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안 가르치는 나라]
[부산과 일본 대마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역사적인 이유는?]
세계사 안 가르치는 나라

40년 전 대학 학력고사를 치를 때 ‘세계사’를 선택했다. 지리와 세계사 사이에서 압도적인 암기량과 방대한 범위를 자랑하는 세계사를 고집했던 건 일종의 지적 승부욕이었다. 촘촘한 역사의 인과관계가 드라마처럼 재미 있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의 이치가 이런 것인가 느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입시 현장에서 세계사는 ‘역덕(역사 덕후)’들만 찾는 기피 과목이다. 2014년 선택 과목제가 도입된 이후 학생들은 분량 적고 점수 따기 쉬운 과목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요즘 세계사 선택률은 5~8%대로 최하위다.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에서 한국의 젊은 커플을 만난 적이 있다. 정교한 이슬람의 아라베스크 문양 앞에서 그들은 “가톨릭 성당이라는데 왜 실내가 이렇게 특이하냐”며 궁금해했다. 스페인 남부 지역이 오랫동안 이슬람 지배를 받았고 기독교 세력이 이를 다시 정복했다는 역사를 모르는 듯 했다. 이는 상식에 가까운 세계사이지만 대부분 한국 청년 세대는 학교에서 배울 기회 자체가 없는 지식이다.
▶한국만의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가까이는 중국, 일본 역사에 직접 영향을 받았고 결국 유럽의 발전이 가져온 제국주의 폭풍우가 한국 역사를 덮쳤다. 중국 아편전쟁, 미국 페리 제독 흑선(黑船)의 일본 출현, 메이지 유신을 모르고 우리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없다. 이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을 모른 채 한국사만 들여다보는 건 바다를 안 보고 작은 배 속만 들여다보는 격이다.
▶일본은 2022년부터 일본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총합’을 고교 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 “일본사만 배우면 바보가 되고, 세계사만 배우면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된다”는 생각이다. 적도는 뜨겁고 북극은 춥다며 각국 지리와 기후만 가르치는 한국 초등학교와 달리, 유럽의 초등학교는 왜 세계는 서로 싸우고 합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공부한다.
▶교육부가 최근 중학교 역사 수업에서 우리 근현대사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발표 내용을 아무리 읽어봐도 세계사 교육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서울대는 반세기 넘게 고수해 온 국사·동양사·서양사학과의 장벽을 허물고 지난 2023년 ‘역사학부’로 통합했다. 아편 전쟁(동양사)을 모르고 어떻게 강화도 조약(국사)을 가르치며, 제국주의(서양사)를 모르고 어떻게 근현대사를 이해하느냐는 기초적 문제 의식이 그 안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학교는 여전히 세계사를 선택 과목의 구석방에 가두고 학생들을 국사 외눈박이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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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일본 대마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역사적인 이유는?
대마도를 이용해 대륙의 선진문화를 줍다시피 얻는 행운을..

부산 영도에서 바라본 일본 대마도 모습. / photo by 조선DB
대마도! 맑은 날씨면 부산해변에서 맨눈에 바로 보이는 섬이다. 부산과 40km 남짓하지만 일본과의 거리는 130km가 넘는다. 부산에서 메일 여러 대의 배(비행기는 없다)가 오가고, 3만여 인구의 섬에 매년 수십만의 외국관광객이 찾아드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이다.
얼마 전 대마도에서 가이드로부터 “한국인이 대마도 왕래인구의 90%를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역사적으로 대마도의 금세공술은 일본 본섬보다 한 세기를 앞섰고, 일본 최초의 은광산이 대마도에 있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금세공술은 백제와 신라에서 번창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참조하면, 백제와 신라의 금세공술이 대마도로 전해져 호황을 누리다가 한 세기의 세월이 지나면서 큐슈를 거쳐 일본의 수도인 나라와 교토로 건너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금세공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연관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산업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동부 13주에 불과했던 미국의 영토가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 이후 서부개척을 통해 몇 배로 커지고 경제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한 역사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백제나 신라로부터 전래된 금세공술이 고대 일본의 경제와 귀족문화를 크게 발전시킨 사실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6세기에 이르러 이루어진 대규모 은광개발은 일본의 경제와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이전에 일본경제는 국토의 중앙에 놓인 높고 험한 산맥으로 동서가 분리되고, 강의 유역이 발달하지 못해 농토가 부족해서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 노략질을 않고는 궁핍을 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데 16세기 들어 대규모 은광이 개발되자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노략질보다는 은을 싣고 외국으로 장사를 나서기 시작했고, 서양인들은 막대한 은에 현혹되어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대규모의 은생산은 뛰어난 제련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때마침 연은분리법(鍊銀分離法)이라는 최첨단 제련기술이 1503년 김감불과 검동이라는 조선기술자에 의해 발명되었고, 이 기술은 얼마 안있어 대마도를 통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한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울 만한 첨단기술이 쉽사리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당시 조선의 양반들이 상공업을 억압하고, 기술자를 천시하고 차별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시대 대규모 은생산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성장은 너무 빨라 사회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오랜 경험이나 연구개발로 얻은 토종기술이 아니라 그저 줍다시피 차지한 외래기술로 뜻밖의 노다지를 캤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졸부근성이 발동하여 무모하게 대륙정벌의 야욕에 사로잡혀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르니, 막상 첨단신기술을 개발한 조선은 혜택은커녕 초유의 국가적 재앙을 당한 셈이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대마도는 세계사를 바꾼 현장이었다. 1905년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군에게 궤멸되었다. 이 때 일본은 대마도 한가운데에 운하를 뚫고 요새로 삼아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오느라 녹초가 된 러시아 해군을 섬멸하였고, 승리의 여세로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얻어 조선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긴 역사를 보면 대마도는 언제나 한국을 향했다. 그리고 일본은 이러한 대마도를 이용해 대륙의 선진문화를 줍다시피 얻는 행운을 수천년 동안 누렸다. 이를 보면 15세기 조선의 대마도정벌 때 “험준한 산에 농토도 없는 척박한 섬을 차지해서 무얼 하느냐’고 핏대를 올리며, 조기철군을 외친 조선 벼슬아치들의 안목이 지금으로선 너무 아쉽다.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고려 때까지 한국은 땅보다 훨씬 큰 바다를 차지한 해상왕국이었다. 그 때까지 대마도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한국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우리가 쇄국과 해금으로 바다를 방치하면서부터 대마도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를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부산과 대마도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현실을 안다면, 우리는 대륙을 동경하는 대마도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한다.
글 | 문성근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조선Pub(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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