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온돌은 기원전 4세기 만주서 시작됐죠

겨울은 보일러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계절인데요. 가정집 보일러는 데운 물을 바닥에 깔린 온수관으로 흐르도록 만드는 방식이에요. 우리나라에 보일러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답니다.
과거에는 주로 화로를 이용해 공기를 덥혔어요. 그런데 추운 만주 지역에 세워진 부여에서는 기원전 4세기 색다른 난방 방식이 최초로 시작됐어요. 아궁이<사진>에서 굴뚝까지 고랑을 파고 불을 지폈을 때 생기는 따듯한 연기가 이곳을 지나 나가도록 한 거예요. 그 위에는 얇고 넓은 돌인 구들장을 설치했죠. 이 구들장이 바로 '온돌'입니다. 그래서 과거 만주 일대에서는 구들장 문화가 발달했고, 고구려로 이어졌죠.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에도 고구려인은 바닥 아래에 'ㄱ' 자 모양의 구들을 설치해 방을 덥힌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삼국 통일 이후 신라에도 온돌이 전파됐어요. 그러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 난방 방식으로 정착했죠. 신라 중대 효공왕 때 축조된 칠불사 벽안당의 '아자방(亞字房)'은 한번 아궁이에 불을 때면 무려 49일 동안이나 열기가 식지 않는 구조로 설계됐다고 해요.
하지만 온돌이 일반 백성 사이에서 널리 쓰인 것은 한참 후인 조선 후기부터였어요. 조선 전기까지는 궁궐에서도 온돌보다 난로로 난방을 했다고 해요. 왕이 자는 침상 밑에 화로를 넣어 침상 바닥을 데우는 형태였대요. 개항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다양한 '온돌 체험' 기록도 존재합니다. 스웨덴 기자인 아손 그렙스트는 '조선인들은 빵처럼 구워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재미있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죠.
현대식 보일러 난방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우리의 온돌 건축 방식을 보고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일본을 방문한 프랭크는 오쿠라 호텔의 조선관에 묵었습니다. 이 조선관은 1915년 경복궁 자선당을 해체해서 그 자재를 그대로 일본으로 가져가 재건축한 건물이었어요. 그래서 온돌 구조를 갖추고 있었죠. 프랭크는 온돌을 보고 온수관이 바닥을 지나다니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온수 난방 보일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60년대입니다. 당시에는 대부분 연탄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피우고 따듯한 연기로 온돌을 데우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1961년 지어진 마포아파트에는 연탄을 이용해 물을 데우고, 물이 온수관을 지나다니도록 한 형태의 '연탄 보일러' 설비가 최초로 도입됐어요.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보일러를 사용하게 됐죠. 연료도 기존 연탄에서 석유·가스 등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전기를 이용한 난방 방식도 점차 확산하고 있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조선일보(22-01-25)-
______________________
온돌(溫突)
추운 고구려서 쓰던 온돌, 17세기 조선시대 들어 전국 확산
아궁이 불 때며 발생한 뜨거운 연기가 방 밑 통로 지나며 바닥 데우는 원리
처음엔 북쪽에서 사용하다 점차 남하
17세기 전지구적 저온현상 나타나며 온돌 보편화되어 지금처럼 자리 잡아
최근 경복궁 후원에 있는 육각형 2층 정자인 향원정 1층 바닥에서 온돌 흔적이 발견됐어요. 향원정은 1870년경 고종 임금이 경복궁 후원 연못 가운데에 새로 지은 정자입니다. 해방 이후 몇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기울어짐과 뒤틀림 현상이 계속되어 지난 2017년부터 건물을 복원하고 있는데, 복원 과정에서 1층에 온돌을 설치했던 흔적을 찾았답니다. 온돌은 우리 조상이 개발한 특별한 난방 장치입니다.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온돌을 개발해 사용했을까요?
◇2000년 넘게 이어진 온돌
온돌(溫突)은 한자어를 풀어보면 '따뜻한[溫] 굴뚝[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구들이라고도 하는데, 방바닥을 뜨끈하게 만들어서 난방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뜨거운 불기운이 방 밑의 공기 통로인 '고래'를 타고 이동하면서 방바닥인 '구들장'을 달구지요. 서양 벽난로와 다르게 연기를 높은 굴뚝으로 바로 내보내지 않고 불을 눕혀 기어가게 하면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집을 따듯하게 하고, 방 내부에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학자들은 온돌이 철기시대 한반도 북부나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개발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어요. 고고학적으로는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원시적 온돌 유적이 발견되는데, 그래서 온돌 문화가 2000년 이상 이어져 왔다고 봅니다. 역사서에는 중국 '구당서'에 "고구려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긴 구덩이를 만들어 밑에서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한다"는 기록이 있어요.
◇조선 후기에 집 전체 온돌 설치
하지만 처음부터 온돌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고구려 등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사용하다가 북쪽에 살던 사람들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고구려를 거쳐 백제와 신라로 전해졌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방 전체에 구들장을 놓은 것이 아니라 일부 공간만을 온돌방으로 꾸몄습니다. 집의 일부에만 구들을 설치했다고 해 '쪽구들'이라고 해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종 17년(1417년) 때 온돌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성균관 학생이 아픈 경우에 온돌방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온돌방을 지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집 전체에 온돌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지금처럼 구들을 집 전체에 까는 방식은 조선 후기에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6~17세기 지구적으로 온도가 떨어지는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온돌이 널리 퍼져 나갔다는 겁니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땔감으로 쓸 나무가 부족하니 온돌 설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향원정 온돌은 '도넛' 형태
이번에 향원정에서 찾아낸 온돌은 다른 일반 온돌과 달리 '도넛 형태'로 가장자리만 온돌 시설을 갖춰 난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온돌 구조는 방바닥 전체에 여러 줄의 고래를 놓아 방 전체를 데우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향원정처럼 가장자리만 온돌 시설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해요.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겨울에 정자 가장자리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을 위해 온돌을 도넛 형태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고 밝혔어요. 1894년 겨울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향원정 연못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또 건물이 작아서 가장자리만 난방 해도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요.
[작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17세기 이후 온돌이 널리 퍼지면서 조선은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문화에서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좌식 문화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문화재청은 2018년 '온돌문화'라는 이름으로 온돌을 국가무형문화재(제135호)로 지정했어요. 온돌이 사회문화적으로 한국인의 삶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인정한 것이죠. 문화재청은 특히 온돌문화를 통해 한반도가 처한 기후 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대처해온 한민족의 창의성이 드러나고, 중국 등 다른 지역의 난방 방식과 구별되는 고유한 양식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12-03)-
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의 구들방
날씨가 추우면 쩔쩔 끓는 구들방 생각이 간절하다. 불과 돌이 결합한 장치가 구들방이다. 불은 양(陽)이고 돌에서 기(氣)가 나온다. 구들방은 양기(陽氣)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난방 장치이다.
40년 동안 구들방을 연구해 온 '구들 도사' 오홍식(吳弘植·70) 선생은 구들방의 효과를 땅콩 볶는 것에 비유한다. 땅콩을 바로 볶으면 탄다. 그러나 땅콩을 모래 속에 넣어 놓고 모래를 가열하면 원적외선이 나온다.
땅콩 껍질은 타지 않고 뜨거워진 모래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을 통해 땅콩 속이 익는 것이다. 뜨끈한 구들방에 누워 있으면 돌에서 방사된 원적외선으로 인해서 사람 몸이 따뜻해지니까 치유 효과가 있다고 설파한다.
"구들방 놓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입니까?" "축열(蓄熱)이죠. 따뜻함이 오래 유지되는 구들방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들장의 방돌이 문제이겠네요?" "화산지대에서 나온 현무암이 제일 효과가 좋습니다." 현무암은 화산이 폭발할 때 엄청나게 높은 온도의 고열을 쐬고 이게 식어서 생긴 돌이다. 그래서 불과 열에 강하다는 것이다. 마치 인삼을 열로 찌면 홍삼이 되듯이 화산 폭발의 열을 거친 돌이기 때문에 홍삼과 같은 돌이 현무암인 셈이다. 법제(法製)가 된 돌이다.
일반적으로 방 돌로 많이 쓰는 화강암이나 점판암보다도 현무암의 열효율이 20~30% 높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나온 현무암을 쓰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화산지대에서 수입한 화산돌을 많이 쓴다고 한다. 아랫목 자리에는 10㎝ 두께의 돌을 배치하고 윗 목으로 갈수록 점점 얇은 돌을 쓴다.
현무암은 대개 곰보처럼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데, 방 돌로 쓰기 좋은 현무암은 구멍이 없는 돌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온돌방은 중국, 일본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21세기에 내 놓아도 세계적으로 먹힐 수 있는 문화이다. 특히 한국의 굴뚝이 건물에 바짝 붙어 있지 않고 몇m씩 떨어져 있는 구조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배치라는 게 오 선생 설명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8-02-1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68년 겨울 춘천의 따스했던 기억] (0) | 2022.02.13 |
|---|---|
| [뻔뻔함에 대하여] [5등도 27등도 응원합니다] (0) | 2022.02.12 |
| [건설공사 중단 부른 ‘1호 포비아’] [‘빨간 줄 임원’ 급구 ] (0) | 2022.01.29 |
| [요리 블로거는 살림의 적 시키는 대로 할 필요 없다] (0) | 2022.01.23 |
| [드라마가 죽인 말] (0) | 2022.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