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성혜랑 '등나무집']
'등나무집'은 올해 초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회고록이다. 김정일-성혜림-김정남의
기이한 가족사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정작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성혜랑·성혜림 자매 집안의 3대에 걸친
가족사이다. 두 자매의 조부모, 부모의 생애를 통해 격변기
우리 민족의 의식이 형성된 여건들을 조망할 수 있고 공산주의의 생리를 충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아들이 아내의 편을 든다고 아들을 때려서 죽게 한 남편에게서 독립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외할머니.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세상을 동경해서 공산주의를 영접하고 공산주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공산
정권을 받들었던 어머니. 그리고 대지주의 후예인 아버지는 상속받은 토지를 모두 소작인에게 나누어주어
공산주의를 실천한다.
김정일이 큰아들 정남과 함께 찍은 사진.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씨가 쓴 책 '등나무집'에 처음으로 실렸다. 뒷줄 왼쪽부터 성혜랑, 성혜랑씨 딸 이남옥, 성혜랑씨 아들 이한영씨이고, 앞줄 왼쪽이 김정일, 오른쪽이 정남이다. 이 사진은 김정남이 10살 때인 1981년에 찍은 것이다. /조선일보 DB
처음엔 문재(文才)가 뛰어난 어머니가 로동신문을 혼자 집필, 편집하다시피 하면서 공산주의의 귀한 일꾼으로 칭송과 영예를 누렸고 아버지도 김일성에게 모범적 사상가로 치하를 받았지만 공산당 세력 중심에서 차츰 밀려나서 어머니는 거듭 실질적인 강등을 당하고 아버지는 '지주 출신'이라는 낙인을 떨쳐낼 수가 없다.
몇십 년을 공산주의를
위해 뼈 빠지게 헌신했던 성혜랑의 어머니는 노년에 6시간을 혼자 무대에 세워져 '자아비판'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끼니조차 불안해졌다. 시동생의 친구였던 김정일이 자기 여자로 불렀을 때 성혜림은 거절할 도리도 없었지만
부모를 곤궁과 박해에서 구하기 위해서 수락한다. 김정일과의 사실혼은 성혜림을 신경증에 시달리게 했고
김정일이 애지중지한, 둘 사이의 아들 김정남은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김정은이 노동당 간부들의 본보기식 숙청―처형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 간부들은 야심에서였건 충성심에서였건 공포심에서였건 얼마나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그토록 조악하고 야만적인 정권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출까? 우리
사회가 북한을 닮아 갈까 봐, 북한의 세력권에 들어갈까 봐, 친북
세력의 약진이 두렵고 두렵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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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판 '아랍의 봄'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소도시의 한 시장에서 촉발됐다. 청과물 노점상 청년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수레를 경찰에 빼앗기자 분신으로 저항했다. 이게 튀니지 혁명으로 이어질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 불꽃은 이집트, 예멘, 바레인, 시리아, 리비아로 번졌다.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전(前)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1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김정은 정권의 공포 통치에도 (북한 내부에) 중대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2010년 '아랍의 봄' 같은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주민 봉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태 전 공사가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은 장마당(시장)과 정보 유통의 힘이다. 북한에서 100만명 이상 굶어 죽은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지금 같은 시장이 없었다. 당을 믿고 배급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굶어 죽었고, 공터에 나가 옷가지라도 팔았던 사람은 살아남았다.
▶지금 북한 인민 경제를 움직이는 건 배급이 아니라 시장이다. 6년 전 김정일이 사망할 무렵 북한 시장은 200여곳이었지만, 이제는 공식 시장만 450여곳에 이른다. 김정일 시대 평양 지도부는 시장을 조였다 폈다 하면서 통제했다. 그러나 2009년 11월 '시장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단행했던 화폐 개혁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이후 북한은 시장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김정은은 시장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주민 생활을 다소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이 3.9% 성장으로 추정되는 것도 시장 덕분이다. 북한은 지난 8월 중국에서 옥수수 1만4057t을 수입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배 늘렸다. 초강력 대북 제재를 앞두고 시장 곡물가를 걱정했다는 의미다. 시장을 풀어주면 경제난은 완화되지만 체제 이완도 함께 가속된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 주민들이 한국산 영화와 드라마를 점점 더 많이 보는 등 갈수록 주민 통제가 약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 아랍권 주민들은 페이스북과 인터넷을 이용해 혁명의 불씨를 빠르게 퍼뜨렸다. 북한의 휴대전화 서비스 첫해인 2008년 1700여명에 불과하던 가입자는 이제 250만명을 넘는다. 북한 시장은 '생존' 그 자체다. 북한 주민이라 해도 시장의 맛을 알면 통제에 반감을 갖게 된다. 주는 것 없는 권력이 시장을 누르면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는 한 점의 분노를 공분(公憤)으로 만든다. '북한판 아랍의 봄'은 시장과 휴대전화를 타고 벼락처럼 올 수도 있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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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제재, 이번엔 김정은에게 진짜 위기다] 주민 생활 고통받고 어려워지면 김정은, 파국의 결과 맞을 것
김씨 일족 떠받친 '궁정 경제'와 핵·미사일 집중한 '군수 경제'로
민생 방치, 北 경제 파탄 지경… 유엔 제재로 '돈주'까지 자금난
과거 김정일은 아무리 유엔 제재 같은 것들이 있어도 우리는 끄떡없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연장 선상에서 김정은도 과거처럼 유엔과 그 주변국들이 아무리 북한을 압박해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김정은 정권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발생한 강력한 유엔 제재는 과거와 다르고 북한 내부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군수 경제'와 김씨
일족의 사(私)적 경제인
'궁정 경제'에 집중된 기형적인 북한 경제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장성택 처형 이후 39호실의 경제 파워는 더 강해졌다. 여기에 모든 국가 에너지를 핵과 미사일에 집중시킨 김정은의 지시로 군수 경제에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민생
경제의 시장 의존도는 더 높아졌고 거기에 방치됐다. 사치성 건축물 공사까지 맞물려 국가 경제는 더 망가졌다. 중국이 사실상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엔 제재는 김정은의 궁정 경제와 군수 경제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다. 39호실의 핵심 자금줄인 금괴, 금 정광, 연, 아연 수출이 전면 금지됐고 석탄 수출도 완전히 끊겼다. 적어도 30억달러 규모의 수출 길이 끊겼기 때문에 통치 자금 70% 정도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여기에 북한의
의류 섬유 수출까지 막았다. 막대한 외화벌이 품목이었던 비단 수출마저 중단됐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9일 방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평양화장품 공장 시찰 장면에서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이 공장에서 생산한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금과
연, 아연은 39호실에서 철저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통치 자금하고만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만 약 10억~14억달러로 추산되는 석탄
수출은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공화국 '사기꾼'들과 '돈주'들이 모두
석탄 사업에 투자할 만큼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평안남북도 일대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대형 덤프트럭만 5000대가 될 만큼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평양의 고급 식당과
상점들은 석탄 수입에서 새는 외화로 흥청거렸다. 하지만 석탄 수출 중단으로 평양의 고급 식당과 상점들이
거의 폐점하다시피 했고 대형 시장들의 구매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석탄에 투자한 많은 돈주가
자금을 잃고 추운 벌판에 나앉아 아비규환 상태로 보인다. 39호실 핵심 자금이 다 끊겨 그 산하 회사들도
말 그대로 '올 스톱'인데 그 누구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밑바닥 시장경제는 당장 유엔 제재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서민의
절대적 필수품인 식량 가격이 안정을 보이고 있다. 수출이 중단된 석탄이 내수로 풀리면서 서민용 에너지
가격도 3분의 1로 떨어져 인민은 오히려 환호하고 있다. 유엔 제재를 계속하면 좋겠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식량
가격이 안정적인 것은 시장에 의존한 농민들이 국가 수탈 정책에 맞서 죽기 살기로 식량을 비축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엔 제재가 지속될 경우 그 여파가 인민의 삶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돈주들의 자금이 말라버리면 시중에도 그만큼 돈이 풀리지 않으니 시장에 기대어 먹고살아 온 인민의 삶도 어려워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위기의 책임이 김정은 본인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은 모든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거나 외부에 돌렸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김정은 자신이 모든 결정은 자신이 했다고 세상에 자랑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핵과 미사일을 원한 적도 없고 외부 세력과 싸워서 고생하길 원하지도 않는다. 북한이 당면한 총체적 위기는 김정은 주변 세력부터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북한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만성적 위기와 이번 위기는 다른 것이어서 앞으로 김정은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파국적 결과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조선일보(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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