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집으로]
[킹조지섬]
[남극 빙붕]
집에서 집으로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
백야의 기세가 집까지 따라왔는지 불빛에 대한 예민함이 생겨 밤에 불을 잘 켜지 않는다. 아직 남극의 여정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김영미 제공
출국 하루 전날 밤, 혼자 사는 원룸의 방 하나를 정리하는 데 밤을 홀딱 지새웠다. 다 싸놓은 짐들을 몇 번씩 다시 풀어 헤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양말의 개수를 거듭 세어보다 갑자기 꺽꺽거리며 혼자 눈물을 쏟았다. 지구상에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향한 상상이 실현되는 시작 앞에서 터져버린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남극 횡단을 준비하던 지난 10여 년이 거대한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 멀고 대단한 여정이었어....’
남극을 걷는 상상을 할 때면, 심장이 가슴에서 뛰는데 목젖까지 떨렸다. 고대하고 바라던 남극을 향한 설렘에 떨렸고, 동시에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두려움의 떨림이 공존했다. 나는 이런 ‘떨림’이 좋았다.
영하 30도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냉동고 같은 남극의 여름은 모든 걸 꽁꽁 얼어붙게 한다. 얼어붙은 광활한 하얀 캔버스 위로 살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생명체가 ‘나 자신’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뻐근해졌다. 남극과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너무 멀었지만, 그곳을 걷는 상상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심장을 주물러 대었다.
험하고 거친 대자연 속으로 나를 떠미는 이런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내 두 발이 직접 답하지 않고 인생의 다음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충실히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길의 끝까지 한 걸음의 마지막을 완성해야만 그 해답을 얻게 될 것만 같았다. 매일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싶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더 이상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까지 실컷 걷고 싶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길의 끝에서 느낄 감정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나의 남극 대륙 횡단은 10여 년에 걸쳐 3단계로 진행되었다. 너무 특별한 곳이라 특별한 훈련과 특별한 비용 등의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2013년에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시작해 2017년에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724km와 2023년 남극점 1130km를 모두 단독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7일(칠레 시간 기준), 69일 8시간의 단독 횡단을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2월 6일) 벌써 100일이 넘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것조차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속에서 도시의 빠른 속도감에 사뭇 놀라며 여태까지 삶의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시차 적응 중이다. 챙겨간 양말은 귀국 후 70일이 넘어서야 서랍장에 제자리를 찾아 정리되었다.
같은 날 늦은 밤에 책상의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창문에 수년간 붙여 두었던 두 장의 남극 지도를 미련 없이 떼어냈다. 사실, 유리창 하나를 다 가리던 큰 지도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 지나지 않아 스스로 떨어졌다. 남아 있던 나머지 한 장을 떼었다가 금방 다시 붙였다.
지도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내는데, ‘아직 남극의 여정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원정을 준비하던 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만 같다. 집을 떠나기 전날 밤을 떠올리면 지금도 어제 일 같아 눈물이 그렁거린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여정이었어!’
100여 일의 휴식을 보내고 나니, 슬슬 회복을 위한 훈련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직 컨디션이 남극을 떠나기 전과 같지 않지만, 나는 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1786km를 건너 나의 작은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영미 산악인, 조선일보(25-05-31)-
______________
킹조지섬
지난 1일은 만우절이었어요. 영국 BBC 방송은 2008년 역사에 남을 만우절 거짓말을 합니다. 바로 빙하를 박차고 달려 나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펭귄 영상이었어요. 영상이 그럴듯해 아직도 펭귄이 날아다닌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이 가짜 영상은 남극 킹조지(King George)섬에서 촬영했어요. 킹조지섬은 남극대륙 북서쪽에 있는 화산섬입니다. 원래 남극 반도의 일부분이었으나, 판구조 운동으로 분리됐어요. 킹조지섬이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제도를 발견한 영국인 윌리엄 스미스 선장이 당시 영국 국왕 조지 3세 이름을 따 붙였어요. 제주도 면적(1848㎢)의 3분의 2 크기(1150㎢)입니다.
킹조지섬은 남극대륙의 중심지입니다. 남극대륙 북단(남위 62도)이라 비교적 기후가 온화해서 남극을 연구하는 세계 각국의 과학기지들이 모여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1988년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우고 남극의 생태, 기후, 지형, 자원 등을 연구하고 있어요. 남극을 찾는 여행객이 보통 가장 먼저 들르는 곳도 이곳이죠. 남극 여행은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서 크루즈를 타거나,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에서 경비행기를 타는데, 가까운 킹조지섬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아요.
킹조지섬에는 펭귄 마을이 있어요. 펭귄 마을의 정식 명칭은 '나레브스키 포인트'로 세종과학기지에서 남동쪽으로 2㎞ 떨어진 조그만 해안 언덕(1㎢)이에요. 턱끈펭귄 2900쌍, 젠투펭귄 1700쌍 등 펭귄 10여 종이 몰려 있어요.
펭귄 마을은 펭귄이 살기 이상적인 장소예요. 남극에서 여름철 눈이 녹는 몇 안 되는 곳이라 남반구의 여름인 11월부터 2월 사이에 펭귄들이 알을 낳으러 몰려들지요. 펭귄 마을은 '남극 특별보호구역' 중 하나인데, 2009년부터 우리나라가 관리하고 있어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 온도는 0.9도 올랐는데 남극은 유독 2.5도나 올랐어요. 킹조지섬은 역시 온난화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빙하가 녹으면서 크레바스도 늘어나고 있어요. 지구온난화로 펭귄의 주요 먹이인 크릴이 줄어든 데다, 펭귄의 쉼터가 될 수 있는 평평한 빙산들마저 녹고 있어 펭귄 수가 줄어들고 있답니다.
-박의현 창덕여중 지리 교사, 조선일보(19-04-10)-
______________
남극 빙붕
지구온난화에 쪼개지는 남극
역대 10번째로 큰 빙산… 서쪽 끝 빙붕에서 분리
서울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빙산(5800㎢)이 남극 빙붕(氷棚)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CNN과 AP통신 등이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남극 서쪽 끝에 있는 라르센 C 빙붕(면적 4만4200㎢)에서 무게 1조t, 면적 5800㎢에 달하는 빙산이 쪼개져 분리됐다. 빙붕은 남극 대륙과 연결돼 바다에 떠 있는 두께 300∼900m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남극 전체 얼음 면적의 10%를 차지한다.
지난해 8월 남극 라르센C 빙붕(冰棚)의 균열 길이가 130㎞에 달했을 때의 모습. 이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10~12일 사이 서울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빙산(5800㎢)이 빙붕에서 떨어져 나왔다. /유튜브
남극에선 1995년 라르센 A 빙붕에서, 2002년에는 라르센 B 빙붕에서 각각 거대한 빙산이 분리된 적이 있다. BBC는 "빙붕에서 빙산이 쪼개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번에 떨어져 나온 빙산은 역대 10위 안에 들 만큼 면적이 커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분리된 빙산은 경기도 절반 크기이며, 유럽 룩셈부르크(2586㎢)의 배 이상이다.
라르센 C 빙붕의 균열은 수십 년 전 시작됐지만, 2014년 이후 속도가 빨라졌고 지난겨울부터는 분리 조짐이 보였다. 영국 스완지대학의 아드리안 럭맨 교수는 "지난 12개월간 라르센 C 빙붕을 관찰했는데, 지난 10일과 12일 사이에 완전히 분리된 것을 미 항공우주국(NASA) 위성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가 라르센 C 빙붕의 분리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영국 남극연구소는 "빙붕의 수명 주기를 감안할 때 이번 빙산 분리는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의 빙하학자 에릭 리뉴는 CNN에 "빙붕이 쪼개진 것은 지난 수십 년간의 기온 상승으로 빙붕이 얇아졌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빙붕이 아예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변희원 기자, 조선일보(17-07-14)-
=======================
'[산행] > [산-산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산,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하루는 이 산을 만드는 데 썼을 것"] (3) | 2025.06.06 |
---|---|
[산..!] [46] 설악산 화채능선(華彩稜線)(강원 속초) (0) | 2025.05.30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배설물 시한폭탄' 에베레스트산의 신음] .... (0) | 2025.05.29 |
[산..!] [45] 소백산(小白山)(충북 단양) (2) | 2025.05.26 |
[산..!] [44] 설악산 황철봉(黃鐵峰)-저항령(低項嶺)(강원 인제) (1) | 2025.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