%)와 '그런 편'(36%)이라는 응답이 '전혀 그렇지 않다'(4%)와 '그렇지 않은 편'(15%)이라는 응답보다 2.5배 많았다. 20~30대에서 비중이 더 높았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며 행복을 미루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템플 스테이도 고독 비즈니스의 한 종류다. 올 들어 예스24 국내 도서 판매 1위는 '자존감 수업'이다. 일본에선 한국보다 먼저 '나 홀로 문화'가 퍼졌다. 국내에 번역된 일본 에세이 중엔 '약간의 거리를 둔다' '퇴사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등이 인기다. 예스24는 "제목에 '혼자' '홀로' '고독'이 붙은 책, 혼밥·혼술과 맨손운동 관련 서적은 30대 남녀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1인 가구 증가는 척 매카시가 증명했듯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일 수 있다. '욜로족'은 맥락 없이 등장한 돌연변이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쓴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1인 가구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길든 짧든 경험할 수도 있는 생활의 조건, 우리 모두의 미래"라고 했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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