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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한류는 北 무너뜨릴 '트로이 목마'] ['비사회주의 섬멸전'] ....

뚝섬 2021. 9. 26. 05:55

[오징어 게임]

[한류는 北 무너뜨릴 '트로이 목마']

['비사회주의 섬멸전']

[韓·美가 북핵 못 막으면 北 주민들이 없앨 것]

 

 

 

오징어 게임

 

‘미드 보려고 넷플릭스 가입했다 한드만 본다’는 이들이 많다. 요즘 한드는 K드라마로 불리며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도 주목받는 콘텐츠로 부상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17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9부작 ‘오징어 게임’이 K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미국 넷플릭스의 인기 프로그램 순위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은 빚더미에 깔려 죽기 직전의 벼랑 끝 인생들이 모여 우승 상금 456억 원을 놓고 목숨 건 게임을 벌이는 내용.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이정재가 주연을 맡았다. 공개된 지 4일 만인 21일 미국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 22개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0개국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에서도 K드라마론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노래 만화 게임에 비해 문화적 장벽이 높은 장르다. 오징어 게임은 보편적 특수성으로 이 장벽을 넘었다. 살벌한 경쟁이라는 글로벌한 주제를, ‘배틀 로얄’ ‘도박묵시록 카이지’ 같은 인기 생존 게임물의 형식에 담되, 게임의 룰을 단순화해 문화권이 다른 시청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뽑기나 구슬치기 같은 한국적 게임과 한국적 신파, 동화적 미장센을 가미해 익숙한 듯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어와 일본어 더빙 버전을 추가한 것도 주요 시장에서 ‘1인치의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K드라마의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에서 나온다. 한류 붐을 처음 일으킨 ‘겨울연가’(2002년)는 지상파 3사의 전유물이던 드라마 시장에 외주 제작 부분적 의무화로 진출한 외주 제작사가 선보인 드라마다. 2세대의 시작을 알린 ‘미생’(2014년)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케이블 채널에서 히트시킨 첫 작품. ‘비주류’ 미생의 메가 히트 후 K드라마는 재벌 2세와의 연애담에서 벗어나 판타지물 학원물 등 다양한 세부 장르로 진화한다.

 

▷3세대 K드라마의 디딤돌이 된 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의 수백억 원대 투자를 받고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의 시청자들과 시차 없이 만나면서 ‘킹덤’ 같은 좀비물이나 생존 게임물 등 더욱 과감한 콘텐츠 실험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 톱10의 절반, 싱가포르 톱10 중 8개가 K드라마다. ‘굿닥터’ ‘보이스’ ‘라이브’ 등 포맷 수출도 한다. 이어령 선생은 “끊임없이 변주되는 ‘꼬부랑 할머니’로 대표되는 이야기꾼의 DNA”를 한류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 이야기꾼 DNA가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전정신과 만나 K드라마의 새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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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88% "北서 영상물 봤다"… 한류는 北 무너뜨릴 '트로이 목마'

 

[빗발치는 총탄 뚫고, DMZ 지뢰밭 넘어 귀순하는 北병사들… 이들은 北서 한류 접한'새 세대']

인기 드라마, 일주일이면 北으로 들어가… 北선 南노래 한두 곡 알아야 '세련된 사람'
黨간부부터 최전방 군인까지 몰래 시청… 한류가 北정권 장악력에 균열 내고 있어

北, 단속조 만들고 밀수 막으려 난리지만… 장마당, 軍과 뇌물로 통하며 한류시장 형성

 

5발의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북한군 병사가 기적처럼 깨어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가 갈망했던 것은 무엇일까. 의식이 돌아온 후 병실에서 그는 걸그룹 소녀시대가 부르는 '지(Gee)'를 들었다. 소녀시대와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북한에서 한국 문화를 접한 이른바 '새 세대'로 불린다. 지난 21일 중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밭을 뚫고 귀순한 10대의 북한 군인도 마찬가지다.

국내 입국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는 연구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88%·2016년 조사)이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영상물을 접한 적이 있다. 인기 드라마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북한에 들어간다. 2000년대 초반 한류를 주도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대장금'은 북한에서도 단연 인기가 좋았다. 북한에서 한 번이라도 남한 영상물을 접해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꼽는 프로그램은 '천국의 계단'이다. 최근에는 드라마·영화뿐 아니라 '1박 2일' '전국노래자랑'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다. 북한 주민 사이에는 남한 노래 한두 곡 정도는 부를 줄 알아야 '세련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북한 가요는 '사상'만 강조하지만 한국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북한 내 한류는 외부 정보 접촉이 제한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을 이해하는 기회의 창이다. 북한 주민들은 평소 당국으로부터 교육받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 남한'이 아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며 경제적으로 발전한 남한'을 경험한다. 한국의 발전상 및 민주화에 대한 인식은 자연적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일반 주민은 물론 당·정·군 고위층과 통제가 심한 최전방 정예 군인까지도 한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북한 당국은 "외부 사조에 대한 단속과 제국주의 사상·문화 침투 봉쇄"를 강조하며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비(非)사회주의 행위를 단속하는 별도의 단속조를 운영하고, 북한 내 유입 통로인 국경 밀수를 엄격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화와 연계된 조직이 생겨나고 뇌물로 인한 봐주기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을 위한 기기는 북한 장마당에서 인기리에 거래되는 품목이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 내륙으로 이어지는 밀수망(網)은 국경경비대 및 간부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을 위한 기기들도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일명 '노트텔'로 불리는 EVD 플레이어, 중국산 저가 태블릿 PC가 인기다. 북한말로 엠피오(MP5)라 불리는 디지털 기기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는데, 기존의 USB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 SD 카드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녹화기와 텔레비전을 연결하여 '알판(VCD)'으로 시청하던 방식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북·중 국경을 통해 북한 내륙으로 유입된다.

기기의 진화로 한국 영상물 시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장마당을 통해 거래하는 까닭에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군인들이 뇌물을 받고 지역 간 이동을 무마해 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장마당 상인은 군인과 조직적으로 연계하면서 북한 사회에 '한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 군인처럼 한국 영상물 유통을 막아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이 시청하는 북한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선군정치 이념 아래 군부의 위상과 권력이 막강한 북한 체제에서 군인의 기강은 체제의 유지·변화 여부와 직결된다. 북한 군인들이 외래문화를 접하고 의식과 행위 양식이 변한다는 사실은 체제 내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한국에 대해 적대감 대신 '나도 저런 나라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동경이 생기고 체제에 대한 충성도와 결속력이 떨어진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 위주로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 시청이 곧 체제 변화라는 거시적 변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상 통제와 학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처벌이 강도 높게 진행됨에도 여전히 북한군 내에서 한국 영상물 시청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점은 북한 당국의 통제와 장악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상 통제와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뇌물을 주고 단속을 무마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장악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북한이 '화성 15호'를 발사하며 핵 무력 완성을 자랑하지만 안으로부터의 균열과 틈새는 체제 변혁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이 '21세기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고 있다. 더 공세적인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 주민이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식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녀시대 '지(Gee)'에 열광하는 최정예 군인들을 보며 김정은은 그 노랫말처럼 '깜짝 놀라 몸이 떨려 잠도 못 이룰지' 모른다. '제국주의 사상 문화' 침투를 봉쇄하기 위해 김정은이 엑소(EXO)의 노래처럼 '으르렁으르렁'대도 북한 주민이 '한류'를 즐기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부드러운 힘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이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부산하나센터장, 조선일보(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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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회주의 섬멸전'

 

요즘 평양에선 한국 아침 드라마 '역류'가 인기라고 한다. 첫회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드라마다. 북한에 한류(韓流)가 거세지면서 서울의 최신 드라마가 평양에 도착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정은 집권 초만 해도 2주일쯤 걸렸지만 지금은 1주일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손톱만 한 마이크로 SD카드(32기가) 한 장에는 고화질 드라마 12편이 들어간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밀반입하는 업자들은 입 천장에 SD카드를 붙이는 방법으로 국경 단속을 피한다. 일단 유입된 드라마·영화·노래는 북한 전역의 400개 넘는 장마당(시장)을 통해 순식간에 유통된다. 북한 주민들의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를 다 합치면 약 400만대로 추산된다. 6명당 1대꼴이다.

 

▶너나없이 한류를 즐기다 보니 서로 고자질할 일도 없다. 오히려 젊은 층에선 드라마 대사나 "당연하지" 같은 남한 유행어를 주고받으며 동류의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신세대일수록 스토리가 뻔한 북한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남한 드라마에 더 빠져든다고 한다. 믿는 친구들끼리 '팬 클럽'을 만들어 최신편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는 최근 "북한 주민은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 덮어쓰고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에 대한 동경(憧憬)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망명 계기 중 하나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 시청을 꼽기도 했다. 이달 초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를 넘어온 북한군 병사도 의식을 찾자마자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 올해 귀순한 북한 주민은 15명으로 작년 5명보다 많다. 대다수 귀순자가 '남한 드라마를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하는 것은 한류 영향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다.

 

▶북한 김정은이 엊그제 폐막한 노동당 세포위원장 대회에서 "비사회주의 현상(한류와 시장경제 확산)과 섬멸전을 벌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당 말단 책임자들을 모아 놓고 엄명을 내릴 만큼 한류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핵과 ICBM 개발로 아무리 체제를 결속시켜도 한류 등이 확산하면 민심이 뿌 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은 90년대 후반에도 "황색 바람(자본주의 풍조)을 막아야 한다"며 주민 처벌을 강화했으나 실패했다. 지금은 비사회주의 현상을 단속해야 할 간부들부터 압수한 남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의 바람은 어떤 장벽도 막지 못한다. 김정은의 핵 야욕을 섬멸하는 데는 제재보다 '한류 주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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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가 북핵 못 막으면 北 주민들이 없앨 것

 

韓은 손 놓았고 美 군사 조치도 힘들어
하지만 北은 구멍 난 배… 바깥 소식 들어가면 반드시 가라앉는다
필요한 건 의지와 인내

 

북 핵·미사일을 못 막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한쪽이 사생결단하고 나오면 다른 쪽도 사생결단해야만 대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결기나 결의가 없다. 미국이 북에 마지막 대화 제의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위로 돌아가면 한국이 반대해도 타격을 결행할 것이란 관측도 없지는 않다. 0%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성은 희박하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어디에 있는지, 핵폭탄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화근을 일거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선제공격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후를 대비한 군사적 준비가 필요한데 북한, 중국, 러시아 모르게 대규모 이동과 재배치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한국이 반대하고 군사적으로도 어렵다면 합리적 예상 범위에서는 군사적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북핵 완성은 코앞인데 문재인 정부 기간 중에는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 핵 공유, 한국 독자 핵무장 등 근본적 대응 조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 정권이 계속되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발아래 깔려서 살아야 하나. 당분간은 그래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만 견디면 어둠의 터널이 끝날 수 있다.

북핵은 남북 모두에 암(癌)이다. 우리에겐 초기 암이지만 북에는 말기 암이다. 북 정권의 마지막 발악이 핵이다. 북핵이란 암 덩어리가 남쪽으로 혈관을 뻗치는 것을 막고 북쪽에서도 혈관을 다 끊어 고립시키면 암 덩어리는 스스로 죽는다. 대북 군사 조치와 같은 외과 수술 외에 한의학적 치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은 구멍 뚫린 배"라고 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구멍 뚫린 배는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가라앉는다. 그 전제는 북 집단이 구멍을 막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 정도의 대북 제재라도 앞으로 계속될 수 있으면 북은 결국 가라앉는다. 현 정부가 돈과 물자로 이 구멍을 메워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북을 안다. 잘 속지 않는다. 대북 지원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난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물은 '바깥세상의 소식'이다. 수많은 정보를 담은 USB는 손톱만 하고 하늘은 뚫려 있다. 아무리 북 정권이라도 전파는 못 막는다. 태영호 전 공사는 총탄 6발을 맞고도 판문점을 넘어온 북 병사와 관련, "그 빗발치는 총탄 속 질주에 북 주민 전체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 병사는 깨어난 뒤 걸그룹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 북 정권이 미국의 B1 폭격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깥소식이다.

정부는 북에 난 구멍을 더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막을 것이다. 남북 관계를 해친다고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한 것이 이들이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한 날은 2005년 11월 17일이었다. 공교롭게도 100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미국에 있던 한국인 교수는 '두 날짜엔 국치(國恥)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썼다. 실제 우리 외교관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교수는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유로 인권 결의안에 기권했는데, 그 기권은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도 했다. 바로 그다음 해에 북은 첫 핵실험으로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운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반도에 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그림자를 걷을 방법이 안 보인다고 모두가 절망한다. 사실은 방법이 있는데 일부러, 혹은 조급해서 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탈북 운동가 박연미(24)씨가 쓴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박씨는 내장을 내놓고 죽은 청년이 널브러져 있는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다녔다. 열세 살 탈북 첫날 자신을 강간하려는 중국인 브로커에게 엄마가 대신 강간당했다. 박씨 눈앞에서였다. 박씨는 영국에서 울면서 소리쳤다. '당신들은 천국에서 살고 있지만 북한에선 김정은이 2500만명을 죽이고 있다. 그런데 당신들은 기껏 김정은의 외모를 갖고 농담하느냐.' 박씨는 북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다. 100년 전 서구가 지금 북한보다 잘살고, 남자가 당(黨)이나 국가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었다. 말로 못 할 충격이었다. 박씨와 같은 사람이 북에 2500만명 있다.

며칠 전 유엔서 증언한 탈북자 지현아씨가 쓴 시 '정말 아무도 없나요'다. '무서워요/ 거기 누구 없나요/ 여긴 지옥인데/ 거기 누구 없나요/ …/ 사람이 죽어요/ 내 친구도 죽어가요/ 불러도 불러도 왜 대답 없나요/ 거기 정말 아무도 없나요.' 여기 우리가 있다고 대답해야 한다. 모두가 외쳐야 한다.

조만간 북핵이 사실상 인정되는 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 기만극이 벌어지거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막아도 북에 바깥공기를 불어넣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의지와 인내를 갖고 나아가면 언젠가는 한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이 질곡을 끝낼 것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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