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시대에 기본을 생각하며]
[문재인 정부, 진리 정치에 함몰되다]
어둠의 시대에 기본을 생각하며
[윤평중 칼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위로 펼쳐진 은하수./김영근 기자
오직 사람만이 시간을 분별(分別)한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세밑과 새해로 나누어 의미를 부여한다. 새해의 결의는 모든 것을 마멸시키는 시간의 풍화작용에 맞서는 안간힘이다. 그런데 새해가 다가와도 긍정의 언어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각자도생이 한국인의 생존 문법이 되어가고 있다. 민생고와 진영 대결의 소용돌이가 희망을 삼켜버렸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진짜 재앙이 시작된다. 재난(disaster)은 별(aster)이 없는(dis) 암흑의 상태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별이 사라져버린 어둠의 시대가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출구가 막힌 현실은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 열광한 이유를 보여준다. 어릴 때 성장 장애로 고통받던 메시(L. Messi)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우승컵과 함께 환호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땀과 헌신이 만든 극적인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했어도 아르헨티나 민생의 해피엔딩은 요원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연말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율은 100%를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도 잔치는 끝났고 신산한 현실이 남았다. 쓰라린 삶의 고통에 직면하는 자세가 인간의 용기를 입증한다.
대한민국은 계량적 잣대로는 이미 선진국이다. 그러나 성공의 뒤안길엔 르상티망(ressentiment·약자와 패자가 강자와 승자에게 품는 질투와 원망)이 가득하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과 저신뢰가 만들어 낸 르상티망의 감정이 기쁨을 앗아가 버렸다. 전쟁이 되어버린 정치와 디지털 포퓰리즘이 무한 증식시킨 원한(怨恨)과 분노가 한국인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자족하고 자긍(自矜)하는 마음자리의 기본은 우리 사회에서 희귀한 자질이 되어 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언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붕괴 직전이다.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공론 영역이 마비 상태다. 진영과 당파에 따라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순식간에 표변하지만 보수·진보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진정한 정치의 가능성도 소멸한다. 총체적 아노미 상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 삶의 기본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진영과 당파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치적 신념과 소속감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연대 의식을 북돋아줄 수 있다. 하지만 주관적 신념이 객관적 사실과 이성을 압살하면 망상과 파멸을 부른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한 땅을 두고 정면에서 부딪친 십자군 전쟁이 생생한 사례다. 우리 신념이 옳다며 다른 신념을 물리적으로 말살하려 들면 그게 바로 역사의 반동이다. 21세기 한국의 좌·우 진영 대립에도 중세 암흑기의 족쇄가 뚜렷하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경쟁 당파를 사문난적(斯文亂賊·진리를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아 숙청했을 때 중세 한반도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민주 다원 사회에선 다른 신념들이 정면충돌할 때 토론과 검증이 우선이다. 사실성과 합리성의 잣대로 신념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진영의 확신과 다를지라도 전문가 공동체가 합의한 객관적 검증 결과는 인정하는 게 과학적 태도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양심을 내세워 명명백백한 사실을 유린하곤 한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폭침, 코로나 사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논의가 소모적 음모론으로 비화하는 이유다. 현대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과학과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다른 생각을 경청하고 나의 오류를 인정하는 개방성에서 나온다. 결국 현대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시민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인간은 언제나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희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 있다.
지금까지 윤평중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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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진리 정치에 함몰되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상대를 惡으로 보는 인식 싹트고 상호 비판과 자기 성찰을 거부해
"내가 진리"라는 진리 정치로는 협치 불가능하니 민주주의엔 敵
현실 정치에 절대적 진리는 없어
문재인 정부는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자기 확신이 넘친다. 자신들이야말로 촛불 혁명의 대의를 구현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은 시시때때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소명 의식을 강조한다. 적폐 청산을 정권 차원의 최대 과제로 앞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고공 행진 중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정의의 길을 역주(力走)하는 데 대한 당연한 보답으로 여긴다.
정치 발전과 사회 진화 잣대로 볼 때 지난 10년 보수 정부 시절이 졸렬한 퇴행 시기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다. 특히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었던 박근혜 정부는, 헌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파면 결정이 상징하듯 역사적으로 총체적 파산선고를 받았다. 따라서 시민 주권의 촛불 정신을 준거 삼아 보수 정부의 잘못을 고치는 일은 불가피한 역사적 과업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국정을 정상 궤도로 복원하는 데 필요한 적폐 청산의 적정선(適正線)을 넘어섰다. 국가 운영 전체를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행보가 분명한 증거이다. 자유한국당의 수구적 행태가 문재인 정부의 이분법적 대결 정치를 부추기는 현상은 참담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래 비전을 말하기는커녕 이미 폐기 처분된 박근혜 정부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도 쩔쩔매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궁상(窮相) 어린 현실이다. 다수 시민에게 조롱받는 제1야당이 집권을 꿈꾸는 건 어불성설일 터이다.
선악 논리로 현실 정치를 가를 때 발화(發話) 주체인 현실 권력이 선과 정의의 대변자가 되기 마련이다. 바로 문재인 정부가 채택한 전략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 정치 영역에 강력한 진리 주장을 부과하는 진리 정치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진리 정치는 정치적 실천의 진리성이 객관적으로 판별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 결과 정치적 진리를 아는 쪽과 그러지 못하는 쪽이 칼같이 나뉘게 된다. '두 국민 전략'을 채택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한 정권 핵심 인사들의 날 선 언행이 보여주는 그대로이다.
진리 정치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리를 독점한 진리 정치가 민주주의의 본질인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자기 성찰을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만든 진리 정치 이념은 정치사상사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서양에서 진리 정치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정점에 도달하며,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국가 철학으로 기능한 유교가 진리 정치의 모델이었다. 도그마가 된 플라톤·마르크스주의·유교는 모두가 비판과 이견에 적대적이었다. 유교적 진리 정치를 거역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추방되었고 서양적 진리 정치의 반대자들은 역사의 공적(公敵)으로 정죄당했다. 따라서 촛불 혁명 계승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진리 정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 반대자를 단죄하는 진리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자유 토론과 상호 비판을 먹고 자라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소득 주도 성장론에서 북한 핵 대응책에 이르기까지 견해가 다른 이들의 도덕성을 거칠게 비난하고 반대 논변의 정당성을 난폭하게 힐난한다. 문재인표 경제정책을 비판하면 분배 정의를 반대하는 특권 세력이라고 몰아붙인다. 문 정부 평화 정책의 일면성을 지적하면 전쟁을 부추기는 논리라고 공격한다.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을 때엔 온건하고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서조차 적폐 세력에 부역하는 기회주의라고 매도한다. 협치와 통합 정치가 들어설 자리를 문재인식 진리 정치가 원천 봉쇄하는 셈이다. 실제로 전체 국회의원의 법안 공동 발의 숫자에 기초한 입법 네트워크 통계 분석 결과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당 간 입법 교류와 협치가 위축되고 있음을 실증했다.
문재인 정부의 진리 정치는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꽃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에도 커다란 흠집을 냈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이야말로 국가 에너지 정책의 진리라고 이미 공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특정 정책을 진리로 선포하면 모든 비판과 이견에는 허위라는 주홍글씨가 붙게 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의 근본은 나라를 지키고 시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것일 뿐, 투명한 진리를 실현하는 데 있지 않다. 과거를 향한 문재인 정부의 열정을 현재와 미래로 돌려야 할 이유다. 진리 정치라는 허위의식은 민주주의의 적(敵)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리 정치의 미망(迷妄)을 벗어 던져야 대한민국이 산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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