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적 근로 청와대만 필요한가]
[근로시간 단축]
[추가로 일한 시간만큼 근로시간 저축해 한가할 때 휴가로 보상]
초인적 근로 청와대만 필요한가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직원들의 과중한 초과 근무와 관련해 “초인적 과로에 노출된 청와대 비서진에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공직자의 한 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워커홀릭’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취임 초부터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이 되면 어떨까” “공직자는 24시간 일하는 것”이라며 공직의 헌신과 사명감을 강조해왔다. 경제·외교·안보 복합 위기가 겹친 상황에서 공직자의 책임과 긴장감을 점검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전쟁터’라는 비유도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공직자의 1시간이 5200만 국민의 5200만 시간으로 치환되는 논리도 납득이 간다.
다만 대통령이 강조한 일하는 시간의 ‘밀도’와 ‘양’이 공직 사회에서만 절실한 문제일까. AI·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첨단 산업은 언제나 초격차 경쟁이다. 한 세대 기술에서 밀리면 수년간 따라잡지 못하고, 한 번의 판단 착오가 천문학적 손실은 물론 기업의 명운까지 좌우하는 더 냉혹한 전쟁터다. 혁신의 대명사에서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추락한 모토로라·노키아·야후·소니가 그러했다.
최근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를 둘러싸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주도권 3파전이 치열하다. 이런 국면에서 반도체 연구원의 1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차세대 공정 개발에 기여하는 1시간은 수십억 달러 수출, 수만 개 일자리,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다. 산업계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의 경직된 적용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총근로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노동계의 우려를 감안해 대형 프로젝트 막바지나 수율 안정화처럼 집중 투입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이든 연구원이든 과로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선택이다. 규제가 일률적으로 묶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와 현장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의 문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7일 소셜미디어에 태극기 이모티콘 16개와 함께 테슬라코리아의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올렸다. 주 100시간 가까이 일하는 ‘일 중독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머스크가 한국의 인재를 향해 손짓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렇게 인재와 시간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전쟁터라면, 그 전쟁은 청와대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클린룸에서도, 무인 차량 자율 주행 연구소에서도, 글로벌 협상 테이블에서도 동시에 벌어진다. 산업과 기업 이해도가 높은 대통령이라면 치열한 산업 현장의 현실도 함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정구 기자, 조선일보(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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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에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은 불야성. 국민 먹여 살리는 건 산업이란 진리의 현장.
-팔면봉, 조선일보(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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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휴대폰은 출시 직전, 아이스크림 공장은 여름에 바쁜데…
근로자 삶 바꿀 '주 52시간 근무' 일괄적용 땐 부작용 우려
특정시기 일감 몰리는 업종 "탄력 근무제로 제도 보완을"
기술 변화 빠른 스마트폰 시장… 개발자들 출시 앞두고 집중 근무 "근로시간 지키면 스케줄 못맞춰"
중소 제조업체, 주문생산 많아 "일 몰릴땐 잔업해야 납기 지켜… 중국·일본에 일감 뺏길까 걱정"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A사는 겨울엔 하루에 8시간만 공장을 돌린다. 비수기라 아이스크림이 별로 안 팔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름철 성수기를 앞둔 5~7월이면 바빠진다.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고, 직원은 '2조 맞교대' 내지는 '3조 3교대'로 근무한다. 계절에 따라 일감이 많든 적든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7월부터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게 되면서 A사는 난감해졌다. 회사 고위 임원은 "법을 지키려면 여름엔 직원을 더 뽑아 '4조 3교대'를 해야 한다"며 "늘어난 인력은 겨울엔 고스란히 남는 인력이 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노조가 추가 채용을 반대한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일감 몰리는 업종 "보완책 절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과로사회'에서 탈피하려면 보완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1주일 52시간'으로 무조건 제약만 할 게 아니라 일감이 일정 시기에 몰리는 기업이 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스마트폰 개발 기업은 통상 출시 예정일 1년 전부터 3~6개월간 집중 개발에 들어간다. 연구원들은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으로 근무한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 타이밍을 놓치면 곧바로 도태되는데 주당 근로시간 지키며 신제품 개발 스케줄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노동력을 더 투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건설업도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근로시간 영향을 받는다. 6~7월엔 장마가 있어 실외 작업이 어렵고, 한여름이나 겨울엔 건물 안전 문제 때문에 콘크리트 타설도 못한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은 공기(工期)가 생명인데 근로시간 제약을 받으면 인건비 감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납기 못 맞추면 물량 뺏길 것"
주문생산이 많은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은 사정이 더 안 좋다. 대기업처럼 공장 자동화가 돼 있지 않는 중소기업은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금형 업체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주를 하면 선적까지 6~8주간 밤·주말 근무를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장근로가 어려워지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업종은 구인난에 처해 있다. 경기 시흥 시화공단에 있는 금형 업체 김모 이사는 "잔업이 줄어 납기를 한 번, 두 번 못 맞추다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물량을 뺏기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포천에 있는 원단업체 정모 대표는 "섬유 분야에선 몇 명이 몇 시간 일하느냐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는데 주말이나 휴일 근무를 없애면 월 생산량이 20%가량 줄고, 매출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이제 외국으로 옮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숨통 틔워줘야"
재계에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성화를 주장해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기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필요할 경우 추가 근무를 허용하는 제도다. 지금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적용 기간이 최대 석 달에 불과해 이용하는 기업이 별로 없다.
또 이 규정의 뜻은 "적용 기간 내에 탄력적으로 운용해 평균 52시간만 맞추면 된다"는 것이지, "적용 기간 내내 52시간을 넘을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적용 기간을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계절 가전제품은 일감이 1년 중 두세 달에 몰리는데, 이 시기 집중 근무를 하려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기간이 1년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동안 이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조재희 기자/곽래건 기자, 조선일보(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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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일한 시간만큼 근로시간 저축해 한가할 때 휴가로 보상
독일·미국 등은 어떻게 하나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근로시간이 짧지만, 근로시간 상한을 단체협약 등을 통해 노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을 기준으로 하지만 노사에 재량권을 준 것이다. 사업장마다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독일은 법으로 근로시간이 하루 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은 규정돼 있지 않다. 연장 근로의 한도도 노사 합의에 따른 단체협약에 맡기고 있다. 특히 1990년대에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라는 제도를 도입해 연장 근로에 대한 보상을 수당 대신 휴가로 바꿨다. 예를 들어 하루 2시간 초과근무를 했다면 이에 대한 수당 대신 나중에 그만큼을 휴식이나 휴가로 쓸 수 있게 했다.
미국은 최장 근무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다. 1주일에 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만 있고, 이를 넘기는 근무는 시간외수당만 주면 된다. 일부 사무직에게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는 제도도 운용 중이다. 연봉이 4만7476달러(약 5141만원)를 넘는 사무직은 주당 40시간을 넘게 근무해도 추가 수당을 안 줘도 된다. 근로시간으로 성과를 평가받기 어려운 직종엔 업무시간에 대한 재량권을 주고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하게 한 것이다.
일본은 시간외근로는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만을 따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월간, 연간으로만 근로시간 초과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재계가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적용 기간도 우리보다 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적용 기간이 1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자 동의 등을 얻어 현재 최대 2주 혹은 최대 석 달 안에서만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곽래건 기자, 조선일보(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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