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主의 카리스마
지나고 생각해 보니까 나는 생전 YS의 상도동 자택 식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대통령 퇴임 뒤에 상도동 식탁에 여러 번 앉아볼 기회가 있었다. YS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예상을 벗어나는 답변이 돌아오곤 하였다. "정치인의 자질을
꼽는다면 어떤 부분을 제일 먼저 꼽으시겠습니까?" "카리스마야! 정치인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돼." 카리스마는 정치인만 풍기는
게 아니라 기업을 창업한 기업가들도 가지고 있다. 창업자들을 만나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해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기운에 끌려 들어가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회오리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그립감'이 아주 강하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기업가보다도 카리스마가 더욱 요구되는
분야가 바로 종교의 교주이다.
나는 젊었을 때의 꿈이 교주가 되는 것이었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팩트를 너무 깊게 인식하면서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주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첫째 정년 퇴직이 없다는 점, 둘째 추종자들의
절대적인 시봉(侍奉)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셋째 좋은 집과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교주의 카리스마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크게 3가지
신통력을 보여 주어야만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다. 예언 능력, 치병
능력, 설교 능력이 그것이다. 설교를 잘하는 설통(說通·舌通)의 카리스마 사례를 꼽는다면 1980년대 인도의 명상가 라즈니시를 들 수 있다. 라즈니시는 어려운
주제들을 놓고 너무도 설득력 있게 설교를 하였다. 그의 설교 내용을 묶은 책인 'Great Challenge'는 나의 20대를 매료시킨 책이었다. 불치병을 고쳐주는 치병 능력은 가장 확실한 추종자를 만드는 카리스마이다.
정읍시 입암산 아래의 진등마을에서 살았던 고(故) 최영단
할머니. 최영단은 1970~80년대에 걸쳐서 그녀의 눈동자만
쳐다보아도 병이 낫곤 하였던 신통력의 소유자였다. 그녀와 눈길만 마주치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주변 논밭이 모두 주차장으로 변할 정도였다. 호남선의 조그만 간이역이었던 천원역에 그녀를 위해 특급열차가
정차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나는 말년의 최영단 할머니를 여러 번 찾아 뵈었는데, 조선의 할머니 가운데 최영단처럼 기품 있고 당당하였던 눈빛을 본 적이 없다.
예언 능력도 가장 중요한 카리스마이다.
하지만 이 모든 카리스마에도 티오가 있고, 보증 기한이 있다. 이 세상에 무한 리필은 없다. 티오를 넘기면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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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家 의존하다 몰락한 저우융캉..
경기도 용인에 있는 최태민의 묘(사진 아래). 위에 있는 부모묘 중 부친 최윤성의 묘비에는 ‘독립유공자’라고 적혀 있다. /김두규
2015년 6월
11일 중국 톈진시 인민법원은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周永康)에 대해 뇌물수수죄·직권남용죄·국가기밀누설죄 혐의를 적용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전 재산을 몰수했다. 정치국
상무위원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가는 수치로 보면 쉽게 이해된다. "중국 공산당 당원은 약 8700만이다. 이 가운데 당 중앙위원회 총회에 출석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앙위원은 200명 안팎이다. 200명에서 25명이 정치국 위원으로 뽑힌다. 25명 중에서 7인이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다. 13억 인구 가운데 7인으로 뽑힌다는 것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구속되었다.
"권력남용 등 여러 가지 이외에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가 구속의 핵심
사유이다. 한·중 권력자 구속 사유가 공통적으로 '기밀누설'이다. 중국 재판부는 "저우융캉이 6부의 비밀문서를 열람 자격 없는 차오융정(曹永正)에게 보여줬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떤
문서들이었으며, 차오융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차오융정은 1959년생으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교사·출판인·사업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동시에 풍수사로 활동했다. 1997년 저우융캉이 중국석유천연가스 총경리로 재직할 때 비서의 소개로 차오융정을 만난다. 차오융정은 저우융캉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당신은 5년 후 형부상서(장관급), 10년 후에는 전각대학사(승상급)가
될 것입니다." 저우융캉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아내와의 불화, 이혼, 부인의 사고사, 이로
인한 아들의 일탈 등 불운이 계속됐다. 이때마다 저우융캉은 차오융정에게 의지했고, 차오융정은 끊임없이 그에게 언젠가 크게 되리라고 '예언'하고 '세뇌'시켰다.
얼마 후 저우융캉은 국토자원부 부장(장관급)이
된다. 이때부터 저우융캉은 일거수일투족을 차오융정에게 맡긴다. 저
사람을 만날까 말까?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 만나야 할까? 오늘
회의에 참석할까 말까? 이러한 질문이 있을 때마다 차오융정은 해당 인물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관련 자료를 받은 차오융정은 이를 치밀히 분석하고―그는 정치학을 전공했다―저우융캉에게 '답'을 주었다. 저우융캉은
아무리 중대한 회의일지라도 차오융정이 참석하지 말라면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기밀누설죄는
다름 아닌 저우융캉이 자신과 관련 있는 '주요 정치인들 및 주요 회의 내용을 차오융정에게 보여준 것'이었다(차오융정은 2016년 7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행은 영세교 교주 최태민(최순실 아버지)에서 비롯한다.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육 여사 뒤를 이을 지도자, 궁극에는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예언'하고 '세뇌'시켰다(허호익, '한국의 이단 기독교'). 그 결과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는 절대적 신뢰를 품었다. 흔히 최태민을 하찮은 사이비로
치부하지만, 풍수학인의 눈에는 간단히 보이지 않는다. 그가
부모와 자신을 위해 잡은 묏자리를 답사하다 보면 허투루 정한 곳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광인(狂人)'이 아니라 나름의 내공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의 '도참(圖讖)'에 빠진 것은 아닐까.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는 "도참이란 흥망성쇠를 예언하는 것을 말하는데, 영웅호걸들을 자극하고 영향을 주어서 실제로 사실로 나타난 적이 많다"고
했다. 저우융캉과 박근혜도 그러한 도참의 결과로 빚어진 '영웅호걸'일까?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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